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 극

김욱래 장편소설 《이탈-그 여름의 추억록》 제3부

by 김욱래

욱신대는 몸에 군복이 걸쳐져 있었다. 그는 이제 군복이 싫었다. 그건 치욕적인 쑥색 죄수복일 뿐이었다. 왼팔에 교도소 표지가 달리고, 왼 가슴엔 수형 기간의 표시가 붙었으며, 다시 오른쪽에 수감 번호와 수인 이름이 박힌 자신의 죄수복이 혐오스러웠다. 그동안 수인 둘이 더 들어왔고 역시나 코알라처럼 쇠창살에 매달려 있다가 늘어졌고 창살 사이로 머리나 발바닥을 맞으며 신음들을 꺼억, 댔다. 한결 우울해진 듯한 김철용은 이제 그런 것엔 쾌감을 못 느끼게 됐는지 하이바 아래 침울한 암영 속에서 얌전히 근무만 섰다.

1초 단위로 똑딱거리며 가까스로 6일이 갔다. 그는 저녁 식사를 들지 않았다. 내초가 그에게 부대에서 오지 않으면 하룻밤 더 재워줄 수 있다며 이죽거렸다. 그는 혹시나 하고 자신도 모르게 초조했다. 제발 제시간에만 꺼내줬으면 하는 간절 맞은 심정으로 1초씩을 기다렸다. 그는 일단 나가고 싶었고 그래야만 했다. 손대지 않은 저녁 식기를 반납할 때쯤 끼익하고 철장 문이 열렸다. 그는 혁대와 링, 전투화 끈 등을 돌려받았다.


바깥공기가 조금은 더 나았다. 미적지근했지만 미풍이 약간 스쳤다. 이번엔 육공트럭에 중위가 선탑 하고 있었다. 부대로 들어와 트럭에서 내렸을 때려 그는 잘 걸어지지 않았다. 몸이 뻐득뻐득했고, 무릎과 발목이 아팠다. 정찰대 대원이란 걸 상징하는 공수 윙을 박은 채 경봉으로 두들겨 맞고 짓밟혀서 멍투성인 데다가 아직 알루미늄주걱으로 찍힌 정수리의 피딱지도 떨어지지 않은 그를 취사장으로 데려간 중위가 검은 비닐봉지에서 두부를 꺼내주었다. 그는 중위가 일부러 샀을 그 두부를 한입 베어 물고 씹어주었다. 남은 밥이라도 먹겠느냐고 취사병이 다가와 물었다. 그는 생각 없다고 했다. 내무반으로 들어가기가 내키지 않아서 그는 잠시 더 취사장 의자에 앉아 있고 싶었으나 내준 밥을 통째로 버리는 것도 싫었다.


그가 그런 상황에서 중위가 제법 희망적인 소식을 얘기했다. 다음날 바로 일, 이등병들은 군단 직할 정찰대대로 3주짜리 교육을 들어간다는 것이었다. 그나마 그의 숨통이 좀 트이는 듯했다. 그렇게라도 잠시 부대를 떠나게 된다면 그는 차근차근 모든 다시 한번 생각해 보고도 싶었다. 3주는 짧은 시간이 아니었다. 한 번은 더 곰곰이 돌이켜보아도 그렇게 늦지는 않을 것 같았다.

담배를 한 대 피우려고 그가 막사 뒤로 갔을 때 이권휘는 시원한 눈매로 웃음 지으며 말없이 등을 한 대 가볍게 쳤다. 손정원의 낯빛도 환했다. 일주일이 오래인 것 같았다. 세세하게 그녀를 그렸었고 이젠 그녀의 남자가 되어 있을 만큼. 그는 어쩌면 자신이 더 편했을지도 몰라서 그들에게 약간 미안했다. 그 둘과 담배를 나눠 문 그는 그만 핑하고 돌아서 벽에다 털썩 등을 박았다. 몽롱한 저녁이 깔리고 있었다.


그들이 그간의 일들을 떠들었다. 서정락과 김신혁은 일주일간 뺑뺑이를 돌았고, 병장급들과 조병주는 잠잠했으며, 아침 구보 때마다 체력이 달려서 힘들어하던 이권휘의 하나뿐인 동기가 결국엔 취사장으로 내려갔다는 것 등이었는데, 이권휘는 제 동기 얘기를 할 땐 상을 찡그렸다. 또, 애인이 면회 와서 좀 전에 유기철이 복귀했는데, 전입한 지 겨우 2주 만에 외박을 나간 것이나, 유기철이 애인에게 제 면회를 와달라고 요청한 것이 분명한 만큼 고참들에게 찍힐 짓을 한 것이고, 내무반에서 지금 병장급들에게 빠졌다고 ‘갈굼’을 당하는 중이라는 정보도 제공했다.

그에게 어느 뜨거운 날, 신병교육대 위병소 옆 짙은 녹색 암영 속에 살포시 앉아 있던 유기철의 여자, 그 하얀 민소매 원피스가 다시 떠올랐다. 그리고 까뮈의 주장에 동조했다. ‘어떤 유(類)의 남자들에게는 계집이란 하나의 씁쓸한 조국’*이라는. 여자는 차라리 조국 이상이었다. 이런 지옥 같은 계절에, 병장급들에게 백천 번을 얻어터지더라도 영혼의 조국 품에 묻혀 하룻밤을 지내고 온 유기철이 그는 옳다고 생각했다. 사무치게 유기철은 행복했을 터였다. 무슨 꿈결 같았을 거였다. 유기철은 지옥에서 하루라도 벗어날 수 있었고 온 몸뚱이로 위로받고 돌아온 것이었다. 4사단정찰대는 체력적으로 힘들다기보다는, 처음부터 뭐가 잘못된 것인지 인간마다 구역질 나는 악취를 내뿜어대는 지독히도 고통스런 곳이었다. 4사단 정찰대는 지옥에 다름 아니었다. 그는 곧 자신에게는 면회라도 올 여자가 없다는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개 같이 살고 있을 때, 혹 그의 여자가 자신을 보러 올 수도 있다는 허망한 가상(假想)마저도 끔찍했다.


내무반은 돌아온 그의 존재에 애써 무신경한 분위기였다. 시퍼렇게 줄이 간 그의 팔뚝과 두피의 피딱지들이 그들에게, 상처 입은 들짐승을 향한 것 비슷한 일종의 동정심과 저승에서 걸어 나온 듯한 어두운 카리스마를 동시에 느끼게 했을 것이었다. 그들은 사실 그런 그에게 모종의 굴종적 감정이 들었고, 그게 혼란스러웠으며, 또 그런 자신들의 복잡한 감정을 숨기려 했다.

조그맣고 빨간 취침 등이 켜지고 관물대 위에 걸린 선풍기가 돌아가는 침상 위 매트리스에 그가 저린 몸을 눕혔을 때 막사 출입문이 열리고 정용석이 진한 소주 냄새와 함께 가까이 왔다. 정용석은 반장이나 고참 병장들에게만 어쩌다 허락되는 외출에서 막 들어온 참이었다. 2반 반장이 영창에서 나온 제 반 막내를 주려고 사 온 넓적한 초콜릿을 쥐여주었다. 그는 머쓱해서 말없이 그 초콜릿을 받아 한쪽 씹었다. 그는 이미 조직이란 것이 우스웠다. 그러나 심정과는 다르게 그의 행동은 뜻대로 되지가 않았다. 그는 자신의 내면과 몸뚱이에 붙어버린 행동 사이에 원인 모를 커다란 간극(間隙)이 존재한다는 것이 굉장히 이상했다.




*《여름L'Été》중.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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