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욱래 장편소설 《이탈-그 여름의 추억록》 제3부
군장은 손정원이 풀어 다시 관물대에 정돈해 놓을 것이었다. 그는 그러라기에 세면 백만 하나 들고 퉁퉁한 육공트럭 운전병과 선탑 소위 사이에 끼어 앉았다. 일말의 낭만을 기대해선 안 되는 곳이었다. 그는 자괴심만 들었다. 그는 사실 좀 떨렸다. 며칠 풀어졌던 마음이 잘 추슬러지지 않았다.
트럭은 예의 그 정액 냄새 흩날리는 길을 올라가다가 중간쯤에서 우회전했다. 트럭에서 그가 내리자, 일반 전투복의 헌병대 행정계원 둘에게 인계되어 양팔을 붙들렸다. 토대 위로 높다란 블록 담, 그 위에는 가시철조망, 그 위로 다시 나선형으로 감은 윤형(輪型) 철조망이 올려진 영창 담장 가운데 달린 철망 문의 아래 계단까지 끌려갔다. 외초(外哨)가 문을 열었고, 그는 무슨 원두막 같은 것이 한쪽에 서 있는 작은 마당을 지나 주 건물의 철문 앞에서 몸의 끈을 전부 풀어 계원에게 넘겼다. 혁대, 전투화 끈, 고무링, 플라스틱 시계 등을 받아든 계원이 철문을 당겼다.
그날 밤의 도로는 어둠 속에 아련히 뻗어있었고 밤안개에 길게 숨겨져 있었다. 그 전적비 앞에서 그는 그 안개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길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었다. 그에게 뿌옇게 그 끝 모를 길이 보였다.
영창은 철문에서 시작하는 3m 정도 폭의 시멘트 통로를 가운데 두고 좌우에 세 칸씩, 쇠창살들이 내리박힌 여섯 칸의 구금실로 되어 있었다. 구금실마다 한둘씩 나무로 깎아 만든 불상처럼 앉아 굳어있었다. 통로 한가운데에 하나, 그가 보충대에서 본 복장으로 내초(內哨) 근무자가 서 있었다. 까맣게 번들거리고 양옆에 하얀 별이 하나씩 찍혀진 헌병 하이바를 그 내초가 제 눈을 볼 수 없게끔 내려쓰고 있었다.
“여! 정찰대? 이 새끼 여기가 어디라고 고개를 빳빳이 쳐드낫. 대가리 안 숙엿?”
장피에 매달린 하얀 견실들이 치렁거렸다. 별 붙인 까만 하이바가 이유 모를 증오와 경멸을 품은 음성으로 째지듯 그에게 소리쳤다.
“이등병 놈의 새끼가 공수 윙 박은 거 봐? 정찰대! 너 아주 잘 들어 왔어. 대가리를 숙이란 말얏!”
까만 하이바는 정찰대를 대단히 좋지 않게 여기는 것 같았다. 그 내초가 황금빛으로 번쩍이는 탄띠에서 경봉을 빼 들었다. 멀뚱거리던 그가 그 헌병의 질문에 뭐라고 대답하자 즉시 경봉이 직방으로 그의 머리, 그다음엔 어깨와 등, 허벅지를 난타하기 시작했다. 그는 구워지는 마른오징어처럼 몸을 말며 하이바의 명찰을 확인했다. 몽둥이찜질이 계속됐다. 김. 철. 용……! 네놈은 절대 잊지 않겠다, 그는 그렇게 결심했다. 더는 견딜 수 없어진 그가 김철용의 까만 몽둥이를 잡아 쥐었다. 김철용이 그의 손아귀로부터 제 경봉을 도로 빼내려고 용을 쓰며 발길질을 하고 소리를 치다가 이내 벽에 붙은 벨을 눌렀다. 곧바로 뛰어 들어온 외초와 합세한 김철용은 제 경봉을 회수했고, 그가 거의 정신을 놓고 무너질 때까지 내리쳤다. 그래도 철장 안의 목조 불상들은 눈만 반쯤 뜬 채 피안(彼岸)의 세계를 응시하고 있었다.
