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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무사 Jul 26. 2021

남북연락사무소 폭파의 국제정치1

북중공조를 강조하는 주체파 논리의 등장

북한  주체파의 동북아 격동 시나리오


하노이 회담 결렬 후 북한 내부 상황을 짚어보자. 하노이 회담 실패 후 김영철이 주도한 통전부가 협상 일선에서 물러나고 이용호와 최선희가 주도하는  외무성이 최전선으로 복귀했다. 통전부에서 외무성으로의 주도권 변화에서 제일 두드러진 건 한국의 위상 변화다. 국정원의 파트너인 통전부의 일선 후퇴로 남북관계가 애매해졌다. 그러나 북한이 북미관계 보다는 북중관계나 북러관계 등의 ‘새로운 길’에 주력할 것이라는 일부의 관측은 오산이다. 통전부에서 외무성으로의 주도권 변화는 협상을 통해 핵문제를 해결하고 국제무대로 나가야 한다는 협상노선의 계승이라는 점에서 본질적 변화가 없다. 오히려 외무성은 전통적으로 북미관계를 외교의 제일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대미관계 비중이 커지면 커지지 줄어들지 않았다. 다만 원칙을 세우고 그것을 관철하기 위해 벼랑끝 전술로 위기를 조장하는 외무성의 사업방식 때문에 좀더 과격해 보이는 점은 있다. 그럼에도 그 끝은 북미 관계 개선에 맞추어져 얐는 것이다. 


당시 북한 외무성은 나름 획기적인 구상을 가지고 있었다. 미국 대선이 있는 2020년을 하이라이트로 설정하고 대선 직전인 2020년 9월 내지 10월 뉴욕에서 열리는 유엔총회에 김정은 위원장이 참석해 전 세계인을 대상으로 연설을 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그 다음 뉴욕 또는 워싱턴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북한의 비핵화와 북미관계 정상화를 맞교환하는 북미 공동선언을 채택한다. 즉 김정은 위원장이 북한 핵무력의 완성을 통한 북미 대결전, 그리고 미국 대통령과의 담판을 통한 비해화와 북미관계 정상화라는 위업을 만들어낸 위인으로 격상하고 북한이 사회주의 강국의 최후의 승리를 거둔 것으로 노동신문에 대대적으로 선전한다는 것이었다. 


2019년 당시 북한이 이런 시나리오에 입각해 모종의 준비를 해나가고 있다는 정황이 있다. 20`9년 8월29일 열린 최고인민회의 제4기 2차회의이다. 이회의는 국무위원장의 권한을 강화해 국무위원장이 최고인민회의 법령과 국무위원회의 주요 정령 및 결정을 공포하고 특히 다른 나라 주재 외교 대표 임명 또는 소환 등의 권한을 가질 수 있도록 헌법을 개정하는 게 주요 목적이었다. 한마디로 김정은 위원장이 국가를 대표하는 국무위원장으로서의 법적 지위를 더욱 공고하게 한 것으로  보통국가의 대통령 지위를 부여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헌법 개정 전에는 최고인민위원회 상임위원장이 북한을 대외적으로 대표했다. 따라서 유엔총회 연설도 최룡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하거나 이용호 외무상 정도가 가능했다. 이제는 김정은 위원장 역시 유엔에서 연설할 법적 지위를 갖추게 된 것이다. 나름의 계획이 없다면 구태여 이런 절차를 거칠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김정일 위원장이 은둔형 지도자였다면 김정은 위원장은 다르다. 그는 할아버지 김일성 주석처럼 뜨고 싶어한다.” 북한 내부 사정에 정통한 대북 소식통의 당시 전언이다. 유엔총회 연설과 워싱턴 북미 공동선언이야말로 김 위원장이 국제적으로 뜰 수 있는 최상의 기회였다.


