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새

김욱래 장편소설 《이탈-그 여름의 추억록》 제3부

by 김욱래

화물칸에 열여섯 명을 실은 육공트럭은 오전에 출발했다. 큰 도로로 나선 지 꽤 됐을 때 트럭 후미가 밀어내는 아스팔트 위를, 간격을 두고 민간 승용차와 승합차들이 따라오거나 지나쳐갔다. 그는 그런 차들을 물끄러미 쳐다보면서 그 안에 탄, 여러 가지 색깔과 모양의 옷을 걸치고 제각각의 감정이 여과 없이 표정에 드러나 있는 이들이 자신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존재들이며, 이 순간 어찌하다가 과학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어떤 기이한 현상에 의해 그만 두 차원이 교차해 버려 서로 간에 볼 수는 있지만 결코 실제로 접촉할 수는 없는 괴이한 상태가 진행 중일 수도 있다는 기묘한 느낌에 한동안 빠져있었다.

트럭은 기다란 터널을 빠져나온 후 가파른 고개를 여러 개 넘고 한참을 쏠리며 흔들리다가 이젠 잔자갈이 깔린 비포장 길로 들어섰다. 여전히 뜨거운 공기였지만 굴러가는 트럭 위에서는 열풍으로 스쳐 지나가서 땀이 나오게끔은 하지 않았다. 후끈한 바람은 풀숲의 냄새를 실어와 그에게 약간의 정취를 느끼게끔 했지만, 트럭이 움푹움푹한 황톳길을 덜컹대기 시작하고부터는 매 맞은 삭신이 나무 걸상 등받이에 부딪힐 때마다 자꾸 짜증이 났다.

그렇게 거의 한 시간쯤 지났다. 트럭은 쇠 파이프 골조에 철판을 용접한, 하얗고 커다란 아치가 높다랗게 정문 기둥 위에 박힌 부대의 위병소를 통과했다. 지나쳐간 아치에 빨갛고 검게 써졌던 것은 ‘세계 최강의 산악 결사 공정연대’라는 큼직큼직한 돋움체 글씨였고 좌우 끝으로 각각 4군단 마크와 예의 그 강렬한 304공정 연대의 불새 흉장을 그려놓았었다. 세계 최강의 산악 공정연대……. 그는 가슴이 저려왔다. 유치한 미련이었지만 급격한 침울(沈鬱)에 쳐졌다.

트럭이 용을 쓰며 올라가는 급경사의 마사토 길 좌우 산기슭엔 일부러 수풀에 숨은 듯한, 막사로 짐작되는 것들이 띄엄띄엄 산재해 있었는데, 반쯤 은폐된 그 건물들은 마치 무장 공비들이 은거하는 움막들 같았고, 벽과 지붕에는 가을철의 숲과 분간하기 힘든 공정대 위장복 무늬들이 빈틈없이 칠해져 있었다. 그런 건물들은 십 수 개나 되어서 연대라는 규모를 실감케 했다. 그는 그것들을 보며 진짜 군부대 같다고 생각했다.


트럭이 거무튀튀한 콜타르로 칠해진 각종의 거대한 특공 장애물들을 지나갔다. 막타워와 수송기 모형문, 레펠(rappel)과 페스트로프를 하는 모형탑, 높고 기다란 구름사다리나 아득한 경사판, 그리고 어떤 것은 용도를 알 수 없는 20여 종의 설치물들의 위용은 4사단 정찰대 연병장 가에 한 줄로 선 아기자기한 시설들의 모습과는 비교 자체를 불허했다. 그는 영창에서 당했던 일들도 한순간 잊어버린 채 한참을 그것들에 압도되었다. 고되지만 위험하기에 스릴 있을, 제대로 된 특공 훈련을 위한 시설들이 솟아있고, 마치 전쟁 중인 것 같은 태세를 갖춘 막사들과, 그 정문의 아치, 위풍당당하고 도전적이며 야성적인 문구와 마크를 보면서 그는 갈등에 빠졌다. 이미 젖어있는 환멸과는 배치되는 이상한 의욕이 들었고, 그는 그게 이상했다. 만일, 보잘것없는 민무늬 군복을 벗어버리고 누리끼리한 그 위장복을 입을 수 있다면, 매일같이 그런 거칠고 거대하며 위압적이고 매력적인 특공 장애물에 붙을 수만 있다면 가끔은 몇 대 얻어맞아도 괜찮을 것 같다는 비루한 생각도 들었다. 끔찍한 축구나, 피라미드 건설에 동원된 노예나 다름없는 담가 작업 같은 것 말고 험준한 산악을 온종일이라도 무장 구보를 한다거나, 특공무술 훈련, 밥 먹듯 막타워나 모형문에서 뛰어내릴 수 있는 생활이라면 한 번은 다시 해보고도 싶었다.