어지러운 정신으로도 그는 더 이상의 반항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어쩔 도리가 없는 것이었다. 모든 것은 순순히 끌려온 자신의 죄였다. 내초 근무자 헌병 김철용은 상병이었고 외초는 일병이었다. 그들도 병사였다. 병사들이 병사에게 몽둥이질을 해대서 초주검을 만들어 놓은 것이었다.
어두컴컴한 철장 안도 무덥고 습했지만, 그는 몸을 떨며 식은땀을 흘렸다. 근무자는 두 시간마다 바뀌었다. 멀리서부터 교대 근무자의 빤빤한 장피 바짓단에서 철렁거리는 쇠구슬 소리가 귀를 후벼 파는 것처럼 다가왔다. 두 번째 내초는 더더욱 정찰대원을 싫어했다. 그 근무자는 소문만으로는 엄청 세다는 사단 정찰대의 일원에게 제 보직을 십분 사용하여 어떤 치욕을 통감하게 해주고 싶어했다.
“이등병 놈의 새끼가 영창에나 처 들어오고? 잘하나 내 한번 보겠어. 정. 찰. 대!”
천장까지의 높이는 3m 됨직했다. 내초는 그에게 천장 바로 아래까지 철장을 타고 올라가 두 손과 두 발을 모으고 매달려 있게 했다. 아무리 정찰대원이래도 마찬가지였다. 얼마 되지 않아 그의 이마와 목덜미, 팔뚝과 손등에서 땀이 솟았고 마룻바닥으로 빗방울처럼 떨어졌다. 경봉들로 빈틈없이 두드려 맞은 그의 온몸 근육들이 그 ‘원숭이 철창 타기’를 버텨보려고 사시나무처럼 떨려댔다.
약 20분이 지났다. 힘은 이미 바닥이 났고 수십 군데 쿡쿡 결려대는 그의 온몸에 이제 신열이 올랐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는 흥건히 젖은 손아귀에서 쇠창살이 자꾸 위험하게 미끄러지는 걸 더는 버텨낼 수가 없었다. 그 코스는 원래 신입들을 아니, 내초들을 위한 신고식의 일부분이었다. 수순은 이랬다. 어떤 후과를 두려워하는 신입은 매미처럼 쇠창살에 매달린다. 창살을 집은 양발 바닥과 열 손가락에 제 체중을 모두 건 신입의 체력은 곧 고갈된다. 허리는 끊어질 듯하고 하체의 힘이 다 풀린 신입은 이제 길게 아래로 늘어진다. 결국, 신입의 손가락은 마비되고 바닥으로 떨어진다. 그러면 내초가 신입의 인내력과 정신 상태를 문제로 삼아 끌어내고 폭행한다.
내가 떨어지면……? 좋다. 정찰대가 다르다는 걸 내 저놈에게 보여주지. 그는 더 그러고 버티다가 결국 스스로에게도 패배하고 헌병에게 재차 능욕을 당할 기분이 아니었다. 몸 상태는 형편없었지만, 그는 모험을 해보기로 했다. 잘못했다가는 아예 병신이 될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는 가물가물한 기분으로 한참 아래의 마룻장을 내려다보았다. 일단 한쪽에 놓여있는 목불(木佛)을 피해, 머리만 바닥에 먼저 부딪히지 않는다면 예전에 친구가 다니는 합기도장에 놀러 갔을 때 구경했던 후방낙법의 흉내를 한번 내 볼 수 있을 것도 같았다. 그는 결심이 섰다. 그는 미끄러지는 창살을 다시 잡으려다 순간적으로 놓치는 척하면서 몸을 약간 뒤로 날렸다. 잠시 후 꽝하고 마루가 깨지는 듯한 소리가 울렸다.
‘지시 불이행’이 그의 징계 입창 사유였고, 그가 갇힌 철장 바깥쪽에 매달린 하얀 아크릴라벨 맨 위쪽 칸에 적혀 있었다. 그는 처음에 영창 철문이 열렸을 때만 해도 자신의 죄목은 ‘하극상’인 줄로만 알았었다. 김철용이 자신이 저지른 죄의 장르를 궁금해하기에 그렇게 대답해 줬더니 둘씩이나 눅신하게 그를 두들겨서 제사상의 북어 꼴로 만들어 놓았던 것이다. 그는 그 ‘지시 불이행’이란 항목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신이 도대체 무슨 지시를 이행하지 않았다는 건지 잘 이해할 수가 없었다. 누가 개처럼 패면 패는 대로 맞기만 하라고 지시받은 적은 없었다. 매일같이 두드려 맞으며 점차 자신이 굴종을 달갑게 받아들일 수 있는 개가 되어 가는 느낌이었다. 그는 그런 개는 될 수 없었다. 설사 개에게도 그러면 안 되는 거였다.
