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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무사 Jul 26. 2021

남북 연락사무소 폭파의 국제정치3

폼페이오 양제츠 하와이 회담의 내막

북한의 남북 연락사무소 폭파를 정점으로 조성됐던 한반도의 긴장 상태는 어떤 계기로 해소됐을까. 당시에는 베일에 가려져 있던 일들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윤곽이 드러났다. 미국 대선 기간인 2020년 북미 간에는 공개적 움직임은 거의 없었다. 대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조짐도 별로 드러난 바가 없다. 그러나 양자관계는 소강 상태였지만 중국을 낀 3자의 움직임은 매우  역동적이었다. 중국을 매개로 한 미중관계와 북중관계 그리고 북미관계로의 흐름이 이어졌다. 


북한에 의한 남북연락사무소 폭파 다음날인 6월17일 하와이에서 전격적으로 이뤄진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과 양제츠 중국 공산당 외교담당 정치국원의 비공개 회담이 결정적인 모멘텀이었다. 이 회담에 대해서는 그동안 알려진 게 거의 없었다. 회담 당일인 6월17일(현지시간)자 <월스트리트저널>에 보도된 내용이 거의 전부다. 보도에 따르면 두 사람은 하와이의 히컴 공군기지에서 비공개로 1박2일간 만났다. 6월16일 저녁 식사를 같이 했고 다음 날 오전에 회담을 마쳤다. 중국의 요청으로 회담이 이뤄졌고 스티브 비건 대북정책특별대표가 참석했다. 


6월17일은 미국과 중국이 코로나19 사태와 홍콩 보안법 등 여러 분야에서 충돌하는 와중이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중국이 회담을 제안한 의도와 관련해 “안보와 경제 등 각종 현안에서 미국의 압력을 완화하는 것이 목표였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이를 위해 중국이 어떻게 했는지는 언급이 없었다. 다만 스티브 비건 대표가 참석한 것을 보아 “최근 악화된 한반도 평화 문제도 논의됐을 것”이라고 언급하는데 그쳤다. 북한의 갑작스런 도발에 당혹해 하던 우리 정부 역시 미중 외교 수장의 갑작스런 회동에 촉각을 곤두 세웠다. 회담 직후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 평화교섭 본부장이 워싱턴으로 날아가 비건 대표와 면담을  했다. 그 역시 돌아와서는 침묵을 지켰다.  


이 회담이 다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두 사람이 당시 나눴던 대화 중 한반도 관련 내용이 흘러나오면서부터다. 두 사람이 회동한 6월17일은 미중관계도 미중관계지만 남북관계에서 특히 중요한 때였다. 북한의 무력 도발이 심상치 않았다. 하루 전날인 6월16일 북한은 개성 남북연락사무소를 폭파했고 당일인 6월17일에는 인민군 총참모부가 4개 분야의 대남 군사도발을 추가로 전개할 것이라 예고하기도 했다. 


북한의 도발은 5월 말에 있었던 탈북자들의 삐라살포가 직접적인 계기였지만 이미 5월 초부터 함경북도 신포에서 2대의 3200톤급 잠수함에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각 3발씩 장착하기 시작하는 등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된 흔적도 존재한다. 따라서 남한을 대상으로 시작한 무력도발이 미국을 겨냥한 SLBM 발사로 이어질 판이었다.


코로나19로 대선판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던  트럼프 행정부로서는 북한이 미국을 겨냥해 긴장을 고조시키는 것이 부담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최대 압박전략에 따라 정찰기와 전투기 전략폭격기를 급파해 북한을 압박하면서도 북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국 외교 실세와의 면담 자리가 된 6.17 회담이 의미있게 다가왔을 것이다. 


당시 회담에 정통한 소식통에 따르면 폼페이오 장관이 양제츠 정치국원에게 미국의 우려를 표명했다. 즉 “미국은 대선 일인 11월3일까지 북한과 대화가 안되는 상황을 우려하고 있다”라고 솔직하게 토로한 것이다. 그러자 양제츠 정치국원이 이에 화답했다. “(미국과 중국 간에 여러 현안이 있지만) 비핵화 문제에서 미중의 협력은 매우 중요(most important)하다.” 


