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욱래 장편소설 《이탈-그 여름의 추억록》 제3부
4군단 정찰대대는 높다란 험산 중턱 마루 해발 800미터쯤에 숨어있었다. 트럭이 고도를 높일 때마다 기온이 달라졌다. 점점 시원해지는 산바람은 가끔 골짜기 아래로 불어 내려갔다. 산 아래쪽에서는 보이지 않는 붉은 벽돌 2층 막사 건물은 무슨 학교같이 깔끔했다. 막사 토대에서 10여 미터 아래에 다져진 연병장 양쪽 가에 공정연대 것들보다 수는 적었지만 동일한 크기의 특공 장애물들이 대여섯 개 박혀있었다.
“정찰은 원래 우리 부대에서 젤 나은 애들로 만들어진 데다.”
신병교육대에서 공정대 중사는 그렇게 말했었다. 중사의 말처럼 404 정찰대대는 1989년 전방 야전군의 군단과 사단에 조급히 정찰부대가 창설되기 시작할 당시 4군단 공정연대 4대대 막사와 시설을 인계받고 각 공정대대로부터 다시 차출된 병력으로 만들어졌다. 정찰중대 및 소대는 공정대보다 더 소수 인원으로 편제되기 때문에 군단 정찰대대를 충당하고 남은 인원들은 예하 제10사단과 19사단 정찰대 창설 요원으로 또다시 이동됐다.
군장을 메고 막사까지의 드높은 계단을 뛰어 이동할 때 4사단 정찰대 인원들은 금방 숨이 막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 부대가 웬만한 산 정상 높이에 위치했기에 당연했다.
신병 집체 정보 교육은 4군단 정찰대대 및 군단 예하 3개 사단 정찰대 신병들과 아직 교육을 이수하지 않았던 병사들을 대상으로 한 정보 주특기 교육이었다. 그러고 보니 4사단의 입소병들은 전부 신병교육대에서부터 곧바로 뽑혀온 인원들이었다. 이전의 인원들은 자체 교육을 했다고 했고, 적 장비식별 카드로 장난질 쳐대던 걸 보면 안 봐도 뻔한 일이었다. 그가 자대 생활을 경험한 건 고작해야 12일이었지만―7일간은 영창에 들어가 있었다.―거긴 한심스러운 곳이었다. 자대의 창설 멤버라 하는 이들 대부분, 마이크 타이슨을 위시해 기습대로 간 그 인상파 패거리들 정도도 어떤 자세 자체가 나오지를 않았다.
그 교육은 특작 부대들의 후반기 신병 교육이란 점에서 304 공정대의 ‘불새 교육’이나 4사단 기습대 ‘비호 교육’과 비슷한 형식이었다. 그런 부대에 전입된 신병들이 다시 무슨 무슨 교육을 끝내면 흉장 수여식이 실시된다. 그걸 박은 신병들은 곧바로 대단한 자부심이나 긍지, 소속감을 갖고 부대 생활에 임하게 된다. 육군본부에서 승인되는 그런 흉장들은 적에게 위압감을 주고, 여타 부대보다 훨씬 힘들고 위험한 만큼 소속 부대원들의 자긍심을 유도해 내기도 한다. 그런데 적보다는, 주로 여타 부대 병사들에게 훨씬 더 위압감을 준다. 거기다가 위장복의 위협도 만만치 않다. 알고 보면 아무것도 아닌 그런 헝겊 쪼가리는 자부심과 소속감 등 경제적인 사기(士氣)를 줌은 물론 어떤 강도의 작전이나 훈련에도 이유 없이 임할 수 있게 효과적인 명분을 부여한다. 예를 들면 이런 식으로.
“야, 인마. 그거도 못 버티나? 넌 흉장 달 자격 없어. 그거 떼.”
4사단 정찰대 입소병들은 이제 아침마다 한식을 먹을 수 있었다. 산 중턱의 공기는 여름 같지 않게 쾌적했다. 그는 무슨 요양을 온 것 같은 기분까지 들었다.
