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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욱래 Jun 14. 2024

5. 이름 없는 새

장편 현장소설 《카페 가는 길》

 5. 이름 없는 새



  저쪽에 올려둔 그의 휴대폰에서 휘파람 비슷하게 자꾸 휫, 휫 거렸다. 안 봐도 돈 부치라는 문자메시지 소리. 저 짜증 나는 물건! 그 휘파람 소리가 그의 뇌 속을 여자의 긴 손톱과 같이 여러 번 할퀴었다.


  내가 1장에서 이야기했던 그 중편소설의 부분인데 몇 년이 지났어도 내 형편은 그대로인 것이다. 자동차세―거기에 붙인 지방교육세라는 것은 또 뭐 하는 것인가. 무슨 교육을 어떻게 한다는 말인가―를 몇 번 내지 못했다고 번호판을 떼러 돌아다닐 것이라는 정보가 있었다. 처음 살 때 세금까지 쳐서 냈고 기름값에 붙여 뜯으면서 도대체 왜 계속 빼앗아 가기만 하는가. 그자들은 새벽에 움직이며 집 앞뿐 아니라 인근 골목골목을 다 뒤져서 귀신같이 떼어간다. 내 집이며 내 차인데도 나는 계속 가난해져야 한다. 

  좋다. 차를 카페 현장 마당 가의 산기슭에 붙여 세워두고 다니면 되었다. 어디 해 볼 테면 해 보라지. 저 아랫길에서도 보이지 않는 이 산속에 둔 차를 무슨 수로 찾을 것이냐. CCTV 통합관제센터라도 가서 찾아볼 테면 찾아보라. 여기는 그런 감시망이 미치지 못하는 곳이다. 드론을 띄울 테냐.

  모든 것은 지나간다. 그자들도 한동안 그러다가 말 것이다. 나중에는 어떻게 되더라도……. 나는 차라리 이곳에서 안도감이 들었다. 

  무엇을 하고 있는데 전화벨이나 문자메시지 알림음이 들리면 나는 더럭 겁부터 났다. 대개  ‘휴대전화 이용정지 안내’나 무슨 미납금액 독촉 같은 것들이었다. 또는 아내가 내 명의로 뭘 쓰고서 안 갚았는지 채권추심회사에서도 보내는데 그런 협박 문자를 굳이 볼라치면 소장 송달 예정, 통장 압류, 차량·보험·보증금·유체동산 등 재산조사 착수…… 이따위 식이었다. 

  아침결에 집에 있는데 아래쪽에서 모터사이클 소리가 울리고 나서 간혹 초인종이 울면 나는 가슴부터 내려앉았다. 내게 오는 등기우편이란 전부 불안하기만 한 것이었다.  


  아무도 살지 않는 곳 그곳에서 살고 싶어라

  날 부르지 않는 곳 바로 그곳에서……(손현희, 〈이름 없는 새〉)


  나는 전의 작품들부터 옛 대중가요의 노랫말을 끼워 넣는 버릇이 있는데, 그 노래들에는 그래도 문학적인 구절들이 꽤 많았다. 나는 이런 노래를 부르며 고요한 산속에서 혼자 일했다.




  승마장은 옛날의 그 군수지원대와 지대가 닮았다. 이 층 베란다에 서면 길게 구비 도는 너른 강물이 내려다보였다. 하나 꾸며주겠다던 원장실은 예전에 잊힌 듯했다. 하긴, 남 회장이 이 층 방 하나를 내준대도 나는 들어가 앉아볼 시간 자체가 없을 터였다. 피곤이 겹치다 보니 화장실에서 잠깐씩 집중을 해도 문맥이 잘 들어 오지가 않았다.


  내 두 번째 책에 있는 내용이다. 내가 막시무스 데시무스 메리디우스 처지였던 승마장도 시내에서 꽤 떨어져 있는데 처음 인상은 상당히 고즈넉하고 낭만적으로 보였다.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촌구석이 더 시끄럽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승마장은 산비탈을 깎은 과수원에 면해있는데 그 주인이 나와서 일할 때마다 확성기의 트로트 노랫소리가 천지를 찢어대는 것이었다. 촌사람이라 원체 민폐의 개념도 없었다. 또한, 그와 같은 질들이 좋아하는 노래 중에 문학적인 구석은 일절 없다. 그것뿐이랴. 여차하면 이착륙하는 전투기들의 굉음이 하늘을 가르는 것이었다. 어떨 때는 경기가 들릴 지경이었다. 그것들에 더해 그 아래 보조댐에서 방류한다고 오후마다 시끄럽게 방송을 했다. 

