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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욱래 Jun 12. 2024

4. 카페 만들기

장편 현장소설 《카페 가는 길》

4. 카페 만들기



  카페 만들기를 시작하기 전에 바람을 한 번 쐬러 갈 수 있었다. 변호사인 친구가 당일치기의 문학기행 행사에 초청한 것이었는데 내게 3만 원이란 큰돈이 물론 있을 리 없었다. 나는 말로만 응낙한 뒤 그냥 지나가기를 바랐는데 그 친구가 내 참가비까지 내준 것이었다. 

  이 지역 문인 협회이 지방 도시에 소설가는 몇 되지 않는데 나는 전부터 그 단체에 들지 않았다. 입회비 30만 원도 없었거니와 내가 전화로 문의한 회장이란 자는 내 원고를 받으면 심사를 해 본다는 것이었다. 나는 원고가 아니라 낸 책이 이미 있는 사람이라고 하고는 그냥 끊어버렸다가 주최한 남한산성 및 만해기념관 탐방 일정이었다. 문학에 관심이 지대한 그 변호사 친구는 몇 편의 자작 시를 가지고 있는 것 같으나 시집 한 권 낸 바 없지만, 그 단체 회장의 법률자문을 무료로 해 준 적이 있어 시 분과 정회원이 되었다. 대략 삼십여 명이 앉아 있는 전세버스에 표를 생각 안 할 수 없는 시장이 올라와 인사를 하고 내려갔다.

  “저 여자 진행 조곤조곤하게 잘 하는데?” 

  통로 입구에 서서 그날의 일정이며, 찬조한 인사들 등 차분한 어투로 나긋나긋 이야기를 꾸려가는 벙거지를 쓴 통통한 여자를 내가 칭찬했더니 옆자리의 변호사 친구가 그 문인 협회의 사무국장이라고 했다. 나는 카페를 문학적이게 만들 요량이었기에 저 같은 여자를 알아두면 특히 그 문인 협회 회원들의 내방 등 카페 경영에 크게 도움 되겠다는 기대감이 들었다. 

  남한산성 둘레길을 따라가다가 삼전도였던 땅을, 그 패배의 역사를 나는 한참 동안 망연히 내려다보았다. 산성 아래 만해기념관에서는 역시 여타 문학관에서처럼 유리 진열장 안에 전시된 물품들을 눈여겨보았지만, 별다르게 관심이 가는 것은 없었다. 




  하루를 어디 다녀왔으니 뒤풀이가 있어야 할 것이 아닌가. 다들 그냥 흩어지는 눈치였다. 나는 혹시나 그 사무국장이 올 수도 있지 않을까 해서 변호사 친구에게 술자리를 만들게끔 했다. 그 여자는 다른 데를 갔고 엉뚱하게 화가와 조각가버스가 출발하고 돌아가며 자기소개를 할 때 들었더니 이런 사람들도 몇 끼어 있었다가 술자리에 앉았다. 

  “소설은 허구 아니에요?"  

  화가가 나한테 한 소리였다. 기가 막혀서. 소설은 거짓말이란다. 일반인도 아니고 예술 한다는 인간이 다른 예술 장르를 이따위로 말할 수 있나. 소설은 ‘뻥’이니까 소설가는 제 밑이다?

  소설은 거짓말이라는 건가요? 물론 그런 저질들도 많지요. 하지만 소설은 핍진성이 있어야 합니다. 소설의 진실성이라 할 수 있는데, 그게 없으면제대로 된 독자들은읽질 않아요. ……아니 누가 선생님의 그림도 그렇게 허구라고 정의해 버리면 좋겠나요? 어차피 실재 그대로를 그리는 건 아니잖아요? 그런 식이면 모든 예술은 다 허구인 거죠.   

  소설은 허구라고? 저런 자가 고작 생각한다는 것은 장르 소설 따위일 것이다. 《이방인》, 《달과 6펜스》, 《적과 흑》, 《개선문》, 《25시》, 《인간 실격》 같은 소설 중에서 어느 한 작품이라도 읽어보지 않은 인간임이 분명하다. 그러면서 저 나이까지 살아왔단 말인가. 그림쟁이 나부랭이라니. 나는 잠재 고객을 잃은 것은 괜찮았으나 좀체 분이 가시지 않았고 술자리는 재미없게 파했다. 




