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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무사 Jul 26. 2021

홍콩보안법, 중국이 얻은 것과 잃은 것

홍콩보안법 통과와 영국의 등장

지난해 동아시아 국제정치에서 가장 큰 사건 중 하나가 바로 중국 전인대의 홍콩보안법 통과라 할 것이다. 홍콩보안법은 단순히 중국과 홍콩 관계를 넘어 중국 내부의 권력투쟁과의 관계, 서방의 반발과 이를 대비한 북중 동맹의 포석, 그리고 보안법이 초래할 중국과 서방 관계의 재정립 등의 많은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앞의 글들에서 중국이 2019년 말부터 북한과의 군사 관계를 강화하며 결정적인 순간에 무력도발을 요긴하게 활용했다는 지적을 한 바 있는데 그 중심에 바로 홍콩보안법 문제가 있었다. 따라서 홍콩보안법을 둘러싼 제반 문제들을 좀더 심층적으로 짚어볼 필요가 있다. 

 

홍콩 국가보안법을 밀어부친 중국의 타이밍 감각은 기가 막혔다. 코로나19로 미국을 비롯한 전세계가 홍역을 치루고 있을 때 숙원 사업을 하나씩 강행 처리해온 연장선이다. 지난해 4월3일 베트남과 영유권 분쟁 중인 남중국해 파라셀군도에서 중국 해안경비대 함정이 베트남 어선을 들이받아 침몰시키고 5월 들어서는 인도와 두차례나 국경에서 충돌했다. 코로나를 틈탄 중국의 대외 강경 행보라는 분석이 제기됐다. 미국 항공모함 루즈벨트호가 코로나로 가동 정지 상태에 들어간 틈을 타  남중국해에서 활동 공간을 넓히고 있다는 시각도 존재했다.


홍콩에서도 전조가 없지 않았다.  코로나 19 국면을 틈타 시위를 주도한 인사들에 대한 단속이 노골적으로 진행돼 왔다. 4월8일에는 81세인 홍콩 민주당 창당자 마틴 리씨와 14명의 민주화 활동가가 체포되기도 했다. 마틴 리씨는 40년 만에 처음 체포된 것이라고 한다. 지난해 1월 홍콩 주재 연락판공실 대표로 부임한 시진핑 주석의 측근 뤄후이닝이 마틴 리 체포 전 홍콩 보안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는 얘기도 있다. 5월로 연기된 전인대를 보안법 통과의 무대로 삼기 위한 치밀한 사전 정지 작업이었을 터이다.


9월의 홍콩 입법회 선거를 염두에 둔다면 홍콩 보안법은 더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라 여겼을 것이다.  2019년 11월의 구의회 선거에서 민주파가 85.2%의 지지를 얻었고 18개 구의회 중 17곳의 과반 의석수를 확보했다.  9월의 입법회 선거는 한국의 국회의원 선거에 해당한다. 구의회 선거와 같은 결과가 입법회 선거에서 재현된다는 것은 베이징 당국에게는 악몽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한 대비는 끝났다?


북경 당국의 브레인들이 가장 신경을 곤두 세운 것은 미국의 반응이었을 것이다.  중국 전인대가 홍콩 보안법을 강행할 경우 미국은 어떤 식으로 대응할까. 중국의 브레인들이 미국의 대응 시나리오를 사전에 면밀히 검토했다는 내용의 언론 보도들이 쏟아져 나왔다.  중국이 볼 때 미국이 쓸 수 있는 카드는 1992년 미 의회가 제정한 홍콩 정책법에 따른 홍콩 무역특별지위를 박탈하는 것이다. 


홍콩정책법은 1997년에 있을 중국 반환을 앞두고 홍콩에 중영공동선언에서 규정한 ‘고도의 자치’가 보장되는 것을 조건으로  관세 투자 무역 비자발급 등에서 중국 본토와 차별되는 특혜를 부여하기로 한 것이다. 이같은 무역 특혜 덕분에 홍콩에서 미국으로 수출되는 수출품은 최혜국 대우에 따라 거의 무관세에 가까운 혜택을 얻었고 홍콩인은 무비자로 미국 입국이 가능했다. 홍콩 달러의 미국 달러망 접근이 허용돼 홍콩이 아시아의 금융 허브로 자리매김 할 수 있었고 중국 본토에는 수출이 불가능한 미국의 민감한 기술제품이 홍콩 기업에는 수출됐다. 


