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 현장소설 《카페 가는 길》
나이가 많아지니 나는 더 담대해지기는커녕 심장이 쪼그라든 듯 순간순간 겁이 났다. 나이를 먹었다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세상이 더 두려웠다. 생존에 대해 겁을 내니까 기억도 자꾸 잊는 것 같았다.
“무인으로 돌리는 게 낫지 않아?”
시내에 사는 한 친구가 처음 와서 보고는 에스프레소 머신 너머에서 하는 소리였다.
“여기 돈 얼마 안 나올 거 같아. 나 같으면 차라리 가끔가다 와서 청소나 해 놓고 딴 거 하겠다. 너도 시간 버리지 말고 물품이나 채워놓으면서 다른 일 해. 아니면 집에서 글이나 쓰면 되잖아.”
나는 다시금 에스프레소 머신을 보면서 말했다. 값비싼 장비였다.
“담배 아무 데서나 피워댈걸. 목조건물이라 내가 없으면 금방 타. 낙엽 쌓인 두께를 봐봐. 산으로 옮겨붙으면 어쩌려고?”
그렇게 잘 아는 너는 왜 그렇냐. 여태껏 집도 그렇고, 승용차 한 대 건사 못해 사무실 승합차나 끌고 다니면서…….
차로 한 시간여를 가면 근래 유명세를 치르고 있는 카페 하나가 산꼭대기에 있다는 것이었다. 개그우먼 출신으로 먹는 것을 밝히는 살찐 여자가 텔레비전 방송에서 빵이 그렇게 맛있다고 하여 전국에서 몰린다고 했다. 나도 산속에 있는데 접근성이 더욱 떨어지는 산꼭대기가 그렇다고 하니 나도 지난겨울 중턱쯤 쉬는 날 가서 보아야 했다. 산꼭대기까지 계속 굽이돌면서 올라가는 길은 가파르고 길디길었고 위험스러웠으며 무엇보다도 그 길가의 정경들이 참담했다. 쓰러져가는 폐가들 하며 사람이 들어있더라도 벗어날 수 없는 궁핍으로 다 포기한 듯한 산촌의 너저분한 가옥들을 지나간 다음 바로 무슨 정서로 커피를 마시고 빵을 먹을 수 있겠는지 나는 의문스러웠다. 비슷한 기억이 몇 년 전 것도 있었다. 인접한 도의, 집에서 차로 한 시간 반쯤 거리의 큰 승마장이었는데 국제 규격의 실내 마장에 초대형 샹들리에를 몇 개씩 늘어뜨릴 만큼 호사스럽기로 업계에 소문이 퍼진 시설도 구경할 겸 좋은 말들도 보고 싶어서 찾아갔던 적이 있다. 그런데 그 승마장의 앞 동네가 문제였다. 집과 집 틈바구니의 비좁은 골목골목을 이리저리 틀다가 차가 들이받아 진흙 담장이 넘어오는 것은 아닌지, 삐죽이 튀어나와서 빠져 내릴 듯한 슬레이트 지붕을 깨지 않을까를 긴장해야 했는데, 그 길이 승마장의 유일한 진입로였다. 회원들이 고급 수입차로 그 처참한 길을 통과해야 할 것이고, 방금 지나온 촌락 골목길의 비참함이 남아 있는데 무슨 심정으로 말을 탈 수 있을까 나는 의아했었다.
규모는 컸고 한겨울의 산꼭대기인데도 자리마다 빵을 먹고 있는 사람들이 꽤 되었다. 널려있는 프랜차이즈 빵집에서 먹으면 되지 굳이 험한 길에 바람 거센 산꼭대기까지 올라와서 그럴 일인지 나로서는 이해되지 않았다. 나는 역시 그림을 보려고 따듯한 카페라테를 시켰는데 거품은 잘았으나 턱없이 비쌌다. 나는 그 카페에서 내 카페와 그 접근성과 접근로의 정경, 독립된 진입로 등을 떠올렸다. 그렇다. 나는 희망이 아니라 가망성을 믿었다.
그 변호사 친구가 화가라는 60 초반의 한 사람을 처음 데리고 와서 커피를 마시고 나가던 참이었다. 그 친구와 몇이 3.1절 관련해서 시내에서 열려는 행사 안내 팸플릿을 받는 중에, 초로의 화가가 내게 대뜸 이러는 것이었다.
“다른 날도 아니고 우리 민족한테 제일 의미 있는 날에다가 백 주년인데, 그런 날은 돈이 문제가 아니라 사장님도 가게 문 닫고 참여하셔야지.”
