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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무사 Jul 26. 2021

시진핑은 왜 홍콩보안법을 강행했나

2020년 8월의 북대하 회의가 잠잠했던 이유

‘가장 수수께끼 같은 회의.’ 8월18일자 홍콩의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기사는 2020년 8월의 북대하 회의에 대해 이렇게 평했다. 북대하 회의는 매년 7월 말 8월 초 중국의 전현직 최고지도자들이 허베이성 친황다오의 해변 휴양지인 북대하에 모여 중국의 당면 현안을 논하는 비공개 회의다. 2020년 중국은 유난히 현안이 많았다. 2019년 말부터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대유행하기 시작됐고 코로나 확산 과정의 정보 은폐로 미중관계가 무역협상 1차 합의에도 불구하고 악화됐다. 이어서 터진 홍콩보안법으로 미국에 이어 유럽까지 대중 봉쇄에 가세해 중국의 고립감을 심화시켰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5월 말부터 시작된 홍수 피해로 양쯔강이 범람해 그 일대의 곡창지대가 물에 잠겼다. 동절기 식량난까지 우려되는 형국이다.


7월말 8월초의 베이다이허 회의는 언로가 막힌 중국 체제에서 유일하게 공산당 수뇌부의 다양한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공간이다. 현직에서 물러나 뒷전으로 나 앉은 당의 원로들이 그동안 꾹꾹 눌러 참고 있던 불만이나 건의 사항들을 쏟아내는 자리기 때문이다.  그중에 일부는 첩보나 정보 형태로 언론이나 인터넷 공간에 등장하기도 한다. 올해는 때가 때이니 만큼 유독 험악했다.  시진핑 주석의 실정에 대한 원로들의 분노와 대응이 주된 내용이었고 그중의 일부내용은 매우 구체적이기까지 했다.  


이를 테면 이런 식이다. ‘지금 중국 공산당은 정권 수립 이후 최대 위기 상황이다. 자극해서는 안될 미국을 화나게 했기 때문이다. 시진핑은 지금 (과거 당에 의해 축출된) 화국봉 보다 더 심각한 처지다. 원로들이 시진핑의 사임을 요구했고 일부는 미국 정부의 밀사들과 비밀리에 만나 그의 거취를 논의했다.’  뜬 소문만으로 그친 게 아니라 중화권 매체들이 보도하고 국내 일부 매체 역시 ‘현지 소식통 전언’이라며 이를 소개했다.


과연 그럴까라는 의심이 들었지만 중국이 처한 엄중한 현실을 반영한 점도 있어 사태의 추이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천만 뜻밖에도 시진핑 주석이 이런 엄중한 국면을 대하는 태도는 태평스럽기 이를 데 없었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지가 '가장 수수께끼 같은 회의'라고 평한 이유다. 


정치국 상무워원들의 일정을 감안하면 이번 회의는 8월1일부터 시작해 16일께 끝난 것으로 판단된다.  그런데 회의 시작 이틀 전인 7월30일 시진핑 주석은 공산당 정치국 회의를 주재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10월에 공산당 19기 중앙위원회 제 5차 전원회의(5중 전회)를 개최하기로 했는데 신화사 통신의 보도에 따르면 이 회의의 주요 의제는 14차5개년계획과 2035년까지의 장기목표이다. 14차5개년 계획은 올해 말 끝나는 13차 5개년 계획에 이어서 2021년부터 2025년까지의 경제발전계획을 뜻한다. 또 2035년 장기목표란 그동안 추진해온 첨단산업 육성 계획인 ‘중국 제조 2025’를 2035년까지로 연장하자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그런데 2035년은 시진핑 주석의 주석직 임기 연장과 관련해 매우 중요한 수자다. 지난 2017년 10월에 열린 제19차 당대회 기조연설에서 시진핑 주석은 중국의 향후 발전 단계와 관련해 1단계로 2035년까지 사회주의 현대화를 실현하고 2단계로 2035년부터 21세기 중(2050년)에 사회주의 현대화 강국 실현을 제시했다. 시진핑 주석이 국가 주석에 취임한 것이 2012년이니 5년 임기 주석직을 연임까지 할 수 있는 당시 헌법 규정으로 보면 2022년이 임기 끝이다.  그런데 자기 임기를 13년이나 넘긴 2035년까지 목표를 제시한 것이다. 따라서 시 주석이 2035년까지 장기집권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말들이 나왔는데 그뒤에 그대로 진행됐다. 


