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욱래 장편소설 《이탈-그 여름의 추억록》 제3부
담가 뒤쪽에서 손정원이 속삭였다.
“그래도 작업이 나아. 시간도 빨리 가고……. 내무반 들어가면 숨쉬기도 힘들어.”
저는 그럴 테지, 하며 그는 짧게 한숨을 뱉었다. 자신은 이미 다른 인간들 때문에는 숨쉬기에 지장을 받지 않았다. 그러나 무슨 뾰족한 수가 없는데다가 더위와 피로에 지칠 대로 지친나머지 완전히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연병장의 열기 속을 그저 뛰었다. 완정군장 폐타이어도, 기가 막힌 영창도 이제는 치가 떨렸다. 그는 빨리빨리 움직였다. 누가 뭘 좀 시키려고 다른 이를 불러도 그가 관등성명을 크게 내지르며 먼저 달려갔다. 저녁 무렵, 그가 관물대쪽으로 돌아서서 팬티를 갈아입는 중이었다. 병장 하나가 물 한 컵 달라고 했다. 그 병장역시 간은 그리 크지 않았다. 병장이 자신에게 그걸 시키는 게 아니라는 걸 그는 알고 있었다. 그는 불에라도 데인 것 마냥 팬티도 걸치지 않은 상태에서 관등성명을 외치며 잽싸게 물을 떠다 바쳤다. 일단 하루하루를 살아가야 했다. 내무반은 깜짝 놀란 듯했다. 벌거숭이 아랫도리로 성기를 덜렁거리며 뛰던 자신을 다시보기 시작하는 것 같았다.
내무반은 그에 대한 밀담과 재고를 거쳤다. 또 이미 지나가버린 것들까지 다 따지기엔 내무반이 너무 쪄대기도 했다.
다음날 아침, 사단직할대 소위 하나가 사단사령부와 통신대대 사이 야산에서 목을 맸다. 저녁에는, 더위를 먹어서였는지 분위기파악 못한 김기진이 더플 백 속에 꼭꼭 싸매놓았던 제 안경을 몰래 꺼내보다가 그만 덜컥 걸려버렸다. 김기진은 교대로 상병 급 이상들에게 불려나가 뺨을 처 맞고 모멸 당한 후, 병신에다가 거짓말쟁이로 낙인이 찍혔다.
문득문득 가슴 깊은 곳에서 새큼했던 그녀의 목소리가 울렸지만 그는 이제 자신의 꼬락서니가 너무나 구차했다.
그날의 연병장작업이 끝나자 병장 급들은 이제 확 달라진 그에게도 신고식을 베풀어주기로 결정했다. 그들은 그가 진정한 일원이 돼주길 원했다. 하지만 그 땅은 굉장히 뜨거웠고 깊이 박혀버린 무당개구리들은 보이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해야 할 군 생활이었다. 그가 먼저 나서서 그 흉측하게 생겨먹은 양서류를 구해보려 했지만 불가능했다. 그러다 그는 연병장 한 귀퉁이 잡목 숲에서 기포가 뽀글거리는 야트막한 물웅덩이를 찾아냈다. 그는 심사위원들을 그 작은 웅덩이로 데려갔다.
“여기 올챙이들이라도 다 삼키겠습니다.”
심사위원들이 승낙했다. 그는 꼬물거리며 헤엄치던 10여 마리 무당개구리올챙이들을 연거푸 손으로 떴다. 뒷다리가 났던 서너 마리는 목젖을 긁다가 넘어갔다.
오전, 활주로양옆 제초작업 중이었다. 어느 휴식시간에 말년병장들은 심심해졌다. 그들은 먼저 킥복싱(kick boxing)과 유도를 불러냈다. 다음에는 지저분하게 쿵푸 대 특공무술(特功武術)이 난타전을 했고, 서로 피를 볼 때까지 개처럼 싸웠다. 풀밭은 열광했고 휴식시간은 연장되었다. 세 번째 경기는 전부대원 초유의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그와 이권휘가 불려나갔다. 둘은 순간 난색을 지었지만 지켜보는 눈들 때문에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군 생활을 해야 했다. 링아나운서는 조병주였고 침을 튀겼다.
