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울무사 Jul 26. 2021

남북 연락사무소 폭파의 국제정치2

미중 군사 대치 국면에 발을 담근 북한

북한 당과 군의 주체파 세력이 지난해 10월5일 북미간의 스톡홀름 회담을 무산시킨 뒤 대미 전략을 둘러싼 내부 갈등에서 외무성을 제압할 수 있었던 데에는 중국 군부와의 일정한 교감이 작용했을 것으로 판단된다. 스톡홀름 회담 결렬 뒤인 지난해 10월14일 먀오화(苗華) 중국 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정치공작부 주임이 군사 대표단을 이끌고 방북해 김수길 총정치국장 등 북한 군 수뇌부와 회담했다. 그 보다 두달 전인 8월에는 김수길 총정치국장이 군사대표단을 이끌고 베이징을 방문해 먀오화 주임을 비롯한 중국군 수뇌부와 회담한 바 있다. 당시 미국 측은 북중 양국 군 수뇌부 회돔을 심상치 않게 여겼다.  이런 과정을 통해 북한 주체파는 외무성의 북미 대화 노선을 물리치고 중국과의 공조를 통한 무력 도발과 그것을 통한 경제적 이익 챙기기를 2020년의 기본 방향으로 설정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코로나-19 팬데믹 사태로 말미암아 2020년 상반기는 그대로 흘러갔다. 1월11일의 대만 선거나 2,3월의 한미 훈련기가 도발의  찬스였으나 코로나에 묻혀 버린 것이다. 그러던 중 5월31일 탈북자들의 삐라 살포를 계기로 6월4일 김여정 담화 그리고 6월16일 연락사무소 폭파로 일사천리로 도발이 이어졌다.   시간을 앞으로 돌려보면 이미 5월 초에 신포의 잠수함 부대가 SLBM 발사를 위한 부대 편제에 들어갔고 5월24일 당 중앙군사위 7기 4차회의에서 이를 점검하고 전략무기의 격동 상태 돌입을 선언한 것이 확인된다. 


북한 군부가 실제 액션에 들어간 시점을 5월 초로 보고 이 시점에 미중관계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특히 남중국해 정세가 초점이다. 3월 말 미국의 핵추진 항공모함 시어도어 루즈벨트호가 코로나 집단 감염 사태로  괌으로 급히 회항하는 일이 벌어졌다. 3월24일의 미 국방부 브리핑에 따르면 루스벨트호에 탑승한 해군 병사 3명이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았는데 이들이 베트남 다낭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는 것이다. 


루즈벨트호의 회항으로 남중국해에 힘의 공백이 나타났다. 그러자 중국이 힘으로 밀고 들어왔다. 4월2일 중국 해경이 베트남 어선을 들이받는 일이 발생했고 4월10일부터 28일까지 중국 항공모함 랴오닝호가 서태평양과 남중국해 동태평양 일대를 무대로 해상기동훈련을 하며 위력 과시에 나섰다.


그러나 중국의 천하는 딱 한 달 뿐이었다.  4월 말부터 시작된 미국의 반격은 예상 수준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남중국해를 자국의 영해라고 주장하는 중국에 맞서 미국은 그동안 항행의 자유를 양보하지 않겠다는 소극적 저항으로 맞섰다. 그러나 4월 말 다시 돌아온 미국은 그게 아니었다. 중국 해군 무력의 핵심인 전략핵 잠수함에 대한 실전을 방불케 하는 봉쇄작전에 돌입해 버린 것이다. 중국 해남도 산야에는 중국 해군의 제2 잠수함 부대가 있다. 유사시 이곳에서 핵잠수함이 서태평양으로 빠져나가 미국 본토를 SLBM으로 위협함으로써 미국의 공격을 차단하는 것이 중국의 대미 군사전략의 핵심이다. 


그런데 중국 잠수함들이 서태평양으로 진출하려면 대만 남부와 필리핀 북부 사이에 위치한 바시 해협을 반드시 통과해야 한다. 폭 350km 너비 150km인 이 해협이야 말로 중국 잠수함이 안심하고 남중국해에서 서태평양으로 빠져나갈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이다. 이곳 말고도 3곳 정도 더 있지만 주변국의 초계활동에 노출되거나 해저 지형 문제 때문에 이용하기 어렵다. 그동안은 바시 해협을 통과해 서태평양으로 나가 괌과 알래스카 일대까지 자유롭게 들락거릴 수 있었다.  그런데 4월 말부터 그게 불가능해졌다. 미국이 해상 초계기 P-8A 포세이돈과 P-3C를 집중 투입해 이곳을 봉쇄해 버린 것이다. 5월부터는 빅토리우스급 해상정찰함까지 투입해 본격적인 잠수함 사냥작전에 돌입했다.  