2019년 하반기 북한이 외무성의 구상을 따랐다면 그 이후 벌어진 남북관계 북미관계 파탄은 없었을지 모른다. 북한 외무성은 2019년 10월5일 스톡홀름 북미회담이 결렬된 뒤에도 11월중에 미국과 실무회담을 재개하고 연말에 제3차 북미 정상회담을 하고자 했다. 김 위원장이 외무성의 계획대로 당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났다면 북한의 2020년은 그렇게 절망적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 역시 김 위원장과의 3차 정상회담에 적극적이었다. 북한이 한미 공군간의 연합군사훈련 에 대해 계속 불만을 토로하자 2019년 11월17일 한미 국방장관으로 하여금 태국에서 만나 공군훈련을 유예한다는 발표를 전격적으로 하게 했다.  그리고는 트윗으로 김 위원장에게 이제 됐으니 빨리 만나자고 했다.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의 이 제안을  받아들였다면 올해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예측 불허의 상황에서도 북미대화의 끈을 이어갔을 것이다. 더불어 남북 간에도 운신 폭이 지금 보다는  훨씬 넓었을 것이다. 북한이 지난해 6월16일 개성공단에 있는 남북연락사무소 폭파라는 폭거를 저지른 데에는 코로나 방역물자 지원에 대한 불만이 직접적인 원인중 하나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코로나 환자는 단 한 사람도 없다고 큰소리친 북한 입장에서는 남쪽의 방역 물자 지원 사실이 공개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러나 남측 당국은 북미관계가 꽁꽁 얼어붙은 상태라 운신의 폭이 넓지 않았다. 민간채널을 통한 조용한 지원을 희망한 북한 입장과 당국간 대화를 통한 해법을 원한 남측 입장이 충돌할 수 밖에 없었다. 때마침 최고 존엄을 모욕한 탈북자 단체의 삐라가 날라들었고 마찬가지로 최고 존엄의 체면을 세워주지 않고 외면한 남북연락사무소가 유탄을 맞았다. 2019년 연말 외무성의 길을 내치고 트럼프 대통령의 만남 제의마저 내친 후 그 부메랑이 돌고돌아 남북 연락사무소 폭파라는 남북관계의 파탄으로 나타났다.


외무성의 길과 주체파의 길


그렇다면 북한은 왜 왜 외무성이 제시한 북미대화 노선을 선택하지 않은 것인가. 그 대신 선택한 대안은 뭐였는가. 김정은 위원장이 외무성의 구상을 따르지 못한 이유는 하노이 회담 실패 후 당과 군 내에서 부상한 강경 세력의 견제 때문이었다. 소위 주체파라 불리는 이 세력은 과거 통전부가 주도한 북미 비핵화 회담에 불만이었다. 미국을 어떻게 믿고 비핵화를 서두르느냐는 것이다. 그들도 완전 핵보유를 주장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다만 비핵화를 하더라도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이 완전히 종식된 이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핵무기는 북한의 체제 수호 수단이기 때문에 더이상 체제 위협이 없다는 것이 확인될 때까지는 갖고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체제 위협이란 곧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이다.  따라서 이것이 완전 종식돼야 한다. 주체파의 주장에는 늘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 종식이 비핵화의 조건으로 등장한다.


하노이 회담이 성공했다면 주체파의 주장도 수면 하의 외침으로 끝났을 것이다. 따라서 하노이 회담 실패로부터 모든 불행이 시작됐다. 회담이 실패하면서 거기 관여했던 모든 세력이 발언권을 잃었다. 통전부가 직접적인 타격을 받았다. 김 위원장의 체면도 크게 상했다. 당과 군의 주체파의 주장을 제어하기가 쉼지 않았다. 남북관계에도 크게 금이 갔다. 김 위원장의 실수를 인정할 수 없는 북한 체제에서 하노이 회담 실패는 다른 이유 때문이어야 했다. 거기에 남한 책임론이 등장한다. 미국과 만나면 문제가 잘 해결될 거라는 문대통령의 조언을 믿고 하노이에 갔다가 낭패를 당했다는 것이다. 즉 영변만 폐기하면 미국이 제재를 완화해줄 것으로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우리 정부가 이번에는 영변까지만 해도 큰 진전이라고 보고 미국을 설득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북한 김위원장 역시 통전부를 통해 미국과 사전 교섭을 하고 간 것이기 때문에 전적으로 남쪽 책임이라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북한 내부에서는 통전부가 물러나고 외무성이 대미 교섭 창구로 등장했다. 이때부터 이미 남북관계는 후순위로 밀리기 시작했다.  하노이 회담 실패 후에도 북측은 남측이 9.19 공동성명에서 조건부로 약속한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재개에 대해 성의있는 자세를 보이는지 지켜봤다.  9.19  공동성명에는 분명히 ‘조건이 마련되는 데 따라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사업을 우선 정상화하고’라고 돼 있다. 남쪽은 하노이 회담 실패로 여건이 아직 안됐다는데 방점을 찍었지만 북쪽은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사업을 우선 정상화’한다는 쪽에 방점을 찍었다. 남쪽이 2019년 8.15  대통령 연설에서도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재개에 대한 성의 있는 얘기를 하지 않자 남북관계의 후퇴의 조짐이 당시에 이미 나타나기 시작했다.