  이 숲속의 터는 정말로 조용했다. 나는 고요히 일했고 하루하루가 저물었다. 얼마 전부터는 산 모기(흰줄숲모기)들이 엉덩이며 허벅지에 붙어 뚫어대는 통에 환장할 지경이 되었다. 그래도 여름에 장사가 괜찮을 텐데 혼자 하는 일이라 진척이 잘되지 않았다.




  돌아보면 사람들을 거느리고 하는 일은 내 체질에 맞지 않았다―그것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그네들은 내 전망을 믿고 따라오지 않았다. 그네들을 건사하면서도 어차피 나는 외로웠지만, 외로우면 외로운 대로 그네들을 끝까지 데리고 가야 하는 줄로 알았다. 그 같은 노력은 무의미한 것이었다. 내가 사업을 접은 뒤 그네들과의 관계는 으레 그러하듯 허무하게 되었다. 요컨대 나는 사람들을 다루는 데 실패했던 것이다. 나는 외로운 늑대처럼 홀로 행하는 것이 본성에 맞았다. 혼자 하는 일은 다른 이들 눈치 볼 것 없는 점이 마음 편했다. 오늘 못한 작업은 내일 하면 되는 것이다. 모든 일은 내가 결정하면 그뿐이었다. 

  나는 작업을 하면서 시간이 하는 고마운 몇 가지 예술을 알게 되었는데, 그중 한 가지는 페인트 작업니스며, 래커, 오일 스테인 작업도 마찬가지다이었다. 내가 아무리 정성을 다해 정밀하게 해놓고 나서 조급증을 내 보아야 그 상태로는 소용이 없었다. 시간이 말려서 완성 시켜 주는 것이었다. 다른 하나는 실리콘 작업인데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것이 아니었다. 시간만이 굳혀서 마감해 주었다. 또 하나는 시멘트모르타르, 콘크리트 포함작업으로, 해놓은 뒤에는 시간이 완성할 때까지 다른 일을 하면서 기다리면 되었다. 

  그렇다. 늙을 때까지 기다릴 거 뭐 있나. 나는 카페를 겸해서 당장 내 문학관을 만들기로 했던 것이다. 두 권밖에 내지 않은 이름 없는 소설가의 문학관을 여기 지방자치단체에서 세워 줄 리도 만무했고, 죽은 뒤에는 어찌 되든 생전에 누려보겠다는 심사였다. 그리고 전시실에 앉아 커피나 차를 마시고 무엇을 먹으면서 담소를 나눌 수 있는 문학관은 없었다.

   《개선문》의 레마르크도 일생에 소설을 여덟 권만 썼다고 한다. 나 또한 제대로 된 작품으로 그쯤이면 될 것 같았다. 인생을 직접 안 살아보고 책상머리에만 붙어 앉아 글만 써서는 제대로 된 작품은 낼 수 없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옮겨 올 내 문학적인 흔적 이외에는 공간을 주워 온 쓰레기들로 꾸민대서 무슨 상관이랴. 영원한 것은 없다. 모든 것은 망하게 되어있다. 망하면 깨끗하게 치워주고 나가면 된다. 미련은 없는 것이다. 인생도 무엇 있는가. 덧없이 나서 덧없이 살다가 덧없이 가지 않는가. 왜 사는가? 그냥 살아져서 살고 있는가? 중요한 것은 삶의 목적과 의미다.

  



  나는 얼마 동안은 도시락 꾸러미를 싸 넣은 물 날린 등산배낭을 메고 시내버스로 오갔다. 원래 이 동네는 황톳길 주변으로 촌가만 드문드문한, 나아질 일 없던 촌락일 뿐이었다는데 버스에서 내려 걸어가면서 왕복 이 차선의 아스팔트가 깔린 촌길을 따라 줄지어 늘어선 식당마다 국산 고급 차나 수입차들이 꽉꽉 들어차는 상황을 목도할 수 있었다. 주차장에 복작대는 사람들의 옷차림은 일반적이지 않고 알록달록했으며, 다리에 들러붙는 흰 바지며 여자들의 짧은 치마와 무릎까지 올라오는 양말은 특히 도드라져 보였다. 전혀 다른 종류의 사람들 같은 그네들의 인상은 막 소풍 나온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들처럼 대개 들떠 있었다.

