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욱래 장편소설 《이탈-그 여름의 추억록》 제3부
404 정찰대대에선 조금만 뛰어도 금세 숨이 차올라 가슴이 빠근해졌다. 차라리 4킬로미터 정도 산 아래로 뛰어 내려갈 때는 숨쉬기가 편했다. 구보 중에 내무반장은―조교 중 그가 제일 선임이었다.―끊임없이 노래를 원했다.
“박수치면서 군가 하자. 군가는 공수가(空輸歌), 한나 둘 셋 넷.”
4사단 인원들만 그 노래를 몰랐다.
“떴다. 떴다. 비행기 날아라. 날아라. 높이높이 날아라. 우리 비행기…….”
이 도입 부분은 좀 그랬다. 미국민요 〈Mary had a little lamb〉에다 한국어로 작사 된 동요로 처음엔 이처럼 예쁘게 시작된다. 그다음부터 곡조는 자못 웅장하게 바뀐다.
“날아가는 비행기에 이 몸을 싣고서 떨어지는 낙하산에서 생각을 합니다.
처녀 열아홉 살 아름다운 순정의 아일러브 유.
라이라이라이라이 차차차 라이라이라이라이 차차차
나라 위해 바친 이 몸 초개와 같고 화랑정신 이어받은 민족의 방패.
오늘은 어디 가서 점프를 하고 내일은 어디 가서 침투를 하나.
우리는 하늘의 독수리 사자들 용사들.
명예를 걸고 힘차게 뛴다. 리빠빠 리빠 리빠빠 리빠.”
“군가 한다, 군가. 군가는 하늘의 백장미. 한나 둘 셋 넷.”
영화 〈공수작전(1978년)〉주제가다.
“노래하자, 노래. 노래는 ‘정찰대가’. 핫 둘 셋 넷.”
“내……뽀뽀……정찰대……가……빠 훈……고……낙……탄……”
실제로는 이런 식으로 들리게 된다. 촌락 입구의 다리 앞 졸졸거리는 개울가에 박힌 반환점을 돌고 다시 뛰어 올라갈 때 헉헉대기 시작하면 이런 걸 선곡(選曲)한다.
“악이다 깡이다. 군가는 찢어진 워커. 한나 둘 셋 넷.”
“찢어진 워커를 벗 삼아 우리는 정찰대.
날뛰는 특수 팔 군단 빠개기 위해서
팔도에 놀던 건달 정찰대에 모였다.
갈채를 져버리고 백골령을 누빈다.
닝기미! 씨×랄! 갈아서 마시자.
제대하는 그날까지 (각자 소속)정찰대.”
아니면 이런 걸로.
“(중략)조랑말의 바쁜 걸음 삼돌이가 재촉하네.
이랴 가자. 어서 가자. 꽃가마도 춤을 추네.(하략)”
입소병들은 땀으로 목욕하면서 채찍에 맞는 조랑말들처럼 가파른 산길을 달음질쳐 올라간다. 그다음에는 특공 장애물을 기어오르고, 매달리고, 올라서고, 통과하고, 타 넘고, 버티고, 건너뛰고, 뛰어내리고, 떨어진다. 조교들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할 땐 전통과 창조가 버무려진, 누가 그렇게 심혈을 기울여 세심하고도 정교하게 구성해냈는지―무슨 행동심리학 이론까지 참조했던 듯하다.―구형과 신형이 총망라된 각종 ‘얼차려’를 받는다. 날마다 내달리며 무지하게 박자 빠른 ‘공수가’ 등등을 박수에 맞춰 음정 무시하고 소리 질러대서 폐활량이 커지고 근지구력이 발달 된다.
C.W 학습이 없는 밤에는 야간 침투 훈련, AM과 FM 장비를 사용한 통신교육, 암어(暗語) 조립 및 해독, 지도와 나침의*1를 사용한 독도법, 제한 시간 내에 북한 해당 지역의 지도를 통째로 외우고 그대로 그걸 그려내는 백지전술(白紙戰術), 적(敵) 전술, 가장술(假裝術), 은거 및 생존술, 적 장비 식별, 첩보 수집, 관찰 묘사 등의 복잡한 교육이 정신없이 바쁘게 돌아갔다. 거기다, 절취(竊取) 및 해건술, 도피 탈출, 투검(投劍) 등 무성(無聲) 무기 사용법 등도 숨 돌릴 틈 없이 이어졌다.
“검…… 복장 삼킬…… 나……야 언제나 독사 같은 사나이…….”
