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 인

김욱래 장편소설 《이탈-그 여름의 추억록》 제3부

by 김욱래

그때 그녀와 커피를 마셨어야 했다. 비엔나커피를. 그는 속이 쏴 했다.

철장 안에서 가까스로 이틀이 지났다. 원래대로라면 그에게 이제 나흘에다가 하루낮이 남았다. 영창의 용변은 아침의 예의 그 엄숙한 의식 때 한 번이었고, 그 이외에는 여간하지 않으면 불가능했다. 양치나 세면이야 안 해도 그만이었지만 그때 이후로 대변―소변은 철장 안 요강에다 볼 수 있었다. 물론 내초의 허락을 맞고―에 대한 욕구가 생긴다면, 그 불행한 수련생은 가공할 만한 극기로 그다음 날 아침 행사가 시작될 때까지 견뎌내야 하는 것이다. 왜 꼭 그렇게만 해야만 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지만, 미쳐버릴 정도여서 얼굴색이 변하고 바르르 떨게 되면 내초는 온갖 욕설과 모욕, 어느 때는 구타까지 가하고 나서 간혹 그 수련생의 소망을 성취시켜 주긴 했다. 그래서 그는 가능한 한 조금만 먹었고, 물도 거의 마시지 않았다. 결코 내초들에게 뭘 보고하거나 허락받기가 싫었다. 용변까지도 통제당하는 별세계가 그는 슬슬 재미있어졌다. 기가 막힌 공간이었다.


영창은 푹푹 쪄댔지만, 극소량의 밥술만 뜨고 말라붙는 축일 정도로만 물을 마셔서였는지 그는 땀을 별로 흘리지 않았다. 그는 끈적거리는 건 아주 질색이었다. 그러고 깎은 듯이 앉아서 진종일 며칠째 쇠창살들만 관조하고 있자니 어느덧 그 자신이 철장 안에 갇혀 있는 것인지, 그 쇠창살 밖의 어느 작은 방에 앉아 있는 것인지, 쇠구슬을 철렁거리며 어슬렁대고 있는 내초와 가끔가다 들락거리는 헌병들이 큰 철장 안에 갇혀 있는 것인지 점차 헷갈리게 되었다. 또, 정찰대 병사들이 연회색 막사의 울타리에 갇힌 것인지, 육군 보병 4사단의 모든 병사가 거대한 철장 안에 갇힌 것인지, 이 나라의 국군 전부가 엄청나게 큰 철장 안에 모조리 수감 되어 있는 것인지 그는 도무지 알 길이 없었다. 군인은 수감 된 죄수인가? 병사들은 30개월의 징역형에 처해진 수형자들인가? 헌병대 영창과 병영 막사는 다른가? 우리가 도대체 무슨 죄를 지었단 말인가? 이 나라의 남자로 태어나, 고교 졸업 이상의 학력을 가지고, 범죄 전과 없는 이들 중에서도 신체 등급 1, 2등급 이상을 받아 현역 입영 대상이 됐던 것이 엄청난 범죄란 말인가? 이 나라가 채권자처럼 우리에게 강요한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다한다는 것이 이렇게 개처럼 학대받아야 하는 것이고 그것을 달게 감내해야만 하는 것인가? 도대체 왜, 고참으로서, 헌병으로서, 간부로서, 장교로서 이토록 그 영혼들이 피폐해져 가야만 하는가? 혹 군인들뿐만 아니라 이 세상이 통째로 우주만 한 철장에 갇혀 있는 것은 아닌가? 그는 그렇게 이제는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게 되었다.


오후에 그는 벌써 서울로 달음질치고 있었다. 서울의 그녀는 자신의 영혼을 쓰다듬고 달래며 애련(哀憐)한 평안과 안식을 주는 유일한 여신이었다. 그런데 그녀의 집 대문도 들어서기 전에 괴로운 일부터 떠올랐다. 그가 잠자던 숲속의 공주에게 키스한 며칠 후였다. 그 며칠간 그는 자신을 향한 그녀의 눈매에서, 비록 잠깐씩이었지만 전과는 확연히 다른 어떤 느낌을 감지하고 있었다. 그녀는 그의 앞에서 훨씬 더 여자다워졌다. 가끔 살짝 홍조를 띠는 그녀는 그대로 연인이었다. 그는 육감으로 그걸 알았다. ‘알고 있다……! ……알았으면 또 어때?’ 그가 그렇게 어깃장을 부리고 있을 때였다.

“……저기, 비엔나커피 좋아해?”

그녀가 불쑥, 지나가는 투로 그에게 물었다.

“……저 아래 분위기 괜찮은 데 생겼는데 …사줄까?”

하지만 그녀의 목덜미는 이미 발개져 있었다.

“에이, 그런 건 남자가 사는 거지요.”

그러는 그 역시 귀밑까지 후끈했다.

“……커피는 원래 다 좋아해요.”

그는 벅차게 부풀어 올랐다. 둘은 다음날 늦은 오후에 만나기로 약속했다.


문제가 생긴 것은 바로 그날이었다. 그를 만난다고 친구 둘이 학교를 빼먹고 서울에 온 것이었다. 그의 ‘늑대클럽’ 멤버들이었다. 그가 서클 명칭을 그렇게 붙인 것은 몇 개의 이유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시이튼 동물기》의 〈늑대왕 로보〉와 ‘푸른 늑대’라는 칭기즈칸의 별칭 영향이 컸다. 어느 일본 작가의 책 《칭기즈칸》은 늑대를 이렇게 이야기한다.