다음해 2월의 당중앙위 회의와 3월의 전인대를 거치며 5년 임기 연임까지만 허용한 헌법 조항을 삭제해버린 것이다. 따라서 2035년까지 집권이 현실이 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그런데 공산당 창당 이래 최대 위기로 원로들이 자신을 권좌에서 끌어내릴지도 모를 절체절명의 회의를 앞두고 2035년까지의 집권을 꿈꾼 셈이니 태평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북대하 회의 기간 시 주석은 회의를 별로 의식하는 것 같지 않은 태도를 보였다. 회의 기간 중인 8월 첫 주에 중국 관영 매체들은 그가 해외 정상들과 통화를 했다거나 음식물 쓰레기를 절감하도록 지시를 내렸다는 등의 시시콜콜한 동정 보도를 내보냈다. 그의 이런 태도로 인해 시주석의 강력한 1인 권력 하에서 베이다이허 회의가 이제 주요 국정현안을 논의하는 본래 의미를 잃고 형해화 한 것 아니냐는 지적까지 나오기도 했다.


북대하 회의 계기로 한 권력 약화 없었다


회의 결과 역시 이런 분위기와 큰 차이가 없었다. 중국 현지 소식통들은 “이번 회의를 계기로 시주석의 권력이 타격을 입은 것은 없다”고 전해왔다. 현지 주재하는 국내 언론 분석도 대체로 일치한다. 일부 원로들이 시 주석의 2선 후퇴를 거론하기도 했고 리커창 총리가 자신의 경제 현실 진단과 노점상 도입을 통한 고용창출 등 경제 활성화를 주장해 시 주석과 감정 섞인 언쟁을 하기도 했으나 한편으론 14차5개년 계획 등 당면 현안에 대한 해결책과 관련해 일정 정도 성과를 본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대미 관계 등 대외 전략 분야에서 나름의 방향에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7월23일 폼페이오 장관의 닉슨도서관 연설을 계기로 미국은 중국 공산당 정권의 합법성을 부인하고 미중관계를 자유세계 대 전체주의 정권의 대결로 선언했다. 과거 구소련에 맞섰던 냉전이 중국을 대상으로 다시 부활한 셈이다.   


갈수록 거세지는 미국의 압박에 맞서 북대하 회의는 지구전 개념을 도입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구전은 7월30일의 정치국 회의에서 공식화된 것으로 항일전쟁과 국공내전 시절 공산당 지도자인 마오쩌둥이 자신보다 강한 상대방이라도 유격전 등 유리한 방식으로 오랜 기간에 걸쳐 투쟁하면 무너뜨릴 수 있다며 정립한 개념이다. 미국에 강경하게 맞서기 보다는 시간을 갖고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싸움을 해나가겠다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코로나팬데믹과 홍콩보안법 강행 이후 전세계적으로 형성된 반중 정서에 대한 대응책도 논의됐다고 알려진다.