군가는 병사의 심경을 변화시킬 수 있는 어떤 알 수 없는 힘이 있는 듯했다. 그런 노래들은 고사(故事)에서 전하는 제나라 관중의 〈황곡(黃鵠)의 노래〉나 〈장가(長歌)〉*2 같은 효과를 낼 것이었다. 박자가 빠르고 경쾌한 〈황곡의 노래〉를 부르며 내달린 병사들은 이틀 노정(路程)을 단 하루 만에 돌파했고, 오(吳)나라 장군 유찬(留贊)이 적 앞에서 먼저 목청껏 노래를 불러 병사들을 따라 부르게 한 뒤 진격하면 항상 승리를 거두었다고 했다. 서정락에는 절대로 불러주기 싫었던 그 ‘독사가’를 결국엔 그도 악악대고 있었다.
아침부터 날씨가 바짝 달아올랐던 날이었다. 비탈길을 오를 때 절반이 낙오했다. 죽어도 더는 못 뛰겠다는 몇은 조교를 뒤에 달고 오리걸음으로 이동했다. 웩웩거리며 그들은 노란 물을 올렸다. 낙오병들에겐 세심한 배려가 베풀어졌다. 조교들은 특공 장애물 코스에서 그들에게 모자랐던 체력과 근성을 보충시켰고, 특히 호연지기(浩然之氣)를 함양시켰다. 낙오자 중 404 정찰대대의 신병들은 소속 중대 고참들에게 다시 연병장으로 끌려가 오로지 우승자만을 뽑는 육상경기에 따로 임해야 했다. 그들에겐 식사 시간도 몰수되었다.
정찰대원에게 가장 중요한 요건은 세 가지였는데, 첫째는 잘 뛰는 것이었고, 둘째는 잘 달리는 것이었으며, 셋째는 무조건 잘 뛰는 것이었다. 다른 필요한 자질 두 가지 중 하나는 오래 뛰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산길을 오래 뛰는 것이었다. 원체 구보에는 약했던 신병들도 특별한 보충 훈련으로 인하여 능력이 향상되었다. 군대의 ‘얼차려’라는 것은 그래야 맞았다.
점점 재미도 붙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는 특히 그 부산 사나이의 열띤 독려에 취해, 그리고 머리 저린 난감한 번민을 회피해보려고 온갖 종류의 그런 교육에 그저 집중하고만 있었다. 어딘가 드높은 곳에 서 있는 듯한 그 내무반장을 쳐다보며 그는 순진하게도, 팔뚝의 멍이 이젠 회색으로 분해돼가듯 지난(至難)한 시간들을 견뎌 낸 후 언젠가는 병장 계급장을 박게 되었을 때의 자신을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는 그래서 고민스러웠다.
괜찮은 시간들은 원래부터 너무 빨리 지나갔었다. 아직 404 정찰대대에 남겨진 어느 정도만큼의 시간들도 조각조각 쪼개져 쫓기듯 부랴부랴 사라져갔다.
“자넨 왜 읽었다고 지금 거짓말을 하나? 아니다. 그린베레*3 출신이다.”
중사의 확고한 소신은 그의 얼굴에다 뜨거운 물을 확 끼얹은 것 같았다. 사정은 이랬다. 역시 답 않 나오는 직업군인이 하나 있었다. 후덥지근한 어느 내무반 침상에 입소생들이 정렬하여 그 교관에게 절취․해건술 이론교육을 받던 중이었다. 두툼한 괘도를 계속 넘기는 게 따분해졌는지 교관이 물었다.
“에, 불타는 사나이라고 혹시 읽어본 사람 있나?”
분위기로 볼 때 그 교관 말고는 그걸 읽었으면 안 되는 것이었지만 한참 모범생 노릇을 하고 있던 그가 앞뒤 가리지 않고 손부터 들어버렸다. 교관이 살짝 째리며 떨떠름하게 물었다.
“어……? 그래, 사 사단.”
마크 확인할 필요 없이 민무늬 전투복은 4사단이었다.
“그 책을 니가 읽었다고? …그으래? 에, 그럼, 주인공이 어디 출신이지?”
중사가 취조했다.
“미국입니다(아, 주인공의 국적을 묻는 게 아닌 것 같았다.). 아니, 외인부대 출신입니다.”
그가 대답했을 때 중사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확언했다.
“아니다.”
