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 징

김욱래 장편소설 《이탈-그 여름의 추억록》 제3부

by 김욱래

공정대에서 차출됐던 이들은 흉장의 향수가 남아 있었다. 그것도 마저 달아야 우드랜드 패턴 룩(look)이 완성될 터였다. 줬다가 다시 뺏는 것은 못 할 짓이었다. 가슴 주머니에 휑하니 남은 흉장 자국은 그네들을 허전하게 했다. 그거 하나 없으니 이젠 친척, 아니 남남이 된 공정대 병력에 꿀려 보였다.

흉장은 그 육군 특작 부대의 지휘관이 책임 지휘관이란 의미를 가지며, 그 대원들의 자부심을 상징했다. 베트남전 중 미 공수사단과 보병사단에 배속되었던 레인저 중대원들의 검정 베레*1나 미 육군 특전단의 그린베레처럼 특수부대들은 유독 부대원들의 사기를 북돋기 위한 어떤 상징들이 필요했다. 1961년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한 존 F. 케네디는 젊고 패기 있었으며, 때론 낭만적이었다. 노스캐롤라이나주에 있는 육군 공수부대와 특수작전부대 기지인 포트 브래그(Fort Bragg)를 방문한 그는 종종 18공수 군단 예하 제 82공수사단 등을 사열했다. 하지만 그에게 더욱 흥미를 준 것은 ‘육군 특전 부대(Army Special Forces)’였다. 케네디가 육군특전부대의 증설과 창설을 지시한 후 그 일로 바쁜 포트 브래그를 그해 10월 다시 방문했을 때 특수전 센터의 지휘관 야보로 준장이 쓰고 있는 암녹색 베레모를 보고 물었다.

“장군, 멋진데요? 그 모자를 좋아합니까?”

“옛, 각하. 저와 대원들은 이 베레를 오랫동안 원해왔습니다.”

야보로는 그렇게 대답하면서도 한편으론 머뭇댔다. 사실 그는 상급 지휘관의 명령을 어기고, 그날도 자신에게 빗발칠 따가운 시선을 잘 알면서도 대통령 앞에서 대원들을 위해 암녹색 베레모를 쓴 것이었다. 그 모자는 공식 군모가 아니었기에 포트 브래그 사령관은 ‘누구든 걸리면 영창에 쳐 넣겠다’ 라는 엄포와 함께 그린베레를 쓰는 행위를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었다. 훗날 야보로는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최고의 엘리트 대원, 최고의 엘리트 부대에 부응하는 의미심장한 상징이 필요했다.’

그렇듯, 비공식적이지만 오랫동안 특전대원들이 애용해 온 그린베레를 통수권자인 대통령으로부터 인정받아 부대의 자존심과 대원들의 사기를 높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미 육군에서 누가 최초로 그린베레를 썼는지는 불확실하지만, 그린베레가 처음 등장한 시기를 1953년으로 보는 게 일반적이다. 당시 제10 특전단 소속의 허버트 브루커 소령이 그 주인공이었다. 부르커가 독일에 파견을 나가자 그를 유심히 지켜봐 오던 제77 특전단의 로즈 피젤 중위가 그린베레를 구해 팀원들과 훈련장이든, 길거리든, 술집에서든, 그 어디서든 그걸 쓰고 다녔다. 이후 특전대원들 사이에 그 모자는 유행처럼 번졌고 포트 브래그의 ‘스모크 밤’ 언덕은 그린베레로 가득 차기에 이르렀다. 그들의 내면에는 여타 부대와 구별되고자 하는 무엇이 자리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같은 특전대원들의 태도와 미 육군 공식 복제를 따르지 않은 그린베레는 승인받지 못했다. 포트 브래그 안에서 그린베레를 둘러싼 어떤 갈등을 케네디가 감지했다. 백악관으로 돌아온 케네디는 특수임무를 수행하는 특전대원에게는 남다른 무엇이 필요하다고 결론짓고, 이런 메시지를 야보로 장군에게 보내주었다.

“……장군과 장군의 대원들은 국민과 자유세계를 위해 가치 있고 감동을 줄 수 있는 임무를 수행할 것입니다. 나는 그린베레가 다가올 고난의 시기에 남들과 구별되는 영예의 표상이 될 것임을 확신합니다.”

이렇게 해서 그린베레는 미 육군 특전 부대를 위한 공식 군모가 될 수 있었다. 레인저의 검정 베레나 그린베레와 같이 한국 육군 특수전사령부의 ‘검은 베레’나 군단 공정대 및 사단 기습 대원들에게 지급되는 위장복과 흉장은 자부심의 원천일 수 있었다.

