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욱래 장편소설 《이탈-그 여름의 추억록》 제3부
아침 6시, 고개 숙인 좀비들처럼 청장 안에 줄 서서 점호받고 나면 용변과 세면이 윤허(允許)된다. 좀비들은 철장 마룻장에 불상처럼 앉았을 때 빼고는 항상 고개를 숙여 깊은 반성의 마음을 표해야 한다. 애초 그가 그걸 몰랐기 때문에도 그렇게 김철용이 길길이 날뛰었을 터였다.
“반성, 5번 수련생 18연대 상병 이철규 근무 태만. 내초 근무자님께 용무 있습니다.”
“뭐?”
“용변(用便) 및 세면 하겠습니다.”
“해라.”
“실시.”
근무 태만 5번이 철문을 지나 마당으로 나간다.
“반성, 5번 수련생 18연대 상병 이철규 근무 태만. 외초 근무자님께 용무 있습니다.”
“용무는?”
“용변 및 세면 하겠습니다.”
“실시.”
“실시.”
5번 수련생과 외초의 그런 대화가 들린다. 그는 부대로 전입한 후 대변 문제로 고생하던 날들을 떠올리곤 밖으로부터 들려오는 그런 식의 보고법을 숙지했다.
무슨 원두막 같았던 것은 1인용 화장실이었다. 네 개의 사각 나무 기둥이 떠바친 원두막의 사다리를 올라가 쪼그려 앉으면 널빤지 바닥 가운데 구멍이 뚫려있고, 둘레는 까 젖힌 엉덩이를 겨우 가릴 높이만큼만 나무판자가 둘러 박혀 있다. 차례가 되면 수련생들은 하나씩 철장에서 나가 반성의 심경으로―겉으로라도 그리 보이도록 해야 한다―내초에게 머리를 조아려서 허락을 득하고, 철문을 나가서는 걸음걸음마다 조신 조신하게 오롯이 반성하며, 그 행사를 위해 담장 철망 문밖에 있다가 마당으로 들어온 외초의 허락을 재차 득한 다음에야 원두막으로 오를 수 있다. 수련생이 제 대소변을 내보내기 위해서는 또 다른 절차가 필요하다. 그건 근심을 해소할 일정한 시간 동안 하나부터 열까지 외치는 것이다. 만일 그 수련생이 제 용변 시간을 충분히 확보하기를 희망한다면 숫자 사이의 간격을 약간 널널하게 부르면 되지만, 너무 널널하면 원두막 아래의 외초가 그 수련생의 반성이 부족하다고 보고 무서운 욕을 씨불이며 거기서 그만 끊고 내려오라고 닦달한다. 숫자를 외치면서, 거기다가 반성까지 하면서 용변을 보는 것은 사전에 시간 안배와 고도의 정신 집중을 요한다. 그렇게 기묘한 절차와 방식으로 그날의 용변을 해결한 수련생은 다시 절절한 반성의 몸가짐으로 철문 근처 수돗가에서 얼굴을 씻고 양치를 한 후에 깊은 반성이 어린 목소리로 외초에게 용무를 마쳤다는 보고를 한다. 철문 안으로 들어서서는 다시 내초에게 뼛속까지 반성하고 있다는 태도로 보고한 뒤 제가 사용한 칫솔을 칫솔걸이에 확실히 거는 걸 내초가 확인할 수 있도록 한다. 그런 식의 종교적이고 숙연(肅然)한 아침 의례(儀禮)는 한 시간이 약간 넘게 치러졌다.