‘태산명동서일필’이라고, 중국계 인터넷에 떠돌던 사전 분위기와 실제 회의 모습이나 결과간에 상당한 괴리가 있음을 알 수 있다. SCMP나 중화권 전문가들 분석대로 시진핑의 권력이 그만큼 막강해 원로들이 힘을 쓸 수 없었던 것인가. 북대하 회의를 앞두고 시주석이 공안기관에 대한 검열 등 반부패운동을 재현하려는 조짐을 통해 반대파를 압박한 정황은 존재한다. 또한 일부 분석가들은 대미관계에서 문제가 된 시주석의 중국몽 등 강국노선은 중국 공산당 지도부가 공산당 창당 초기부터 공유해온 것으로 시 주석만의 잘못이라고 하기 어렵다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또 중국이 처한 위기가 큰 만큼 공산당 내부 분열을 드러낼 경우 대중의 불만이 표출될 것을 우려해 타협을 하지 않을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러나 또다른 측면의 분석도 있다. 원로들 사이에서 시진핑 주석에 대한 문제제기는  2019년의 회의 때가 훨씬 격했다고 한다. 당시에도 가장 큰 현안은 홍콩사태와 미중 무역 갈등 등 대외 변수였다. 특히 홍콩 사태의 경우 당시 범인인도법(송환법)을 둘러싼 시민들의 시위가 걷잡을 수 없이 번져가는 상황이었다. 시주석의 대응을 성토하며 인민해방군과 무장경찰을 동원해서라도 강경 진압해야 한다는 주장이 원로들 사이에서 나왔고  일부 언론에 소개되기도 했다. 시주석이 군대 동원 보다는 법적 조치를 강화해 해결하겠다고 분위기를 진화할 정도였다. 


중국 전체의 위기로 보자면 2019년은 홍콩 시위가 격했을 뿐 미중갈등이나 안팎의 어려움이라는 점에서 2020년 보다 크다고 할 수 없다. 위기로 따지면 2020년이 더욱 크고 그것이 일정하게 반영된 게 인터넷에 떠돈 시진핑 하야설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중국의 원로들은 오히려 2019년에 목소리를 높이고 2020년에는 형식적으로 몇 마디하고  조용히 넘어간 셈이다. 왜 이런 차이가 벌어졌을까?


 중국의 원로들이 어떤 때에 주로 목소리를 높이는지를 이해하는 것은 앞으로 중국의 권력 투쟁과 내부 정치 메카니즘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소위 중국의 원로그룹 중 아직까지 세력을 유지하는 것은 장쩌민-쩡칭홍이 주도하는 상해방 그룹이라 할 수 있다. 후진타오 계열은 원로들 보다는 리커창 총리처럼 공청단(공산주의청년단)을 기반으로 여전히 현역에서 뛰는 인물들 위주다. 태자당은 시진핑 주석을 배출했지만 인사에서 소외되면서 주로 상해방과 이해관계를 같이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상해방으로 일컬어지는 장쩌민-쩡칭홍 그룹이다.  1989년 장쩌민이 권좌에 앉으면서 형성된 이 그룹은 중국의 고도성장기를 주도하면서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그 뒤를 이어 후진타오 주석이 주석직을 승계했지만 장쩌민이 군사위 주석을 2년간 더 유지했고 그 뒤로도 측근들을 권력의 핵심 요직에 배치하고 실권을 넘겨주지 않아 후진타오 집권기간을 포함해 사실상 20년간 권좌를 유지했다는 지적도 있다.  


2012년 시진핑 주석이 등장하면서 5년간은 피튀기는 권력투쟁이 벌어졌다. 시주석이 측근인 왕치산을 당 중앙기율위원회 서기에 앉혀 대대적으로 벌인 반부패투쟁은 바로 장쩌민-쩡칭홍계와 벌인 권력투쟁이었던 셈이다. 양자가 서로 타협을 한 게 2017년 제19차 당대회 때였다고한다. 타협의 조건은 간단했다.  장쩌민계는 권력 투쟁의 내막에 대해 대외적인 폭로를 자제하고 시진핑 쪽은 장쩌민계가 부정부패로 거둬들인 자산을 인정한다는 것이다.  즉 그 자산을 홍콩이나 미국으로 빼내 운용하는 것을 용인한다는 것이다.  


