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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욱래 장편소설 《이탈-그 여름의 추억록》 제3부

by 김욱래

행정반을 나선 그가 유기철과 같이 위병소에 갔을 때 모친은 여자와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정문 앞에서 유기철과 여자는 택시를 탔다. 살이 익을 듯한 오후였지만 읍내까지는 그리 멀지 않았기에 모친에게 그가 걷자고 했다. 그는 도로를 따라 쳐진 철망 안으로 연병장 건너 장난감같이 늘어선 특공 장애물 교장과 맨 끝 쪼그만 접지대를 돌아보면서 읍내로 향했다.

생각 없이 들어간 자그마한 식당에서 점심을 대충 끝낸 후, 먼 곳까지 세 번 버스를 갈아타고 온 모친이 상당히 피곤해 보여서 그가 찾아낸 것이 신병교육대 퇴소식 전날 묵었던 골목길 여관이었다. 그 여관방에서 들어서서 누구를 만나러 가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로 그와 모친 사이에 약간의 실랑이가 있었고, 결국 그는 돈을 조금 받아 요를 깔고 드러눕는 모친을 보며 거길 나섰다. 그는 모친에게 무슨 국민학생 취급받는 것에 짜증이 일었으나 꾹 눌렀다.

택시는 맨 처음 그가 지프에 실려 오던 길을 다시 거슬러 탔다. 창밖으로 스치는 논밭을 보고 앉았자니 제법 시간은 흐른 듯했다. 그런데도 제길……, 자신은 겨우 이등병 3호봉이라고 생각하니 한숨만 흘러나왔다. 택시는 신병교육대 못미처 면 소재지 사거리에서 우회전하여 기습대 위병소 앞에 섰다.

“허, 동기 보고 싶어서 말야? 이등병이?”

얼룩무늬 군복의 눈썹이 쓰고 있는 위병 헬멧에 닿도록 치켜 올라갔다. 그 병장이 어디론가 전화를 돌렸다.

“그래……. 그렇다니깐……. 야, 정찰대 이등병이 2중대, 그래, 한상진이 면회 왔단다. 의리 죽이지 않냐? ……그러게 말야. 위병소 면회라도 시켜 줘야 할 것 같다. 그래……. 그럼 내보내!”

흰 반팔 러닝셔츠에다 밑단을 접어 올린 얼룩무늬 바지의 슬리퍼 차림으로 뛰어나온 135번이 상체가 뒤로 휘도록 위병 근무자에게 경례를 붙였다. 청소 따위를 하다가 막 불려 나온 것 같은 135번의 깡마른 얼굴은 차라리 흙빛이었다. 면회는 10분간 위병소에서 허락되었다. 정문 근무자의 눈치를 보며 감시를 살짝 위병소 옆으로 돌아가서 135번에게 그가 담배를 건넸다.

“……넌 괜찮냐?”

아직 황당한 얼굴의 135번은 입가만 머쓱하게 웃고 있었다. 135번에게도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듯했지만 입을 열지 않았다. 말하지 않아도 뻔한 일이었다. 그런 135번의 손에 만 원짜리 한 장을 그가 쥐여 주었다.

“생활 잘해라. 상진아. ……난 간다.”

“너, ……너 혹시? ……휴.”

135번이 담배 연기인지 한숨인지를 길게 내뱉었다.

“……그래, 그러는 건 네 선택이지…….”

그는 135번의 멍한 흙빛 얼굴을 뒤로 하고 돌아섰다.

읍내로 들어온 그는 허름한 지하 목욕탕을 찾아냈다. 그가 그러니까 아주 맨 처음, 106 보충대로 들어가기 약 한 시간을 남겨놓고도 사우나로 뛰어 올라갔었다.

그때 늠름한 몸뚱이는 계속해서 떨려댔다. 한증실의 120도에 달하는 매캐한 열기 속에서 그는 넋을 놓고 앉아 있었다. 흰 살갗에서 땀줄기가 물 흐르듯 했다. 십여 분이 지나자 타는 것처럼 콧구멍과 입술이 따가웠고, 폐부는 매서운 열기로 따끔거렸다. 그는 숨이 막혔다. 견딜 수 없이 어지럽고 답답해서 그냥 뛰쳐나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래도 그는 그대로 버티고 있었다. 그 다음엔 뒷머리가 아득해지면서 눈앞의 알루미늄 출입문이 좌우로 천천히 흔들렸다. 그는 거기서 끊임없이 생각했다. 체액은 엄청난 속도로 빠져나가며 고갈되었다. 이내 그는 상체를 구부정하게 말아 무릎에 팔꿈치를 고였다. 앞으로 섞여야만 할 인간들이 그는 싫었다. 이제 그들 속으로 들어가야 하지만, 다른 어느 곳으로도 갈 데가 없었다. 그는 절망적으로 초조해했다.

한참을 그러고 있자니 그의 몸뚱이에서 불안의 담즙 같은 것도 이젠 거의 빠져나간 듯했다. 몸 떨림이 잦아들었고, 마음도 좀 진정됐다. 그러나 여전히 그의 눈은 무거웠다. 그런 순간에 필요한 아무런 기억도 가지지 못했다는 걸 그는 발견했다. 탈수증세로 인한 공포감으로 비틀거리며 뛰쳐나와 냉탕에 뛰어들었다가 다시 한증실로 들어가기를 반복했고, 시간은 이제 10분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물기를 닦고, 옷을 입고 나와서 택시를 잡아타는 자기 행동들은 그의 통제를 받지 않는 듯했다. 106 보충대 철문 안쪽까지 레일이 깔려 있고 그의 몸뚱이는 제동장치가 고장 나버려 멈출 수 없는 고속 기관차처럼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렇게 미끄러져 들어가는 자신의 몸뚱이를 그는 어렴풋이 감지했을 뿐이었다.