  커피 장사로 희망이 있는 것일까. 지난해, 그러니까 내가 이 산속에 카페를 만들려고 터 정리를 하다가 그냥 나가버렸을 때 즈음, 이 카페 공화국에서 ‘커피 왕’이라고 불리던 유명한 동갑내기 사내가 목을 매고 자살했다. 나는 그전부터 신문 지면으로 하얀 드레스 셔츠 차림에 의기양양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 그의 모습을 몇 번이나 본 적이 있었다. 돈을 긁어모으고 있는,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번듯한 생김새의 남자였다.  

  하지만, 그랬던 그도 결국 사업 실패로 이혼하고 33㎡짜리 월세 원룸 화장실에서 외로이 자기 목숨을 끊었다.


   병들어 쓰라린 가슴을 부여안고

   나 홀로 재생의 길 찾으며 외로이 살아가네(조용필, 〈산장의 여인〉)


  살아간다는 것은 끊임없이 죄를 저지르는 일이다. 나는 하루마다 두려웠다. 나는 이 나이까지 쌓은, 허리가 휘는 죄를 짊어진 채 들어와 혼자 일하면서 이 노래를 웅얼거렸다. 결국, 쉰한 살에 쓸쓸한 이 산속에 외로이 처박히게 되었구나……. 




  그래. 글을 쓰려고 들어왔다 생각하자. 여기서 한 달에 100만 원 이상씩만 벌 수 있으면 되지 않나? 그러면 다 집에 갖다 주고 나는 글만 쓸 수 있으면 된다. 

  카페 차리는 데 또 얼마가 들 것인가. 예로 요즘 엄청나게 늘어나고 있는 프랜차이즈 두 군데의 창업 비용 자료를 찾아보았다. 그들 본부 계약금(가맹비, 로열 티, 이행보증금), 시설비(인테리어, 주방, 냉난방기, 전산설비 등), 기타 금액(초도 물품비, 설계·감리비 등)을 합해 저가 커피 브랜드 ‘흰 다방’이라는 데는 약 40㎡ 기준 9552만 원이 들고 중저가인 ‘이데아(idea) 커피’는 약 50㎡ 기준으로 9925만 원이 든다고 한다. 여기에 추가 공사비가 나갈 수 있고, 권리금과 보증금을 더하면 조그만 매장을 하나 하려도 2억 원은 있어야 하는 것이다. 2억 원!

  사람들은 망할 것을 생각하지 않는다. 예전 내 사업장은 신시가지라고 할 만한 지역으로 비싸게 옮겼었다. 창밖의 큰 도로 건너편을 내려다볼 때면, 기억하기로 새로 들어온 지 채 일 년 될까 말까 한심지어는 몇 달 안 지난프랜차이즈 고깃집이나 간이주점, 식당 같은 가게들이 툭하면 텅텅거리며 내부 인테리어를 뜯어서 내다 치우고 있었다. 그렇게 해놓았던 인테리어 비용만 못해도 한 점포에 그 당시 돈으로 5000만 원 이상씩은 버렸을 터였다. 그리고 곧 그 자리에 다른 업종의 인테리어 공사가 탕탕, 거렸고 개업 화환들이 늘어섰다. 또 반년이나 일 년 후면 그 가게는 다시 인테리어를 뜯어 재끼는 것이었다. 일반적으로 한 업주가 그렇게 인테리어를 두 번 뜯게끔 되면 회생할 방법이 있을까? 인테리어로 패가망신하는 것이다……, 볼 때마다 경각심을 가졌었지만, 결국에는 나도 임대 보증금을 반이나 뜯기고 돈 들였던 인테리어를 싹 다 뜯어서 원상복구를 해놓아야 했었다. 