  어느 날은 그 길 중간쯤의 한 식당 앞에서 젊은 여자들과 함께 있는 고등학교 후배를 마주쳤다. ‘서클’의 이년 직속 후배로 이십 대 때까지는 나와 잦게 어울렸었다. 그도 역시 때 하나 묻지 않은 하얗고 달라붙는 바지에 빨간색 골프 티셔츠 차림이었다.  

  “이제 막 밥 먹고 공치러 올라가려고 합니다, 형님.” 

  내 복장의 아래위로 그의 의아한 눈길이 와닿는 것 같았다. 그가 어떤 방식으로 살았으며 현재는 무슨 일을 하면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 수 없으나 그는 지금 골프복 차림으로 여자들과 어울려 골프를 치러 와서 나와 마주 서 있는 것이다. 

  “근데 형님은 여기 어쩐 일이십니까?”

  나는 땀내 풍기는 내 남루한 차림새가 그다지 민망하지는 않았다. 험한 일을 할 때는 작업복이나 버려도 괜찮은 헌 옷을 입는 것이고 글을 쓸 때는 편한 옷이면 되는 것이다. 슈트에 넥타이까지 갖추지 않아도 되는 삶은 얼마나 홀가분한 것인가. 예전의 생활방식은 불편할 때가 많았었다. 예술가는 가다듬지 않은 머리칼로 슬리퍼를 끌고 길을 나서도 남들의 시선을 신경 쓸 필요가 없다는 점도 달가웠다. 나도 승마복으로 당당하게 입을 때도 있는 것이다.  

  나는 자초지종을 말해 주었다.

  “골프 치러 오갈 때 커피 마시러 들러라.” 

  그는 붙임성있게 알겠다고 했지만, 한 번도 오지 않았다. 아무튼, 밥집마다 그 많은 차며 골프복의 벅적벅적한 사람들을 보면서 안도감을 가졌다. 그 길로 더 올라가면 십 년쯤 전에 골프장이 두 군데 생겼고, 이미 상권이 만들어져 있어 나도 잘 될 경우가 여실하다고 보고 이 산속에서 카페를 하기로 했던 것이었다.   




  골프장 방향으로 밥집들이 이어진 구간이 일단락되는 즈음에서 꺾어 산 비탈길로 70m 정도 올라오면 기온이 그 아래보다 섭씨 이도 정도 뚝 떨어지는 듯한 체감이 들었다. 지대가 높은 데다 키가 17m 이상씩 되는 아름드리나무들이 덮어주는 그늘 덕일 것이었다. 뜨락에서 작업하다가 언뜻 보게 되면 앞마당 가운데 선 느티나무의 굵은 가지에 덩치 있는 이름 모를 새가 등을 돌린 채 무심하게 앉아 있거나, 새뜻한 빛깔의 조그만 새들은 그늘 속을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짧게 짧게 날면서 돌아다녔다. 어떤 새는 뜨락 끄트머리쯤에 내려서 나는 조금도 신경 쓰이지 않는다는 듯이 한참씩 제 볼일만 보는 것이었다. 

  새들은 인적 없는 이곳을 용하게 찾아내어 여태껏 저희의 피신처로 삼고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새들에게는 이곳만일지언정 그 정도의 평화는 누릴 응당한 권리가 있었다. 뭇새의 숨겨진 요새! 카페 이름은 미리 정해두었지만, 새들에게서 영감을 받은 나는 상징 로고를 새로 하기로 했다. 그러나 더 굳센 새, 무리 짓지 않아 고독하고 그래서 더 자유롭고 긍지 있게 나는 새이어야 했다. 나는 세상을 내려다보며, 세속사를 관조하며 저 창공 높이 유유하게 체공하고 있는 한 마리 매를 내가 할 카페의 표장으로 삼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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