그에게 시간의 흐름은 자대에서보다 열 배 이상 느렸다. 지옥 같은 시간은 후텁지근한 공기 속에서 1초씩 겨우겨우 갔다. 내초가 바뀌는 두 시간이 하루처럼 느껴졌다. 움직거릴 수 없는 영창의 규칙대로 길고 긴 시간 정면만을 바라보는 그의 눈은 이미 초점이 흐려져 있었다. 그랬다. 전날은 빼고 그는 부대보다는 고요하고 또 자유로이 생각할 수 있는 철장 안이 어떤 점에서는 괜찮다는 것을 발견한 뒤였다. 앉은 채 차려 자세만 바로 하고 시선은 정면으로 처리하면 인간 도살자들도 그가 무슨 생각들을 하고 있는지 알 턱이 없을 터였다. 그런데 아까부터 그는 진짜로 반성하고 있었다. 돌아갈 때까지 버틸 수 있을 어떤 희망, 누군가가 기다려 줄 그런 희망 하나 없이 무턱대고 이런 군대를 제 발로 걸어 들어왔다는 건 분명 잘못한 일이었다. 희망 없는 장기수가 신(神)에게 의지하는 것처럼 아까 전부터 그는 아련한 그녀와의 회상에 의지하고 있었다.
서울 이모네 집은 그가 국민학교 6학년이었던 때보다 그 산동네의 더 높은 지대로 올라가 있었다. 그는 6년 만에야 그녀의 모습을 볼 수 있게 될 터였고 자신의 한심스러운 처지도 생각하지 않고 마냥 가슴만 설레었다. 합격한 대학이 마음에 차지 않았던 그녀는 다시 대입 학원에 다니고 있다고 했다. 그녀를 기다리는 동안 그는 별별 근심이 다 들었다. 예전엔 그녀의 방에 수많은 상장 액자와 각종 메달들이 걸려있었지만 이제 그녀는 혹 자신을 꺼릴지도 몰랐다. 그는 더 궁색했지만, 그녀의 마음이 그런 것 때문에 혹 다친 상태라면 어쩌나, 하고 걱정했다. 볼품없는 짐 보따리들을 싸 들고 서울로 온 자신의 촌티는 여전한 것 같았다. 무슨 촌 동네 어깨처럼 덥수룩한 머리털, 거기다 아저씨 같은 중년용 회색 점퍼에 남색 기지바지*1 차림이었다.
그는 인간 도살자들이 순간순간 번득거리고 있는 철장 속에서까지 자신이 무엇 때문에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명문 고등학교를 때려치우게 되었는가는 돌이키고 싶지 않았다. 그 야멸찬 밀드레드와는 언제부터 만났고 언제 어떻게 헤어졌는지, 상위의 점수로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는 왜 공부를 안 하게 되었는지, 무슨 이유로 자신이 그 학교의 이과 반에 배정되어 적성에 맞지도 않는 엄청난 분량의 수학과 과학 과목들로 괴로워해야 했는지, 어떡하다가 학교 ‘짱’이 되었는지, 다시 공부를 해보려고 들면 왜 부아부터 났는지, 무슨 일 때문에 애초 중학교 때부터 태권도를 시작하게 됐는지, 그딴 것들은 떠올리기가 싫었다. 철장 속에서 그는 오직 그녀와 관련된 것들만을 회상하고 싶었다.
그는 열아홉 살 이른 봄에 검정고시와 대입 준비를 한꺼번에 해보려고 서울로 갔다. 밀드레드와의 구차하다 못해 비루먹을 미련한 추억도 지겨웠고 밀드레드와 거닐던 진부한 소도시도 답답했다. 그는 서울처럼 커다란 도시에서 숨을 쉬어보고 싶었고, 또 친구들과 같은 해에 대학에 가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겨우겨우 상심을 추스른 모친은 서울 이모에게 그를 부탁했다.