  커피 내리는 기계는 어떻게 해야 하나? 여느 카페에서 쓰는 에스프레소 머신은 턱없이 비쌀 것이다. 내가 그 비싼 장비를 어떻게 장만한단 말인가. 그렇다! 그것은 값도 얼마 안 할 것 같았고 장사하기도 쉬울 듯했다. 내가 가끔 들려 내려 먹는 편의점의 즉석 원두커피 기계를 생각했다. 돈을 낸 후 종이컵을 받쳐놓고 해당 버튼만 누르면 자동으로 원두가 갈려서 아메리카노며 카페라테―이것은 미리 봉지의 분말을 컵에 준비한 후에 받아야 하지만―, 에스프레소가 나오는 부피 작은 장비였다. 좋은 발상이었다. 어차피 커피 내리는 것 배운 적도 없고, 그까짓 것, 나는 돈만 받으면 되고 자기들이 알아서 누르고 뽑아가서 마시면 되는 것이다. 뭐, 뜨거운 아메리카노에 아이스 아메리카노, 카페라테, 에스프레소만 해도 굳이 더 메뉴가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에스프레소 머신은 그것으로 대신하면 된다고 하고 카운터 테이블 제작에다 테이블이며 의자 등속은 또 얼마나 들 것인가. 처음에 모친이 어떻게 에스프레소 머신 값은 마련해 준다고 했었지만 언제 양친 앞에서 카운터 테이블 시공업체 발주며 테이블과 의자 구비 관련해서 의견을 구하는데 부친이 말을 잘랐다.  

  “의자는 네가 만들면 되고, 다른 것들은 알아서 해.”  

  나는 내 나이가 창피했다.




  이제 내가 해야 할 매장 건물 안에 들어가 텅 빈 나무마루를 밟고 섰을 때, 첫인상은 큰 선실 갑판 같았다. ……지금부터 어떻게 항해해야 할 것인가. 

  나는 그저 궁금했으므로 카페 하나 하는데 인테리어 비용이 얼마나 하는지 찾아보았다. 업체에 맡기면 보통 3.305785㎡당 150만 원을 잡는다는데, 내가 할 매장이 바로 옆 동까지 합해 102㎡가 약간 넘으므로 4650만 원이라는 계산이 나왔다. 물론 장비, 가구, 집기류를 제외한 금액이다. 자기가 자재와 인부목수 한 명의 하루 노무비는 30만 원, 보조자는 21만 원이었다를 사서 한다면 일반적으로 3.305785㎡당 100만 원이 든다고 했다. 그러니까 3100만 원에다 장비, 가구, 집기류에 간판 등의 아웃테리어까지 합친다면…….

  아내의 오촌 조카가 시내 변두리 동네에서 조그만 카페를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어떻게 카운터 테이블 하나라도 알아보려고 한 주말 아내와 함께 그곳을 들렀다. 커피 맛도 볼 겸 해서 일단 따듯한 아메리카노 두 잔을 계산한 다음 허락을 구해서 카운터 테이블 뒤쪽으로 돌아갔다. 싱크대 공장에 한 200만 원 주지 않았느냐 물었더니 아내의 오촌 조카가 그 정도 들었다고 했다. 내 통장에는 200만 원은커녕 20만 원도 없었다. 

  어차피 건물 본 채의 목재 내부에 싱크대 공장에서 만드는 것은 어울리지도 않았다. 나는 현지 주위부터 살펴보았다. 몇 군데에, 오래전에 무슨 공사를 한 뒤 남은 것인지 표면이 꺼멓게 된 굵고 가는 각재들을 쌓여 있었다. 큰스님에게 양해를 구해보았는데, 어차피 썩기만 할 뿐 치우는 겸 가져다 쓰라고 했다. 게다가 한편 창고에 있는 여러 가지 목공 기계들을 보여주며 작업할 때 필요하면 사용해도 좋다는 것이었다.

  나는 카운터 테이블부터 짜보기로 했다. 이왕 하는 바에는, 이제는 나중에 망해도 망하는 것이 아니어야 했다. 그렇다! 돈 놓고 돈 먹기야 누군들 못하랴

  하지만 궁리해 보니 돈을 조금씩은 써야 할 성싶었다. 나는 시내에서 제일 큰 건재상으로 가서 여덟 자짜리 T&G 목재 패널 여덟 장 들이 한 단을 샀다. 승용차 트렁크를 열고 스키 스루를 통과하게 밀어 넣으면 딱 한 단 실을 수가 있었다.  

