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김연아처럼

겨울의 야외 스케이트

by 불가사리


“나 블랙프라이데이에 스케이트화 샀어!”


러시아 학교 옆자리에 앉은 몽한은 쉬는 시간이 되자 자신이 산 피겨 스케이트화 자랑에 신이 났다.


“대만에도 스케이트장이 많아?”

“있긴 한데, 이 곳만큼은 아니야. 모스크바의 겨울은 스케이트화가 필수지. 너 설마 여기 스케이트장 안 가봤어? 반드시 가야만 해. 환상적이야!”


10월 중순부터, 모스크바의 스포츠상점엔 스케이트가 진열된다.


토요일 아침, 남편과 함께 일찍 ‘고르키 공원’에 갔다. 녹음이 짙은 여름에 왔던 공원은, 어느새 하얗게 내린 눈으로 다른 곳처럼 느껴졌다. Каток 까똑(스케이트장)이라는 표지를 따라 총총걸음을 옮겼다. 어깨에 자신의 스케이트를 맨 러시아인들이 너도 나도 매표소로 향하고 있었다. 1인당 550 루블(7,700원)의 입장권을 사서 스케이트장으로 들어섰다.


가지런히 진열되어 있는 스케이트, 대여는 250루블 (3500원)


“신발은 저기에서 빌리나 봐.”

“우리, 유럽 사이즈로 몇이지?”


남편이 인터넷으로 적절한 사이즈를 찾는 사이, 가지런히 진열된 스케이트화를 구경했다. 난생처음 스케이트를 타던 날이 떠올랐다. 초등학교 6학년을 앞둔 겨울, 잠실 롯데월드 실내 스케이트장이었다. 끈을 꽁꽁 단단히 묶은 스케이트화는 낯설었고, 뒤뚱뒤뚱 걸어 조심스레 내디딘 얼음판은 무섭지만, 한편으로는 마음이 설렜다. 잔뜩 긴장된 몸으로 바를 잡고, 내딛고, 잡고, 내딛고를 반복하며 간신히 한 바퀴를 돌았다. 몇 번의 엉덩방아를 찍으며, 신발과 얼음길에 익숙해지자 용기가 생겼다. 이미 젖어버린 옷, 장갑. 그때부터 그냥 신나게 스케이트를 탔다. 그날 밤, 꿈에서 나는 피겨스케이트 선수가 되었다.


본격적인 스케이트를 타기 전, 오랜만에 신는 스케이트화에 두근 두근 마음이 설렌다.

“겨울의 스케이트. 너무 오랜만이야.”


각자 사이즈에 맞춰 받은 스케이트화를 신었다. 빨강과 남색. 마음에 쏙 든다. 신발을 신자 키가 훌쩍 커지면서 내딛는 땅의 낯선 촉감. 더 상쾌하게 느껴지는 윗 공기, 조심스레 한 발을 얼음판에 올린다. 씽씽- 무서운 속도로 달리는 사람, 함께 손을 잡고 스케이트를 타는 연인들, 이미 스케이트에 능숙한 아빠의 손을 잡고 스케이트를 타는 아이, 유유히 달리며 턴 동작을 하는 이까지, 다들 익숙한 길을 걷듯 얼음판 위를 스치며 지난다.


“너무 시원해.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아”

“같은 길을 반복하는 게 아니라, 쭉쭉 뻗어 있으니까 좋다.”


겨울의 고르키공원, 야외 스케이트장

모스크바의 야외 스케이트장은 길고, 넓었다. 사람들이 가는 방향에 맞춰 스케이트를 타며 겨울의 공원을 산책한다. 넓은 공원의 큰 대로, 나란히 벤치가 놓여 있던 자리는, 벤치가 치워져서 넓고 하얀 빙판길이 되었다. 앙상한 가지들 사이로 깨끗한 겨울의 하늘이 보였다. 코 끝으로 선선하면서 차가운 바람을 느낀다. 우리는 자연 속의 얼음길을 씽씽- 달린다.

“잠깐 저기서 핫초코를 마실까?”

“와, 저기 카페들도 많이 있네.”


잠시 멈춘 우리는 카페로 들어섰다. 스케이트 신발을 신은 채, 간단히 핫도그와 따뜻한 커피를 홀짝인다. 해가 귀한 러시아 모스크바의 겨울. 우울해질 수 있는 시간이지만, 사람들은 이 계절과 함께하는 법을 안다. 산책을 좋아하는 러시아인들은 겨울에는 스케이트를 타며 공원을 누빈다. 누구나 김연아처럼- 자신만의 무대를, 자신의 속도로 즐기는 이들. 하얀 눈 속에서, 자연과 하나가 된 그들의 모습이 12월의 달력 사진 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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