가축을 덮치는 늑대는, 유목민이 가장 두려워하는 짐승인 동시에, ‘하늘의 비호를 받은 행운을 가져다주는 것’으로서 경외(敬畏)의 감정을 갖고 있고, 여행하는 도중 늑대를 보게 되면 길조로 생각하는 풍습이 있었다. 가축을 철저하게 엄습하여 물어 죽이는 늑대는 생명력이 왕성하고, 굶주렸을 때도 결코 개처럼 인간에게 아양을 떨거나 하지 않는다. 그래서 유목민은 늑대에게서 긍지 높은 용자(勇者)의 모습을 보는 것이다.


그는 그 서클의 보스이자 자타가 공인하는 ‘학교 짱’이었었다. 아니, 먼저 ‘학교 짱’이 되었고, 나중에 서클을 만들었다. 그는 멤버들을 이끌고 칭기즈칸같이 정복 전쟁을 벌여 그 소도시의 두 개 실업계 학교를 더 접수했다. 그러나 그는 학교를 떠나면서 그들에게서도 떠나왔다.

친구들은 2층 도장 문 앞에서 그의 훈련이 끝날 때까지 두 시간여를 기다렸다. 그는 친구들과 저녁을 먹고 나서, 자신의 방에 그들의 하룻밤 잠자리를 허락받으려고 그녀의 집으로 데려갔다.

이모부의 태도는 자못 충격적인 것이었다. 어떻게 그런 말을 여태껏 용케도 참고 있었는지 모를 일이었다. 그는 세 젊은이의 무릎을 꿇리고 한참 동안 질타하다가 결국엔 멸시했고, 나중에는 대놓고 비웃었다. 당연히 하룻밤의 선처도 거절했다. 그뿐만 아니라 그는 방을 같이 쓰는 자기 아들에게 어떤 물을 들일까 봐 오래 근심해 온 것 같았다.

그의 볼이 달궈지다가 귀밑까지 화끈거렸다. 그는 자신이 심각한 모멸과 치욕을 뒤집어쓰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가 예전에, 이렇게 되기 전에, 남들이 장래가 촉망된다고 했을 때, 전교생이 1,000명이 채 되지 않는 시골 국민학교였지만 전 학년을 통틀어 평균 점수로 1등을 놓친 적이 없었고, 줄반장에다 ‘어린이회장’이었으며, 서울에서 열린 글짓기나 미술 등의 전국 대회에 도 대표로 참가하여 수차례 큰상을 받았을 때, 비록 지방이지만 여간해선 들어갈 수 없는 전국 수위의 명문고에 진학했을 때와는 180도로 달라진 그녀 부친의 엄청난 경멸과 나중에 자신이 처한 사정이 이렇게 되니까 멀리서 온 자신의 친구들에게 겨우 하룻밤의 선처도 제공할 수 없다는 인간에 대한 무시와 조롱 섞인 냉대에 그는 그만 모든 게 싫어졌다.


누군가 졸다가 걸린 듯했다. 한참 낑낑대며 철장에 매달려 있다가 툭, 하고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곧 철창문 열리는 소리, 얻어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날 밤 그들은 소주 몇 병과 시장 순대를 사서 동네 뒷산, 그와 세라가 발차기를 훈련하던 그 산의 나무 벤치에서 엄청나게 취할 때까지 술을 마셨다. 빗방울이 후드득거렸다. 셋은 근처에 버려진 캐비닛 안에 들어가 있다가 웅크리고 잤다. 빗물이 밤새도록 캐비닛을 두드려댔다.

다음 날 오후 그는 친구들을 대문 앞에서 기다리게 하고 방에 들어가 가방을 쌌다. 웬일로 그녀의 언니가 집에 있었는데 그러면 안 된다고 어르고 달래며 말렸다. 그는 묵묵히 가방을 둘러멨다.

대문으로 가던 그가 막 학원에서 돌아오는 그녀와 마주쳐 멈춰 섰다. 그녀는 언니가 퍼부어대는 소리와 그의 얼굴에 드러나는 정황에 너무 놀란 듯 아무 말도 못 하고 굳은 채 그만 바라보았다. 그녀의 까만 눈동자는 갑작스러운 경악과 끝 모를 슬픔에 떨리고 있었다. 그는 그녀가 가여웠고, 슬펐고, 그런 상황에 화가 났다. 그에게 그런 것처럼 그녀의 부친은 자신의 딸을 어떻게 여기고 있을 것인가. 그는 재수생인 그녀가 너무 가여웠다. 아직 어렸을 적 선머슴같이 씩씩했던 그녀가 기운이 빠져있는 것이 너무도 가여웠다. 그는 많은 말과, 많은 호소와, 많은 애처로움이 담긴 그녀의 눈을 마주 보았다. 그를 위해 그녀는 그저 가만히 서 있어 주었다. 그녀의 눈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을 그는 알 수 있었다. 그는 그녀를 사랑했다. 그러나 결국 그녀에게 말했다.

“고마웠고 ……너무 미안해요.”


그가 나중에야 알게 된 이름이었지만, 그때 그녀를 지나쳐가던 자신은 꼭 히스클리프*꼴이었다. ‘세라’가 새까만 눈을 동그랗게 뜨며 저도 좀 데리고 나가달라고 캉캉 짖었었다.

그는 그녀만을 생각해야 덜 괴로웠다. 아니, 그녀를 회상하니 더 괴로웠다. 이젠 무덥고 습한 철장에서 그만 나가고 싶었다. 밖으로 나가서 한심하고, 초라하고, 소심했던 자신을 던져버리고 용기 있게 그녀 앞에 서고 싶었다. 한 남자로.




* 에밀리 브론테(Emily Bronte) 《폭풍의 언덕Wuthering Heights》의 남자 주인공.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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