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 현장소설 《카페 가는 길》
나는 이제까지의 작품 작업 중 이 소설을 써 가기가 가장 어렵다. 원래 나는 햇빛이 있는 동안 글을 쓰는데, 이 작품은 그날 잘되지 않았을 때는 밤에 술을 마신 다음에도 붙는 적이 여러 번이었다. 여기까지라도 내가 쓸 수 있었던 것은 결국 무의식이 글의 빈틈들을 채워 주었기 때문이다.
나는 못 판 날 저녁에는 패잔병 같은 심정이 되었다. 내가 파는 캐러멜 마키아토 한 잔 값이지만, 마음이 처졌을 때 나는 목욕탕에 가면 위안을 얻게 된다. 집 근처의, 헬스장과 찜질방이 있는 6층짜리 목욕탕에 가면 보기 싫은 몸뚱이가 많다. 굵다란 금목걸이를 건 배불뚝이 하며, 한눈에 봐도 못 되게 생긴 종자에, 헬스장의 트레이너쯤으로 보이는 근육 돼지는 샤워하면서 삼각근을 연신 실룩실룩하는 꼴이 영 밥맛이다. 시청의 전 국장, 시의회 전 의장이나 현 의장 등도 마주치는데, 추한 영혼이 그 얼굴과 몸으로 드러난다. 나는 거울 속의 나와 마주 보다가 내가 기어코 예술가가 되지 않았다면 어쩔 뻔했나, 하며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 그리고 내 얼굴과 오랜 세월 말을 탔던 내 몸매를 본다.
그들은 너무나 보기 흉했으며 그들의 얼굴엔 천박함이 깃들어 있었다. 그것은 끔찍했다. 그들의 모습은 하찮은 욕망들로 일그러져 있었다. 그들의 모습에선 아름다움 같은 것은 찾아볼 수도 없었다. 그들은 교활한 눈과 힘없는 턱을 갖고 있었다. 거기엔 사악함이 아니라 다만 속물근성과 천박함이 들어 있을 뿐이었다. ― 서머싯 몸William Somerset Maugham, 《인간의 굴레Of Human Bondage》
목욕탕에서는 몸이 계급이다. 여하한 일이 있더라도 나를 그들과 바꾸지 않겠다, 어려워도 나로 살리라, 하고 나는 생각한다. 목욕탕에서 나신들을 보고 있노라면 자기 자신을 포기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늙은 사내들의 몸은 늙어서가 아니라 방치해서 그런 것이다. 나는 끝까지 아름다운 몸매로 살다가 죽으리라, 하고 생각한다. 그 목욕탕은 목욕비가 1000원 더 비쌌고, 사람들이 꽤 있는 만큼 흉한 몸뚱이 또한 많아서 단골 목욕탕이 끝날 시간이 아니라면 웬만해서는 가지 않는다.
나는 단골 목욕탕에 가면 온탕 물에 몸을 담그고 책을 읽는데, 내가 가는 시간쯤에는 나 혼자든지 한두 명 더 있든지 한다. 나는 땀을 내면 불현듯 더 나은 생각이 든다. 나는 냉탕에 들어갈 때면 개츠비를 떠올린다. 개츠비는 낙엽 떨어지는 가을의 서늘한 자택 수영장에 시체로 떠 있다. 나는 냉탕 물속의 맨 위 계단에 앉는다. 물은 아랫배까지만 찬다. 그렇게 하체만 식히는 것이다. 예전에는 한 번에 뛰어들어 갔었지만, 작금의 형편이 심리적으로 그만큼밖에는 허용하지 않는다. 목욕하면서 캔에 든 시원한 탄산수를 마셨던 적이 언제였던가. 1000원이었다가 1500원을 받는 다음부터는 한 번도 사 마신 적이 없다. 온탕 안에서 그 음료를 한 모금 물고 있으면 차가운 알사탕처럼 입안에 동그랗게 말려있다가 짜릿하게 넘어갔었다. 나는 이렇게 참으며 다리만 담그고 있다가 몸이 거의 식을 때에야 냉수에 몸을 온전하게 넣는다. 나는 그렇게 온탕에서 땀을 내고 냉탕에서 몸을 식히고 비누칠을 한 다음 샤워하고 샴푸로 머리를 감고 다시 기운을 차린다.
