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친구를 떠나보내며
떠나는 이와 남겨진 이, 어느 쪽의 마음이 더 슬플까? 나는 조용히 후자의 손을 든다. 함께 있기에 몰랐던 사람의 존재는, 그가 잠시 사라질 때 그림자가 더 짙어졌다.
1년의 어학교가 끝나면서, 하나 둘 모스크바를 떠났다. 고향으로 돌아가는 이, 다른 나라로 유학을 떠나는 친구도 생겼다. 그들의 마음엔 설렘과 기대, 풀어야 할 새로운 과제들이 있었다. 이 곳에 남겨진 나는 같은 일상을 살아간다. 거리를 걸어도, 트램을 타도, 함께 있던 친구는 없다. 마음이 쓸쓸했다. ‘빈자리는 티가 났다’ 그것도, 내 마음에 아주 큰 구멍으로...
점심에 파키스탄 친구 나디아를 만났다. 모스크바에서 같은 이방인으로, 한 반에서 러시아어를 함께 배웠다. 외교관인 그녀는 일 년간 주러파키스탄 대사관에서 일했다. 귀여운 아들과 아미르 칸(그녀는 인정하지 않았지만, 내 눈에는!)을 닮은 남편과 함께 이 곳에서 1년을 지냈고, 파키스탄으로 돌아간다. 러시아어 수업의 쉬는 시간에, 그녀는 내게 물었다.
“불가사리, 한국어도 이렇게 어려워? 휴-”
“아니, 러시아어만큼은 아닌 거 같아.”
“한국으로 갈 걸 그랬나 봐. 서울이나 모스크바 중 파견지를 선택할 수 있었거든.”
“날씨는 이 곳 보다 따뜻해. 햇빛도 많은 겨울이지.”
“아, 한국으로 갈 걸. 앗. 그럼 우린 못 만났겠다. 아까 그 말 취소.”
시내의 맛있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만났지만, 점심시간이라 피자 배달 주문이 밀려 피자는 시킬 수 없다고 한다. (피자로 유명하지만, 운이 나쁘면 식당에서 피자를 먹을 수 없는 곳. 이 곳이 러시아다.) 결국 우리는 파스타를 선택했고, 이 곳에서 피자를 먹고 싶다던 그녀의 마지막 소망은 이뤄지지 않았다. 헤어지기 아쉬운 마음에 근처의 카페로 자리를 옮겨 따뜻한 커피를 앞에 두고 대화를 나누었다.
“나디아, 이 곳에서 너를 만나게 돼서 참 기뻐.”
“나도 그래, 네가 우리 반에 와서 정말 행복했어. 반 분위기가 더 밝아졌어.”
“정말? 그랬다면 너무 좋다.”
만약, 내가 러시아에 오지 않았다면 우리는 만날 수 있었을까? 대만에서, 중국에서, 미국에서 왔던 친구들은 모두 떠난 지금. 파키스탄에서 온 그녀를 마지막으로, 이제 이 곳에 나 홀로 남겨졌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남겨지는 삶에 대해 생각했다. 나 또한 ‘떠나는 이’로 있었던 적이 있다. 가장 가깝게, 8년을 다녔던 회사의 마지막 출근날. 전체 직원 모임에서 인사를 나눴다. 워킹홀리데이로 도쿄에서 1년을 보낸 후, 한국행 비행기를 타는 날은 하네다 공항까지 일본 친구 사토시와 마사코가 함께였다. 인생의 순간순간, 나 또한 누군가에게 떠나는 이였다. 내게도 다른 형태의 아쉬움이 있었다. ‘우리가 또 만날 수 있을까.’ ‘다시 나는 이 곳에 올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새롭게 가야 할 곳이 더 크게 보여서 그곳에서 마음을 추슬렀다. 내 마음을 빨리 그 자리에서 뺐다. 남겨진 이들의 마음을 헤아릴 새도 없이...
떠난 후에야 알게 됐다. 러시아로 오기 전, 휴가를 내서 동네까지 나를 만나러 온 친구, 아이를 재운 후에야 밤늦게 차를 끌고 집 근처까지 와 준 오랜 친구와의 커피 한 잔, 잊지 않고 안부의 메시지를 보내주는 이들, 이 모든 것들이 쌓여서, 나는 잘 떠날 수 있었다. 떠나는 나를 위해, 남겨진 이들이 보내준 다정함 들을. 나 또한 이제 남겨진 이가 되어 그 마음을 갚아가는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