철문 안쪽에 내려섰을 땐 이미 자신은 허락 없인 밖으로 나갈 수 없는 군인의 신분이 되어있었다. 같은 처지의 200여 명 장정이 시멘트 스탠드에서 웅성대고 있었다. 막사 2층에 달린 스피커가 울렸다.

“가족·친지 여러분께서는 이제 돌아가 주시기 바랍니다. 아무 염려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아들, 동생, 애인들은 이제 멋진 군인이 되는 겁니다.”

잠시 후 보충대의 커다란 철문이 안에서 잠겼다.

정확히 81일 전을 떠올리면서 그는 좁아터진 한증막에 앉아 땀을 뺐다. 여관방으로 돌아왔을 땐 부대에서 나온 지 벌써 네 시간이나 훌쩍 지나있었다. 모친과 삼겹살집에서 이른 저녁을 먹고 나니 또 한 시간이 넘게 지나갔다. 그는 초조했다. 그는 어디 가서 술이라도 좀 마시고 오겠다고 하자 그녀가 만류했다. 아직 날은 밝은데도 어쩔 수 없이 그는 여관방으로 들어갔다. 이러려면 여관방이나 내무반이나 매한가지였다. 사 들고 온 캔맥주를 그가 맥없이 땄다. 그녀와 몇 마디 주고받던 중 그가 그냥 지나가는 말처럼 물었다.

“근데, 서울 이모는 잘 계세요?”

“에휴. 니가 그 지랄을 하고 나와 가지고……. 요즘엔 그래도 가끔 연락은 하다만.”

그녀가 타박했다.

“잘됐네요.”

“……아 참, 둘째 딸내미, 그래, 현주가 어디 외국으로 유학 간다지?”

그는 순간 가슴이 내려앉는 것 같았지만 말을 돌렸다.

“제가 뭔 지랄을 해요?” 하지만 그는 곧 다시 물었다.

“……그런데, 여기서 공부하면 되지, 그 집 돈 많아요? 어디로요?”

일부러 그는 별 관심은 없는데 그냥 한번 묻는 거라는 표정을 지으려고 했다.

“걔가 어디더라, ……호주? 아니, 그래, 뉴질랜드로 간다 그러데.”

그는 재빠르게 궁리했다.

“하긴 그땐 미안한 게 좀 있긴 해요. ……서울 이모한테 전화 한 통 해야겠어요. 저 잘 챙겨 주셨었는데…….”

“이제 사람 좀 됐냐?”

그녀는 핀잔을 주었지만, 그는 그 전화번호를 다시 외웠다. 그 번호가 적혔던 수양록은 예전에 태워졌었다.

모로 누운 모친은 코를 골고 있었다. 그녀는 오침 꿈속에서 작고 파란 땡땡이가 쳐진 하얀 원피스의 처녀 같던 모습이 아니었다. 곤히 잠든 그녀를 덜렁 여관방에 남겨둔 채 그는 그럴 수가 없었다. 지금 당장은 그녀의 엄청날 절망을 감당할 결심이 서지 않았다. 그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누웠다가 일어나기를 반복했다. 자정은 벌써 넘겼다. 그는 여관을 나서서 아직 불을 끄지 않은 슈퍼를 찾아냈다. 입대 전, 그 청명했던 시절에 칸초네(canzone)를 틀어놓고 ‘토닉워터’를 타 마시며 취해서 더 명징(明澄)해지는 정신으로 문장들에 빠졌던 ‘나폴레옹’* 작은 병을 하나 사 왔다. 그때는 그의 영혼을 취기로 명료해진 어떤 문구들이 멜로디에 젖어 들며 격렬히 진동시켰었다. 돌아보면 눈물 날 정도로 행복했던 시간과 공간이었다. 그때는 지독하게 외로웠었지만, 인제 와 그가 생각하니 그때가 만 배나 행복했었고 외로움은 그대로 희열이었다.

그는 방충망을 열고 창틀에 올라앉아 골목길을 내다보고 있었다. 더위가 가신 새벽공기를 쐬면서 병째로 한 모금씩 들이켰고, 속이 알싸해졌다. 일단 날이 밝으면 일찌감치 그녀를 돌려보내야 한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는 조금 취했다. 잠깐 잠이 깬 그녀가 돌아누우며 잠에 취한 목소리로 안자고 뭐하냐고 물었다. 그가 멍하니 말했다.

“그냥 강물에 빠져 죽고 싶어요.”

그녀는 벌떡 일어나 앉았지만, 액면 그대로 그 말을 믿는 것 같지는 않았다. 곧 그는 후회했다.

“아니, 아니에요. 괜히 해본 소리니까 그냥 주무세요. ……죄송해요.”

잠시 후 다시 그녀는 자리에 누웠다.




* 해태제과에서 만들었던 럼주로, 포도를 이용하여 만든 알코올 함량이 적은 술. ‘나폴레옹’이 처음 출시되었을 당시 1병당 2,000원 안쪽의 저가형 양주로서 같은 시기 롯데제과에서 출시한 ‘캡틴 큐’와 경쟁을 벌였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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