종류에서 약간 다르지만, 정찰부대 역시 매일 평일 오후 그와 대동소이한 훈련을 반드시 실시하도록 규정되어는 있었다. 하지만 4사단 정찰대는 그러한 규정에 구애받지 않았다. 그가 손정원에게 들은 바로는 어쩌다 사단에서 점검을 나온다는 첩보가 미리 입수됐을 때만 장애물을 넘는 척하게 하거나―‘그날 지프가 그거였군’하고 그가 생각했었다―, 항공대 활주로 1.7킬로미터의 아스팔트를 몇 차례 왕복 구보시키는 게 다라는 것이었다. 연병장 한 귀퉁이에 나지막한 접지대가 하나 있긴 했지만, 접지 동작을 교육할 수 있는 이도 없었고, 병사들 대부분은 그걸 무슨 사열대인 줄로만 알고 있었다.


트럭이 부대 용지 제일 꼭대기에 있는 연대본부까지 올라갔을 때 누런 위장복의 이등병들과 하얀 앞치마를 한 취사병 몇이 앞마당에 식탁들과 막걸리 말통 등을 배열하고 있었는데, 곧 6박 7일간의 천리행군을 마친 병력이 복귀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제 고참들의 위로 회식 준비를 하는 이등병들의 표정은 당연하게도 그리 밝지는 못했다. 트럭에서 내린 4사단 정찰대 병력이 연대본부 아래쪽 드넓은 비탈에 펼쳐진 장엄한 장애물들과 대대 연병장들, 풀숲에 숨은 막사들을 내려다보고 있을 때 전투모에 완전군장을 한 병력 수백이 두 갈래로 벌려 올라오고 있었다. C-123 프로바이더(Provider)*에서 뿌려진 후 뜨거운 산야를 계속 누벼서 새카맣게 탄 그들의 피부에는 따로 위장크림을 바를 필요가 없었을 텐데도 빗금 형태의 위장들이 완벽했다. 전투모 챙 그늘에서 노랗게 번득이는 그들의 눈자위는 부대를 빙 둘러 솟아있는 우뚝우뚝한 산악을 압도하고 있었다. 그들이 악, 하고 엄청난 함성을 내지르며 산악을 뒤흔들었다.

공정부대원들이 소리칠 때 그는 가슴이 뜨끔댔다. 그들이야말로 진짜배기 전투원 같아 보였다. 그는 맥없이 한숨을 내쉬었다. 가슴이 다시 저렸다. 자신은 공정 대원이 되고 싶었었다. 30개월 동안만이라도 군인 같은 군인이 되어보고 싶어서 입대했었다. 물론 이젠 선택의 여지도 없는 것이지만.

배열된 식탁에 흰 종이를 깔고 삶은 돼지고기와 김치, 막걸리 말통 등을 차린 공정대 신병들이 늘어서서 3주간의 야외 공정 종합훈련 마지막 일정이라 긴장이 놓여 절뚝거리는 저희의 고참들을 큰 함성을 지르고 박수를 쳐대면서 맞았다. 물론 그 배역에 맞는 연기일 터였다. 공정대 신병들도 여지없이 각자의 담당에게 15일 정도의 신병 교육을 받게 될 테고, 또다시 3주간 신병 집체 교육대에 들어가 자갈밭을 맨발로 뛰며 엄청난 장애물에 매달리고, 맞고, 굴러야 한다는 것은 그도 이젠 알게 되었지만, 설사 그럴지라도 자신이 공정대로 오지 못한 것은 한스러웠다. 그런데 트럭은 엉뚱한 부대로 들어간 것이었다.

“여가 아닌 갑다.”

아직 전출되지 않은 이 상사의 길눈은 어두웠다. 304공정 연대를 휘돌아보고 나온 트럭은 다른 길로 해서 다시 몇 개의 고개를 넘고 개울가 흙길을 덜컹댄 후 마침내 가파른 산길을 올라갔다.




* 페어차일드사에서 생산한 특수 수송 전용 항공기. 승무원 4명, 무장병력 64명을 수송할 수 있었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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