군단 정찰대대 인원들은 전부 공정대 구형 위장복이었지만 흉장은 없었다. 잘 보면, 상병 이상들의 가슴 주머니엔 흉장을 붙였던 흔적이 남아있었다. 공정대 것의 404 신병들은 물론 다른 두 개 사단 정찰대 병력도 전부 위장복―신형이었다.―이었다. 4사단 정찰대는 지휘관을 잘못 만났으니 별수 없는 노릇이었다. 얼룩덜룩한 위장복들에 둘러싸인 그 자신 역시 아직도 그런 우드랜드 패턴에 예의 유치한 애집(愛執)이 남아있는 것 같았다. 자신이 영창에서 겪은 일들이 비루한 군복 자락에 서늘히 잔존해 있건만 그는 싸하면서 등 저린 어떤 무력감에 다시 젖어있었다.
정찰대대 신병들은 왠지 이렇다 할 자세들이 나오지 않았지만, 공정대 출신 고참병들은 달랐다. 우악스러운 인상들과 대단한 덩치들의 포스(force)가 특작 부대원들에 대한 선입견을 충족시켜주고 있었다. 그런 포스 덩어리 중에 수미산(須彌山)*1을 거점으로 암약(暗躍)하다가 막 강림한 사천왕(四天王)*2들 중 하나인 양 엄청나게 험궂은 인상에다 머리까지 아예 빡빡 밀어버린 장대한 상병이 하나 있었다. 신장은 190센티미터를 훌쩍 넘었고 어디서 무슨 짓을 하다가 끌려왔는지 터질 듯 부풀어 오른 근육들 때문에 움직일 때마다 금방이라도 군복이 찢어질 듯했다. 기습대 간 그의 동기 타이슨은 차라리 어린애였다. 사천왕은 네 부대의 새록새록 한 입소병들에게 수시로 범접했다. 휴식 시간에 입소병들이 화장실을 간다거나 식사 집합 등을 하고 있을 때 사천왕은 특히 잘 그랬는데, 어디선가 불쑥 괴성을 지르며 괴물처럼 출몰해선―덩치에 맞지 않게 침투 및 습격 기술이 대단했다.―아무나 닥치는 대로 멱살을 잡아 마구 흔들어대거나, 번쩍 들어서 땅바닥에다가 패대기치려고 하거나, 차마 입에 담지 못할 무시무시한 욕설을 뱉을 때면 공포에 질려 모두 벌벌 떨었고 간혹 혼절하는 입소생도 있었다. 그에게도 일단 사천왕이 가공할 난관이었다.
사천왕은 람보 정도는 단박에 때려눕힐 수 있을 듯했다. 그 사천왕이 이제 그에게 흥미를 느끼고 접근하고 있었다. 그 위협적인 존재는 정확히 급소를 찾아내 제대로 먹이지 못하면 절대 끄떡도 하지 않을 성싶었다.
“야! 햇병아리.”
그의 귀청이 쟁쟁 울렸다.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그는 사천왕과 놀고 싶은 기분이 아니었다.
“병아리 너 이 새끼, 너만 왜 팔 안 걷었냐고?”
한 줄기 빛이 비치는 듯했다. 그가 하계 복장 규정으로 따지고 드는 사천왕에게 양 소매를 번갈아 걷어 올려 확인시켜 주었다. 시퍼렇게 뱀처럼 감긴 팔뚝의 멍들을 내려다본 사천왕은 그걸 더 이상 궁금해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후에도 사천왕은 꾸준히 출몰하며 입소병들을 경악시켰다. 결국 입소병 관리에 지장을 느낀 내무반장이 사천왕을 불러놓고 피교육생들 앞에 다시는 얼씬거리지 말라고 따끔하게 혼을 냈다. 그러자 단박에 사천왕은 명랑하고 씩씩하게 경례를 붙이고는 마치 유순한 소년처럼 얌전히 물러갔다.
“쟤가 그리 무섭나?”
내무반장이 사천왕의 유래를 풀었다. 공정대 시절 사천왕은 일병 때까지도 맞았다. 고참들은 그가 아무리 패대도 끄떡없을 몸이라며 부담 없이 때렸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고참들이 아침을 먹으러 가다가 취사장 못 미쳐 산등성이, 나뭇가지에 빨랫줄을 매 놓고 절규하는 사천왕을 목격했다.
“야―! 이 나쁜 놈들아. 한 번만 더 때리면 목매달고 콱 죽어 버릴 거다―.”
그렇게 쉽게는 죽을 것 같지 않은 그였기에 고참들이 조언했다.
“그 빨랫줄 금방 끊어지겠다. 더 굵은 걸로 매달아, 인마.”
