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색다른 메트로 여행
러시아의 지하궁전. 메트로(지하철)를 칭하는 다른 말이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지하철 중 하나, 수도 모스크바의 지하철은 현재 17개의 노선으로 운행 중이다. 각 역별로 특색 있고, 화려하고 웅장한 느낌을 주기에 이 곳만 돌아보는 관광도 있을 정도다.
모스크바 지하철역이 궁전 같이 화려한 데에는 스탈린의 정치적 의도가 숨어있다. 1930년대 대공황으로 미국을 포함 자본주의 사회는 곤경에 처했다. 당시 스탈린은 사회주의 체제의 우월성을 보여주기 위해, 시민들이 사용하는 지하철역을 선택했다고 한다.
“조심해. 한국보다 속도가 빨라.”
에스컬레이터를 타는데, 남편이 내게 주의를 준다. 조심스레 한 발을 디뎠다. 몸이 기우뚱. 한국에 비해 2배는 빠르다. 손잡이를 꼭 잡았다. 한 참 아래로 내려간다. 원형으로 둥글고 높은 천장. 빠르고 깊은 에스컬레이터. 동굴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 든다. 2차 대전시 방공호의 역할도 있었다고 하니, 이 안에 있으면 밖에서는 전쟁이 일어나도 모를 것 같다. 열차가 오는 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사람들은 뛰지 않는다.
“금방 또 올 거야. 배차간격이 2분이거든.”
“좋다. 한국보다 좋은 게 여기 또 있네.”
“아, 그런데 지하철에서 말은 많이 하지 마. 나중에 목이 아플 수도 있어.”
열차가 출발하면서, 그의 당부를 이해하게 됐다. 에어컨이 없는 열차는 좌석 위 창문이 열린 채 달리고 있다. (열차에 따라 다르며, 신식의 경우 에어컨이 있다.) 귀가 아플 정도로 엄청난 소음이 발생했다.
“너무 시끄러워. 귀도 머리도 아파.”
“뭐라고?”
나는 귓불을 접어 살짝 귀를 막았다. 이러다가 난청이 오겠어.
모스크바의 지하철은 1935년 5월 15일, 처음 운행을 시작했다. 색으로 각 노선을 구분하는데 최초의 노선은 숫자 1이 쓰인 빨간색 선의 일부분(쇼콜니끼 - 파르크 쿨투릐)이다. 그때에는 4분에 한 대씩 다녔다고 한다. 역도 다르지만, 도착하는 열차도 다양하다. 그중 ‘크라스나야 스트렐라(빨간 화살표)’는 상트와 모스크바를 오가는 최초의 브랜드 열차(1931년)인데, 75주년을 기념하여 만든 열차도 지하철로 탈 수 있다. 새해(1월 1일), 전승기념일(5월 9일)을 앞두고는 특별한 래핑을 한 열차가 운행한다. 나는 플랫폼에서 ‘오늘은 어떤 열차가 내게 올까?’ 늘 설레는 마음으로 다음 열차를 기다렸다.
홀로 지하철을 타는 날, 나는 절대 눈을 감지 않았다. 일정한 움직임 때문인지, 한국에서 지하철을 타면 짧은 숙면을 취했다. 놀라서 눈을 뜨면, 안내 음성이나 창밖의 역 표시로 나의 현 위치를 알 수 있다. 하지만 러시아어도, 지하철 노선도 낯선 이 곳에서, 깜박 잠이 들었다가 창밖을 두리번거리며 살폈는데, 도저히 역 이름을 찾을 수 없었다. 이 곳의 역 표시는, 출입구가 아닌 반대편에 딱 하나 크게 쓰여있다.
“목소리로 구분하면 돼, 도심으로 갈 때는 남자, 외곽으로 나갈 때는 여자.”
“안내 음성에 비밀이 숨어 있었구나!”
친절한 러시아인 친구 덕분에, 그 후 모스크바의 지하철에서 잠시 눈을 감을 수 있었다. 한국과 흡사하지만, 환승역은 각각 다른 이름을 가진 모스크바의 지하철. (예를 들어 한국의 경우 2호선, 5호선 ‘동대문역사문화공원’으로 같은 이름이지만, 주요 명소인 붉은 광장이 가까운 ‘아호드니 야드(빨간선), 테아트랄나야(초록선), 플로샤디 레볼루찌이(파란선) 은 같은 환승역이다) 역사 내에 울려 퍼지는 매일 다른 연주자의 음악, 거리에 상관없이 동일한 요금, 개찰구를 통과할 때만 표를 사용하는 곳, 어느새 모스크바의 지하철에 익숙해진 나는 서울의 지하철에서, 늘 출구를 통과할 때에야 부랴 부랴 교통카드를 꺼낸다.
모스크바의 지하철에도 노약자석 표시가 있었다. 궁금해진 나는 수업시간에 선생님께 물었다.
“한국에는 임산부를 위한 자리, 끝에 노약자 석이 따로 있어요. 그래서 그곳은 비어 있어도 아무도 않지 않죠. 러시아도 끝 좌석은 노약자를 위한 자리인가요?”
러시아 선생님은 강한 눈빛으로 말했다.
“러시아의 지하철은 모든 좌석이 여성을 위한 자리예요. 혹시 남자가 앉아 있던가요? 그는 러시아인이 아닙니다. (단호) 러시아 남자는 자리가 있어도, 앉지 않아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