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학생이라 행복한 이유
여행이 아닌 삶이 되면, 책자에 소개된 명소에 가는 것을 게을리하게 된다. 러시아의 발레, 오페라의 상징 ‘볼쇼이 극장’도 내게 그랬다. 정식 명칭은 러시아 국립 아카데미 대극장 (Государственный академический Большой театр России, ГАБТ)이지만, “볼쇼이 극장(대극장)”으로 불린다. 이 곳에서 차이코프스키의 발레 ‘백조의 호수’ 초연(1876년)이 열렸다.
나의 첫 번째 발레 관람은. 남편과 연애시절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마린스키 극장’의 ‘호두까기 인형’이었다.
“대사가 없으니까, 러시아어를 몰라도 괜찮을 거야.”
중학교 수업시간에 듣던, 익숙한 차이코프스키 음악들과 함께 ‘호두까기 인형’의 발레의 막이 열렸다. 화려한 무대, 절도된 동작, 아름다운 움직임. 중간에 쉬는 시간을 제외하고 3시간 내내 나는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대사가 없이, 몸으로 표현하는 언어는 내 마음을 꽉 채웠다. 무용수들의 몸짓으로 슬픔과 기쁨이 느껴졌다. 우리의 감정은 말로, 글로, 소리로, 몸짓으로도 다양하게 표현될 수 있다.
“아, 정말. 잊지 못할 거야.”
한동안 차이코프스키 음악을 매일 들었다. 다른 극장에서 발레를 볼 수 있었지만, 모스크바에 살면서 ‘볼쇼이 극장’에 가기는 쉽지 않았다. 일단, 티켓의 가격이 어마어마하다. 좌석에 따라 금액이 다르지만 최고 1인당 45000 루블(약 65만 원)~ 최저 17000 루블(약 25만 원)이다. 삶이 아닌 여행이 되어도, 쉽게 지갑을 열기 힘든 금액이다.
“러시아에서 공부하는 학생이라면, 100 루블(1500원)에 볼쇼이 극장에 갈 수 있어요.”
“외국인인 저희도요?”
“그럼요. 모든 학생에게 동일해요. 학생증을 지참해요.”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준 이야기를 듣고, 볼쇼이 극장 사이트에서 관련 정보를 찾았다. “러시아에서 공부하는 학생은 볼쇼이 극장에서 하는 공연을 100 루블의 티켓으로 관람할 수 있다”라고 쓰여있다. 야호. 100 루블(1500원)에 볼쇼이 극장이라니, 이게 웬 행운이야.
평일 오후, 같은 반의 유학생 완과 함께 볼쇼이 극장으로 향했다. 발레 공연은 매번 다른데, 그 날은 마침 아직 보지 못했던 “지젤” 이 저녁에 공연 예정이었다. 오후 4시부터 선착순 84석 (연극의 경우 30석)까지 발급되는 표를 받기 위해 이미 많은 학생들이 줄을 섰다. 학생증과 100 루블을 내고 발레 ’ 지젤’ 공연표를 얻었다.
늘 외관으로만 보던 ‘볼쇼이 극장’ 안에 들어가는 것으로도 행복했다. 유럽 최대의 극장을 짓기 위해, 볼쇼이(러시아어로 큰)라는 이름을 썼고, 몇 번의 화재 사고가 있었지만 지금의 볼쇼이 극장이 완성된 것은 1856년, 무려 163년 전의 일이다. 코트를 맡기고 극장 안으로 들어가니, 화려한 천장과 엄청난 크기의 샹들리에가 한눈에 들어왔다.
“언니, 정말 예뻐요.”
“진짜- 너무 예쁘다. 오히려 이 자리라서 좋은 걸”
“그러니까요. 천장이 제일 가까워요.”
학생증으로 얻은 100 루블의 티켓은, 따로 앉을 좌석이 없는 천장과 가장 꼭대기 “서서 보는 자리” 였지만, 우리의 눈은 드론처럼 천장, 샹들리에, 오케스트라, 관중들까지 한눈에 훑었다. 발레 ‘지젤’ 역시 눈을 떼지 못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공연이 끝나고, 데리러 온 남편을 만났다. 발레가 남긴 여운을 떨치지 못한 채 붉은 광장을 걸으며 그에게 말했다.
“러시아에서 다시 학생이 되어서, 정말 행복해.”
모스크바에 산지 10년 차인 그는 아직도 ‘볼쇼이 극장’에 가본 적이 없다.
(여보. 이즈비니쩨-미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