중국이 홍콩보안법 강행을 결의한 전국인민대표회의를 개막한 게 5월22일이었고 보안법 통과를 결의한 게 5월28일이었다.  바로 그 5월28일 세계의 눈이 홍콩에만 집중돼 있어 놓친 부분이 있었다. 요코스카에 주둔 중이던 미 해군의 이지스 구축함 머스틴 호가 중국과 대만, 베트남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파라셀 군도를 항행하고 다음과 같은 성명을 발표한 것이다. “이번 작전을 통해 해당 수역이 중국 영해가 아니라는 점을 증명했다”는 것이다. 항행의 자유라는 소극적 자세에서 벗어나 남중국해는 아예 공해라고 선언해버린 것이다.  따라서 자국의 영해라는 전제에서 작전을 펴는 중국 해군은 언제든 미해군과 군사적 대결 상태에 처할 수 있게 됐다.


미국은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가. 4월 말부터 남중국해를 무대로 시작된 미국의 대중 군사압박은 이전과는 질적으로 다른 것이었다. 바로 일전불사의 의지를 바탕에 깔고 있다. 갑작스러운 움직임이 아니다. 워싱턴 사정에 밝은 전문가들에 따르면 2017년 트럼프 정부 출발 때부터 준비된 것이다. 2017년 2월 트럼프 정부 출발 직후 6개월간 미 행정부에는 중국측을 상대할 담당자들이  모두 공석이었다. 그리고는 이 6개월간 중국을 군사적으로 제압하기 위한 방안을 치밀하게 강구했다. 


이 기간 동안 북한이 미사일 도발을 계속해준 것은 결과적으로 미국의 군사준비 태세를 갖추는데 큰 도움이 됐다. 북한을 겨냥한 군사적 최대압박전략은 방향만 바꾸면 중국을 겨냥한 것이 된다. 최대 압박전략을 핑계로 일본 주변에 집결시킨 함선들은 그대로 대중 군사작전에 투입할 수 있다.


미군 동향이 심상치 않은 것은 트럼프 정부의 대중 군사전략이 처음부터 ‘쿠바 모델’을 염두에 둔 것이기 때문이다. 1962년 10월14일부터 24일까지 미국과 소련 간에 쿠바에 배치된 소련의 중거리핵미사일을 둘러싸고 벌어진 쿠바 위기는 “3차 세계 대전을 불사하겠다”는 케네디 대통령의 일전불사 자세에 소련이 물러나면서 해결됐다. 트럼프 정부 역시 중국을 제압하기 위해서는 일전불사의 자세로 임해야 한다는 각오를 갖고 처음부터 준비에 임했던 것이다.  미중 무역전쟁은 바로 이런 준비 위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코로나 사태와 홍콩 문제가 그 시기를 앞당긴 셈이다.


코로나 사태로 2020년 초 도발의 기회를 상실한 북한의 주체파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시점은 정확하게 미군이 일전불사 태세로 남중국해를 장악해 들어간 시점과 일치한다. 4월 말 바시해협 봉쇄 직후 5월 초 신포 잠수함 부대가 SLBM 발사 태세에 들어갔다. 홍콩보안법을 상정한 중국 전인대 개막 3일째인 5월24일 당 중앙군사위 제7기4차회의를 열어 부대 편제를 확인하고 전략 무기의 격동 상태 진입을 선언했다. 그리고 5월28일 전인대에 상정한 홍콩보안법 결의안이 통과돼 국제 사회가 시끌시끌한 와중에 마침 탈북자 삐라 사건이 발생했다. 그러자 6월4일 김여정 담화로 북의 도발이 시작됐고 6월16일 개성연락사무소 폭파 후 추가 군사 행동을 예고했다. 북이 국제적인 시선을 끌어오는 와중에 중국은 6월29일 예상보다 빨리 홍콩보안법 실행에 들어갔다.


북한은 중국의 대리전 함정에 빠질 것인가?