중국 역시 혜택을 많이 봤다고 할 수 있다. 홍콩에서 미국으로 수출되는 상품들의 대부분이 중국 남부에서 생산된 것이기 때문에 홍콩의 특별지위가 철폐되면 중국 역시 타격을 받는다. 무엇 보다 중국 기업 공개(IPO)의 70%가 홍콩에서 이뤄져 왔다고 할 정도로 홍콩이 중국 기업의 해외 자본 조달 창구 역할을 해온 것도 이런 특혜에 의해 가능했다. 


홐콩에 부여한 미국의 특별무역지위는 중국이 홍콩에 고도의 자치 즉 일국양제를 허용한다는 전제조건으로 부여된 것이다. 따라서 홍콩 보안법으로 자치가 부정되고 일국양제가 사라지면 미국의 무역 특별지위 역시 유지될 수 없다. 북경 당국이 이런 상황을 간과했을 리 없다. 그럼에도 그들이 홍콩 국가보안법을 강행한 것은 나름 계산이 섰기 때문이다. 


즉 국가 보안법에 맞서 미국이 홍콩에 대한 특별무역지위를 포기할 경우 중국이 입는 피해 보다는 미국의 피해가 더 크다는 것이다. 2018년 기준 미국과 홍콩간 교역액은 669억 달러로 미국이 311억 달러 흑자를 거뒀다. 미국이 외국과 교역에서 거둔 흔치 않은 흑자다.  홍콩에는 미국 기업 1300여개가 진출해 있고 그중 300여개 기업의 아시아본부가 위치하고 있다. 그중에는 3M,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존슨앤존슨 등 굴지의 다국적 기업들이 다 포함돼 있다. 미국 입장에서도 신중하지 않을 수 없다.


홍콩의 경제적 비중이 1997년 반환 당시 중국 GDP의 25%에서 최근 3% 대까지 떨어졌다는 점  그리고 중국이 그동안 선전과 상해 등을 홍콩의 대체지로 키워왔다는 점도 자신감의 배경일 것이다. 선전은 교역 창구 그리고 상해는 금융 창구로서 홍콩이 맡아왔던 역할을 대체할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북경 당국이 중국 코 앞에서 반공산당 시위가 일어나는 것이 오히려 투자자들을 불안하게 한다고 보기 때문에 홍콩이 꼭 현재와 같은 지위를 유지해야 한다고 보지 않는다는 견해도 존재한다. 


홍콩 보안법이 5월28일 전인대를 통과한 이후 미국이 보인 반응을 보면 중국의 예상대로 전개되는 것 같다. 5월30일 트럼프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통해 홍콩의 특별무역지위를 박탈하는 절차를 시작하도록 행정부에 지시했다고 발표했으나 블룸버그통신은 “거의 어떤 조치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고 미국 금융시장은 이 발표에도 조용했다”라고 논평했다. 일부 중국의 전문가들은 결국 미국이 할  수 있는 게 없지 않느냐며 조롱을 하기도 했다.  미국 경찰의 조지 플로이드 씨 살해 사건으로 전국이 항의 시위 열풍에 휩싸인 트럼프 대통령 처지에서는 홍콩보안법에 집중할 마음의 여유도 없어 보인다.


홍콩 보안법 당사자는 미국이 아니라 영국


미국이 코로나19와 국내 시위로 경황이 없는 틈에 오랜 숙원 사업이던 홍콩 국가보안법을 밀어붙인 북경 당국과 브레인들의 빛나는 타이밍 감각의 승리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다. 홍콩 국가보안법의 당사자가 과연 미국인가. 물론 미국도 해당 사항이 있다. 1992년의 홍콩정책법에 홍콩의 고도의 자치를 특별무역지위 부여를 위한 전제 조건으로 걸어놨기 때문이다. 이를 훼손하는 국가보안법에 관계가 없다고 할 수 없다. 법적으로 따지면 딱 거기까지다. 미국은 홍콩의 고도 자치나 일국양제의 당사자라기 보다는  그것이 잘 유지되도록 곁에서 돕는 조력자일 뿐이다.