“홍 코너! 체중 육십팔 킬로그램, 합기도 삼단에 태권도 이단, 잠실백곰 이―권―휘―.”
환호성이 좌중에서 터져 나왔다. 이권휘는 역시 인기 있는 병사였다.
“청 코너! 체중 육십칠 킬로그램, 태권도 사단 사범출신, 아주― 스트리트 파이터, 외로운 늑대, 나―우―권―.”
조병주는 그렇게 한 단씩 올려서 소개했는데 그래야 게임의 격이 더 커지는 모양이었다.
그는 이권휘는 왜 하필 ‘백곰’일까가 궁금했다. 자기가 예전에 ‘잠실백곰’이라고 불렸었다는 이권휘의 얘기를 들었을 때 그는 잠실에서 좀 놀았었다는 얘긴가, 하고만 생각했었다. 그 별명에선 차디찬 바닷물에 잠긴 통통한 북극곰이 연상됐었다. ‘외로운 늑대’는 필시 이권휘가 붙였을 것이었다. 그는 서정락사건 이후 이권휘가 고참들과 쑥덕거릴 때 자신을 흘깃거리며 늑대 어쩌고 하는 걸 들었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둘은 공중으로 떠올랐다. 잠실백곰의 이단옆차기와 그의 점프 뒤차기가 격돌했다. 관중들은 숨을 죽였다. 지면에 닫기 무섭게 그들은 다시 솟아올라 공중 2단연속발차기를 재개했다. 팔 동작이나 몸자세가 그대로 액션영화였다. 화려한 공중전에 터져 나오는 환호로 진동했다. 거기까지는 좋았는데 병장 하나가 꽥하고 소리 질렀다.
“야, 이 새끼들아. 니들 짜고 하는 거 맞지?”
그 예리한 병장은 무술에 좀 조예가 있는 듯했다. 사실 둘은 서로 가격을 삼갔었다. 관중들이 눈치챌까봐 조심한다고 하긴 했었는데 그만 걸린 것이었다. 백곰과 늑대는 서로 눈짓을 살짝 주고받았다. 일단 그들은 가능한데까지 예술적 공중기술들을 죄다 풀었다. 둘은 거의 무협영화를 찍고 있었다. 그들이 풀밭을 디딘 것은 몇 번 되지 않았다. 되도 않는 공중전으로 서로의 체력이 급감했기 때문에 이젠 마무리가 필요했다. 비록 슬쩍 가격했지만 각자의 필살기가 공중에서 꽂혔고 동시에 추락한 둘은 풀밭에 쓰러졌다. 즉흥적 무승부시나리오에 흠잡을 데는 없었다. 잠실백곰, 아니 이권휘는 영리했다. 병장 급들은 이제 백곰에 이어 ‘늑대’까지 맘에 들어 했다.
바짝 타들어 가는 날씨로 맥없이 풀들이 누워버려 작업하기가 더 힘들었다. 그날 그 오전, 4사단 예하 보병연대 상병 하나가 신병교육대에서 멀지않은 자동화사격장 내 유탄사격장에서 불발된 유탄을 나뭇가지로 건드렸다고 했다. 흩어진 몸으로 비료부대에 담겨져 닷지짐칸에 실려 있는 그 병사를, 아니 피범벅의 고깃덩어리를 그는 취사장 뒤편에서 부대원들 틈사이로 보았다. 그 주에도 유기철의 여자가 면회 왔다. 여자와 자고 온 유기철은 소대선임 셋에게 돌려가면서 맞았다. 그 연인들은 이제 좀 심해 보였다.
