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욱래 장편소설 《이탈-그 여름의 추억록》 제3부
그 땅이 다 잠겨졌을 어둠에 영창이 묻힐 때까지도 김철용의 사악한 영혼과 머리가 갈린 옆방 수련생으로 인해 그는 무던히도 괴로워했다. 인간들에 대한 살의가 내장 깊은 곳에서 울컥거리고 있었다. 틈틈이 김철용의 머리 가죽을 벗겨내고 있는 자신의 영혼을 발견하곤 부르르 치를 떨었다. 후……, 그는 들리도록 숨을 내뱉었다. 내초가 째려보았지만, 뭐라 그러지는 않았다. 하, 하고 그가 다시 뜨거운 숨을 내뿜었다. 멈춰선 내초가 하이바 아래로 노려보았다. 이제 그에게 절박해진 것은 자신의 영혼이라도 지키는 것이었다. 그는 찬찬히 숨을 골랐다.
“자기 도시락은 자기가 싸 가라―.”
상고에 다니는 남동생에게 그녀는 그랬다. 더 옛날, 그 바닷가에서 쥐포는 자기 용돈으로 사 먹으라던 얌체 같은 매력은 여전했다. 하긴 누나 노릇 하기도 힘들었을 터였다. 국내, 해외를 가리지 않고 가이드 일로 집에 거의 없는 서울 이모 대신 그녀가 살림을 도맡다시피 했다. 지방 어느 먼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던 그녀의 언니―그녀의 미술 세계는 왜곡되고, 기형적이었고 자신은 의상이나 액세서리 등에서 그다지 예술적이지 않은 철딱서니 없는 유행만 바삐 좇고 있었다.―가 만약 가까운 학교에 들어갔고 매일 집에 들어올 수 있었다 하더라도 그 천품 상 동생에게는 별 도움이 되지 않았을 거였다.
어느 날 아침, 그녀는 신김치를 볶아 그의 점심 도시락 반찬 칸에 담아주며 상당히 미안해했다. 투덜대는 남동생은 아예 도시락을 가져가지 않았다.
그의 학원 점심시간이었다. 1985년부터 활동하던 어느 인기 록그룹* 보컬리스트와 혼동될 정도로 흡사하게 생긴―부풀어 오른 볼살까지 영락없었다.―, 수시로 껄렁대던 같은 반 원생 하나가 제 도시락을 들고 슬슬 돌아다니다 그의 반찬 통을 팍, 챘다. 그러더니 통째로 제 밥 위에다 쏟아부었다. 항의하려고 일어서는 그를 반찬 통들을 모아놓고 같이 나누어 먹으려던, 그보다 나이가 많은 여 원생 셋이 급히 말렸다. 무슨 사연들로 늦게나마 어렵사리 공부하던 그녀들은 평소 착실해 보였던 그를 무슨 모범생 취급을 해오고 있던 터였다. 무슨 동 ‘들개 파’라는 양아치에게 잘못될까 봐 전전긍긍하는 그녀들의 마음 씀씀이와 무언의 호소에 그는 그대로 다시 앉았다.
“씨발, ×까고? ×같은 신김치 쪼가리 하나 가지고 뭐 그리 열을 내냐?”
들개 파 보컬이 이죽거렸다. 얄밉게 붙은 보컬의 볼살이 토실토실했다.
보컬은 그다음 날부터 바로 그의 뒷자리에 눌러앉았다. 학교 다닐 때는 맨 뒷자리 지정 좌석에서 엎어져 잤던 그는 이젠 제일 먼저 맨 앞자리를 맡아 놓고 강의 한마디, 필기 한 줄 한 줄에 온 신경을 쓰고 있던 참이었다. 뒷자리 보컬의 의욕은 다른 데에 있었다. 강사는 자신의 마이크 소리 때문에 들을 수 없었다. 보컬이 흥얼거리는 콧노래를. 하지만 그는 도무지 집중할 수가 없었다. 어느 날은 더 기가 막혔다. 보컬은 이제 샤프 촉으로 그의 등을 콕콕 찔러대고 있었다. 그는 한참 동안 스프링노트의 공지(空紙)만 내려다보다가 그 페이지에 이렇게 썼다.