  목공 일은 거의 해 본 적이 없었지만, 글을 쓰는 일보다 어려운 작업은 없는 것이다. 일전에 모친의 한 지인이 그렇게 좋다고 하던 카페를 보고 온 적이 있었다. 커피값이 상당했고 매장은 컸지만, 전체적으로 무슨 군부대 취사장 같은 데였다. 시내에서 가려면 여기보다도 서너 배 더 떨어져 있는 오지인데도 그렇게 사람들이 몰린다니 취향이 이해 가지 않았다. 나 같으면 두 번 가지 않을 곳이었다. 거기에서 커피 맛을 본 후 내 배꼽을 기준점으로 하여 카운터 테이블 높이를 재어 왔던 터였다. 

  상판은 나중에 어떻게 되겠지, 하면서 그 두께를 빼놓고 일단 상자 짜듯이 짰다. 아귀가 맞아떨어지는 것이 재미가 있었다. 앞면은 사 온 T&G 목재 패널을 재단해서 막았다. 이제 상판만 얹으면 되었는데 카운터 테이블 뒷벽에 어울릴 만한 것이 생각났다. 이태 전쯤이었나? 그때까지는 내 집 근방에 쓰레기 분리수거장이 있었다. 나는 지나가다가 멀쩡한데도 내다 버린 물건들을 가끔 주워 놓았었는데, 이를테면 아주 오래전에 보았음 직한 벽걸이 목제 욕실 장이라든가 유리도 깨지지 않은 커다란 표구용 액자라든가 하얀 도자 재의 찻주전자 같은 것들이었다. 집에서 실어다가 카운터 테이블 뒷벽에 그 옛날식 욕실 장을 걸었더니 분위기가 그럴싸했다. 그렇게 나무로 만든 욕실 장은 이제는 보기도 귀한데 왜 사람들은 괜찮은 물건은 내다 버리고 합성 목재나 플라스틱의 중국제 저질품을 돈을 주고 새로 들여놓는 것일까. 아무튼, 쓰레기 분리수거장이나 집 장식 집 앞을 지나다 보면 잘 만들어진 예전의 물건들이 뜯겨 버려진 것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팽개쳐지고 버림받은 물건들을 보노라면 나는 침울해진다. 이렇게 멀쩡한데 함부로 버려져도 되는 것인가. 사람들은 무슨 목적으로 인생을 사는 것일까. 

  상업적이며 비인간적인 인테리어도 싫었고, 이렇게 시작할 바에는 팽개쳐지고 버림받은 것들로 매장을 채워서 사람 냄새가 나게 하는 것이 낫겠다고 나는 생각했다. 또 그런 물건들은 내가 언제 망해도 아쉽거나 아깝지 않을 터였다. 

  나는 카페를 문학적으로 만들기로 했으니 일단 한쪽에 꽂아놓을 책들이 있어야 했다. 내 서재의 내 타액이 묻은 책들은 내 영혼의 증거물이며 또, 필요할 때마다 들춰볼 수 있어야 하기에 안 되었다. 언제부터인가 본가의 부친 방에 무더기로 쌓여 있는 여동생의 책들을 치워주어야겠다고 몇 번 생각했었다. 아니, 결혼할 때 같이 실어갈 일이지, 친정아버지 방에다 부려놓아서 노인네를 거치적거리게 해야 하나? 지금은 책도 너무 널린 세상인 것이다. 혹여 몰라서 나는 전화를 걸었다.

  “이제 네 책 좀 가져가지? 집 큰데 네 방 없어? 아버지 불편하신데. ”

  “오빠가 알아서 해.”

  “아니, 공부 그렇게 오래 한 애가. 네 영혼의 추억이지 않을까?”

  “이젠 필요 없어.”

  “그러면 갖다 버려도 되냐?” 

  “오빠 마음대로 해.”

  자기가 읽은 책들은 자신 영혼의 유적일 텐데도 쓰레기처럼 버려버리는 것이다. 그러려면 공부는 왜 그토록 많이 했나. 그렇다면 책 읽기도 학업도 인생의 소비며 낭비다    