외무성은 북미관계에서 돌파구를 연 다음 북일관계를 병행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북미관계 구상이 문제였다.  북미관계 돌파구를 마련하겠다는 외무성의 구상 역시 비핵화를 전제로 한 것이다. 어떤 면에서는 하노이 회담에 들고 갔던 통전부의 안보다 진일보한 점도 있었다.  통전부는 영변 폐쇄 이상 나가지 못했다. 그래서 회담이 결렬됐다. 외무성은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갔다. 영변+알파, 즉 영변 바깥의 핵물질 생산 시설의 존재 시인 및 해체 로드맵을 미국과 같이 마련하겠다는 데까지 나갔던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으로부터는 불가침협정과 제재완화를 받아낸다는 것이었다. 이런 구상을 발판으로 연말 북미정상회담 그리고 2020년 9월 김 위원장의 유엔총회 연설까지 밀고갈 계획이었다. 


 미국의 적대시 정책 종식을 비핵화의 조건으로 내세운 주체파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노릇이었다. 통전부를 제쳐놨더니 그보다 더한 상대가 등장한 셈 이다. 2019년 10월5일 스톡홀름 회담 이후 11월 말까지 두 세력의 격돌에서 주체파가 다시 주도권을 쥐게 됐다. 11월17일의 트럼프 대통령의 만나자는 제안에 대해 10월까지만 해도 적극적이던 북의 태도가 달라지게 된 배경이다. 북미 정상회담이 되려면 그 전에 대북 적대시 정책이 폐기 돼야 한다는 얘기가 처음 공식화됐다.  그리고는 연말의 당 전원회의가 이어졌다. 이 당 전원회의에서 외무성 구상을 주도했던 리수용 당국제부장과 리용호 외무상이 한꺼번에 경질됐다는 데서도 주체파의 위세를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2020년 1월1일의 전원회의 결정서가 등장했다.


남북연락사무소를 폭파한 북한의 다음 행보가 바로 이 전원회의 결정서의 행간 속에 담겨져 있다. 전원회의 결정서는 가장 주안점을 경제 분야에 뒀다. 하노이회담 결렬 직후인 2019년 4월 4차 전원회의 결의대로 자력갱생 정신으로 경제난에 대해 정면돌파전을 감행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는 핵문제에 대한 주체파의 입장이 등장한다.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이 해소될 때까지는 핵 포기는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조건부 핵보유 노선이라 할 수 있는데 이것은 과거의 핵경제 병진노선과도 다르다. 병진 노선은 핵무기의 수를 계속 늘려가는 것이라면 이것은 핵무기를 더 이상 늘리지 않고 기존의 것을 적대시 정책이 폐기될 때까지 체제의 안전판으로 보유하고 있겠다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새로운 전략무기 개발을 계속할 것이라면서 조만간 충격적인 행동에 나설 것이라고 위협하기도 했다.


여기서 잠깐 주체파에 대해 짚어보자.

주체파란 미국과의 협상에서 확실한 안전 보장 담보 없이 핵을 포기하는 것을 극력 반대하는 일군의 세력을 말한다. 북한 권력 속성상 이들이 무리를 지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주로 군부나 당에 이런 주장을 하는 인사들이 꽤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을 믿을 수 없기 때문에 핵을 함부로 포기해서는 안되고 포기 하더라도 안전 보장 방안이 확실하게 마련된 최후의 순간에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의 존재가 알려진 것은 하노이회담 결렬 직후인 2019년 4월 경이었다고 한다. 당시는 통전부의 협상 노선을 반대하는 일군의 세력이 있다는 식이었다. 김일성 주석시대 이래 내려온 북한 정통 노선을 대변한다는 뜻에서 이들을 정통파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주체파라고 한다. 이같은 명명은 이들과 반대쪽에 있는 통전부나 외무성 등의 협상파 인사들이 붙인 것이다. 