忍 忍 忍
그는 이제 공부란 걸 하고 싶었고 또 반드시 그래야만 했다. 학교 동기들과 떠나온 친구들과 그리고 그녀와 나란히 같이 대학생이 되어야 했다. 그런 다음에는 그녀에게……. 얼마 후 그 글자들 위로 코피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문득 그게 그를 기쁘게 했다. 이제는 자신이 그 정도까지는 참아낼 수 있다는 것에 뿌듯했다.
일은 그다음에 찾아왔다. 그가 반응을 보이지 않자, 재미가 없어졌는지 보컬이 뒷자리를 떠났다. 그 며칠 후, 비굴까지를 감내할 정도로 열심이던 그가 학원수업을 마치고 학원에 딸린 바로 옆 건물 독서실에서 또 한 번 열중하던 중이었다. 누군가 그의 뒤를 지나가면서 빈정거렸다.
“야, 촌닭. 쪼다 같은 게 ×나게 열심히 하네?”
역시나 보컬이었다. 보컬 말고는 그에게 자꾸 그렇게 엉길 위인은 없었다. 그는 이를 물고 화장실로 갔다. 찬물로 얼굴을 씻고 나서도 한참 마음을 눌렀다. 거울 속엔 물이 묻은 얼굴로 의지의 사나이가 서 있었다. 그는 억지로 씩 웃었다. 그런데 자신의 뒷머리를 갑작스레 쓸어내리던 손, 그녀의 감촉이 불쑥 떠올랐다. 그는 다시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얼마쯤 후 이번엔 뒤통수에서 딱 소리가 났다. 나간 줄로 알았던 보컬이 손바닥으로 그의 뒤통수를 갈긴 것이었다.
“열씨미 해라. 쪼다 같은 새끼.”
그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목덜미를 내지르듯 그는 상대의 멱살을 움켜잡고 4층에서부터 보컬을 질질 끌고 내려왔다. 건물 출입문까지 그가 개 끌듯 보컬을 끌고 나왔을 때 길 건너편에 적당한 장소가 보였다.
보컬은 혼란한 정신으로 신축 중인 건물 1층까지 끌려갔다. 보컬은 이미 4층에서부터 넋이 빠져있던 터였다. 보컬은 벽돌과 블록들이 어지럽게 쌓인 한쪽 구석에 세워졌다. 보컬이 무슨 말인가를 해보려고 할 때였다. 시멘트 벽돌을 집어 든 그가 쾅, 하고 보컬의 머리를 내리쳤다. 벽돌은 두 쪽으로 쪼개지며 떨어졌고, 보컬의 머리칼에 벽돌 부스러기가 흩어졌다. 보컬은 되로 주고 말로 받은 거였다. 그런데 뭔가 아직 끝나지 않은 눈치였다. 그가 나직이 명령했다.
“어이! 서울 양아치. 나 따라와.”
보컬은 그의 말에 고분고분 행동하지 않으면 큰일 날 것 같았다. 보컬이 그를 따라간 곳은 근처 1층 다방이었다. 털썩 소파에 앉은 그가 한쪽 다리를 겹치더니 종업원에게 말했다.
“아가씨, 여기 유자차 두 잔. 타지 말고 팔팔 끓여줘요.”
그러면서 그의 눈은 여전히 보컬을 주시하고 있었다.
시간이 좀 걸렸다. 그사이 그는 말이 없었고, 보컬은 눈을 내리깔고 있었다. 여종업원이 팔팔 끓인 유자차를 가져왔다.
“내 너한테 차 한잔 사준다. 부탁할 거도 있고 해서……. 그거 원 샷 해 이 새끼야!”
유자차를 단박에 삼긴 보컬이 목덜미를 쥐고 캑캑거렸다. 그걸 싸늘하게 지켜보면서 그는 담배 한 갑을 시켰다. 담배를 한 개비 빼서 피워 문 그가 조용히 타일렀다.