나는 100주년이라고 생업을 쉬는 것에는 그다지 동의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도 역시 누가 데려오지 않으면 자기 발로 카페를 가지 않는, 카페 문화를 모르는 부류로 나는 보였다.
내가 숲속으로 들어간 것은 인생을 의도적으로 살아보기 위해서였으며, 인생의 본질적인 사실들만을 직면해보려는 것이었으며, 인생이 가르치는 바를 내가 배울 수 있는지 알아보고자 했던 것이며, 그리하여 마침내 죽음을 맞이했을 때 내가 헛된 삶을 살았구나 하고 깨닫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삶이 아닌 것은 살지 않으려고 했으니, 삶은 그처럼 소중한 것이다. ― 헨리 데이비드 소로, 《월든, 숲속의 생활》
“어렸을 때는 하도 똑똑해서 난 네가 크게 될 줄 알았는데.”
카운터 테이블 건너편에서 그녀가 그렇게 말했다. 나는 친한 사람 이외에는 얼굴을 똑바로 보지 않는 버릇이 있어서 그때는 누구인지 잘 몰랐었다. 혹시 시청 근처 골목에서 식당을 하지 않았느냐고 내가 묻자 벌써 그만두고 쉰다고 했다. 그녀 혼자였고, 내가 어릴 적의 옆집 누나였다.
그렇게 똑똑했었는데 왜 못 했냐고? 나도 나름대로 했었다. 예전에 자마(自馬)가 있을 만큼 사업으로 한참 잘 나갈 때의 얘기를 그녀도 들었을 터였다. 그런데 똑똑하다고 다 잘 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크게 됐잖아요. 소설가.”
크게 될 줄 알았다고? 대통령이라도 될 줄로 알았는가. 대통령이 되면 뭘 하나. 자살하거나 감옥살이를 할 뿐이다. 소설가가 별것 아니라고? 소설가는 아무나 될 수 있는 우스운 존재가 아니다. 그 재능을 타고나기도 해야 하며 엄청난 훈련과 창조성이 필요한 것이다.
웬만한 재능 가지고는 애초에 이 세계에 들어오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 ― 마루야마 겐지丸山 健二, 《아직 오지 않은 소설가에게Kitchen Confidential Updated Ed》
나는 늦게라도 재능을 썩혀두지 않고 힘들디힘든 작업을 해서 작품을 내고 소설가가 되었다. 나는 다시금 인문학으로 나 자신을 돌아보고 더 단단해져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이제 매장 앞마당 가운데의 느티나무 가지마다 새순들이 연둣빛으로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어쩌다가 매장 책장을 둘러보는데 한 책이 눈에 들어왔다. 그 책도 꽂혀있는 줄은 알고는 있었으나 왼쪽 저 끝에 있는지라 나는 그 저자를 좋아하지 않았었다. 밑줄들이 구불거리는 품으로 볼 때 필시 여동생의 책이었다.
나는 여태까지 실존적 상황에 처한 인간의 이야기를 써왔다고 자처하면서도 정작 실존주의라는 말을 설명하려면 마찬가지로 곤란을 느꼈었다. 실존주의라는 개념을 그가 처음 사용했다고 알려져 있으므로 혹시 명료하게 정의해 놓지 않았나 해서 나는 그 책을 빼 보았다. 그 책은 사람의 행동을 주장하고 있었다. 즉, 희망 없이 행동하는 것을 말이다.
실존주의는 사람에게 자기 자신의 행동밖에는 희망이 없다는 것, 사람으로 하여금 살 수 있도록 하는 유일한 것은 행동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으므로 사람이 행동하려는 것을 낙심시키기 위한 시도도 아니다. ― 장 폴 사르트르,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
나는 여러 카페를 다녀보았으나 다시 가고 싶은 데를 찾기 어려웠다. 어떤 카페는 들어가는 즉각
‘앗! 잘 못 들어왔다.’
하고 후회되었다. 그러함에도 곧장 돌아 나오기는 어려워서 애꿎게 커피값만 버리고는 했다. 아무튼, 나는 다른 카페를 보러 가면 커피 맛은 차치하더라도 얼마나 편안하게 오래 앉아있을 수 있는지 나 자신을 실험했으나 거의 삼십 분을 넘기지 못했다. 의자가 불편했고 테이블과의 높낮이 차이도 맞지 않았으며 실내 공기와 분위기를 견디기가 힘들었다. 사람이 올 만한 카페를 만들기는 쉽지 않을 것이었다.
