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욱래 장편소설 《이탈-그 여름의 추억록》 제3부
그곳은 세상으로부터 격리된 땅, 고래로부터의 유형지(流刑地)라 했다. 10월부터 4월까지 겨울이고 곧바로 여름이 연결된다. 병사들은 봄과 가을을 느낄 수 없었다. 언제나 아주 춥지 않으면 매우 더웠다. 운치라곤 없이 두 계절뿐인 데다가 첩첩 된 산과 널따랗고 긴 강물로 막힌 천험(天險)의 귀양지, 그게 그곳이었다.
그는 이제 절망했다. 자신이 묶여버린 곳이 도무지 그 강줄기 어디쯤 붙어있는지 알 길이 없었다. 그가 106 보충대에서 트럭으로 한참 동안, 무슨 선박대의 병력 수송선으로 오랫동안, 다시 트럭에 실려 깎아지른 듯한 산들 사이로 겨우 뚫린 구불구불한 도로를 달리고 험한 고개들을 넘어 수용된 그 땅에서, 행선지를 써 붙인 교통편에 올라타는 것 말고는 도저히 빠져나갈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가 병영의 울타리 밖을 나가본 것은 담가 작업을 하던 신병교육대 앞 논두렁길과 흙투성이 훈련복을 빨던 개울, 퇴소한 날 지프에 실려 오던 길, 사단사령부 앞길과 그 옆 600미터 고지 산길, 그 밤안개 속으로 끝 간 데 없이 놓여있었을 도로의 전적비까지, 그리고 트럭으로 갔던 공정대와 404 정찰대대까지의 복잡한 산골짜기 황톳길들과 복귀할 때 굉장히 기다란 다리가 놓인 그 강 물줄기 옆을 굽이치는 도로, 걸어서 나갔던 읍내까지의 길, 그 읍내 버스터미널에서 ‘전우사’쪽으로 건너가 ‘영다방’이나 여관, 식당들이 있는 골목길이 전부였다.
부대 담장 바로 밖에 붙은, 쑥색 파라솔 아래 둥근 시멘트 단 위에는 항시 헌병 하나가 지키고 서 있었고, 선박대 선착장에도 헌병검문소가 있었다. 신병교육대를 지나 군단 공정대와 정찰대대로 향할 수 있는 미치령 초입에도 역시 19사단 헌병검문소가 가로막고 있었고, 그 큰 강에 걸쳐진 긴 다리에도 또한 2층짜리 헌병검문소가 떡하니 버티고 있었다. 그 땅에서 벗어날 수 있는 모든 산길과 물길, 도로의 길목마다 헌병들이 눈을 번득였고, 그 나머지는 넓고 깊은 물과 위협적인 산악들이 첩첩이 둘러싼 천혜(天惠)의 수용소였으며 저주받은 요새였다.
헌병대 영창은 감옥 속의 또 다른, 조금 더 고통스러운 감옥일 뿐이었다. 사병은 그저 죄인이며 수인이었다. 이 나라의 사병이란 것 자체가 씻을 수 없는 원죄였다. 그는 그 땅에 대한 자신의 무지에 너무 화가 났다. 어느 정도 울분이 가라앉자 이젠 자포자기했고, 그리고 무기력해져 갔다. 결국 그는 더플 백 주기표에 가족사진을 꽂았다.