목욕을 마치면 몸의 물기를 닦으면서 한쪽에 내려놓은 간소한 내 물건들을 본다. 온탕에 들어앉아 있는 시간을 재는 이 만 얼마짜리 플라스틱 전자시계, 책 한 권, 돋보기안경, 손바닥만 한 스프링 메모장, 펜 한 자루 등이다. 나는 그 물건들이 무엇보다 귀하다. 없어서 나는 오히려 자유로움을 느낀다.
나는 팬티를 들고 다시 다리에 끼우기 전에 하도 오래되어 허리 신축 밴드를 싼 천의 맨 상부가 해지다 못해 길게 갈라진 모양을 물끄러미 내려다본다. 나는 전혀 상관없다. 누가 보는가? 어떤 물건―이를테면 치약이나 전구, 일회용의 면도기와 가스라이터, 부탄가스, 살충제 에어졸, 주방 세제 리필 백, 커터 칼날 따위―을 마지막까지 다 쓰고 버릴 때의 쾌감이 있다. 물건을 함부로 쓰고 버리려면 커피는 왜 팔겠는가.
어떤 날은 목욕탕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내지 않았나 싶어 급한 마음으로 로커에서 옷을 꺼내는 데 그 옷에 걸려서 옷걸이가 바닥에 떨어지고, 이것저것 챙기다가 시계며 라이터 등이 또 떨어진다. 서둘러서는 안 된다. 빨리 살고 빨리 죽을 것인가. 나는 허리를 접어 그것들을 줍다가 손이 둘뿐이라는 것을 다시 알게끔 된다. 한 손에 한 개씩 외에는 더 들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나는 대형 마트 같은 데서 나 자신을 실험해 본다. 옷이든 무엇이든 무수한 상품 가운데서 그 무엇도 필요하지 않을 때 나는 나 자신에게 만족한다. 옷으로 이야기하자면, 신상품―보다 저렴하다는 대형 마트인데도 코트가 40 몇만 원이었다―이라고 내놓지만, 색상이든 디자인이든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을뿐더러 새 옷을 사 입은들 무슨 소용인가. 먼저 몸매를 만들 일이다. 그런 고로 나는 돈이 안 나가도 되어 흐뭇해진다. 그렇다면 그 상품들을 만들어서 돈 버는 사람들은 어떡하냐고? 그 사람들 살게 하려고 내가 죽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들은 더 의미 있는 다른 일을 하면 된다.
또, 나는 옷가지를 웬만하면 털어 입는다. 공기에서 온 것은 공기로 돌려보낸다. 가급적 물로 빨지 않는다. 물을 더럽히지 않는다. 그러면 세제도 쓸 필요가 없다. 우리는 쉽게 말한다. 생산적인 일을 하라고. 쓸데없이 세탁기를 수시로 돌리는 것이 생산적인 일은 아닐 것이다.
생산적인 일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목욕탕 얘기로 다시 돌아가자. 집 근처의 목욕탕으로, 국가 대항 축구 경기 중계만 한다 하면 로커에 나온 모든 이들이 텔레비전에 정신을 판다. 나는 축구로부터 자유롭다. 국가끼리 든 뭐든 편을 지어서 상대편 골대에 서로 기를 쓰고 공을 집어넣는 행위가 무슨 의미가 있는지 텔레비전을 둘러싼 사람들을 볼 때마다 의아하다. 그것뿐 아니라 나는 모든 공놀이에 대해서 그렇게 여긴다. 나는 그런 것에 정신을 빼앗기지 않는다. 그 시간에 나는 오직 계속 생각한다.