주체파는 군부가 중심이다. 그중에서도 2017년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시험을 통해 미국과 아슬아슬한 대치 상황을 끌고 갔던 경험과 노하우를 가지고 있는 전략군이 중심이다. 외무성 노선을 따라 북미간에 유화적인 분위기를 만들고 그것을 통해 제재의 숨통을 완화시켜 주변국의 지원을  끌어내 살길을 마련하는 것이 어려워졌다면 그에 대한 대안이 있어야 한다. 그들의 대안은 바로 2017년에 동북아를 뒤흔들었던 노하우를 이용해 한꺼번에 모든 것을 해결하겠다는 '위험한 도박'과 같은 것이다.


 2020년 동북아에는 년 초부터 국제 정치적으로 중요한 이벤트가 이어졌다. 1월11일의 대만 총선, 2~3월의 한미연합 훈련, 그리고 7,8월의 도쿄 올림픽 등이다. 북한이 2017년과 비슷한 사고를 치면 누구는 뒤에서 응원하며 암묵적으로 지원을 늘리고 누구는 그것을 막기 위해 또다른 형태의 지원에 나설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대만 총선을 둘러싸고 중국과 대만, 중국과 미국간에 긴장 상황이 빚어진다고 하자. 미중 무역전쟁과 대만 문제라는 두개의 전선에서 고립돼 있는 중국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에게 유리한 대립 전선이 만들어질 수 있다면 큰 힘이 된다. 동북아에서는 북한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2017년과 18년 중국이 북한으로 인해 세컨더리보이콧이라는 미국의 덫에 걸리면서도 북한을 놓지 못하고 암묵적인 지원을 계속해온 이유다. 일본 아베 총리도 잠재적인 고객이었다. 7,8월로 예정된 도쿄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하려면 동북아의 평화가 유지돼야 한다. 아베가 선물 보따리를 들고 평양을 방문해야 할 매우 다급한 이유가 존재하는 것이다.


코로나가 모든 것을 앗아갔다


결국 주체파가 외무성의 대안으로 제시한  것은 동북아 정세를 격동시켜 이해당사국의 암묵적 지원을 끌어내는 일종의 ‘약탈 경제 행위’인 것이다. 위력을 앞세워 주변국의 지원을 끌어내는 것은 북한에게는 매우 익숙한 일이다. 모처럼 정상 외교를 통해 정상국가의 길을 걷고자 했던 김정은 위원장의 시도로 볼 때는 뒷걸음질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 마저도 쉽지 않았다. 예기치 않은 일이 발생했다. 첫 번째는 미국의 선제 타격이다. 미국은 2019년 12월 북한이 크리스마스 선물 운운하며 동창리 미사일 엔진시험장에서 일련의 보여주기 쇼를 벌일 때도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탄핵위기 속에서도 정찰기와 폭격기를 수시로 한반도 상공에 띄웠다.  급기야는 2020년 1월3일 카셈 솔레이마니 이란 혁명수비대 사령관을 드론 폭탄으로 제거함으로써 북에 대해 간접 경고했다. 솔레이마니는 이란 중국 북한 삼국 커넥션의 이란측 핵심인물로 사실상의 2인자이다. 그런 거물을 백주 대낮에 드론으로 제거한 트럼프 정부의 과감성은 북으로 하여금 2018년 1월 코피전략의 악몽을 떠올리게 하는데 충분했다.


 코로나 팬데믹은 주체파의 약탈경제 구상에 직격탄이 됐다. 잠재 고객들이 시장에서 전부 사라져버린 것이다.  코로나 팬데믹의 진원지인 중국은 1월11일 대만선거 기간 우한에서 코로나와 사투를 벌이느라 숨돌릴 겨를이 없었다. 또 하나의 잠재고객 일본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아예 7,8월 올림픽이 2021년으로 연기돼 버렸다.