전역이 얼마 남지 않은 말년들이 무슨 ‘추억록(追憶錄’)에다 그림 그려달라며 내무반 전체를 못살게 굴고 있었다. 그 용지를 받아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해 엉망으로 그린 상병의 머리통이 방탄헬멧으로 맞아 종처럼 울린 다음부터는 다들 내무반에 있길 꺼려했다. 연기래도 몸에 붙으니 오랫동안 입었던 옷처럼 별로 걸리적거리지 않았다. 그걸 그가 자원했다. 그가 몇 장 그려주자 말년들은 좋아 죽겠다며 시시덕거렸다. 그림 속에서 그 말년들은 세상에서 가장 강한 전사로 새롭게 태어났다. 쑥색 군복이 위장복으로 바뀌었고 흉장까지 달았다. 공수 윙이 솟은 작업모에다 오리발을 뺀 K1A을 앞에 들고 가운데서 전선 침투중인 정찰요원의 상공에는 고공에서 투하된 팀원들이 막 낙하산을 산개하고 있었다. 말년들은 굉장히 흡족해했다. 이제 그 그림책을 들고 고향집엘 가면 어떤 대단한 비밀특수부대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 돌아온 전설이 될 터였다.
어떤 말년이 다시 그에게 그 흉장을 한 장 확대해보라고 주문했다. 나 화백―말년들이 그를 그렇게 부르기 시작했다―은 군단정찰대대의 그 내무반에 붙어있던 시안을 떠올렸다. 나 화백의 도안은 이랬다. 정찰대원이 침투하는 달빛 없는 야간처럼 검정색이 바탕에 깔린다. 그 중앙엔 새빨간 눈을 치뜬 잿빛흡혈박쥐가 오른 쪽으로 날아오르며 날카롭게 꺾인 노란 번개를 양발로 잡아챈다. 그 역동적인 박쥐 밑에는 희게 ‘HUMINT’*가 박힌다. 화백은 극히 일부분을 제외하곤 유채색을 쓰지 않았기 때문에 세 번 꺾어진 번개와 사탄 같은 날개 뼈, 그리고 알파벳들만 강렬히 도드라졌다. 난리가 났다. 화백이 새로 작업할 때마다 더 세련되어졌고, 글자체도 더 관능적으로 바뀌었다. 그런데 박쥐가 약간 이상하게 변해갔다. 마지막 주문자가 받은 것은 늑대 같은 머리, 독수리의 발톱, 악마의 꼬리를 가진 가공할 상상의 동물이 되어있었다. 잿빛늑대 같은 박쥐는 적의에 찬 아가리를 벌리고 금방이라도 날카로운 이빨로 적의 모가지 살점을 뜯어낼 듯 빨갛게 핏발 선 눈으로 더 꽉 번개―첩보수집 및 통신을 나타내는―를 움켜쥐게 되었다. 화백은 그것들을 그려대느라고 본연의 소임을 방기(放棄)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애꿎은 손정원만 삐질삐질 땀을 흘리며 여기저기 뛰어다녔다.
그날 아침 그의 예감이 좀 꺼림칙했다. 일과가 시작될 때 내무반으로 들어온 조병주가 침상을 둘러보았다.
“사회에서 콜타르, 아니 뺑끼질 같은 거 많이 해본 사람?”
불문곡직하고 그가 손을 들었다. 상병주임은 그를 의심치 않았다. 장애물교장의 높은 시설에는 그가 통을 들고 올라갔다. 냄새는 독했지만 금방 끝날 일이 아니어서 그는 좋았다. 열풍이지만 높은 데선 살랑댔다. 활주로 관망대가 바라보였고 더 멀리 삼각산이 앉아 있었다. 엷고 파란 창공에 문득 그녀가 떠올랐지만 이내 그는 고개를 저었다.