카페 운영은 내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이었다. 나는 에스프레소 머신을 만지거나 주문받은 메뉴를 내고 난 후 아내에게 들었던 마음 아픈 이야기가 가끔 떠올랐다. 아내의 직장 상사가 정신에 문제가 있는 미혼의 딸에게 카페나 해 보라고 조그맣게 차려주었는데, 겨우 몇 달 만에 그만두었다고 했다. 부모가 보니 딸이 처음에는 그 일을 좋아하는 듯했는데, 이용객이 조금 늘어나자 엄청 힘들어했다는 것이었다. 특히 한 번에 여러 가지 메뉴를 주문받을 시는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나도 처음 얼마간은 어느 메뉴부터 손을 대야 할지 마음만 급해서 허둥댔었는데, 그녀가 정상도 아닌 머리로 얼마나 힘들었을지 이해가 되었다. 부모가 돈이 있어도 정신의 문제로 조그만 카페 하나를 운영하지 못하는 그 집 딸의 이야기가 생각난 뒤에는 내 딸내미 생각에 잠기고는 했다.
문인 협회에서 사무국장을 하는 그 여자 때문에 칸막이를 해놓은 창가가 그래도 사람이 들어오면 대부분이 무조건 먼저 차지하는 자리였다. 그 자리의 중고 의자들은 처음에 친구 트럭으로 상판에 고양이 로고가 찍힌 테이블들과 같이 사서 실어 온 것들인데, 식당용인지 등받이가 곧추서서 오래 앉아있기에는 나라도 불편했다. 그래도 매장에서 가장 인기 많은 자리라 언젠가는 그 의자들부터 바꾸고 싶었지만, 나에게는 원칙이 있었다. 내가 먼저 투자하지 않는 것이었다. 먼저 그 자리에 앉는 사람들이 사 마시면 그 자리에서 나오는 돈으로 더 편안한 의자를 구비할 요량이었다. 즉, 선은 사람들이 의자 값을 내고 후는 내가 사든 말든 해야 했다.
한 날, 골프장 쪽으로 더 올라가서 있는 그 경쟁 카페 여자가 왔다. 그녀는 찻값을 내고 직전에 이야기한 그 자리에 앉아 홀짝거리면서 자기 딸이 모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의 ‘친구’만 1000명이 넘고 그 때문으로도 카페를 많이 찾아온다고 하는데, 자랑하려고 온 모양 같았다.
나는 카페를 시작한 지 여덟 달이나 되었는데도 장사가 나아질 기미가 그다지 보이지 않았다.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고, 무엇을 들고 있다가 문뜩 손에서 놓칠 뻔하고―계속 여러 가지 생각을 해서 그러는 것 같았다―, 자주 무엇을 잊어버리는 이상한 내 증상은 없어지지를 않았다.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여기 원래 절 아니었어요?”
가끔 이렇게 묻는 사람들이 있었다. 카페 건물이 높다랗고 겹처마에 새 날개 모양의 익공(翼工)*까지 있어서 그렇게 느끼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그냥 돌려 나가는 차들이 있는지도 몰랐다. 나는 궁금한 점이 그네들은 궁궐과 사당을 가 본 적이 없는가 하는 것이었다.
“궁궐하고 절하고 사당하고 같은 양식이에요.”
나는 짜증이 올라서 그렇게 대꾸했으나, 아니 절이면 또 어떻고 광적인 타 교인이 아니라면 무슨 상관인가. 절에서 커피 마시면 고요하고 훨씬 낫지 않은가. 일부러 멀리 강화도 전등사 내 카페나 양양 낙산사에서 운영하는 카페 같은 데까지 찾아갈 필요도 없고 좋지를 않나.
얼마 전 그 누런 고양이의 처절한 주검을 발견한 뒤 한동안 나는 나 자신에 대한 믿음에 의심이 들었다. 점심 끼니를 때울 때는 의자에서 한쪽 다리를 다른 다리에 걸쳐 올려놓고 앉았다. 그러면 위쪽 다리가 아래 다리를 눌러서 흔들림이 잡히는 것 같았다. 오는 사람이 많아서 메뉴를 여러 차례 만들어서도 아니고 오늘은 어떠할 것인가, 하면서 긴장을 놓지 못해서인지 늦은 점심을 먹고 앉아있노라면 급자기 피로해져 머리는 무슨 생각도 하지 못했고 삭신이 저리고 노곤했다. 그래도 감옥 생활보다는 나은 것이다. 감옥에서는 좀체 나날이 가지 않는다. 그런데 하루마다, 한주마다 달리듯이 갔다.