19차 당대회를 계기로 왕치산이 당 중앙기율위원회 서기에서 물러나면서 반부패 투쟁이 종료된 게 바로 양측의 타협의 결과라는 것이다.  이 타협은 시진핑 주석이 장쩌민 파의 막대한 자산 운용에 시비를 걸지 않고  편의를 봐주는 조건으로 장쩌민 파 역시 시진핑 집권에 도전하지 않고 안정적인 국정운영을 보장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장쩌민 파의 자산 운용에 부정적인 상황이 도래할 경우 장파를 필두로 한 북대하 회의 분위기가 험악해지는 것이다. 


미국에 망명 중인 중국 사업가 궈원구이씨는 2019년 4월13일 자신의 유튜브 계정을 통해 장쩌민 전 중국 국가주석의 가족이 해외에 1조 달러의 자산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이중 장 전 주석의 손자 장즈청의 자산만 5000억 달러에 이른다고 한다. 궈 씨는 영상에서, “장 씨 일가는 국유기업, 금융 기구, 보험 등 다양한 기업을 천 개 이상 지배하고 있으며, 그를 통해 해외에서 5000억 달러를 세탁했다”고 밝혔다. 세탁된 자금 중 일부는 미국의 금융 펀드, 대형 첨단기업에 투자됐다고 한다.


이런 모습은 장쩌민 주석에게만 해당하지 않는다. 중국의 원로나 태자당 출신들의 보편적인 모습이다. 2014년 위키리크스는 해외 조세포탈구역에 자산을 빼돌린 중국 고위층 가족의 명단을 보도하기도 했다. 한 통계 자료에 의하면 원로들이 해외에 빼돌린 자산이 무려 10조달러(1경)에 이른다고 하기도 한다. 이들의 자산 유출 방식은 주로 홍콩을 이용해 현금으로 운송하거나 미국의 토지나 주택 등의 부동산 구입 내지 유망 미국 기업  인수 등 다양한 수법이 동원되고 있다.


따라서 이들 원로 그룹들이 시 주석의 정권 운용을 판단하는 기준은 특권을 바탕으로 자신의 가족들이 벌이고 있는 사업의 이권이나 미국이나 홍콩에 빼돌린 자산의 안전성 및 수익성과 관련한 것들이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2018년 7월 트럼프 정부가 주로 상해와 광동성 일대 첨단기업들을 대상으로 25% 고율관세를 부과하자 주로 자식이나 친인척을 통해 이들 기업을 보유한  원로 그룹이 시진핑에게 미국과의 관계를 악화시키지 말 것을 요구하는 서한을 보내기도 했다.  


지난해 홍콩 사태에 원로들이 강경 대처를 주문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2018년부터 미국과 무역 갈등이 본격화되자 장쩌민파쪽에서 미국의 자산동결을 우려해 미국 투자 자금의 상당 부분ㅌ을 홍콩으로 뺐다고 한다. 그런데 2019년 송환법 시위로 홍콩 정세가 유동적이 되자 홍콩으로 빼낸 자산의 안전성에 대한 우려가 커진 것이다. 지난해 북대하 회의에서 무력을 동원한 강경 진압 얘기까지 나오게 된 이유다. 홍콩보안법 실시 이후 어쨌거나 홍콩사태가 외견상 조용해지자 원로들 기준으로 보자면 2019년처럼 시주석을 험하게 몰아붙일 이유가 없는 것이다.  


다만 대미관계는 여전히 숙제다.  미국이 홍콩에 부여한 특별지위를 박탈하겠다고 선언한 데 이어 실질적인 조처까지 들어가 버리면 홍콩으로 빼낸 자산 가치를 유지하기 어렵게 된다. 그래서 이미 많은 자금이 싱가폴로 다시 옮겨가긴 했다.  그보다 미국과의 관계를 더 악화시키지 않도록 하는 게 급선무다. 북대하 회의가 열리고 나면 그 다음 시진핑 정권의 대미 자세가 그 전에 비해 유연해지곤 했던 이유 중에 바로 중국 원로들의 해외자산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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