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미널

김욱래 장편소설 《이탈-그 여름의 추억록》 제3부

by 김욱래

“여보세요?”

엇비슷한 목소리였다. 놀란 그는 수화기를 후다닥 놓아버렸다. 이런 바보 자식, 하고 자신을 책망하며 그는 다시 수화기를 들었다. 그녀였던 것 같았다. 발개졌는지 얼굴이 뜨끈 거렸다.

지난 저녁 그는 작은 슈퍼 앞 공중 전화박스에 서 있었었다. 그녀의 모친이나 다른 이가 받으면 그냥 끊으려고 했었다. 대단한 긴장 속에 그는 다시 다이얼을 돌렸다.

“여보세요?”

그녀였다. 그는 말하지 못했다.

“여보세요?”

그녀가 확실했다. 그는 후, 하고 안도했다.

“아, 저… 저예요….”

“누구…?”

“…저 우권이. 여기 전화가 좀 그래요. 후져서…….

그는 애꿎은 전화 상태를 탓했다. 그녀를 ‘누나’라고 그는 부르고 싶지 않았다. ‘누나’에게 전화한 게 아니었다.

“…어, 그래. 군대 간 거는 들었어. …그곳 …힘들지?”

그녀는 그의 이름은 부르지 않았다. 그녀의 목소리는 약간 겸연쩍은 듯했다. 그런데 마지막 ‘그곳 …힘들지?’라는 말의 여운에 그의 가슴이 짠하게 녹았다. 힘들긴…? 그렇게 순간 그는 하나도 힘들지가 않았다.

“다 하는 건데요. 뭘…….

그러면서 염두에도 없던 서울 이모와 그녀의 언니, 남동생의 안부를 묻고 자신은 아주 잘 있다며 호탕하게, 실제론 약간 더듬거리며 떠벌렸다. 그녀는 가끔 대답했다. 그런데 그녀는 다시는 못 볼 사람에게 그러듯 최대한 예쁘게 말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집엔 그녀 외엔 아무도 없는 듯했다. 이젠 멀리 떠나야 한다는 기분 때문일까…,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계속 그런 식으로 수화기를 붙잡고 있는 것도 이상했다.

“저… 거기, 뉴질랜드 간다면서요.”

“…들었니?

“가시기 전에 한번…(보고 싶은데) (내가) 군대에 있어서… 언제 가요?”

“…응, 곧. 엄마 따라 한번 가봤었는데 난 거기 좋더라. 공부 끝나도 거기서 살려 구.”

그녀가 그렇게 재잘댔다. 그래서 그도 명랑한 톤으로 바꿨다.

“언제 커피 한잔하러 가도 돼요?”

그가 개구지게 물었고, 그녀는 갑자기 침묵했다. 하지만 잠시 후

“언제? 제대하고? …그래! 한번 와라. 같이 여기저기 구경하고 맛있는 것도 사 줄게.”

그녀는 선머슴처럼 활달하게 말했다.

“진짜요? 그런데 그런 것보다 어떻게 사는지도 보고… 또, …할 말도 있어요.”

곧 한참 동안의 침묵이 흘렀다.


대화는 잘 풀리지 않았다. 갑자기 수화기 너머에서, 결심한 듯 활기찬 목소리가 들렸다.

“그래, 꼭 와! 진짜지? 언제 올 건데?”

그때 그녀의 새된 목소리는 누굴 떠보려는 듯 장난기도 섞여 있었다. 그런 그녀의 목소리가 그는 예뻤다. 진짜 여자의 음성이었다.

“언제든! 나 장거리 공중침투 부대에 있어요. 특수부대! 하하. 뭐 뉴질랜드쯤이야 금방 갈 수 있어요. …기다릴래요?”

그는 스스로 생각해 봐도 유치한 허풍을 떨었다.

“너… 아주 힘든 데로 …갔구나. 진짜 괜찮은 거니?”

“특수부대니까 뭐 좀 그렇기도. 그래도 별로 안 힘들다니깐.”

“…그래, 건강 챙기고 꼭 보자. 기다릴게. …전화, 부대에서 하는 거니?”

그녀가 도와주었다.

“…아, 예. 이제 끊어야겠어요. 할 일이…….

그는 그렇게 수화기를 내렸다. 부대엔 전화도, 전화가 있는 PX도 없다. 그녀의 목소리는 진지했다. 그것만으로 그는 충분했다. 그는 혹 그녀가 약속을 번복할까 봐 겁도 났고, 거기서 멈춰서 그 예쁜 목소리를 그대로 기억에 담아두고 싶었다. 그는 기쁨과 설렘으로 가득 찬 가슴을 언제까지라도 유지해 내고 싶었다.


창틀에 박혀있던 엉덩이가 배겨왔다. 그때 커피를, 그 비엔나커피를 마셨더라면 그녀는 떠나지 않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랬었더라면 자신은 어쩌면 더 견딜 수 있을는지도 몰랐다. 캉캉대던 세라도 예전에 죽었다고 했다. 담배꽁초 몇 개를 비벼 껐는데 후끈해지며 날이 뿌옇게 밝아왔다.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그가 오전 중으로 모친을 돌려보내려 했지만, 그녀는 뭔가가 걸리는지 점심을 꼭 먹어야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시간은 모래시계 속에 흘러내리는 미세한 알갱이들처럼 쑥쑥 사라져갔고, 그는 울화가 치밀었다. 그녀에게 큼직한 가족사진을 한 장 받았을 때, 그 사진 속에는 당연히 자신이 있을 턱이 없었지만, 그게 그는 괜스레 서운했다. 그는 마지막 가족사진을 만지작거렸다. 아무것도 모르는 동생들이 정겹게 웃고 있었다.