그녀가 현관 마루로 올라섰다. 그가 국민학교 6학년 여름, 그 해변에서는 자신과 키가 비슷했었지만 6년이 지나서 본 그녀는 머리 하나가 작았다. 짧지 않았던 어떤 스트레스들 때문이었는지 그녀는 그때보다는 살이 많이 올라있었고 림(rim) 윗부분이 빨간 은테 안경을 쓴 모습이었다. 흰 스타킹을 신은 청치마 아래의 종아리도 약간 부어있는 듯 보였다. 그는 그녀의 모습이 왠지 안쓰러웠다. 그녀의 몸매에 오른 살은 그의 기억 속의 예전 그녀 특유의 세련됨을 약간 떨어뜨렸다. 세월도 지났지만, 그동안에 있었던 계집애들과의 경험 탓에 그녀가 기대에 못 미치는 이유도 있을 것이었다. 그런데 그는 찡해졌고 흘러버린 세월이 불만스러웠다. 처음엔 둘은 한참 동안 서먹해했다. 예전엔 선머슴 같았던 그녀는 이제 웃음을 잃은 듯 보였다. 그러나 그녀는 많은 시간 동안 그가 다다를 수 없었던 이상형이었다. 오히려, 기대했던 것만큼은 아닌 그녀 때문에 그의 마음은 덜 경직될 수가 있었다. 그런 점에서 그는 그녀가 고마웠다. 그는 여전히 찡하게 그녀를 좋아하고 있는 자신을 알고 있었다.
서울 애들은 멋지게 하고 다녔다. 봄 날씨도 더워졌고, 그는 서울 애들에게 유행하는 스타일을 염두에 두고 난생처음 미용실까지 가서 머리를 깎았다. 그는 영화 ‘스트리트 오브 파이어(Streets of Fire)*2’의 남자주인공 마이클 파레(Michael Pare)처럼 짧게 옆머리를 치고 뒷머리만 약간 길게 했다. 그다음으론 촌 동네 어깨 패션부터 탈피해야 했다. 그는 멋쟁이들로 넘실대는 지하철을 타고 집에서 어렵사리 부쳐준 돈으로, 담 크게 백화점으로 갔다. 거기서 미국브랜드 L 사의 꼭 끼는 청바지와 청재킷을 사 입고 나와, 다시 값비싼 유명 스포츠브랜드 전문점으로 들어가서 안에다 받쳐 입게끔 나이에 어울리는 진녹색 반팔 폴로 티를 샀다. 그는 그저 그녀를 생각했다. 그녀에게 매력적으로 보이게끔 차리고 싶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녀 역시 하루가 다르게 날씬해지는 것 같았다. 봄이 점점 더워지고 있었고 그녀의 옷도 점차 얇아졌다. 그녀의 반팔 티셔츠 소매 밑으로 하얗고 매끈한 팔이 눈부셨다. 뚜렷하게 선이 매끄러워진 그녀의 종아리도.
어느 토요일 점심 무렵 그 집엔 어쩌다 그녀와 그만 있었다. 그녀는 신부처럼 다소곳이 점심상을 차려 내왔다. 둘은 겸연쩍게 말없이 마주 앉아 수저를 들었다. 그가 겸연쩍은 가운데 조신하게 음식을 떠 넣기가 자꾸 힘들어져서 우걱우걱 반찬을 씹고 후루룩대며 국을 마시기 시작했다. 그런 그를 그녀가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얘, 머리 이렇게 자르니까 얼마나 예쁘니?”
그 말과 동시에 그녀의 손이 그의 뒷머리를 쓸어내렸다. 머릿결에 미끄러진 그녀의 손은 한순간에 그의 목덜미에까지 내려와 닿았다. 아찔했다. 그의 수저가 일순 허공에 멈췄다. 그녀의 촉촉하고 후끈한 손바닥, 그 황홀한 여운은 금세 가시지 않았다. 눈을 내리깐 그는 다시 조용하게 음식을 씹었다.
그는 그녀가 자신의 머리 스타일을 칭찬한 것이 너무 기뻤고 또 고마웠으며, 자신이 그녀의 마음에 드는 머리 스타일을 선택했다는 것이 무척 다행스러웠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갑작스러웠던 자신의 동작을 떠올리는 것 같았고 이내 새침해졌다. 그런 그녀에게 짓궂은 미소를 보내며 그는 그녀가 자기 신부이고, 밥상머리에 아내와 함께 마주 앉아 있다고 상상해 보려 했다. 그런데 상상인데도 자유롭지가 못했다. 성격 칼칼한 그녀의 모친은 그런 상상 만에 대해서도 어떤 불벼락을 내릴지 몰랐다. 더하면 더했지, 그녀의 부친도 더 못하진 않을 것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자신의 돼먹지 않은 상상이 만에 하나 들통이라도 난다면 자존심을 다친 그녀가 무섭게 화를 내지는 않을까 하는 것이 더 걱정이었다. 어쩌면 그녀에게 자신은 그냥 촌 동네에서 올라온 아는 동생일 뿐인지도 모르니까. 그러나 잠시 후 그는 어떤 상상만으로는 크게 죄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이내 안도할 수 있었다.
