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욱래 장편소설 《이탈-그 여름의 추억록》 제3부
뜨겁던 해가 야산 위에 찢겨진 연회색 빛 구름들 사이로 저물고 있었다. 지금까지는 뜸했었지만 상병 주임의 책무가 원래 ‘한 따까리’나 구타를 적절히 활용, 부대의 기강을 확립하는 것이었다. 그건 육군복무규정엔 없고 그냥 자체 전통이었다. 조병주는 제가 좋아하는 취사장에서 행정계원을 뺀 후임 전체를 도열시켜놓고 그악스럽게도 패 조지고 있었다. 일인당 대여섯 대씩의 주먹이 꽂히면, 칵칵대면서도 한 대씩마다 관등성명을 뿜어냈다. 조병주의 원투 스트레이트에 이은 어퍼컷은 굉장한 콤비네이션이었고 놀라울 정도의 스피드였다. 조병주는 항시 서열을 중시했다. 최재필의 신음소리, 이권휘의 관등성명, 손정원의 몸통도 텅텅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조병주에게 펀칭 당하면서 혹 엄살 부리는 듯 비쳐지면 흡사 미국 프로레슬링의 반칙전문 선수에게처럼 접이식 철제의자로 내리 찍혔다.
“아주― 이 개새끼들이 군단 갔다 오더니 아주― ×나게 빠졌어요?”
주먹이 팍팍 꽂히는 소리, 이를 물고 끙끙대는 소리, 의자가 구겨지는 소리들이 취사장 벽에 탕탕 울렸다. 그러는 와중에도 쑥색 물이 상당히 빠진 조병주의 군복상의 단추들은 꼭꼭 저며져있었다. 그걸로 볼 때 조병주는 군인이었다.
그는 이내 질끈 눈을 감아버렸다. 여긴 사람 사는 곳이 아니다……, 저 새낄 진짜 어떻게 해버릴까……, 여기서 모든 걸 끝장내 버릴까……, 그러면서 그는 그런 꼴들을 또다시, 여전히 지켜보고 있어야만 하는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그러나 쉽게 결정내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모형문과 접지대에서부터 비롯된 상황이었다. 그날 조병주도 꼭 그러고 싶지는 않았었다. 병장만 달고 나면 다 신경 꺼버릴 생각뿐이었다. 그런데 그날 오전, 박쥐그림이 큼지막이 결려있는 내무반 교육 중
“뭐야? 이게. 병장씩이나 되는 녀석들이 밑에 애들 이따위로 관리하나?”
하고 김 소령이 상을 팍 찡그리며 나간 후 분위기가 확 변했다. 모형문과 접지대 앞에서 비아냥대던 그 병장 몇은 아무런 성가신 일 없이 그저 무사히 시간이 가 제대하기만을 바라던 터였다. 그러지 않아도 요즘 군단 다녀온 일, 이등병들이 썩 맘에 들지 않았었다. 거기서 저희들끼리 무슨 작당을 했었는지 눈치가 영 고까웠다. 조병주는 그들의 지령을 받았다. 개념 좀 확실히 잡게 만들라고.
서열대로 차례차례 패 조지던 조병주가 이제 그의 앞까지 왔다. 그는 때리면 그냥 맞을 마음이었다. 너무나 피곤했다. 그런데 갑자기 컨디션엔 이상 없어보이던 그 복서가 곤혹스럽고 난감한 표정으로
“아, 애새끼들 아주― ×나게 팼더니 손목이 다 아파요.”
하며 제 손목을 흔들어댔다. 멋쩍은 복서가 제가 지나온 대열을 둘러보았다.
“내 나우권은 못 때리겠다. 야, 이 개새끼들아. 내가 왜 그러는 지 알아?”
복서가 일갈했다.
“무섭잖아, 개새끼들아. ……느그들, 나한테 맨 날 ×나게 쳐 맞으면서 아주― 속으론 날 죽이고 싶었겠지? 아주― 하려면 나우권이처럼 해봐. 이 병신 같은 새끼들아.”
그러는 제 말에 제가 분했는지 복서는 아주― 비겁한 새끼들, 하며 중간에 섰던 일병 남창용의 가슴팍을 다시 마구 조져댔다.
“밤에 잘 때 같을 때, 한번 깨워서 사내새끼답게 원터치 한번 까자고 그런 새끼들 있어 없어? 난 아주― 그럴 수 있는 놈이 좋아. 느네 같은 새끼들은 그냥 아주― ×나게 맞아야 돼요.”
이건 그대로 그냥 지옥이었다. 떠드느라 침이 흐른 복서가 그에게 넌지시 일렀다.
“밖에 나가 망 봐. 행정반 쪽, 알지?”
그가 밖으로 나간 후에도 샌드백 치는 듯한 충격음과 의자철판이 우그러지는 소리, 낮지만 꺽꺽대는 신음소리는 한참이나 계속되었다. 거기엔 동기들의 신음도 섞여 있었다. 이 무슨 마귀의 무리란 말인가. 그는 질려버렸다. 모든 정나미가 떨어졌다.