중사는 뭔가 잘못 알고 있었다. 교육 관련해서 그 중사가 거론한 책은―설마하니 그런 것도 있겠냐마는 〈불타(佛陀)는 사나이〉라는 제목을 가진 종교적인 듯하면서도 뭔가 야릇한 뉘앙스가 풍기는 책이 아니라면-A.J. 킨넬의 소설이 맞았다. 노인네지만 영웅적인 그 미국인 보디가드는 분명히 프랑스 외인부대 출신이었다. 중사가 그걸 읽었던 게 사실이라면 오히려 제 기억이 왜곡된 것이었다. 중사는 미 그린베레를, 더 정확히 말하면 레인저(Ranger)*4의 훈련 과정을 모델로 만들어진 ‘검은 베레’*5 출신이었고 그래서 그린베레 편이었다. 중사는 주인공 클리시를 대서양 건너의 다른 부대로 전출시켜 버렸다.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확실한 물증은 그의 부친 집 골방 라면상자 안에 처박혀 있을 테니까.
“예. 알겠습니다. 그런데 진짜 읽었습니다.”
그렇게는 말했지만, 괜히 설쳐댄 게 그는 상당히 후회스러웠다. 기분을 잡쳐버린 중사는 다시 괘도를 쌀쌀맞게 넘기기 시작했다. ‘겨우’ 사병은 확실히 제가 알고 있는 것을 안다고 해선 안 되는 것이었다. 그린베레는 개뿔……, 까라면 그냥 까라는 거구만, 그의 달아오른 얼굴은 잘 식지 않았다.
가끔가다 시원한 산바람과 산 아래에서 치고 올라온 열풍이 교대로 휘몰다 지나갔다. 부대를 싸안은 밀림이 바람에 일렁거렸다. 쓸리며 타닥대는 밀림 위로 그의 눈에 어느 여인이 어른거렸다. 그녀가 애달팠다.
이제 입소병들은 매일 밤 C.W 시험을 치렀다. 그가 국민학교 1학년 때 하던 것과 비슷한 일종의 ‘받아쓰기’였는데 일정한 점수가 나오지 않은 인원들은 체벌받고 난 다음 다른 내무반으로 가 나머지 공부를 해야 했다. 그와 이권휘, 손정원은 맨 처음의 받아쓰기를 통과한 여 나무 명에 끼어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다. 천정에서 선풍기가 힘겹게 회전했다. 그들이 잠들 때까지 전건 치는 환청이 울렸다.
“도돈쓰돈 돈 쓰쓰도돈 쓰쓰돈쓰 쓰돈쓰 쓰 도돈쓰돈 돈 도돈쓰돈 쓰돈쓰 도돈쓰 돈쓰도돈 돈 쓰돈쓰 쓰쓰돈 돈 쓰돈쓰 쓰쓰돈 돈 도돈쓰돈 쓰돈쓰 쓰돈쓰쓰 돈쓰도돈 도도도돈 도돈쓰돈 쓰돈쓰 도돈쓰 도돈쓰돈 쓰돈쓰 도돈쓰 쓰도도돈 돈쓰돈돈쓰 쓰돈쓰쓰―.”
이런 노래였다.
나 태어난 이 강산에 군인이 되어―.
*1 나침반의 군사용어.
*2 진수(陳壽, 233~297)의 《삼국지(三國志)》 〈오서(吳書)〉에 장가입진(長歌入陣)의 고사가 있다. 군사의 사기를 높이기 위하여 소리 높여 부르는 노래를 뜻한다.
*3 직역하면 ‘녹색 베레모’라는 뜻으로, 미국 육군 특수부대의 별칭이다. 각 부대원은 격투술ㆍ암호해독ㆍ의료ㆍ어학 등을 익힌 엘리트로 암녹색 베레모를 쓴 데서 그린베레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4 그린베레, 델타포스와 함께 미국 육군의 3대 특수부대. 미국 육군 특수작전 사령부(USASOC) 소속의 경보병(light infantry) 특공부대이다. 전통적으로 착용해 온 ‘검은 베레모’가 유명하다. 레인저부대의 임무는 어떤 악조건하에서도 적진에 맨 먼저 침투, 신속한 공격을 통해 활주로와 기타 목표 지점을 점령한 후 증원군이 도착할 때까지 사수하는 것이다. 특히 공항 점령과 기습은 이들의 가장 중요한 임무이다. 모두 자원병으로 이루어진 레인저는 공중, 지상, 해상 등 어떤 경로로도 침투하고 극지, 정글, 사막, 산악 등 어떤 상황에서도 싸울 수 있도록 지옥훈련을 받는다. 베트남전 이후 각 보병, 공수사단에 산재한 레인저 중대가 통합되어 ‘제75 레인저연대’라는 단일 지휘 체계로 발족했다.
*5 한국 육군 특수전사령부 대원들이 쓰는 검정 베레모 혹은 그 부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