  여동생이 시집갈 때 버리고 간 책 무더기는 승용차로 날라 왔으나, 취학 전의 딸아이 방에 들여놓았었으나 이제는 처치 곤란이 되어 베란다에서 먼지만 덮어쓰고 있던 오 단짜리 합성목재 책장을 옮겨오려면 큰 차가 필요했다. 시내 친구에게 일 톤 트럭을 잠깐 빌릴 수 있었다. 집에서 책장을 싣고 오다가 시내의 큰 테마공원으로 차를 돌렸다. 미리 봐 둔 것이 있었다. 그 공원 귀퉁이에 네 다리가 절반씩 부러진 채 폐기물로 보이는 다른 것들과 함께 쌓여 있던 3 인용 야외 벤치였다. 그 테마공원의 벤치를 전부 새것들로 교체할 때, 아마 콘크리트 바닥에 박았던 앵커의 볼트가 녹슬어 풀기 힘들었는지 인부가 큰 해머 따위로 그냥 후려쳐서 잘라버린 것 같았다. 인터넷에 똑같은 제품은 없었지만, 나무판이며 장식 주물 등의 재질로 볼 때 그 정도의 벤치는 족히 30만 원은 넘게 줘야 할 것이었다. 나도 잘 나가던 시절에는 그 큰 공원에서 시의 크고 작은 행사를 여러 번 맡은 적이 있었다. 그 벤치도 내 세금이 들어간 시설물일진대 함부로 부숴버리고 새로 갈아대면서 또 돈을 내라고 독촉하는 것이다. 나는 다리 네 개가 모두 잘린 그 벤치도 트럭에 실어 왔다. 

  ‘찾아라. 그러면 찾을 것이다’? 건물 측면의 키 큰 잡풀들 사이로 상판이 눈비에 삭아 무너진 테이블 다리 두 개도 언제 보았었다. 철제 다리였는데 맨 밑의 원반이 너무 크지 않나 싶었으나식당용 테이블이었다돈이 없으므로 일단 만들어서 쓰다가 장사 되는 것을 보아가면서 바꾸든지 하면 될 것이었다. 나무색 유광 유성페인트 사 리터들이 한 통과 흑색 래커 스프레이 세 통은 사 와야 했다.  


  사람은 스스로가 만들어 가는 것 이외엔 아무것도 아니다. 이것이 실존주의의 제1원칙이다.  장 폴 사르트르Jean Paul Sartre,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L'existentialisme est un humanisme


  나는 그 다리 부러진 벤치로 마당 한쪽 가장자리에 야외 석 하나를 만들기로 했다. 찾아보니 무슨 공사를 하고 조금 남아 있던 붉은벽돌이 있었다. 역시 쓰고 남아 있던 모르타르로 붙이면서 부러진 다리들을 감쌌다. 이를테면, 깁스한 것이었다. 

  들뜨고 일어난 처음의 칠을 사포로 밀어내고 페인트를 세 번 칠했다. 무참하게 내던져졌었던 그 벤치는 진짜로 제가 있어야 할 곳에 있게끔 되었다. 아픔을 가린 채. 시내를 돌면서 길가에 내다 버린 것들불법 폐기물이다을 잘 살펴보면 그중에 쓸만한 물건들도 있다. 나는 어딘가 쓸 데가 있을 듯해 몇 차례에 걸쳐, 아마 거실 탁자 상판이었을 두께 8㎜와 10㎜, 지름 65㎝의 원형 유리판 몇 개를 주워다 놓았었다. 본가의 마당 한구석에 예전부터 쓰지 않는 돌절구와의 조합을 생각했다. 나는 얼른 그것을 실으러 가야 했다. 돌절구 위에 유리 상판을 붙여 야외 테이블을 하나 만들었고 그것을 재생된 벤치 앞에 놓았다. 마찬가지로 어디서 주워다 놓았던 나무 의자 두 개를 집에서 옮겨와 벤치와 마주 보게 두었다. 일단 그렇게 최다 오인용 야외 석이 만들어졌다. 나는 이번에는 테이블 두 개를 만들면서다리의 녹을 갈아내고, 래커 스프레이로 쏘고, 짧아서 못 쓰는 송판을 세 쪽씩 이어 붙인 상판을 박고 하면서중간중간 그 야외 자리를 흐뭇하게 내려다보았다. 

  쉽사리 사람들을 불러서 돈으로 일을 시켰던 예전이 떠올랐다. 그 얼마나 방만한 삶이었던가. 그리고 나는 망했던 것이다. 작가는 낱말들을 공짜로 가져다 쓰는 것이다. 일단 나는 소설을 쓰듯이 카페를 만들어 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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