“어이, 양아치. 난 말이야. 공부를 좀 해야 해. 한 번만 더 집적거리면 너와 네 똘마니들 다 묻어 버릴 거야. 너희 같은 서울 촌놈들은 나한테 안 돼. 왜? 떼거리로 한번 덤벼 볼래?”
보컬은 얌전히 듣기만 했다.
“그리고 말이야. 앞으로는 반찬 모자라고 그러면 먼저 부탁을 해. 이 새꺄. 알았어?”
보컬이 끄덕일 때 머리에서 벽돌 부스러기가 떨어졌다. 들개 파 중진급인 보컬은 이제 그의 말을 명심하기로 했다. 보컬의 볼때기가 샐쭉해져 있었다.
집에서 부쳐 준 돈은 뭐 때문엔지 툭하면 다 떨어져서 언제는 그가 버스 회수권 살 돈도 없었다. 민망스러웠지만 그는 그날 아침 그녀에게 회수권 몇 장만 빌려달라고 했다.
“그래, 잠깐만―.”
옛날 그 바닷가 새벽, 추워서 깼던 그에게 자기 옷을 꺼내주며 그랬던 것처럼 모자란 잠으로 나긋한 목소리였다.
“이렇게 많이요?”
그녀는 아예 20장 묶음 한 권을 그에게 그냥 주었다. 그런데 새 걸로는 보이지 않았다.
“이거 요 밑에 오락실에서 산 거야. 많이 있으니까 써.”
그녀가 동네 전자오락실 주인에게 반값 이하로 사두었던 거였다. 오락하고 싶은 애들이 그걸 동전과 바꾸었고, 주인은 다시 싸게 팔았다. 그녀의 회수권! 그녀는 그에게 알뜰하고, 총명하고, 살림 제일 잘 할 여자로 보였다.
오랜만에 돌아온 서울 이모가 그녀와 아들, 그리고 그를 그 산동네 밑 시장통 앞 돼지 갈빗집으로 데려갔다. 원래가 서울 이모는 통이 컸다. 돼지갈비는 푸짐하게 끊임없이 올려졌다. 그는 매일 저녁 선수부 훈련으로 기운이 달려있었기 때문에 엄청나게 먹어댔지만, 쌓인 뼈를 보니 그녀가 더 많이 먹는 것 같았다. 그는 그런 그녀가 짠했다. 그 힘든 재수와 집안일들, 몇 가지 안 되는 밑반찬으로 근근이 생활해야 했던 그녀가 돼지갈비를 허겁지겁 넘기고 있었다. 그는 아름답고 어린 청춘들이 억압되고 희생되는 그 무엇에 화가 났다.
학원에서 막 돌아온 그가 진녹색 대문에 딸린 작은 철문을 열고 들어서던 참이었다. 마당 수돗가에서 그녀가 땀으로 누렇게 찌든 그의 도복을 빨고 있었다. 그가 빨겠다고 만류했지만, 그녀는 계속 고집을 부렸다. 하는 수 없이 그녀의 남동생과 함께 쓰던 그의 방으로 들어가서 서랍장을 열어보곤 대단히 놀랐다. 모았다가 나중에 빨려고 비닐봉지 속에 뭉쳐놓은, 땀에 젖어 고약한 냄새가 나는 그 팬티들이 감쪽같이 사라져버린 것이었다. 그는 꿍쳐놓은 자신의 치부가 없어진 것을 알고 굉장히 황당했다. 혹시 몰라 마당으로 나왔는데 그는 자신의 치부, 그 냄새 나는 팬티들을 빨고 있는 그녀와 대면했다. 너무나 당혹스러운 광경이었다. 새빨개진 얼굴로 그가 왜 남의 속옷에까지 손을 대느냐고 따지자 그녀가 조신하게 타일렀다.
“괜찮아 얘, 방을 좀 치우려고 들어갔더니 냄새 좀…… 심해서…….”
그는 감당키 어려운 모욕감 속에서도 아무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이런 건 숨겨 놓지 말고, 그냥 내놓아. 내가 빨아 줄게.”