나는 목욕탕의 꼴 보기 싫은 군상 속에서 내가 감방에 있다고 생각해 본다. 감방에서는 싫은 인간들과 섞여 있어야 하는데, 술을 마시고 싶으면 목욕탕에서 나와 한두 병 사서 집에서라도 마실 자유가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인간관계가 중요하다고 한다. 인간관계 좋아 보아야 쓸데없이 어울려 술만 마시는 것이다. 그날 6만 원을 벌었다고 치자. 저녁에 한 사람을 불러내어 식당에서 술을 마신다고 하자. 내가 그 사람을 불렀기에 내가 술값을 내는데 대략 소주 세 병 1만 2000원, 맥주 한 병 5000원, 안주는 못 해도 3만 원이다. 도합 4만 7000원 이상이다. 내 왕복 택시비까지 더하면 5만 7000원으로 주머니에 달랑 3000원 남는다. 술을 자꾸 사 줘 보아야 좋은 소리도 못 듣는데 돈 버리고 시간 버리고 이것저것 집어먹어 몸을 망가뜨리는 것이다. 차라리 사람 안 만나느니만 못하다. 집에서 마시면 소주 1500원, 맥주 1700원 해서 합이 3200원이면 된다. 그날 번 돈에서 5만 6800원이 남는 것이다. 나 같은 사람이 많아져서 식당, 술집이 망한들 나와 무슨 상관이냐. 남의 식당, 남의 술집 안 망하게 하려고 내가 망할 수는 없지 않은가.
특히 자기가 사는 지역이라는 이유로 소비해 줄 필요가 없다. 예를 들어 이 이야기를 쓰고 있는 지금까지도 그 간판 집 사람들은 자원봉사한 것도 아니고, 내가 그 전까지 몇 번이나 비싼 간판을 맞추었는데도 한 번이라도 소비자의 업소에 와서 팔아준 적이 없는 것이다.
소비를 더 하게 되면 더 노동해서 돈을 더 벌어야 하고, 노동을 더 하면 체력과 시간을 더 빼앗겨 글을 쓰며 살기가 어려워진다. 글을 써가려면 가능한 한 소비를 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함에도 나는 실수할 때가 있다. 대화할 상대가 필요해서―우리가 살아가면서 외로울 때도 있는 법이다―전화로 지인과 술자리 약속을 잡고는 곧바로 납기 날짜가 코앞인 그달 치 공과금과 바로 시켜야 할 재료비 대금이 떠올라서 후회하기 시작한다. 나는 돈 나가야 하는 것이 정말 싫다.
그날 나는 식당이나 술집에서 그 지인과 맹숭맹숭한 소주와 맛대가리도 없이 비싸기만 한 안주를 먹고 마신다. 술은 취하려고 마시는 것인데, 약해빠져서 소주 맛도 아니고 그렇다고 청주도 아닌 것을 네댓 병이나 비워야 한다. 나는 턱없는 술값을 내고 영수증을 챙긴다. 나는 집에 돌아와서는 이상하게 불쾌한 취기에 누웠어도 분통이 오르며 좀체 잠이 들기 어렵다. 집에서 사다 먹는 알코올 도수 25°짜리 옛날 것은 진짜 소주 같은데, 요즘 대부분의 식당과 술집에서 파는 것은 16°짜리로 거의 청주와 진배없이 약하다. 빨간 뚜껑의 20.1°짜리라면 그래도 조금 나은데, 그 소주를 가져다 놓는 집은 거의 없다. 왜 그러겠는가. 약해서 더 시키게 하려는 장삿속이다―나는 다음부터는 빨간 뚜껑의 소주가 없는 그 집은 가지 않는다―. 나는 나 자신에게 화가 났다가 이제 후회하며 끙끙 앓는다.
나는 쉬는 날 아침이 되면 나갈 것인지, 말 것인지, 차라리 카페나 가서―그 하루를 안 쉬면 2주일이 너무 길다―전날의 매출 부진을 보충하는 것이 낫지 않을지, 여러 가지를 놓고 갈등한다. 다른 곳으로 간다고 해도 누가 오라고 하지도 않았지 않나. 몸은 피로하고, 따라서 머리도 무겁기만 하다. 일처럼 나가려니까 나가기 싫은 것이다. 안 나가면 돈도 굳는다. 그러나 종일 누워있으면 일주일에 하루뿐인 그날이 덧없이 가버린다.
나는 노트북 가방을 메고 내 차나, 어떨 때는 기차를 타려고 어차피 후회하게 될 것이 뻔한 여정을 나서면서 기름값―차의 기름을 쓰면 다시 돈을 써서 채워 넣어야 한다―이나 차비, 밥값과 커피값 등을 근심한다. 가는 길도 그저 그런 풍경이다.