토요일 오전은 원래 정비였다. 일병 하나가 대장실 쪽 공터에서 김 소령의 마크V 보닛에 왁스를 먹이고 있었다. 그걸 지나쳐 간 그는 대장면담을 신청했다. 이 상사도 따라 들어왔다.
“절 첩보대로 보내주시면 안되겠습니까?”
그는 더러워도 그쪽으로는 좀 알고 있을 것 같은 정보병과 김 소령에게 부탁해 볼 수밖에 없었다. 이미 다른 사단이나 군단으로의 전출은 불가능하지만 북파부대는 사형수들도 갔다고 했다. 한 목숨 조국에 던지겠다는데, 큰돈까지 준다며 데려간다는데, 나는 지금 자원하고 있지 않는가하면서 그는 자신이라고 못 갈 이유는 없다고 믿고 있었다. 그런데 김 소령은 인상을 찌푸렸고 곧 교활한 눈웃음을 지으며 비웃었다.
“영창이나 갔다 온 너 같은 놈이 거기서 버틸 수 있을 것 같애?”
영창은 제가 집어넣지 않았나. 하긴 서정락 으깬 걸 제 권위나 지휘에 도전했던 거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 그는 그렇게 짐작하면서도 자신이 있으며 잘 할 수 있다고 간청했다. 이 상사의 표정과 김 소령의 미묘한 눈초리에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하지만 잠시 후 김 소령은 엉뚱한 소릴 했다.
“현역은 안 돼.”
사형수도 됐는데 현역이라 안 된다? 그가 보기엔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이 상사가 후, 하고 숨을 내쉬며 말했다.
“대장님. 한번 ……고려해 보시는 게.”
순간 김 소령은 이 상사를 째려봤고 다시 입을 열었다.
“……너, 정 그러면 하사관 지원을 해. 호봉도 인정되고 사단 안에 다른 데로 보내줄 수 있지.”
참 알량한 권력이었다.
“하사는 싫습니다.”
그가 거부했다.
육군 하사관은 언제나 부족했다. 이제야 그는 김계식이 제 손으론 첩보대로 보내주지는 않을 거라는 직감이 들었다. 하사관지원자를 받으면 조금이라도 상부에 잘 보일 수 있고, 그래야 제 진급에 조금이라도 유리하다는 치졸한 계산이 읽혔다. 영창을 갔다 와도 하사는 써 준단 말이지? 젠장 맞을 놈, 너 같은 놈이 지금 국가로부터 죽음을 무릅쓸 요원 하나를 빼앗고 있는 거다. 너 같은 새끼가 전체공동체의 이익을 망치고 있는 거란 말이다. 이런 새끼들, 이렇게 함량미달인 새끼들로 채워놓은 조직이 결코 실전에서 강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는 김계식에게 부탁할 생각을 했던 자신이 경멸스러울 정도로 한심했다.
“넌 거기 갈 자격이 안 돼. 양 부모가 있고, 또…….”
그렇게 둘러대던 김 소령이 문득 다른 게 생각난 듯 이 상사를 돌아보며 비꼬았다.
“참, 얘 검정고시 출신이래죠? 거기선 또 얼마나 엉망으로 굴었으면 퇴학당했나?”
“제가 자퇴한 겁니다.”
기가 막힌 그가 사실을 주장했다.
“그거나 저거나지.”
김 소령은 다시 비웃었다. 세상은 그에게 언제나 이렇게 흘러왔었다.
“검정고시로 나온 놈을 직업군인 시켜주려고 했더니 얘, 싸가지가 없어요.”
김 소령은 참담한 얼굴로 방을 나가는 그의 등짝을 쳐다보며 경멸과 동정이 반반씩 섞인 야비한 눈웃음을 지었고 이 상사는 휴, 하고 한숨을 내쉬면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그들의 호적수이자 긍지가 높다고 인정하고, 가책 받더라도 그 긍지를 내버리지 않는 적과, 일반적으로 무릇 동정의 외침에, 즉 가장 불명예스럽고 가장 심각한 굴욕에 따르려 하지 않는 인간이 괴로워하는 것을 보는 것은 즐거움 중의 즐거움이다. 만약 그가 애통해 하고, 차가운 모멸의 표정이 얼굴에서 사라졌다면, 그가 경멸할 만하다는 것이 드러났다면 그러면 그는 개처럼 살아가는 것이 허용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니체는 말했었다.
그날 다시 유기철의 여자가 왔다. 이 상사의 집에서 그녀는 50만원으로 두둑한 봉투를 꺼냈다. 육군이등병봉급 75개월, 그러니까 6년 3개월 치를 상회하는 돈이었다. 유기철은 무릎을 착 꿇고서 눈물만 뚝뚝 흘렸다. 대신 여자가 뭔가를 사정사정했다. 이제 유기철은 김 소령의 1호차 운전병이 되었다. 살쾡이의 부사수가 되면서 유기철의 소속은 대본부로 바뀌었다. 다른 날보다 더 뜨거웠던 그 토요일은 갑갑하게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