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욱래 장편소설 《이탈-그 여름의 추억록》 제3부
찢어지는 듯한 김철용의 날카로운 목소리만 들리지 않았다면 그는 결코 그녀를 애수(哀愁) 띤 추억 속에서 놓치지 않았을 것이었다. 여태껏 그녀 곁에 있던 그는 맞은편 철장 안 꼭대기에 뚫린, 유리 없는 작은 문틀 너머의 빛 색깔로 오후가 어느덧 지고 있다는 걸 알았다. 벽으로 나뉜 옆 철장의 수련생 하나가 김철용에게 불려 나갔다. 그 일병은 지난밤 코를 골다가 30분 간격으로 깨워졌고 철창 사이에 머리를 대고 경봉으로 얻어터졌었다. 오후부터 그 수련생은 빨려 들어가는 졸음을, 죽을힘을 다해 견뎌내고 있던 중이었는데 공교롭게도 김철용이 내초가 되었을 때 고개를 그만 까닥하고 말았다. 곧바로 불려 나간 그 일병의 머리는 일단 통로 시멘트 바닥에 심겼다. 김철용이 광기 들린 괴성으로 쌍욕을 퍼부으며, 늦은 밤까지 문질러댄 물광이 혹여나 벗겨질까 봐서 그러는지 뒷굽 높인 전투화 코를 바깥쪽으로 틀어 공 차듯 그 일병의 정수리를 찍어댔다. 일병의 머리가 그 충격에 뒤로 밀리며 이마 위쪽의 두피가 갈리기 시작했다. 일병의 몸뚱이는 바들바들 떨렸다. 철창 밖에 벌어지는 꼴을 보던 목불, 아니 목석(木石)들은 아예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애초에 듬성듬성 미장이 된 시멘트 바닥에 핏물이 빨갛게 스몄다. 김철용의 전투화가 두개골에 충돌하는 소리와 그 두개골 주인의 신음이 섞여 울렸다. 시멘트 바닥이 피로 페인트칠이 되고 있었지만, 김철용의 욕설과 발길질은 그치지 않았다.
아비규환의 절규를 들으며 앉아 있어야 했던 그의 눈에 점점 핏발이 섰다. 게다가 영창의 찐득찐득한 무더위에도 괴로움이 가중되었다. 그는 있는 힘을 다해 참아보려고 는 했다. 전날의 일로 삭신이 말도 아니어서 또다시 맞을 수 있는 상태도 아니었다. 그러나 시멘트 바닥에 그리고 나가는 피 칠갑이 거의 1m에 달하자, 그의 인내는 임계치에 도달했다.
“야, 김철용이. 그만하지. 너는 사람 아니냐? 너도 같은 병사야, 인마!”
일순 정적이 흘렀다.
“정찰대? 덤비는 거야?”
헌병들이 원래 다 그러는 것처럼 멀쩡한 굽을 떼어내고 두 배나 높은 사제 굽을 붙인 김철용의 전투화가 엽전꾸러미처럼 쩔렁거리는 쇠구슬들 소리에 맞춰 그의 철장 앞으로 왔다. 김철용의 목이 가는 전투화는 여자들의 하이힐처럼 보였다. 그는 댕강 그 발목을 부러뜨려버리고 싶었다. 하이힐을 빼딱빼딱하며 철창문을 연 김철용이 경봉을 빼들었다.
“정찰대! 이 새끼가 죽고 싶나? 껴 나왓.”
“네가 들어와서 죽여. 살고 싶은 마음도 없다.”
그는 충혈된 눈으로, 그러나 무덤덤하게 헌병을 올려다보았다.
김철용은 들어오지 않았다. 대신 경봉을 휘두르며 한참이나 철창을 마구 쳐댔다. 철장에다 발광하고 난 김철용이 다시 한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러고는 홱 뒤로 돌더니 짜증 나는 쇠구슬 소리를 울려대며 미친 듯이 통로를 왔다 갔다 했다. 그는 김철용의 등짝을 향해 조용히 충고했다.
“김철용 상병. 너 이렇게 살다가 사회 나가면 어떻게 살려고 그러냐? 너도 사병인데 쟤나 내 꼴 안 된다는 보장이라도 있냐? 군대 생활이 영원한 거냐? 네 영혼을 한번 생각해 봐. 인마.”
김철용은 대꾸하지 않았다. 또 한참을 쩔렁대면서 바닥만 훑어대다가 빈 알루미늄주전자를 텅, 걷어찼다. 그리곤 뭘 생각하는지 잠시 가만히 서 있더니 그의 철장 앞으로 다시 접근했다.
“정찰대. ……아까 나한테 개긴 거는 없던 일로 하겠다. 오늘은 갔다고 쳐도 넌 오 일이나 남았다. 진짜 병신 되기 싫으면 조심하는 게 좋을 거다.”
김철용이 작은 목소리로 그렇게 을렀다. 근무시간이 끝나 교대하고 철문으로 나가는 김철용의 어깨는 처져있었다. 그 어깨에 달린 하얀 견실들도 축 늘어져 있었다. 얼마 뒤 사단사령부에서 저녁 식사 시간을 알리는 군가 테이프를 틀었다.
너와 나 부름 받은 용사의 충정
겨레와 나라 위한 길이라면은
이 젊음 바치리라 이 목숨 바치리라
다음 주(12.23) 연재는 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