다시 내초가 바뀌었다. 그 내초도 그에게 원숭이 철창 타기를 원했다. 이제 그는 남아있는 힘도 없었고 그 짓을 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잠깐 상황을 정리해 보다가 그는 새로운 꾀를 도출해 냈다.
“9번 수련생 정찰대 이병……”
“어절씨구리, 정찰대. 앞에 뭐 안 붙엿?”
내초가 노려봤다.
“반. 성. 9번 수련생 정찰대 이병 나우권…….”
반성은 제기랄……, 그는 이를 물었다.
“……지시 불이행. 전 근무자님 때 철창 타기 하다가 떨어져서 허리를 다쳤는지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지시 불이행? 상급자가 ‘후장(後臟)* 위치로’ 하면 네 녀석은 엉덩이를 벌릴 테냐? 상급자가 제 육시랄 물건을 빨라고 지시하면 너는 쭉쭉 빨 거냐? ‘지시 불이행’은 그에겐 영 더러운 항목이었다.
식은땀을 뚝뚝 흘리며 후들거리고 있는 그를 살펴본 내초가 내선전화를 돌려 전 근무자와 통화했다. 물론 그는 제대로 배운 적이 없었기 때문에 바닥에 떨어질 때의 충격으로 오른쪽 궁둥뼈 뻐근하긴 했지만, 그만하면 우 측방 낙법 엇비슷한 후방낙법은 성공적이었고 운도 따랐다. 그의 전투복을 흥건히 적시고 있는 땀은 허리가 어디 잘못되어서가 아니라 오전의 몽둥이세례로 삭신이 열이 나고 푹푹 쑤셨기 때문이었다.
한 번도 다린 적이 없어 구깃구깃한 전투복의 헌병 둘이 알루미늄 들통 두 개를 통로 바닥에 놓았다. 저녁밥과 국이었다. 다른 칸에 앉아 있던 당번 수련생이 풀려나와 식판에 밥과 국을 퍼서 들이밀었다. 그는 밥 생각이 없었고 자꾸만 울컥거렸다. 그가 스푼을 들지 않자, 내초가 창살 사이로 머리를 대라고 했다. 내초는 알루미늄주걱을 세워서 수차례 그의 정수리를 퍽퍽 내리찍었다. 쩡쩡, 거리며 두개골이 갈라지는 것 같은 통증을 그는 무심하게 맛보았다.
내초들은 사람을 포획해서 우리에 가둬둔 식인종들처럼 행동했다. 그들의 양쪽 어깨에 몇 가닥씩 늘어진 흰 견실들은 사람을 희생(犧牲)으로 하는 사육제 때 치장되는 장식들 같았고, 광택 나는 하이바는 인육만 처먹어다 벗겨진 대머리 같았다. 그는 그들의 견실로 그들을 꽁꽁 묶은 다음 그들의 경봉으로 사정없이 내리쳐서 그들의 머리통을 화이바째로 바숴버리고 싶었다. 그들은 광기 어린 인간 도살자들이었다. 그는 그들의 영혼을 저주했다. 그는 이제 군대가 끔찍했다.
밤 열 시. 나무부처들은 팔이 풀리지 않도록 모포를 감아 가슴에 올리고 눕는다. 감은 눈꺼풀 위에 형광등이 훤하다. 몸이 끈적거려도 절대 움직이면 안 된다. 자다가도 혹 팔이 풀리거나, 머리가 돌아가거나, 코를 곤다거나 하면 내초가 그 수련생을 기상시켜 폭행한다.
그는 그런 연극, 그중에서도 그대로 잔혹극(殘酷劇)인 어처구니없는 상황 속에서 군대와 군대 속의 군대인 영창을 곱씹으며 분주하게 쑤셔대는 몸뚱이를 그저 가만히 눕히고 있었다.
* 남자의 항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