그렇다면 당사자는 누군가. 등소평 시절인 1984년 조자양 당시 중국 총리와 홍콩반환 협정을 타결하며 역사적인 중영공동선언에 합의한  영국이 바로 당사자다. 영국은 지난해 홍콩 보안법 통과에 즉각 항의하며 이민법을 개정해 약 300만명의 홍콩 시민들에게 영국 시민권을 취득할 길을 열어놓겠다고 치고 나왔다. 


국제정치를 미국과 중국의 대항 관계로만 보는 시각에서는 영국의 갑작스런 대응이 돌발적인 것으로 느껴진다. 북경 당국이 그동안 홍콩 보안법을 추진하면서 내심 그렸을 시뮬레이션에도 영국이라는 변수는 별로 고려 사항이 아니었던 것 같다. 아니면 대수롭지 않게 봤을 수도 있다. 그러나 보안법 국면의 핵심 포인트는 바로 영국이다. 영국이 이 사태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가가 앞으로 중국의 운명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영국의 관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일국양제의 출발점이 됐던 1984년의 중영공동선언 당시의 정황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1842년 1차 아편전쟁의 결과 영국이 당시의 청나라로부터 홍콩섬을 할양받았고 2차 아편전쟁 이후 1860년 구룡반도까지 할양받은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그리고 1898년 홍콩섬과 구룡반도의 배후지에 해당하는 신계지구까지 99년간 임차해 오늘날 홍콩의 꼴을 갖췄다. 당시 신계 지구 관련 협정문 말미에 ‘as good as forever’라고 적혀 있었다고 한다.  즉 돌려줄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홍콩 시내 중심가를 이루는 홍콩섬과 구룡반도는 영국이 영구히 할양 받은 것이기 때문에 반환 협상의 대상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99년이라는 임차 시한을 명시한 신계지구만이 반환협상 대상이었다. 1997년 반환 시한을 앞두고 1979년 머레이 맥리호스 홍콩총독이 베이징을 방문한 것을 계기로 비공식 반환협상이 시작됐다. 협상이 본격화한 것은 대처 정권 등장 이후인 1982년부터다. 


당시 대처 정부는 신계지구를 15년 더 임차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북경 정부는 중국이 공산화되기 전인 1848년에 이미 북경조약과 남경조약 그리고 구룡·신계 조차 조약을 무효화하고 승계하지 않기로 결정한 바 있다. 임차 기간 연장을 거부당한 영국은 주권(sovereignty)은 반환하되 치권(administration)은 행사하는 마카오식(명.청 정부가 영토는 소유하되 포르투갈이 관할)을 제안하기도 했으나 중국은 주권과 치권은 나뉠 수 없다며 이 마저 거부했다. 대신 등소평이 회유책으로 역제안 한 게 바로 일국양제(한 국가 안에 두개의 체제의 공존)였다고 한다. 즉 반환 시점인 1997년부터 2047년 6월30일까지 홍콩의 자본주의 체제와 자치를 그대로 인정하겠다는 것이다. 영국은 애초에 신계 지구만을 반환협상으로 삼았으나 배후지인 신계 지구가 반환되면 시내 중심가인 홍콩섬과 구룡반도만으로 버티는 데 한계가 있다고 보고 등소평의 일국양제를 받는 대신 전체 반환을 결심하게 된 것이다. 


영국에게 일국양제 약속은 넘겨줄 의무가 없었던 홍콩섬과 구룡반도까지 중국에 넘겨준 댓가로 확보한 권리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은 이것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고 영국은 중국이 이것을 지키는지 안지키는지 감시하고 참견할 권리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것은 하루 아침에 영국 시민에서 사회주의 중국의 국민으로 바뀐 홍콩시민들에 대한 영국의 책무이기도 했다. 중국 전인대가 홍콩보안법을 통과시킨 후 영국 조야에서 홍콩 시민에 대해 마땅히 해야활  ‘법적 도덕적 의무’가 있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이다. 당시 중국과 영국의 협상장에서는 중국이 일국양제 약속을 지키지 않을 경우 영국은 전쟁을 불사할 것이다라는 말도 나왔다고 한다. 