군단 정찰대대에서의 꿈결 같던 주특기교육 후 100(소총수)에서 060(정보)으로 바뀐 것 말고는 손정원의 낯빛은 다시 까맣게 죽어 들었고, 그의 동기 낯짝들도 죽을상이 되었다. 날들은 점점 더 달아올랐고 또다시 매일 연병장 평탄 작업과 부대 주변, 사단사령부의 제초 작업 등이 계속되었다. 상병급 이상들의 작태는 여전히 한심하고 너절했고, 일, 이등병들은 신선했던 3주 동안의 기분을 남김없이 털어내야만 했다. 그는 이제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무뎌진 머리로 그저 아무 생각도 없이 움직였다. 터질 것 같던 폐부는 어느덧 통증에 둔감해져 갔다. 일조점호 즉시 내무반으로 뛰어 들어와 엉성히 말린 모포를 펼쳐서 다시 개고, 각 잡아 관물하고, 매트리스 끝 선을 맞추고, 관물대들을 손보고, 배낭을 바로잡아 세우고, 방탄헬멧과 작업모 챙 끝선을 정렬했다. 세면장에서 침상 걸레를 빨아다 쿵쿵 무릎을 찧어나가며 걸레를 당겼다. 다 닦았던 침상 장판에 자신의 땀방울이 떨어져 있었고 그러면 다시 걸레질했다. 미세한 먼지 알갱이라도 한 톨 발견되면 손정원이 당할 터였다. 그는 이제 다른 이들은 두렵지 않았지만 자기 때문에 침상 조 선임이 힘들어지겐 할 수 없었다. 침상 정리를 끝내면 땀으로 들러붙은 러닝셔츠와 팬티가 끈적였다.
그 땅의 여름은 지독했다. 그는 손정원과 같이 하루에도 십 수 번의 침상 정리를 해대고, 작업 중 10분간 휴식 때마다 양손에 주전자를 잡고 물을 뜨러 내달렸다. 가느다란 작대기 하나 꺾어 들고 얼쩡거리기만 하는 깨끗한 장피의 장교 주위를, 담가를 잡은 일, 이등병들이 끊임없이 오갔다. 그들은 군 복무가 아니라 징역(懲役)을 살고 있었다. 그들에겐 뭔가 끊임없이 뉘우쳐야 할 것들이 많은 것처럼 보였다. 사람으로 태어난 것, 이 땅덩어리에 태어난 것, 남자로 태어난 것, 실수로 그만 고졸 이상 학력을 가졌던 것, 몸뚱이 어느 한군데가 병신이 아니었던 것 등등 반성할 것들은 부지기수일 것이었다. 그도 물론 반성할 것들이 많았다. 현역으로 입대한 것, 위장복을 입고 흉장도 달 수 있는 센 부대를 원했던 것, 그래서 더 강해지고 싶었던 것, 그래서 나약했던 예전의 자신을 감히 일신시켜 보려고 했던 것, 괜히 3단짜리 소 단증을 냈던 것, 4사단 정찰대에 멍청한 기대를 품었었던 것, 원체가 장교마냥 허옇게 생겨먹은 것, 자존심을 지키려 했던 것, 공놀이를 싫어했던 것, 그리고 무엇보다 이 나라에 태어난 것, 그런 모든 것이 다 엄청난 죄였다.
병장과 반장들은 나무 그늘 밑으로 기어들어가 자기들끼리 농지거리나 해대며 온종일 퍼질러 놀았고, 상병들은 욕지거리를 뱉으며 일, 이등병들을 닦달해 댔다. 끔찍하고 이 갈리는 여름이 계속되었다. 그는 담가 앞을 잡은 유기철이나 오기식에게 조용히 전했다.
“나 탈영한다.”
그는 일단 해 뜨는 방향을 동쪽으로 잡고 태백산맥을 넘어서 동해안으로 빠져나갈 작정이었다. 그다음에는 해변의 피서객들에 섞여 해안선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갈 계획을 세웠다. 언젠가 첫 휴가를 나가게 되면 미귀(未歸)하는 방법도 있을 터였다. 그러나 그건 그에겐 비겁한 짓이었다. 정정당당하게 탈출해야 했다. 그는 오기가 치밀었다. 그런데 부대 울타리 안에서는 그게 불가능해 보였다. 처음엔 많이 놀라기도 했던 그의 동기들은 다음 날, 또 그다음 날에도 여전히 담가를 잡고 있는 그를 비웃었다.
“대체 언제 갈 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