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스토이 서거 110주년, 그에게 쓰는 편지
안녕하세요. 톨스토이 작가님.
오늘(11월 20일)은 당신이 세상을 떠난 지 110년이 되는 날이네요. 2년 전 사진첩을 들춰 당신의 고향, 야스나야 폴라냐(Ясная Поляна) 속으로 들어갑니다. 제가 갔던 그 날은, 금빛 가을이 찬란하게 빛나던 10월 중순이었어요.
금요일 밤 9시 40분. 모스크바 쿠르스키역에서 툴라행 (Тула) 기차를 탔어요. 다음 날 새벽 0시가 넘어 도착했죠. 야스나야 폴라냐와 가장 가까운 기차역. 두 살에 어머니, 아홉 살에 아버지까지 잃고 모스크바의 친척집으로 떠나던 날, 열여섯 살에 카잔 대학에서 자퇴를 하고 고향으로 돌아오던 날, 당신도 나처럼 이 툴라의 기차역에 있었겠죠? 다음 날 아침, 기차 플랫폼 한쪽 벽에 남겨진 문구를 보면서 수없이 이 곳을 오갔던 당신. 1879년, 이 곳에서 작가 투르게네프를 만나 반가운 인사를 나눴을 당신의 모습을 상상합니다.
수업시간에 툴라에서 유명한 과자 ‘프리야닉’에 대해 배웠어요. 한국 천안의 명물 ‘호두과자’처럼, 툴라에 가면 꼭 사야 하는 것이라고요. 포근하게 혀 끝에 감기는 러시아의 케이크와 달리, 조금 단단한 빵과 비스킷 중간의 식감이었어요. 달달하고 향긋한 계피향이 나서 좋았답니다. 화려한 문양은 어찌나 아름답던지요. 반 친구들을 위해서, 어떤 것을 사면 좋을까 한참을 망설였답니다.
툴라 시내를 걷다가, 당신이 쓴 책 ‘전쟁과 평화’를 보았어요. 미안해요. 이제야 고백하는데, ‘전쟁과 평화’를 시작은 했었지만, 끝까지 읽지 못했어요. 제게 러시아 소설은 참 어렵네요. 이름들이 헷갈려서, 몇 번을 앞장으로 넘겨서 확인하게 되는지... 하지만 당신의 단편집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는 열심히 읽었답니다. 저와 같은 독자들을 위해, 깊은 여운을 남기는 여러 편의 짧은 이야기들도 써줘서 고맙습니다.
택시를 타고 30분을 갔어요. 드디어 ‘야스나야 폴라냐’ 당신의 고향, 집이 있는 곳이네요. 노랗게 물든 나뭇잎이 달린 하얀 자작나무 오솔길을 걸었습니다. 파란 하늘에 바람이 살랑 불면, 노랗게 물든 잎들이 떨어져요. 한국에서는 떨어지는 나뭇잎을 잡으면 사랑이 이뤄진다고 하는데, 러시아는 어떤가요? 예쁜 단풍잎을 줍는 러시아인들처럼, 당신도 이 길을 걸으며 잎들을 주웠나요? 끝없이 길게 펼쳐진 길, 쌓여 있는 잎들을 밝으며 사그락, 사그락. 당신이 남긴 가을의 소리를 들었습니다.
사과를 좋아했나요? 당신이 직접 심은 사과나무에서 딴 사과들이 리어카에서 팔고 있었어요. 모양은 예쁘지 않지만, 맛은 참 달콤했어요. 폴라냐(러시아어로 들판)라는 명칭에 걸맞게, 걸어도 걸어도 새로운 들판이 이어지더군요. 이 넓은 곳에서 67세에 자전거를 배우고, 테니스와 스케이트를 섭렵하며, 82세엔 말을 타고 달렸다는 당신의 체력은 지금의 나보다 더 뛰어난 게 확실합니다. 매일 체조로 몸을 단련하며, 생각과 마음을 지키면서, 좋은 글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이겠죠. 저 또한 운동을 꾸준히 해야겠다는 다짐을 했어요.
사람들을 따라 또 다른 숲길을 걸어요. 화려하지 않은 오솔길의 끝. 언듯 보면 사람들이 걸터앉을 법한 긴 사각형. 당신의 무덤이었습니다. 나무 아래, 초록의 풀로 덮인 무덤엔 어떤 비석도, 문구도 없이, 자연과 하나가 된 듯 보였어요.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혜택을 부끄러워했고, 농민을 사랑한 당신. 생전의 유언을 따른 단출한 마지막은 제 마음에 깊은 울림을 주었습니다.
디어. 톨스토이
새로운 계절이 오면, 또 당신을 만나러 갈게요.
아, 그때까지 꼭 당신의 장편소설 한 권은 꼭 읽겠습니다. 약속해요.
У меня нет всего, что я люблю.
Но я люблю всё, что у меня есть.
_ Лев Толстой
나는 내가 사랑하는 것을 모두 가지고 있지 않지만,
나는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사랑한다.
_ 레프 톨스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