시진핑 정권 등장 이전만 해도 중국은 비교적  일국양제 약속을 지켜왔다. 그러나 시진핑 등장 이후 노골적으로 무시하는 태도를 보여왔다. 급기야 홍콩반환협정 20주년이 되는 2017년 8월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홍콩 반환협정은 이제 역사일 뿐이다”라며 더 이상 중영공동선언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였다. 


중영공동선언에 뿌리를 둔 홍콩 기본법


전인대의 결의와 전인대 상무위원회에 의한 법률안 제정 및 홍콩기본법에 부칙 첨가라는 프로세스로 진행되는 홍콩 보안법 제정은 분명 홍콩기본법 속에 산재하는 이러저러한 조항들에 근거하고 있다.  그러나 큰 틀에서는 홍콩에 중국식 사회주의가 아닌 영국 통치시절의 자본주의 생활 양식 및 입법 사법 행정과 관련한 고도의 자치를 허용한 일국양제의 기본 정신과는 어긋난다. 따라서 홍콩국가보안법은  일국양제의 종언이라 표현해도 과하지 않을 것이다.


 1984년 12월19일 대처 영국 총리와 조자양 중국 총리 사이에 체결된 중영공동선언은 제3장 ‘홍콩에 대한 중화인민공화국의 기본방침’이라는 장을 두고 있다. 그 제2절에서 ‘외교 국방 사무가 중앙인민정부 관할에 속하는 것 외에는 (홍콩은)고도의 자치권을 향유한다’면서 홍콩이 향유할 자치권의 내용을 나열했다.  즉 3절에서 행정관리권, 입법권, 독립된 사법권 및 최종 심판권을 향유하고 5절에서는 홍콩의 현 사회 경제 제도는 변하지 않고 생활방식 또한 변하지 않는다. 홍콩 특구는 언론 출판 집회 결사 여행 이주 통신 파업 직업선택 학술연구 종교신앙과 관련한 각종 권리와 자유를 보장한다고 돼 있다.


홍콩기본법(1990년 4월4일 제7기 전인대 3차회의 통과. 1997년 7월1일 시행)은 중영공동선언의 이같은  합의를 법제화 한 것이다. 서문에서 ‘홍콩의 역사와 현실을 고려하여. 일국양제의  방침에 따라 홍콩에 사회주의 제도와 정책을 시행하지 않기로 결정하였다’라고 못을 박았다.  제2조는 중국 전인대가 홍콩특별행정구의 고도 자치를 수권하며 행정관리권 입법권 독립적인 인사권과 최종 심판권을 향유한다는 점을 다시 밝히고 있다. 


홍콩보안법 제정 당시 쟁점이 된 입법권과 관련해 제17조는 홍콩특별행정구가 입법권을 향유한다고 못을 박았고 18조에서는 홍콩에서 시행하는 법률은 이전부터 시행돼온 법률과 홍콩 입법 기관이 제정하는 법률에 국한한다고 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여기에 약간의 틈새를 뒀다.  즉 전국성 법률(중국 대륙 전체에 적용하는 법률)은 ‘첨부 문서3’에 포함되는 것을 제외하고 실시하지 않는다고 해놓고 전인대 상무위가 홍콩특별행정구 기본법 위원회와 특구 정부의 의견을 구한 후 ‘첨부 문건3’에 포함하는 법률을 증감할 수있다고 해놓은 것이다.


 바로 이 18조의 전인대 상무워원회에 의한 첨부문서 3  증감 권한을 활용한 게 홍콩보안법 제정 과정이다. 보안법과 같은 취지의 법조문이 기본법 안에 이미 존재한다. 바로 기본법 23조이다. 즉 ‘홍콩특별행정구는 자체적으로 법을 제정하여 국가를 배반하고 국가를 분열시키며 반동을 선동하고 중앙인민정부를 전복하며 국가기밀을 절취하는 행위를 금지하여야 하며 홍콩특구의 정치조직 또는 단체가 외국의 정치조직 또는 단체와 관계를 구축하는 것을 금지하여야 한다’라고 돼 있다. 지난 2003년 이 조항에 근거해 홍콩특별행정구 자체적으로 국가보안법을 제정하려 했으나 시민들의 거센 저항으로 무산된 바 있다. 그뒤 2014년의 우산혁명, 2019년의 송환법 사태를 겪으며 국가보안법의 필요성이 더욱 절실해졌으나 홍콩특구 정부가 ‘자체적으로 제정하는’ 것은 더욱 요원해졌다고 할 것이다.  그래서 등장한 편법이 내용은 23조의 것을 그대로 쓰고 절차는 18조의 전인대 상무위의 첨부문서 증감권을 활용하는 방식을 활용한 것이다.