그런데 북한이 이처럼 국제 정세의 한복판에 뛰어들어 중국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게임을 해오면서 새롭게 깨달은 점이 있을 것이다.  미국의 대응이 예사롭지 않다는 점이다. 2017년의 미사일 발사 정국을 예상하고 판을 벌였을 텐데 미국의 대응은 남중국해에서와 마찬가지로 한반도에서도 실전을 방불케 하는 것이었다. 북한이 SLBM을 발사하면 미군 초계기가 북한 잠수함을 추적해 폭파하고 북한이 반격하면 미군이 전면 공격에 나서겠다는 결의가 일련의 군사 시위를 통해 확인된 것이다.  6월24일 김정은 위원장이 당중앙군사위 제7기 5차회의 예비회의를 통해 인민군 총참모부의 추가 군사행동을 유보시키고 김여정이 7월10일 담화로 북한이 먼저 도발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라고 공언한 이유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끝난 게 아니다. 바로 중국과의 관계가 남아있다. 지난해 연말부터 본격화된 주체파의 기획은 중국과의 공동기획의 성격이 강하다. 즉 중국이 올해 예상되는 남중국해나 홍콩 대만을 둘러싼 미국과의 군사 대치 상황에 북한을 끌어들이고 그 대가로 북한에 경제적 지원을 하는 거래인 것이다. 북중간에는 중국의 경제 지원을 둘러싸고 여러가지 얘기들이 등장했다. 


중국이 남포항을 통해 80만톤의 식량을 지원했다는 기사가 느닷없이 등장했지만 사실이 아니라고 한다. 3,4월에 몇 만톤 수준의 지원이 있었지만 그 정도는 아니고 비료는 아예 예년 수준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지원이 없었다. 이를 두고 북한이 식량이나 비료는 알아서 할 테니 10월10일까지 완공을 목표로 하는 원산 갈마지구 관광단지 건설자재나 평양종합병원의 진단 장비 그리고 항공유 등의 군수물자 등 단가가 쎈 것들을 요구하는 것같다는 얘기도 나온 바 있다. 대북 소식통은 북측이 평양종합병원 진단장비 지원을 요구한 데 대해 중국이 합작 투자 형태로 해서 공동 경영할 것을 요구해 결렬됐다고 밝히기도 했다.


중국이 코로나 사태로 리더쉽의 위기를 겪고 있는 김정은 위원장의 옹색한 처지를 움켜쥐고 미국과의 군사충돌 시 북한의 대리전 참전이라는 카드를 놓지 않고 있는 형국인 것이다. 남중국해는 언제 충돌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다. 대선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이 반전의 카드로 이미 준비돼 있는 군사작전을 언제든 실행에 옮길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중국은 미국뿐 아니라 미군 함정 보호를 명분으로 한 일본 해상 자위대 및 호주 베트남 필리핀 등 남중국해에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국가들과 전선을 마주치게 된다. 우군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강대국의 흔한 전략인 대리전을 통한 전장의 전가(buck passing)만이 탈출구이다. 북한의 참전을 통해 한반도를 대리전장화하는 것만이 시진핑 주석의 살길인 것이다.  2차 대전 직후 동유럽에 대한 지배를 안정화 하기 위해 한국전쟁으로 한반도를 대리전장화한 스탈린의 전략을 시진핑 주석이 써먹고자 할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이 자신의 치적 사업에 대한 중국의 지원이라는 유혹에 빠져 섣불리 행동에 나서면 그 다음 결말은 불을 보듯 뻔하다. 미국을 남중국해와 한반도라는 두개의 전선에 몰아넣는데 성공한 중국은 곧 미국에 휴전을 제안하며 북한에 대한 분할지배를 통한 북핵 문제 해법을  협상안으로 내놓을 가능성도 있다.  바로 한국전 당시 스탈린의 ‘버그 패싱(책임전가)’을 눈치 챈 모택동이 유엔군에 ‘원산-평양’선을 새로운 국경선으로 하는 타협안을 준비했던 상황을 오버랩할 수 있다. 중국은 언제든 그 카드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김정은 위원장이 까딱 잘못 판단해 미중의 군사 대치 상황에 SLBM 발사 등으로 끼어들면 운명을 장담할 수 없다. 미국의 제한 공격을 당하든 중국의 함정에 빠지든 둘 중 하나다. 




작가의 이전글 남북연락사무소 폭파의 국제정치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