그는 에이 씨발, 하곤 목을 매달았다. 그러나 목이 조여 그가 버둥대자, 빨랫줄이 묶였던 팔뚝만 한 나뭇가지가 뚝, 부려졌고, 사천왕은 목에 빨랫줄을 감은 채 떼구루루 산비탈을 굴러 내려왔다. 길바닥에 떨어진 사천왕을 고참들이 마지막으로 몰매를 놓았다. 그리고 다음부터 사천왕 때리기는 자제하자고 긴히 합의를 보았다.
아무리 봐도 사천왕은 그때 계획적이었던 같다고 내무반장이 자신의 분석을 덧붙였다. 그다음부터 입소병들은 사천왕을 무서워하지 않았고 무시했다. 햇병아리 같은 입소병들이 저를 본체만체하자 어떤 낌새를 챈 사천왕의 풀이 현저히 죽었다. 그런 다음부터는 수미산 제집으로 돌아갔는지 어쨌는지 다시는 등장하지 않았다.
공정대 출신들이라고 다 험상 맞고 덩치가 큰 것은 아니었다. 언뜻 보면 어떤 이들은 그냥 평균적인 체격인데도 왠지 다부져 보이고 눈매도 날카로웠다. 그중에 몇은 음산하다 싶을 정도의 아우라를 풍기고 있었다. 그가 그들을 스쳤을 때의 인상은 공정대에서의 생활이 어떤 근성을 요구했으리란 것이었다. 그중에서도 그의 내무반 내무반장―사천왕을 분석한―은 병장 말년인데도 남다르게 꼿꼿한 자세를 갖추고 있었다. 부산사람이라고 하는 그에게선, 흔히 병장을 달고 나면 보이는 미적대는 듯한 권태감과 방관자적인 태도 따위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고, 항상 어떤 날 선 긴장을 유지하고 있는 듯 보였으며, 이젠 너무 물이 빠져 민무늬나 진배없을 정도로 얼룩무늬가 흐릿해졌지만, 셀 수도 없는 훈련의 관록으로만 채워진 듯 탄탄하게 각 잡힌 군복 자세를 갖고 있었다. 그가 입소생들이나 부대 후임병들을 다루는 모습은 일종의 외경(畏敬)을 갖게 했고, 육군 병장의 자세란 저 정도는 되어야 한다고 느끼게 하는 사내였다.
산중이라도 바람 없는 어떤 날들은 무더웠다. 말년인 그가 꼭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을 텐데도, 그런 여름밤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땀방울을 뚝뚝 떨궈 가며, 어떨 때는 자정을 넘겨서까지 제 내무반 입소생들의 교육에 열성적이었고―특히 C.W 교육*3에―입소생들은 활활 타는 듯한 그의 열성 때문에라도 그 지겹고 끔찍한 C.W 학습에 매진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었다. 내무반 천정엔 두 대의 선풍기가 매일같이 늦은 밤까지 끼익 대며 돌아갔다. 그 내무반은 학구열로 불타고 있었다. 그도 그 분위기에 빠져 다른 것들은 생각을 해볼 겨를도 없었다. 그 병장은 누가 봐도, 징집된 한 명의 사병도 반드시 한 나라에 필요한 진짜 군인일 수 있다는 느낌이 들게 하는 사내였다.
*1 불교의 우주관에서 나온 세계의 중심에 있다고 하는 상상의 산. 산 중허리의 사방에 사천왕(四天王)이 살고 있다고 한다.
*2 불법(佛法)을 수호하는 네 명의 외호신(外護神). 한국의 사찰에서는 경내로 들어서는 입구의 천왕문(天王門)에 이 사천왕상을 봉안하고 있다. 보통, 이 천왕상들은 불거져 나온 부릅뜬 눈, 잔뜩 치켜 오른 검은 눈썹, 크게 벌어진 빨간 입 등 두려움을 주는 얼굴에 손에는 큼직한 칼 등을 들고, 발로는 마귀를 밟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된다.
*3 전건으로 첩보를 송수신하는 교육. 모스 부호는 짧은 발신 전류・와 긴 발신 전류 ―을 적절히 조합하여 알파벳과 숫자를 표기한 것으로 기본적인 형태는 국제적으로 비슷하다. 미국의 발명가 새뮤얼 핀리 브리즈 모스가 고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