리커창 총리가 5월22일 전인대에서 전격 발표한 홍콩국가보안법의 정식 명칭은 ‘홍콩특별행정구의 국가 안보를 수호하는 법률제도와 집행기제 수립 및 완비에 관한 전국인민대표대회의 결정’이다. 입법권을 가진 홍콩 입법회의 권한을 우회하게 된 데 대한 절차적 설명을 담고 있다. 리 총리가 밝힌 보안법 초안의 목적은 기본법 23조내용을 거의 그대로 옮겨놓았다. 그리고 7개 조항으로 관련 법규가 구성됐는데 그 중 첫번째가 중국 중앙정부의 안보관련 기구, 즉 공안부나 안전부 등이 홍콩 현지에 직무이행 기관을 설립하도록 한 것이다. 홍콩의 민주파 인사들을 중국 공안기관이 직접 담당하겠다는 것이다. 두번째는홍콩 행정장관의 보고 의무 그리고 세번째는 법률 위반시 최고 30년까지 징역형을 선고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예상치 못한 영국의 강수와 유럽 향배


 북경 당국과 브레인들이 미국의 대응에만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을 때 예상치 못한 영국의 반격이 날아들었다. 홍콩 시민중 영국 해외시민권(BNO)을 소유한 사람들의 권한을 대폭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현재 6개월로 돼있는 체류기간을 12개월로 늘리고 추후 영국 시민권을 획득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현재 35만명의 홍콩시민이 BNO를 가지고 있는데 앞으로 1997년 반환 당시 소지자 290만명까지 대상을 확대할 예정이다. 2019년 홍콩인구가 745만명인데 그중 300만 명에 가까운 사람이 영국 시민권을 갖게 될 경우 절반 못미치는 홍콩 시민이 영국 시민과 같은 지위를 갖게 된다.


 민주화 시위의 주력인 23세 이하 청년들은 1997년 홍콩 반환 이후 출생자들이라 해당 사항이 없다는 점이 한계지만 홍콩보안법 시행으로 홍콩 시민의 정치적 권리가 위협받게 될 경우 든든한 방어막이 될 수 있다. 영국 시민권을 가진 홍콩시민의 인권 문제가 발생할 때 마다 영국이 개입해 문제를 제기 하면 중국은 국제 사회에서 곤혹스러운 처지로 몰릴 가능성이 높다.


영국과 중국 관계는 지난 2015년 시진핑 주석이 영국을 방문해 400억 달러 투자계획을 발표할 정도로 황금시대를 구가하기도 했다.  그 이후 냉각되기는 했지만 현 보리스 존슨 총리는     2019년 취임 직전 기자회견에서 스스로 친중파를 자처할만큼 중국 투자 유치에 열성적이었다. 브렉시트로 EU로부터 떨어져 나온 영국 입장에서는 중국과의 관계가 절실했다. 그런 이유로 2020년 1월에는 5G 통신망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동맹국 미국의 반대를 무릅쓰고 유럽에서 처음으로 화웨이 통장설비를 비록 제한적이긴 하지만 사용하기로 결정하기도 했다.  


그러나 코로나19 발생 초기 중국의 정보 은폐로 영국이 유럽 최대 피해자가 되면서 집권 보수당 안에서 반중 여론이 거세지기 시작했다. 그런 와중에 중영공동선언을 무시한 중국의 홍콩보안법 강행 통과는 영국으로 하여금 홍콩 사태에 개입하지 않을 수 없도록 하는 초청장이 되었다. 영국이 움직이면 영연방 국가들이 함께 하고 유럽이 보조를 맞출 가능성이 높다. 이미 화웨이에 대한 거부감이 유럽에서 확산되고 있고 중국 정부의 보조금으로 이뤄지는 기업사냥을 막기 위한 EU 차원의 움직임도 등장했다. 홍콩 보안법 파동 이후 미국은 한껏 여유가 생겼다. 성난 유럽이 중국에 맞서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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