알려진 것은 이처럼 짧은 내용이지만 그 속에 담긴 뜻은 대단히 중요하다. 풀이를 해보면 미중 양국이 갈등을 빚고 있지만 북한 문제에 대해서는 중국이 미국에 협력하겠다는 뜻을 표한 것이다. 당시의 시점에서 미국이 우려한 것은 북한이 개성 연락사무소 폭파에 그치지 않고 대남 도발을 이어가면서 대선 직전인 9월이나 10월 미국을 겨냥해 SLBM을 발사하는  것이다. 양제츠의 얘기인즉슨 그런 북한의 도발을 억제하는 데 중국이 협조하겠다는 것이다.  


그 뒤의 상황 역시 그대로 됐다. 6월23일 김정은 위원장은 당 중앙군사위 제7기 제5차 예비회의를 개최해 6월17일 북한 인민군 총참모부가 남북간 긴장 고조를 위해 제기한 4대 군사 조치를 전면 보류시켰다. 북한의 분위기가 하루아침에 바뀐 것이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대남 규탄이 사라지고 경제 살리기를 위한 정면돌파전으로 다시 돌아갔다. 당시에는 폼페이오-양제츠 회담 내용이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김 위원장의 군사 행동 보류가 미국의 압도적 군사 압박 때문인 것으로 분석됐다. 분명 그런 요인도 배제할 수 없지만 6월17일의 두 사람 회동 결과가 중국을 통해 이때쯤 전달된 것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이 미중 합의에 따라 추가적인 군사 행동의 자제를 요구함과 동시에 그 댓가로 북한에게 줄 선물을 제시했을 것이라는 점이다.


북한과 중국이 아무리 동맹이라 해도 북한의 군사 행동에 대해 중국이 아무 댓가없이 이래라 저래라 할 수는 없다. 6월17일 하와이 회동에서 양제츠는 북한의 도발을 억제하는 데 필요한 댓가의 제공에 대해 폼페이오에게 미국의 양해를 구했을 것이다. 당시 주목받은 것이 바로 평양종합병원의 진단 장비 제공 문제다. 평양종합병원은 지난해 초 코로나가 전세계에 창궐하기 시작하면서 김정은 위원장이 인민들에게 제시할 대표적인 치적 사업으로 부각됐다. 다른 사업은 모두 보류하고서라도 지난해 75주년을 맞는 10월10일의 당 창건기념일까지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완공을 하기 위해 총력전을 펼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사업과 관련해서는 처음부터 북한이 자력으로 완공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는 지적이  많았다. 병원 외관은 북한 기술로도 못할 바가 없지만 병원 내부에 들어갈 최첨단 진단 장비들은 외부에서 들여와야 하는데 유엔 대북 제재와 코로나로 인한 봉쇄 상황에서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북한이 지원을 요청하는 각종 설비 목록이 대북 사업자들을 통해 국내에서 떠돌기도 했다. 그러나 북한이 정부간 채널로는 도움받길 거부하는 상황에서 유엔 제재를 무릅쓰고 남쪽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다. 결국 중국 밖에는 지원할 곳이 없는데 중국도 공식 채널이 아닌 군부간의 비공식 채널로 지원하는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아예 처음 병원 건설을 구상할 때부터 중국 군부의 지원을 전제로 시작했다는 지적도 있다.  2020년의 동북아 정세에서 요긴할 때 북한이 역할을 해주는 댓가로 중국이 군부 채널로 병원 장비를 제공하는 형태의 밀약이 있었다는 것이다. 미국 대선 전인 10월쯤 북한의 SLBM 발사와 중국의 병원 시설 지원이 거의 동시에 일어날 것이라는 지적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6월17일의 폼페이오와 양제츠 회동을 계기로 중국이 북한의 SLBM 발사를 저지해주는 댓가로 평양종합병원의 진단 설비를 북한에 제공하는 것에 대해 미국이 묵인하는 식의 묵계가 있었다면 북미중 3자가 이번만큼은 서로의 필요를 만족시키는 매우 실용적인 해법을 찾은 것이라 할 수 있다. 미국은 대선 전 불안 요인을 줄일 수 있게 됐고 중국은 지난해 상반기 자신들이 요긴할 때 도와준 북한을 특별한 제재없이 지원할 수 있게 됐다. 


