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에서 만난 두 번의 소매치기
나는 모스크바 국립대학교(МГУ 엠게우) 어학교에 다닌다. 러시아 최초의 종합대학으로, 전 세계 곳곳에서 유학 온 학생들이 많다. 어학교의 한 반에 모인 다양한 국적의 이들은, 종종 자신의 나라,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자신의 나라만의 특징, 문화에 대해 이야기해 볼까요?”
러시아인 선생님의 질문에, 일본 교토에서 온 아이리가 먼저 대답을 했다.
“일본은 카페에 노트북을 두고 화장실에 다녀와도 괜찮아요. 그대로 그 자리에 있어요.”
같이 수업을 듣던, 한국 학생들은 하나가 되어 말했다.
“한국도 그래! (너희 나라만 그런 거 아니다 뭐-!)”
묘한 뿌듯함에 신난 우리들에게, 러시아인 선생님은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러시아는 안돼요. 특히 지하철에서 휴대폰을 뒷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외국인들을 많은데... 그럼 제가 가서 말해준답니다. 안쪽 주머니에 넣으세요. 도난당할 수 있습니다.”
모스크바에 살면서 한 해 가까이, 단 한 번도 소매치기를 당한 적은 없었다. 이 곳에 오래 산 남편도 한 번도 겪은 적이 없었기에, 그에게 특별한 주의를 받은 적이 없다. 스페인 바르셀로나 여행에서, 눈 앞에서 소매치기 현장을 목격하며 우리는 모스크바에 살고 있음에 감사했다. 내게 모스크바는 도난의 위험이 없는 안전한 도시였다.
딱 1년이 되던, 그 해 여름 부모님이 모스크바를 방문했다. 유럽 여행의 경험이 있는 부모님께, 나는 자신 있게 말했다.
“여긴 다른 유럽처럼 소매치기는 없어요. 걱정 마세요!”
본격적인 여행이 시작된 다음 날, 부모님과 함께 붉은 광장에 가기로 했다. 모스크바의 화려한 메트로를 보여주고 싶어, 집에서 택시를 타고 키엡스까야역에 내렸다. 아름답기로 유명한 역 중 하나인 키엡스까야, 이 곳은 키예프로 가는 기차역도 함께 있어 늘 많은 사람들로 붐빈다. 부모님은 아름다운 메트로 역사를 보며 감탄했고, 나는 여러 장의 사진을 찍어드렸다. 붉은 광장에 도착해, 크렘린 궁전에 들어가려고 표를 사려는 순간. 나는 깨달았다.
“나 지갑이 없어.”
“잘 찾아봐, 옷 안에 둔 거 아니야?”
“아니야. 여기 핸드백 앞 (똑딱이 단추로 채워진)에 뒀는데 없어..!”
남편과 나는 이 곳까지 오는 길을 다시 떠올렸다.
“지하철 역에서 표를 살 땐 있었어.”
“역사 안에서 누군가 치고 갔는데, 설마....!”
부모님의 사진을 찍어드리는 사이, 지갑은 사라졌다. 나는 통장에 있던 돈을, 남편의 통장으로 모두 옮겼다. 소매치기의 자유로운 소액결제(러시아에서는 1000 루블-한화 15000원 이상 결제 시 비밀번호가 필요하다)를 막기 위해서다.
“흑흑, 그 지갑 이번에 한국에서 샀는데... 열쇠도 잃어버려서 어떡하지.”
“다시 좋은 거 사자, 열쇠는 집주인에게 말해서 다시 만들면 돼.”
다행히 함께한 남편 덕분에 첫날 일정은 잘 마치고, 다음 날 우리는 부모님과 함께 고르키 공원에 갔다. 공원의 노천에 있는, 베트남 쌀 국숫집에서 주문을 하고 음식을 기다렸다. 그런데 옆 테이블에 앉아서 식사하던 여학생 두 명이, 갑자기 걸어가던 한 남자를 향해 뛰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그 남자는 식사를 하면서, 한쪽 의자에 걸어둔 여학생의 에코백을 그대로 어깨에 메고 걸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세상에. 그 남자는 뛰지 않았다.)
“어머, 여자애 둘이 소매치기를 잡았나 봐.”
“세상에, 너무 뻔뻔한 소매치기다. 자기 에코백 메고 걸어가는 것 같잖아.”
“여학생 둘이 대단하네.”
스스로 소매치기를 잡은 그녀들은 자리로 돌아와 축배를 들었고, 아빠는 그녀들을 향해 엄지를 치켰다. 두 번의 경험 이후, 나는 모스크바에서 긴장을 늦추지 않게 됐다. 한국으로 돌아간 엄마는 내게 인터넷 카페에서 봤다며, 메시지를 보냈다.
“모스크바 여행한 사람들이 글을 올렸는데, 소매치기 천국이래. 다들 여행 가서 많이 털렸대.”
“관광객이 많아져서 그런가 봐요. 여름이기도 하고.”
세상 어느 곳이든, 소매치기로부터 안전하지 않다. 일단 서울과 교토는 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