혼자만의 여행은 언제나 마찬가지로 두렵다. 어느 쪽으로 갈지, 어느 길을 택할지, 무엇을 할지, 어디를 둘러볼지, 점심은 무엇으로 먹고, 잘 못 시켜서 자책하지는 않을지, 그래도 나온 김에야 술집 여자가 쉬는 날 다른 술집에 가서 술 마시며 쉬는 것처럼 어떤 카페를 검색해 탐방해 보았는데 여전히 실망스럽지 않을지, 매 순간 모든 것을 나 자신이 선택해야 하고, 그 선택의 대가는 오롯이 내 몫이다. 돈은 또 나가고 다음 날 아침, 통장이 축난 것을 보며 나는 위축된다.
살아가는 일은 돈이 많이 든다. 오늘내일 사이 딸내미 용돈도 주어야 하고 각종 세금이며……. 내가 돈을 벌어야 하는 이유다. 그런데 프로메테우스의 간을 독수리가 매일 밤 파먹어도 아침이면 다시 생기듯, 이것저것으로 돈이 나가도 내게 생산수단이 있어 감사하게도 다시 돈이 들어오는 것이다.
그날 못 벌면 안 쓰면 된다. 하루 6만 원을 벌어서 쓰지 않는 것이나 10만 원을 벌었는데 술값 등으로 4만 원이 나가는 것이나 남는 돈은 6만 원으로 같다. 나는 어떻게든 돈을 모아야 한다.
1파운드 벌어서 19실링 6펜스를 쓰면 부자가 되지만 20실링 6펜스를 쓰면 가난뱅이가 된다. ― 서머싯 몸, 《과자와 맥주Cakes and Ale》
많이 못 벌면 돈을 많이 안 쓰면 된다. 한 달에 300만 원을 벌고 200만 원 쓰나 150만 원 벌어 50만 원 쓰면 똑같은 것이다. 카페를 시작한 지 여덟 달 만에 재료비와 공과금을 제하고 내 건물 일 층의 임대료를 합쳐 이제 100만 원 넘게 수익이 나게 되었다. 처음에 나는 한 달에 100만 원 이상만 벌게 되면 아내에게 갖다 주고 글만 쓸 수 있으면 족하리라 생각했었다. 그렇지 않았다. 한 달에 100만 원가량의 수입으로는 안 되었다. 옷도 안 사는데도 돈이 모이지 않았다. 지난 동안 벌지를 못했으니 건강보험료 미납분이 수백만 원 남아있었고 지방세는 밀려서 내 성의 대지와 건물이 또다시 압류되었다. 돈이 없으면 살 수가 없는 것이었다. 당장의 건강보험 문제야 병원을 안 가면 그만이지만, 기백 만 원 때문에 가족이 길거리로 나앉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런 것들을 다 해결하고, 오가는 내 차의 기름값을 빼고, 담뱃값이며 기타 잡비도 제하고 순전하게 100만 원만 되어도 더 욕심을 내지 않을 수 있었다.
그나마 그 정도의 수입이라도 오른 것은 내 궁상을 보다 못한 아내가 블루투스 앰프와 스피커 두 개 값을 마련해 줘서 음악이 밖으로도 나오게 된 덕도 본 듯했다. 행운이 조금 따랐는데, 내가 인터넷 쇼핑으로 블루투스 앰프와 스피커 두 개를 골라서 주문하고 송금까지 했는데 판매자 측에서 전화해 왔다.
“그 제품은 품절인데 저희가 미처 못 내렸거든요. 죄송하지만 조금 더 크고 더 출력이 센 그 윗급 모델이 있는데, ……네. 사만 원 더 비싼데, 대신 그 제품으로 그냥 보내드리면 안 되겠습니까? 아니요. 저희가 잘못한 거니 추가 금액은 없고요.”
나는 물론 흔쾌히 수락했다. 그랬다. 아무것도 없이 무엇을 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부탁을 받아 약속을 해주었기에 아들에게 시내버스로 오라고 해서 그날 오후는 카페를 맡길 수밖에 없었다. 물론 아메리카노만 된다고 하라고 일러두었다. 내가 예전에 단기간 일했었다고 말한 바 있는 그 작은 승마장 주인과 말 두 마리를 싣고 어느 초등학교에서 일해 5만 원을 받아 돌아와서 아들에게 물었다. 아들이 판 만큼을 아들에게 주려고 했었다.
“손님 좀 있었니?”
“없었어요.”
“한 명도?”
