나의 사랑, 트람바이

하얀 카펫을 밟으며 학교에 갑니다.

by 불가사리

모스크바에서 러시아인들을 만나면, 그들이 꼭 묻는 질문이 있다.

“모스크바에서 뭐가 제일 좋아요?”
“트램이요. 트램을 타는 게 정말 좋아요.”
“한국엔 트램이 없어요?”

예상치 못한 나의 답변에 그들은 흠칫 놀란다. 그들에겐 당연한 교통수단 ‘트램’이 바다 건너 이 곳에 살게 된 한국 여자에겐 ‘모스크바에서 가장 좋은 것’ 이 되었다. 어린 시절부터 멀미가 심한 나는 차를 타는 게 힘들었다. 어른이 되어서도 택시보다 대중교통, 버스보다 지하철을 선호한다. (버스에서 책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이 가장 부러운 1인) 그런 내게, 멀미 없이 바깥 풍경을 볼 수 있는 ‘트램’은 최고의 교통수단이다.


어느 초가을, 길가에 멈춰 있는 모스크바의 트램


나의 사랑 트람바이. (러시아어로 트램) 매일 아침 러시아어 학교에 가기 위해서는 26번 트램을 탄다. 마침 내가 트램을 타는 정류장 우니베르시젯(모스크바 국립대학교가 근처에 있는 ‘유니버시티’ 역)은 트램의 종점이다. 메트로에서 내려 트램 정류장을 향해 걷다 보면, 종점에 대기하던 트램의 움직임이 포착된다. 그때부터 조금 빠른 속도로 걷거나 달리기 시작한다.

“헉헉, 스파시바.(감사합니다)”

뛰어서 트램에 탔지만, 트램은 아직 출발하지 않는다. 창밖을 보니, 저 멀리 할머니 한 분이 종종걸음으로 오고 있다. 뛰어오는 몇몇 사람들도 보인다. 운전수는 지금 그들을 기다리는 중이다. 할머니가 타고, 유모차에 아이를 태운 엄마가 트램에 올랐다. 앞쪽에 서있던 러시아 청년이, 유모차를 들어 트램에 실어준다.

“스파시바(감사합니다)”

기다렸던 이들을 모두 태운 트램은 천천히 정해진 선로를 따라 달린다. 내가 본 모스크바의 트램 운전수들은 모두 여성이었다. 학교 선생님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트램은 무거워서, 거센 바람에 흔들릴 일도 없고 정해진 노선만 가니까 운전이 수월한 편이죠. 그래서 여성 운전수가 더 많답니다.”


두 량의 트램이 묶여서 함께 달린다 :)


자동차처럼 속도를 내면서 상대를 추월하거나, 차선을 바꾸기 위해 눈치 싸움을 할 필요 조차 없는 트램의 운명! 거센 바람이 불어도 흔들림 없이,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묵묵히 자신의 속도로 나아가는 것. 내가 원하는 삶의 태도를 트램에서 찾는다.

“아, 오늘도 참 좋다.”

트램을 탈 때마다, 나는 행복해진다. 봄이 오면 넓은 창으로 따뜻한 햇살을 쬐고, 여름엔 파란 하늘에 닿을 듯한 거리의 나무들을 구경한다. 가을엔 황금빛으로 물든 길을, 겨울엔 하얗고 보드라운 눈 양탄자를 타고 학교에 간다. 내 평생, 칸 영화제의 레드카펫을 밟을 일은 없을지라도, 그때의 계절이 깔아주는 변화무쌍한 카펫을 트램과 함께 사뿐히 밟는다. 때론 젊은 연주자의 음악이 은은하게, 우리가 함께 가는 길을 채운다.


트램에서 보는 모스크바의 사계절, 모든 계절이 아름답다.

https://youtu.be/AowuS0Pu538

트램에서 운이 좋으면, 연주자의 음악을 들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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