북한 내부 사정도 심각해졌다. 코로나 차단을 위해 1월 말부터 국경을 봉쇄했지만 암암리에 번져가는 것까지 막지는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4월10일 개최하기로 했던 최고인민회의가 이틀뒤인 4월12일로 연기된 데에는 지방에서 올라온 대의원 중 확진자들이 있어 급히 격리조치를 해야했기 때문이라 한다. 그 여파로 김위원장이 원산으로 피신해 건강이상설까지 불거졌다. 국경 봉쇄로 밀무역까지 차단되는 바람에 식용유를 비롯한 생필품 가격이 급등하고 있다. 원산 갈마 지구 경우 원래 지난해 10월10일 개장하기로 했으나  4월15일로 미뤄졌고 자재 수입이 안돼 다시 10월10일로 미뤄졌다. 


김위원장이 코로나 대응의 일환으로 인민들에게 제시한 평양종합병원의 경우 진단시설 등 의료장비를 전부 수입해야 할 판인데 비용만 해도 한국 돈으로 환산해 1200억에서 1500억원 정도 든다고 한다. 궁여지책으로 돈주들에게 대외 무역을 할 수 있는 권한인 와크를 갱신해주며 돈을 거둬들이는  한편 4월부터 공채를 발행해 판매했지만 5월까지 8%밖에 소화가 안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2020년에도 어김없이 약 90만톤의 식량을 외부에서 지원받아야 한다. 이미 평양에도 절량세대(하루 세끼 공급이 안되는 세대)가 등장했고 식량을 구하기 위한 주민들의 이동이 시작됐다는 지적도 있다. 2019년에는 외무성이 나서서 일부 확보했고 무엇보다 시진핑 주석이 김 위원장과 회담을 하면서 80만톤을 지원해서 해결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이것도 요원하다.


2012년 권력의 전면에 등장한 김위원장은 2020년이 햇수로 집권 8년 차다. 북한은 10년 단위로 업적을 총화한다. 앞으로 2년 남았다. 그런데 이뤄 놓은 게 없다. 하노이 회담 실패로 북미관계 개선도 불발로 그쳤고 남북관계도 평양시민 15만명이 남측 대통령의 연설까지 듣고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개를 최고 존엄이 담보했지만 감감무소식이다.  거기에 전제 조건이 있었다는 것은 중요치 않다. 최고 존엄의 위기다.  돌파구를 어디서 찾을 것인가. 


 첫째는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지금의 위기가 최고 존엄의 잘못이 아니라는 점을 인민들에게 각인시켜야 한다.  희생양이 필요하다.  두 번째는 인민들에게 약속한   평양종합병원과 원산 갈마지구관광단지의 10월10일까지 완공 약속을 어떡하든지 지켜야 한다. 그것을 위한 자금 및 시설 자재 확보가 필요하다. 그리고 식량난과 경제난 타개가 시급하다.


대북 삐라 살포가 부여한 황금의 기회


2020년 6월5일자 <통일전선부> 대변인  담화를 보면 “남쪽으로부터의 온갖 도발을 근원적으로 제거하고 남측과의 일체 접촉 공간을 완전 격폐하고 없애 버리기 위한 결정적 조치들을 오래 전부터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숨기지 않는다”라고 솔직하게 털어놨다.  즉 5월31일 탈북단체들이 북의 최고존엄 김정은 위원장을 모욕하는 삐라를 살포한 것이 직접적인 계기가 됐지만 ‘남측과 접촉 공간을 격폐하기 위한 결정적 조치’는 그 전부터 추진돼 왔다는 것이다.  한가지 유념할 것은2020년  6월4일 김여정 담화로부터 시작된 일련의 대남 조치들은 그보다 더 큰 구상의 예비단계일 뿐이라는 것이다. 바로 2020년 초 시도하려했던 북한 군부 주체파의 ‘동북아 격동 시나리오’의 재가동이다.


그 단초는 2020년 5월6일 서훈 국정원장의 국회 정보위 보고에서 찾을 수 있다. 그 직전 발생한 김정은 위원장 건강 이상설을 설명하기 위해 마련된 이 자리에서 서훈 원장은  “함경남도 신포 조선소에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의 수중 사출 장비가 계속 식별되고 있다”며 “SLBM 개발 가속화 및 시험발사 가능성이 열려 있다” 라고 밝혔다. SLBM 발사는 3000톤급의 신형 잠수함 건조와 맞닿아있다. 북한은 3발의 북극성3형 SLBM 탑재가 가능한 고래급 잠수함 건조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일부에서는 다탄두를 장착한 신형 대륙간 탄도 미사일(ICBM)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는다. 1월1일 전원회의 결정서에서 밝힌 새 전략무기 개발의 실체인 것이다. 그렇다면 당시의 결정서에서 제기한 ‘억제된 발전 대가를 받아낼 충격적 실제 행동으로 넘어갈 것’이라는 내용은 그뒤 어떻게 됐나.