상병주임과 그는 잡목 숲으로 들어가 돌을 받쳐놓고 마른 나뭇가지들을 모아 닭도리탕 재료가 든 반합을 끓였다. 그게 조병주가 취사장에서 따로 김치, 식은 밥과 같이 챙겨온 점심이었다. 오랜만에 그는 안온했다. 조병주가 그에게 친한 척을 하려고 했고 그는 그냥 맞담배만 피웠다.
오후 3시가 되자 그날은 웬일인지 인원들이 공을 가지고 연병장에 모였다. 예감이 그를 살린 것이었다. 곧 축구공이 욕설들과 함께 튀기 시작했고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열심히 콜타르를 칠했다.
콜타르작업은 이틀분량이었다. 둘째 날이 정오쯤 장애물 코스는 완료되었다. 조병주의 허락을 얻고 그는 행정반 뒤 창고에 있던 페인트 통 몇 개를 가져왔다. 조병주도 어차피 저녁때까지는 이래저래 뭉갤 심산 같았다.
그는 연회색으로 밋밋한 모형문과 접지대가 영 못마땅했다. 그것들은 이제 위장 패턴으로 갈아입기 시작했다. 운이 계속 따라주었다. 여전히 욕설이 난무하는 축구시합이 체력단련을 대신하고 있었다.
저녁을 먹으려고 시합을 종료한 이들이 모여들었다. 거기엔 소대장과 선임하사 둘도 끼어있었는데, 그들 앞엔 기막힌 시설물 두 개가 윤기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위장무늬 접지대 중앙엔 정밀한 공수 윙이 하얗게 빛나고 있었고, 그 위엔 ‘Air Borne(공수)’이 아치형 필기체로 휘 갈려져 있었다. 또, 그 옆의 꺼주했던 모형문엔 번개 잡은 박쥐흉장이 커다랗게 도색되어 있었다.
“대장님 보시면 어쩌려고……. 아주― 머리아파요.”
다른 인원들 들으라는 듯 조병주가 전전긍긍했다.
“근데 이러니까 아주― 굉장히 멋있긴 해, 그렇지 않습니까, 소대장님? 그래도 난 모르는 거야, 아주―.”
조병주는 그렇게 빠져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한참동안 그들은 어떤 상념 속에 멍하니 잠긴 것 같았다. 마치 알타미라(Altamira) 동굴 벽 들소그림을 우러르고 있는 크로마뇽인들처럼.
팬들은 웅성댔다. 그는 이제 더 시간을 죽일 수 있게 되었다. 식사 후 남는 시간, 일석점호 전 자투리가 그의 작업시간이었다. 손정원은 계속 죽을 맛이었다. 커다란 그림 두 폭을 주문받은 그가 혼자서 다 색칠하기는 벅찼다. 이윽고 그의 요청이, 아니 지시가 떨어졌다.
“알았어, 알았어. 나 화백, 우리가 할게.”
내무반 별로 그렇게 외치며 각자 싸인 펜이나 유성 펜을 잡고 달라붙었다. 1내무반의 너덜너덜 헤진 나방과 2내무반 날개달린 뱀 그림이 떼졌고 그 자리에 4사단정찰대의 거대한 흉장시안이 걸렸다.
김계식 소령이 출근하다가 당당해진 모형문과 접지대를 쳐다보았고 곧 인상을 썼다.
“어떤 녀석이 그거 그렸나?”
김 소령이 행정반에 확인했다. 계원들은 이미 나 화백의 팬이었다.
“콜타르 칠하는 김에 저희들이 한번 그려보라고 했습니다.”
김 소령은 더는 말하지 않고 제 방으로 들어갔다.
* Human과 Intelligence의 합성어. 인적정보 혹은 대인정보와 그러한 정보수집 방법. 위성촬영이나 감청 등과 같이 첨단장비를 이용해 얻어낸 정보인 SIGINT와 달리, 일명 스파이와 같은 정보요원 등 인적 네트워크를 활용해 얻은 정보 또는 정보수집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