“네”
내 얼굴로 열감이 올랐다. 이튿날 오후까지 그 학교로 같이 가기로 되어있었는데, 아침부터 날이 끄물끄물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가는 빗방울이 간헐적으로 흩뿌려졌다. 돈도 돈이지만, 나는 그날 아들을 부르고 싶지가 않았다. 내가 먼저 승마장 쪽에 전화했다.
“원장님. 오늘 안 되겠죠?”
얼마 뒤 그가 전화해 왔다. 다른 날로 수업을 미뤘다는 것이었다. 오후에 비는 오지 않았지만, 카운터 테이블 뒤에 서있자니 새삼 마음이 편했다. 사람이란 환경에 맞추어지는 것인가. 어디서 전화 안 오고 일 없는 것이 좋은 것이었다.
거의 모든 걱정거리는 돈이면 다 해결된다. 돈을 벌면 되는 것이다. 돈 문제 때문으로의 압박은 조금씩이라도 돈을 벌면서 하나하나 생각해 나가면 풀릴 테지만, 아직은 그럴 여력이 없었다. 버는 것보다 적게 쓰면 조금씩이라도 돈이 모일 것이었다.
택배가 왔고 나는 칸막이를 친 제일 인기 있는 그 자리에 바꾸어놓을 새 업소용 소파들을 조립했다. 카페를 시작한 지 근 열 달 만에서였다. 어떤 카페는 이미 망했거나 문 닫을 준비를 하고 있을 수 있다. 결국, 내가 속으로 정해놓은 기간 동안 그 자리를 쓴 이용객들 스스로 소파들을 사놓은 결과가 된 셈이었다. 조금 모자라서 아들에게 카페를 맡겨놓고 나가서 ‘말 일’ 아르바이트로 번 5만 원을 보태기는 했다. 하지만, 비수기라는 장마철이 시작되었다.
장마 중간의 잠깐 갠 날도 습도와 열기는 대단했다. 나는 그즈음 무슨 생각으로 매장 중간 벽과 출입문 바깥 양옆의 외벽에 색깔 있는 우드 스테인을 칠하고 있었다. 바탕칠이 다 말라서 이제 외벽에 이른바 긋기단청을 시도해 보는 중이었다. 출입문 앞 맨 위 계단에 역시 주워온 옥외용 스툴을 놓고 올라서서 돋보기안경을 쓰고 연필과 자, 컴퍼스―귀퉁이를 모양내는 데 필요했다―로 밑 선을 치고 선에 맞물리게 종이테이프를 붙이고 하는데 등골을 타고 땀이 흘러내렸다. 나는 잘게 기우뚱거리는 스툴 위에서 작업해 가면서 내 나이와, 인력사무소에서 이런 날의 막노동과 승마장의 노역을 떠올렸다.
순간, 나는 두 계단 아래의 뜨락에 너부러져 있었다. 왜 내가 뜨락의 판석 위에 누워있는 것인지 처음에는 정신이 아득했다. 곧 엉덩뼈에서 끔찍한 통증이 치고 올라왔다. 내 눈에는 나도 모르는 순간에 눈물이 고여 있었다. 나는 안경을 찾아보았다. 돋보기안경 때문이었던 것 같았다. 나는 간신히 일어났다. 급자기 너무 외로웠고 울고 싶었다. 요의가 있어서 다친 쪽의 다리를 질질 끌며 화장실로 갔다. 다행히 소변이 나왔고, 엉덩뼈를 살살 만져보았는데 어디가 부러지거나 금이 가지는 않은 것 같았다. 그날 밤은 엉덩뼈 동통으로 반쯤은 자고 반쯤은 깬 채 끙끙 앓았고, 사흘 정도 몸살기가 있었다.
찾는 이들에게 휴식을 제공하려고 카페를 만들었는데, 정작 나는 쉬지 못하고, 떨어져 다치고, 여러 이유로 작품 원고도 쓰지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글쓰기가 내 작업이어야 하건만. 사실 글쓰기는 어렵다. 그러하니 언제부터 인기를 타고 있는 모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같은 데나 사진, 짧은 동영상이나 올리는 것이 아니겠나. 그런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야기가 있어야 의미가 있을 것이었다. 나는 몸이 안 좋으니 알 것 같았다. 나도 계속 만들지만 말고 쉬면서 풍광을 누리고 즐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야 목적과 과정이 배치하지 않을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