그녀의 집에는 머리털이 길게 내려와 한쪽 눈을 덮은 하얀 복슬개 한 마리가 있었다. 그 개는 처음서부터 그에게 앙칼지게도 짖어댔다. 그러던 며칠 후였다. 학원에서 돌아온 그는 집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했다. 그 개의 버르장머리를 고쳐주어야만 했다. 그는 눈싸움을 시작했다. 그 복슬개는 몇 번 눈을 돌리면서도 다시 응전하곤 했지만, 종국엔 그가 승리했다. 매일 저녁 그는 그 개를 끌고 로드워크(Road work)를 나갔는데 영리한 그 개는 그가 선풍각으로 개줄을 타 넘으며 차는 연습을 하자 거기에 맞춰 지그재그로 달려주었다. 계속 묶여 있는 게 갑갑했던 그 개는 매일 저를 외출시켜 주는 그를 굉장히 반겼다. 그가 학원에서 돌아와 대문을 들어서자마자 그 개는 저 좀 데리고 나가달라고 혀를 할딱거리고 공중을 앞발로 휘저으며 바쁘게 꼬리를 흔들어댔다. 그 개의 새까맣고 앙증맞은 눈엔 그를 향한 애정과 모종의 존경심이 비쳐 보였다. 달리기를 마친 그가 이번엔 어스름해진 뒷산에서 허공을 상대로 발차기 연습을 하는 때였다. 줄을 묶어놓지 않았는데도 충실한 그 개는 가만히 한쪽에 앉아 그의 발차기 방향을 따라 상하좌우로 고개만 까딱이며 언제까지라도 대기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무슨 난리가 난 듯 매달리는 그 개를 쓰다듬고 있을 때였다.
“우리 세라 어떻게 유혹한 거야?”
하는 그녀의 목소리가 놀랍도록 예뻤다. 그 암캐의 이름이 ‘세라’였다. 그녀는 그가 ‘세라’를 좋아하고 ‘세라’도 그를 너무 잘 따르는 것을 좋아했다. 그는 ‘세라’ 말고 그녀를 유혹하고 싶었다.
학원에서 그는 엄청나게 열심히 공부했다. 고등학교에 입학한 지 일주일 만에 우연한 계기로 그 계통에 데뷔했던 관계로 그 학교뿐만이 아니라 시내 다른 고교들에서 도발해 오는 숱한 도전들을 격퇴하며 보낸 허망한 시간을 만회해 보려고 정신을 다잡았다. 그리고 그녀의 집에서도 그런 자신의 모습을 보이고 싶었다. 저녁에 가끔 그는 수학 문제 등을 가지고서 그녀의 도움을 요청했다. 그는 물론 일부러 그랬다. 그는 그런 걸 핑계로 그녀의 곁에 다가가고 싶었다. 그는 그녀의 나직하고 특유의 새콤한 목소리를 듣고 싶었으며, 그녀의 체취를 맡고 싶었고, 그녀의 더 깊은 관심을 유도해내고 싶었다. 그렇게 그는 그녀로 인해 변해갔다. 점차 그는 세련되어지고 싶었고, 도시적이길 원했으며, 점점 모범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려고 노력했고, 그리고 부드러워졌다.
*1 ‘기지’는 일본말이다. 生地라고 쓰고 きじ(기지)라고 읽는다. 특히 양복 옷감을 ‘기지’라고 한다. ‘기지’로 만든 펄렁펄렁한 양복바지를 ‘기지바지’라고 했다.
*2 1984년 제작된 월터 힐(Walter Hill)감독의 미국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