나아질 희망은 없었고 나는 희망하지 않았다. 어제 사람들이 안 왔는데 오늘이라고 올 리 만무하고 내일도 마찬가지일 것이었다. 모든 것은 망하게 되어 있고 사람도 결국은 다 죽는다. 흔들의자에 등을 파묻고 얼마 눈을 붙이고 나면 4시가 지나고 있었다. 그쯤 나는 정신이 새로워지며,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행동하는 수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는 현실을 직시하게 되는 것이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기로 했다.
‘그래, 오지 마라. 안 와도 된다. 안 오면 홀가분하게 일하면 된다.’
바꾸고 고치고 새로 만들어 놓아야 할 것이 많았으며, 내가 해야만 하고 나밖에는 할 수 없는 일들이었다. 인생은 선택이자 실험이다. 돈을 거의 안 들이고 내 자립으로 얼마큼 해낼 수 있는지 나는 알고 싶었다. 나는 낡은 승마복으로 갈아입었다.
‘이제 실존주의를 해야지.’
사람은 자기의 삶에 뛰어들어 자기의 모습을 그려내며, 자기가 그려내는 그 모습 이외에는 아무것도 아니다. ― 장 폴 사르트르,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
‘이렇게 좋은 데를 안 온다고? 그래, 오지 마라. 안 와야 당신들 손해지.’
이제 오후 네 시 반경부터는 나에게 나를 증명해 가는 실존의 시간이었다. 여기는 내 승마장이었다. 나는 그래서 더 꼼꼼하게 더 제대로 작업했으며 더 문제점을 찾아 해결해 나갔다. 그런데 내가 실존주의를 하고 있으면 이상하게 차가 한두 대씩 올라와서 방해했다. 나는 흙먼지나 시멘트 가루거나 페인트, 아니면 실리콘 실란트가 묻은 승마복 차림 그대로 주문을 받았다. 하루하루 나는 그 시간에 그런 식으로 해가 떨어질 때까지 실존주의를 했다.
오늘의 전투를 또 나가는 거지, 하면서 나는 그날그날 내 카페로 왔다. 다른 곳들은 처음 차리면 ‘개업 빨’이라는 것을 받는데, 나는 보이지 않는 산속에서 그런 것 일체 없이 맨 밑바닥서부터 올라가야 했다. 몇몇이 내 카페를 절 같다고 하든지 말든지 대수롭지 않았다. 어차피 테이크아웃 전문점이 아니라면, 카페는 공간과 그 분위기를 파는 곳이었다. 내 카페를 감싸 안고 있는 푸르른 산자락과 그 수풀, 창가 자리에서 바로 내다보이는 앞마당의 드높은 아름드리나무들도 전부 아웃테리어였다. 매장 안에서 무엇을 하는 중에 차가 한 대 올라와서 세우려고 하다가 그냥 돌려 나가는 경우가 가끔가다 있었다. 그럴 때 나는 다 잡은 물고기를 놓친 것 같은 심정이었다.
‘……번듯한 한옥이라 가격대가 비쌀 것 같아서 그냥 내려가는 것이라면, 좋다. 더 올릴 것이다. 그렇다고 돌려 나갈 차가 내려서 들어오지는 않을 테니.’
나보다 나이가 더 들어 보였지만, 내 짐작에 나와 비슷하거나 몇 살 더 적을 듯한―일반적으로 그러했다―사내 혼자 들어 와 주문을 하고 덧붙이는 소리가 이러했다.
“여기 사장님이에요? 커피숍엔 여자가 있어야지…….”
그 월급을 제가 줄 것인가. 추한 인간아. 너는 그 몰골로, 그 천박성으로 어차피 안 된다. 여자 둘이 하는 저 윗집에 가도 마찬가지다.
‘오지 마라!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너는 필요 없다.’
어차피 그는 그 후로 다시 온 적이 없다.
마찬가지로 독일제로서 세계 최고의 SUV라고 하는 하얀 스포츠 유틸리티 차량이 꽁무니에 다른 차 몇 대를 달고 왔다. 내가 카페 마당에 서 있는 그 차를 구경한 적은 처음이었다. 그 차의 60대로 보이는 여자 차주가 매장을 나와 뜨락에 빳빳하게 서서 터가 좋다며 땅값을 물어본 다음―물론 나는 모른다고 했다―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회장이라 불리며 빵빵한 체구에 거동이 원체 당당한 그 늙은 여자가 일행의 우두머리인 듯했다.