점심으로 그는 짜장면을 먹고 싶었다. 국민학교와 중학교 졸업식 날 식구들과 함께 갔던, 큼지막하고 둥근 이중 테이블이 돌아가던 시내 그 2층 중국집의 쫄깃하고 맛나던 짜장면이 떠올랐다. 그 집의 훈훈한 짜장 냄새를 한번 다시 맡아보고 싶었다. 그가 그때는 자꾸만 커서 어른이 되면 편하고 자유롭고 즐거울 줄로만 알았었다. 예전엔 까마득히 몰랐었지만 이제는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두려운 일이었다.

그는 길가 1층 중식집에서 짜장면을 시켰고 그걸 울컥거리며 먹었다. 그 집 짜장면은 그 땅처럼 짰고, 불어 터져서 떡처럼 붙었으며 전혀 맛이 없었다.


어쨌거나 큰 자식의 점심을 먹인 그녀는 약간의 걱정이 남긴 했으나 에이 설마, 하며 버스에 올랐다. 그는 차창이 열린 그 버스가 출발할 때까지 한참 동안 승강장 턱 아래에 우두커니 내려서 있었다. 드디어 집으로 돌아가는 그녀에게 손을 흔들어 보인 다음 그는 터미널 출구로 나와 계단 위에 무작정 서서 길 건너 맞은편 ‘전우사’ 쪽만 바라보고 있었다. 신병교육대 퇴소식 전날 부질없이 사제 팬티와 보급받은 고무링은 멋이 안 나서 자세를 잡아보려고 용수철처럼 생긴 가느다란 쇠 링을 샀었던 군장점이었다. 거의 한 시간을 그저 멍하니 그는 그 가게를 쳐다보았다. 그러는 중간에 그가 몇 번 움직여보려고 해봤지만 그게 잘 안됐다. 군화는 무쇠로 만들어진 것처럼 너무도 육중했고, 다리까지 굳은 것 같았다. 그는 꼼짝을 할 수가 없어서 초조히 담배를 몇 개비 피워 봤지만 헛일이었다. 그는 폐부가 터질 것 같았다. ‘전우사’가 빙빙 대며 회전했다. 인도를 지나가는 병사들이 자신을 흘낏대는 것처럼 보였다.


‘전우사’ 오른편으로부터 그의 귀에 익었던 쩔렁대는 쇠구슬 소리가 울렸다. 읍내를 순찰 중인 헌병들이었다. 그 둘 중 하이바 하나가 그가 서 있는 쪽으로 회전하자 기분 나쁜 빛이 망막에 반사되었다. 김철용의 음침한 눈이 하이바 아래에서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여전히 유달리 가는 발목이었다. 하얀 공수 윙이 솟은 모자챙 밑으로 그도 똑같이 김철용을 노려보았다. 아니, 더 맹렬히, 더한 증오의 눈으로 노려보았다. 김철용의 화이바가 흠칫하더니 다시 원래 방향으로 원위치했고 곧장 가던 길을 갔다. 그들이 쩔렁거리며 멀어져 갈 때 보폭의 박자에 맞춰진 경봉이 흔들렸다.

증오가 그에게 기운을 주었다. 이제 몸을 움직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돌아서서 터미널로 다시 들어가려고 했다. 어떻게 되든지, 헌병검문소 앞에서 버스가 멈추기 전에 창문으로 뛰어 내리든지, 밤이 될 때까지 숨어 있다가 들판이나 논두렁길로 뛰든지, 아니면 산으로 뛰어 올라가든지 일단 버스에는 타야 했다. 그는 도무지 그 읍내가 한국 땅의 어디쯤 붙어있는 것인지 알 길이 없었다. 동부전선이라니 남한 땅덩어리의 동북쪽일 테지만 지리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었다. 언젠가 자신이 본 적이 있는 지형이나 도로, 혹은 동네까지는 일단 빠져나가고 난 다음에 무언가를 생각해야 할 것 같았다.


“우권이! 여기서 뭐 하니?”

그가 흠칫했다. 일요일 외출을 나왔던 부대 반장과 병장들이었다. 그는 일단은 관등성명을 붙였다. 저녁 7시 귀대 시간까지는 아직 좀 남아 있었다. 그러나 일은 그렇게 흐르지 않았다.

“야, 혼자 방황하지 말고 따라와. ‘영다방’이나 가자.”

그들 셋은 제법 위해주는 척하면서 그에겐 전혀 불필요한 친절을 베풀었다. 그들은 화장품 냄새가 역겨운, 막 배달을 다녀온 다방 여급 두엇이 옆에 앉을 때마다 마시지도 않을 커피나 요구르트를 시켜주며 두 시간이나 시시덕댔다. 그는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화장실 핑계로 자리를 뜰까도 생각해 봤지만 한참 동안 이등병이 돌아오지 않으면 저희가 헌병처럼 설쳐댈 게 뻔했다. 5시가 복귀시간인 그들은 두 시간이나, 아니 120분이나 남아 있는 원통한 이등병을 택시에 기어코 태웠다. 그는 뒷자리 한복판에 끼여 앉혀졌고, 좌우의 몸뚱이가 밀착됐다. 그는 숨이 가빴다. 항공대 정문까지 레일이 깔려있고, 택시는 그 레일에 얹혀 미끄러져 가는 듯했다. 택시에서 내렸을 때 그는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그의 군복 속이 짜증스럽게 진땀으로 끈적였다.

화요일 연재
이전 17화레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