어느 땐가 그가 복도를 지나다가 문 열린 어느 내무반에 커다랗게 붙여놓은 타원형 그림을 보았다. 밝은 파란색 바탕 앞에 아가리를 벌린 검은 박쥐가 정면을 향해 서양의 용(龍) 같은 날개를 펼쳤고 날카로운 발톱으로는 긴 칼을 한 자루 움켜쥐고 있었다. 하단 양쪽으로 ‘정찰’이란 노란 글씨가 있었는데 단박에 흉장 시안(試案)이란 걸 알았다. 물어보나 마나 파란색 배경은 공중침투 및 그 창공일 테고, 박쥐는 육군정보학교*1의 상징일 것이었다.

그가 이권휘에게 들었던 바로는 4사단 정찰대 창설 직후 기습대에서 온 인원들이 흉장을 붙이고 싶다고 대장에게 건의한 적이 있었다고 했다.

“(공수)윙 달면 됐지, 뭔 흉장이야? 그리고 우린 임무상 그런 거 달면 안 돼.”

그게 김계식 소령의 답변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그 상무 교육을 갔을 때 그는 그 부대의 흉장이 붙어있는 독사복을 받았었다. 특전 하사들은 따로 베레모 안쪽까지 자기 부대 흉장을 자수해 넣었는데, 그들은 베레모를 벗어 조심스레 학생들에게 구경시켰다. 그들의 그때 표정으론 그게 자신들의 정체성인 듯했다. 유기철이 되고 싶어 했던 헌병의 정체성은 까맣게 반짝거리는 하이바와 장교 피복, 하이힐 같은 전투화며 쩔렁거리는 쇠구슬 링, 치렁치렁 늘어진 견실과 번쩍이는 황금 탄띠, 사람을 패 조질 때 쓰는 경봉, 그 외에도 여러 잡다한 액세서리들일 터였다. 유기철이 헌병이 못된 건 잘된 일이었다. 만일 그랬었다면 하이바 그늘아래 시커멓게 남은 구레나룻 자국은 다른 이들의 모골을 송연하게 만들고도 충분했을 터였고 그 성향으로 볼 때 여럿 잡고도 남을 게 분명했다. 헌병은 그런 치장들 때문에 우월한 존재들이었다. 야시시하게 차려입은 헌병 근무자들이 떠오르자, 그의 입안 가득 쓴물이 고였다.


“다 담 달부터 단댜. 여기는.”

내무반으로 뛰어 들어온 이권휘의 얼굴이 상기돼 있었다. 그가 가져온 첩보는 이랬다. 그 파란 거 말고도 여러 내무반에 다른 도안들이 붙어있다. 벌써 여기 대대장은 품평회를 거쳐 최종 채택될 흉장 디자이너에게 포상 휴가증을 걸었다. 여기도 졸지에 창설되어, 그걸 붙여야 하나 말아야 하나 처음엔 대대장도 헷갈렸다고 한다. 별달리 육군본부나 군단의 지침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404 정찰대대장은 병사들의 열화와 같은 건의 아니, 애원들을 묵과할 수 없었다. 거기다 특전사에서 온 하사관씩이나 되는 이들까지 무슨 애들처럼 졸라댔다. 그는 배짱을 부렸다.

“그래, 까짓거, 흉장도 못 달면 군단 마크하고 공수 윙도 다 떼는 게 맞아.”

흉장 문제는 지휘관이 전부 책임지기로 했고, 그 자신도 물론 그걸 붙이고 군단에 들어갈 작정이었다. 404대대장은 자기 부대를 사랑하고 있었다. 그들은 그렇게 옹기종기 산속에서 재미나게 살고 있었다.

흉장을 붙이는 것이 더 ‘특작’스러운 것은 맞았다. 그도 예전에는 ‘빌어먹을’ 흉장을 달아보고 싶었었지만 이젠 구차스럽고 모두 부질없는 일이었다.




*1 베트남전 중 미 레인저들은 비공식적으로 검정 베레모에다 철제 은색 공수 윙 배지를 달았다.

*2 1949년 한국 육군본부 직할 부대로 경기도 수색에서 창설됐다. 한국전쟁의 영웅 백선엽 장군이 초대 학교장을 역임했다. 한국전쟁 등을 겪으면서 임시 폐교됐으나 83년 정보 병과 개설과 함께 재창설됐다. 초기 소규모 부대로 통역 등 극히 제한적인 임무를 수행했으나 지금은 인간·신호·영상·땅굴 탐지·전자전·무인항공기 등 고도의 장비를 운용하는 최정예 첩보·정보 요원을 양성하고 있다. 과거 정보학교의 상징은 박쥐였다. 야간에만 활동하는 박쥐를 형상화해 ‘음지의 전사’로 헌신한다는 정보의 신조를 엿보게 하였다. 박쥐는 사람의 귀로 들을 수 있는 것보다 1,000배나 더 정밀하게 들을 수 있다. 박쥐의 어원이 ‘밝쥐’로 눈이 밝다는 것도 의미한다.

keyword
화요일 연재
이전 14화요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