공교롭게도 탈북자들의 삐라 도발이 있기 1주일 전인 5월24일 노동당 중앙군사위 제7기 제4차 확대회의가 열렸다.  김위원장의 지도로 열린 이 회의에서 “국가무력 발전의 총적 요구에 따라 나라의 핵전쟁 억제력을 더한층 강화하고 전략무력을 고도의 격동 상태에서 운영하기 위한 새로운 방침들이 제시되었고 조선인민군 포병의 화력타격능력을 결정적으로 높이는 중대한 조치들이 취해졌다”고 한다. ‘전략무력을 고도의 격동상태에서 운영하기 위한 방침’이란 전략군이 운영하는 핵 미사일이나 SLBM을 어느 때나 쏠 수 있도록 대기 상태에 들어갔다는 뜻이다. 


비슷한 언급은 리선권 외무상의 6월12일자 담화에도 등장한다. 리선권은 원래 군내 김영철 인맥으로 분류돼온 인물이다. 김영철이 통일전선부장이 되면서 조평통위원장 자격으로 남북고위급 회담 북측 대표를 했다. 즉 군 출신으로 주체파 와 선이 닿은 인물이 외무성을 장악하고 있는 것이다. 리선권의 이날자 담화는 미국을 향한 이들의 목소리를 그대로 드러냈다. 트럼프 정부 들어 북미관계의 허상을 신랄하게 비판한 뒤 “제반 사실은 70여년을 이어오는 미국의 대조선 적대시 정책이 근원적으로 종식되지 않는 한 미국은 앞으로도 우리 국가 우리 제도 우리 인민에 대한 장기적 위협으로 남아 있게 될 것이라는 것을 실증했다”는 대목에서 ‘대북 적대시 정책 종식’이라는 주체파의 핵심 용어가 등장했다. 그리고 “아무 댓가 없이 미국 집권자에게 치적선전감 보따리를 던져주지 않겠다”고 한 것, 그리고 5월24일의 당중앙 군사위 제7기 제4차 확대회의를 언급하며 ‘미국의 위협에 맞서 핵전쟁 억제력을 더욱 강화하며 보다 확실한 힘을 키우겠다’고 한 것 등이다. 


즉 연락사무소 폭파의 배경에 2020년 상반기 가동하려다 중단된 주체파의 동북아 격동 시나리오가 존재한다는 점, 그 주요 수단은 3000톤급 신형 잠수함에서 쏘아올리는 SLBM이나 일부에서 주장하는 다탄두 신형 ICBM 등 미국을 겨냥한 전략군의 도발이 될 것이라는 점 등이 일련의 움직임에서 분명해진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상반기에 시도하려다 못한 괌 주변을 둘러싼 포위사격 형태가 될 수도 있다.  5월의 당중앙군사위 회의를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지도했다고 한 것으로 볼 때 이것은 김위원장이 직접 주도하는 형태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렇다면 그 계기는 무엇일까. 대만선거 한미훈련 도쿄올림픽 등의 흘러간 이슈들에 견줄만한 동북아의 큰 이슈, 그것도 고객이 확실한 이슈여야 한다.  조금 생각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바로 홍콩 사태다.  홍콩의 장래를 결정짓게 될 9월의 입법회의 선거를 앞두고 미국과 중국, 홍콩 주민들, 여기에 영국 정부까지 끼어든 혼전이 예상된다. 2020년 5월28일 중국 전인대의 홍콩보안법 통과와 8월말까지로 예상되는 전인대 상무위원회의 법안 작성 및 실행까지의 기간 홍콩은 아시아의 화약고나 다름없다. 


국제적으로 수세에 몰려 있는 중국으로서는 우군이 필요하다.  북한의 전략적 도발은 미국의 힘을 분산시킬 제2 전선이 될 수 있다. 미국이 북한을 억제하기 위해 중국의 힘을 빌리는 상황이 되기라도 하면 중국은 수세에서 벗어날 수도 있다. 북한으로서는 식량난에 경제위기에 10월10일까지의 대형공사 자금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큰 도박판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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