그렇게 그녀는 대수로울 것 없다는 듯이 말했지만, 목소리의 끝은 가늘게 떨렸다. 그는 그때 그녀가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불쑥 그는 그녀의 남자가 되고 싶어졌다. 그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얼마 되지도 않는 자신의 용돈으로 소시지나 햄 등을 사 와서 그의 도시락 반찬을 만들었다.
“김치 볶음 같은 거 먹기 힘들었지? 툭하면 그런 거나 싸주고……. 그리고 이거, 해보려고 해봤는데…… 원체 솜씨가 없어서.”
그녀는 수줍은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결단코 아니었다. 그는 신김치 볶음이 아니라 뭐라도 그녀의 요리마다 감동적인 풍미를 느꼈었다. 그녀가 그를 측은히 여기고 있고 그래서 더 배려하는 건지, 아니면 갱생의 노력을 다하고 있는 그를 연민하는 건지―그는 이런 느낌들 때문에 자존심이 살짝 상했다.―, 그도 아니면 자신과 그의 처지를 공감해서 그러는 것인지, 조금 더 욕심을 부려본다면 그를 어쩌면 남자로 의식하고 있는 것인지, 그 여러 가지 경우의 수 중에서 그는 어느 것이 정답인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그 며칠 후 오후 그 집엔 그녀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그가 마루 문을 열고 거실로 올라갔을 때 약간 그녀의 방 미닫이가 열려있는 것이 보였다. 약간이지만 날이 더웠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는 그녀의 방에 들어와 있었다. 자신의 가슴이 쿵쾅거리는 소리가 그의 귀에까지 들렸다. 고마운 그녀, 애처로운 그녀, 오랫동안 우러렀던 그녀, 지금은 사랑하는 그녀가 짧은 연분홍색 반바지 아래 드러난 한쪽 다리를 접은 채 침대에 모로 누워 곤히 잠들어 있었다. 다리 사이엔 얇은 이불이 끼워져 있었고 올라붙은 자그마한 엉덩이는 감각적이었다. 그때 그는 대체 자신이 무슨 짓을 하는 건지를 몰랐다. 그녀의 왼팔은 베게 위쪽으로 올려져 있었는데 투명한 겨드랑이에 그녀의 머릿결처럼 까맣고 가는 털들이 몇 올 말려 있었다. 그는 아랫도리가 아팠다. 이제 그녀는 완연한 여자였다. 그렇게 한참 그녀를 내려다보다가 그는 초인적인 용기를 냈다. 그는 결국 허리를 굽혔다. 잠자는 숲속의 공주 같은 그녀의 귀밑 새하얀 목에 그가 입을 맞추었다. 그녀가 움직이지는 않았지만, 순간 쌔근거리던 숨소리가 멈췄다. 잠시 시간이 흘렀다. 긴장이 머리끝까지 올랐지만, 불굴의 의지로 그는 다시 그녀의 겨드랑이에 입술을 댔다. 그녀가 음, 하며 돌아누웠다. 그에게 그녀가 분명 자신을 느꼈다는 확신이 엄습해 왔다. 그는 불에라도 덴 것처럼 재빨리 그녀의 방에서 빠져나왔다.
그의 사지의 떨림은 한동안 진정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아쉬웠고 그러다가도 자신의 비겁한 용기가 짜릿했다. 그는 진짜로 잠에서 깬 상태에서 그녀가, 그에게 두 번씩이나 키스를 받은 것을 확실히 알았으면 하고 조심스레 바랐다.
철장 안 열대의 하루가 다 지나고 겨우겨우 취침 시간이 되었다. 그는 모포를 양팔에 말고 쭉 무릎을 폈다. 종일 접혀있던 다리가 저리고 무릎이 시큰시큰했다. 눈을 감은 그는 계속 그녀를 그렸다. 추억 속의 그녀는 침대에서, 그는 여기서 다시 잠이 들 것이었다. 그는 행복했다.
* 기타리스트 김태원이 이끄는 ‘부활’은 80년대 후반 백두산, 시나위, H2O 등과 함께 대한민국 최초의 헤비메탈 유행을 주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