“이렇게 근사한 데서는 다른 걸 하셔야지.”
“어떤 다른 거를요?”
내가 묻자 그녀는 한 음절씩 딱딱 끊어서 일러주었다.
“음·식·점.”
매장에서 경우 없는 사람들을 상대하다가, 뭐? 문학? 작가? 네가 잘났기는 뭐가 잘났어? 카페나 하는 주제에, 이런 식으로 그들이 나를 치는 듯 보여 자괴심이 들 때 생각이 이렇게 가는 것이었다. 그래. 당신네는 잘 모르는 개념인 소설가는 차치하고서라도 내가 이전까지는 승마 교관이었노라고. 물론, 그런 사람들만 있지는 않았는데,
“저 위 카페보다 훨씬 좋은데?”
남자들이 자기네끼리 수군거리던가,
“사장님. 올라와 보니까 완전히 반전이에요! 너무 좋아요.”
낯빛이 환해지면서 이렇게 표현하는 여자도 있었다.
“요새 어떠세요? 바쁘세요?”
내가 때려치우고 나왔던 승마장에 여태까지 버티고 있는 월급 원장의 전화였다. 내가 그 승마장에서 고역을 치를 때, 그와 일을 나누어서 했던 적이 있었고, 그 대표의 동년배였다. 하루에 10만 원인데, 일주일에 두 번 정도 같이 학교에 가서 지도할 수 있느냐는 요지였다. 필시 대표가 그에게 시킨 바였으나, 그렇다면 한 달에 고정적으로 적어도 80만 원. 돈은 무서운 것이었으나 나는 망설이지 않았다.
“요새는 손님이 좀 늘어서 시간 내기가 어렵겠어요.”
“그래요? 잘 되면 좋지요, 뭐. ……그런데 교관님도 안 된다고 하시니 어떡해야 하나.”
이틀 후, 이번에는 그 대표가 직접 전화해왔다. 급한 모양이기는 했으나 내 알 바 아니었다. 그가 끝에 말했다.
“그래, 산속에서 찻집을 하고 있어?”
나는 헛웃음이 나왔다.
“여기를 명소로 만들 건데, 빨리 되지는 않네요.”
얼마 전 1000만 원이 날아가 버렸다. 문학창작기금 선정 결과 발표가 떴는데, 해당 장르의 여덟 명 중에 내 이름이 있지를 않았다. 하는 수 없었다.
나는 어느 일요일 하루를 쉬기로 했다. 오랜만의 가족 나들이였으나 당일치기로 갈 곳은 마땅치 않았다. 또다시 강릉 바닷가의 ‘커피 거리’를 갔고, 큰 공장 같은 카페를 들렀다. 돌아오는 길에 나는 아주 산속 깊숙이 있는 그 카페를 꼭 가 보고 싶었고 아내는 달가워하지 않았다. 언제까지고 계속해서 산길을 타고 숲속으로 올라갔는데, 주차장으로 여겨지는 빈터에 내 차 말고도 우리가 그 카페에서 나올 때까지 다섯 대가 더 있었다. 아주 작은 카페였고 안은 코딱지만 해서 바 자리를 빼고 테이블이 두 개뿐이었다. 그림을 만들어주지 않은 미지근한 카페라테를 절반가량 마시다가 약간 손위로 보이는 주인 남자에게 내가 물었다.
“오면서 보니까 옆으로 비킬 데도 없는데, 차끼리 서로 마주치면 어떡하죠?”
“센 놈이 이기는 거죠.”
그는 생긴 것만큼이나 불퉁스러웠다. 이런 식인데 여기가 그렇게 유명하다고? 잠시나마, 나는 그를 바깥으로 불러내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하지만 나는 자리가 날 때까지 밖에서 기다리는 이용객들을 보았다. 명소란 원래 그러해야 했다.
‘이 심산유곡에서 너도 사는데…….’
산중에 깊이 숨어있는 그 눈곱만 한 카페에 비한다면 내 카페는 도심 바로 옆에 있는 셈이었고, 자리도 몇 배나 많았다. 나는 여러 가지 면에서 내 카페를 다시 보았다.
* 기둥 상부에서 창방과 직교하여 보를 받치는 짧은 부재.
[연재일 변경 안내] 다음 주부터는 화, 금요일에 연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