북한이 도발을 준비한 5월 초에서 6월 중순의 시기는 중국 입장에서는 절체절명의 순간들이었다. 4월 하순부터 미 해군이 여차하면 무력 충돌도 불사한다는 기세로 필리핀 북부와 대만 남부 사이 바시해협을 차단하며 남중국해의 중국 잠수함 부대를 봉쇄하기 시작했다. 바로 이때 북한이 신포에서 SLBM 관련 움직임을 시작했다. 또한 상반기 중국 대외정책의 최대 난문이었던 홍콩보안법 통과 시점에 맞춰 북한이 무력 도발을 감행함으로서 국제 사회로부터 부담을 결정적으로 분산시켜주었다. 


홍콩보안법 통과를 통한 홍콩 정세의 안정은 지난해 7월 말 북대하 회의에서 홍콩에 경제적 이권을 가진 원로들의 시진핑 주석에 대한 공격을 완화시키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지난해 여러모로 위태로왔던 시진핑 주석의 권력 안정에 북한이 적시에 큰 역할을 한 셈이다. 중국으로서는 북한에 보답을 해야할 상황에서 미국의 다급한 사정을 들어주는 모양새를 취한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의 지적대로 미국의 대중국 압력을 완화시키는 카드로도 활용했을 터이니 일석이조, 꿩먹고 알먹고 식의 노련한 외교술을 보여준 셈이다. 


애초에 중국이 회동 날자를 6월17일로 잡은 것에서부터 북한과 서로 조율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북중 양국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올해를 겨냥한 군사 공조를 숙의해온 흔적이 있기 때문에 효과를 극대화히기 위한 서로간의 일정 조정도 배제할 수 없다. 미국이 그런 상황을 알았다 해도 다른 선택의 여지는 별로 없었을 것이다. 어쨌든 이 회동을 계기로 북미간에도 채널이 열리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미국도 얻은 것이 없지는 않기 때문이다. 다만 이 와중에 남북관계만 희생양이 됐다. 


하와이 회동이 끝나고 약 12일 후인 6월29일(현지시간) 스티브 비건 미 국무부 부장관이 독일마셜기금 주최 포럼에서 북한과 대화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미국 측의 메시지를 공표했다. 그 다음 날 문재인 대통령이 “미국 대선 이전 북미간 대화노력이 한 번 더 촉진될 필요가 있다”는 식으로 이어 받았다. 그리고 7월7일~9일 사이 비건 대표가 서울을 방문해 대화 의지를 몸으로 보여줬다. 


미국의 대화 제안에 북한은 7월10일 김여정 담화로 자신들의 입장을 종합적으로 밝혔다.  미국 대선 전 북미 정상회담은 북한으로서는 무익하다며 이를 거부했고 대신 트럼프 정부가 우려하고 있는 것과 같은 군사 도발은 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러면서 향후의 회담 의제에 대해 선명하게 제시했다. 지금까지와 같은 비핵화 조치 대 제재 해제가 아니라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 철회와 조미 협상 방식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미국 독립기념절 행사 관련 DVD를 개인적으로 꼭 얻으려 한다”면서 경우에 따라 본인의 방미 가능성을 열어놨다.


김여정의 이 담화를 계기로 북미간 물밑 접촉이 본격화됐다는 게 외교가의 시각이다. 다만 미국 측은 인도적 지원에 대해서는 공개적으로 천명할 수 있지만 다른 문제들은 일단 만나서 얘기하자는 입장이었다고 한다. 반면 북한은 대북 적대시 정책 철회와 관련해 미국이 먼저 명시적으로 안을 내놓으라는 입장이다. 지난해 10월의 스톡홀름 회동 때의 밀고 당기기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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