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욱래 장편소설 《이탈-그 여름의 추억록》 제1부
깜찍한 모양의 K1A 기관단총을 지급받은 다음부터, 그는 신병교육대의 일과들이 지루했고 보병의 제식동작 훈련이 갑갑해졌다. 어서 신병 교육을 마치고 한시바삐 어느 깊은 산 구석 신비롭게 자리 잡고 있을 자대로 떠나고 싶었다. 정찰대에 대한 미증유의 평판과 가공할 풍문은 오히려 그에겐 매력적인 것이었다.
중대 조교들과 다른 훈련병들의 눈엔 넷만 유난히 거슬렸다. 창공을 찔러대며 정연히 치솟은 M16 소총들의 수직 밀림 속에 견착 철선을 다 잡아 빼도 M16의 3분의 2 길이밖에 안 되는 장난감 총들을 그 넷만 단지 아기자기하게 받쳐 들고 있던 탓이었다.
P.R.I(Preliminary Rifle Instruction)라 불리는 사격술 예비 훈련이 시작되었다. P.R.I는 피가 나고, 알이 배고, 이가 갈리게 했다. 뙤약볕 아래 자그맣고 까만 표적들이 빽빽하게 그려진 하얀 드럼통 주위로 훈련병들이 죽 둘러섰다. 양쪽 다리를 앞뒤로 넓게 벌리고 상체를 최대한 깊게 숙인다. 오른팔을 늘어뜨려 손잡이를 잡고 늘어뜨린 왼손등으로 총열 덮개를 받친다. 그런 자세에서 드럼통의 작은 그림들을 노려본다. 무슨 신호가 떨어질 때까지. 위치를 잘못 잡은 훈련병은 곧장 꽂히는 햇볕 때문에 간신히 실눈을 뜬다.
“백사로 봣!”
P.R.I 담당 조교가 외친다. 즉시 지면을 박차는 군화 소리들이 울린다. 훈련병들은 일제히 3 미터 전방으로 튀어나가며 땅바닥에 전신을 내던진다. 총을 받친 양 팔꿈치는 잔자갈이 박힌 땅바닥에 갈리며 벗겨지고 피가 난다.
“이백 사로 봣!”
조교가 다시 외친다. 모든 ‘사로 봣’은 튀어나가고, 몸을 내던지고, 엎드려 쏘고, 다시 일어나서 원위치하는데 정확히 10초 이내에 끝내야 하는 것이었다.
“이백오십사로 봣!”
조교는 그렇게 꾸준히 외쳤다. 비 오는 듯한 훈련병들의 땀방울이 바짝 마른 땅바닥에 후드득거리며 떨어졌다. 흙가루와 굵은 땀방울들이 뭉쳐져 팍, 하고 줄이 끊어져 버린 목걸이 구슬들처럼 사방으로 굴러다녔다. ‘몇 사로 봣’은 끝없이 계속되었다. 훈련병들의 허리와 팔다리, 심지어 사타구니에도 알이 배겨갔다.
사격술 예비 훈련은 일주일간 계속되었다. 훈련병들은 1주일간 부득부득 이를 갈았다. 그 역시 그 훈련이 왜 ‘피알아이’인지를 확실히 체감할 수 있었다. 이제 도발해 오는 적들은 곧장 섬멸될 터였다. 그런데 K1A를 든 넷은 순수한 ‘피알아이’만의 고통뿐만이 아니라 덤으로 더더욱 이가 갈리는 소수 정예의 특별훈련까지 받게 되었다. 사격술 예비 훈련의 선임 조교는 큰 키에 깡마른 체구였는데 푸른빛이 도는 허옇고 작은 얼굴이 꼭 해골을 연상시켰다. 뙤약볕에 날카롭게 반사되는 조교 하이바 밑의 우묵한 눈 그늘에선 음험하고 괴기스러운 안광이 내뿜어지고 있었다. 그 해골은 오래전부터 ‘땡비’로 불려 왔다고 스스로를 소개했다. 땡비는 M16 이외의 다른 총을 증오하고 있었다.
“야, 장난감 총 네 놈! 자세 더 안 숙이나? 총이라고 개 × 같은 걸 들고 본 조교를 열받게 해? 튀어나―왓!”
장난감 총을 든 것은 원죄(原罪)였다. 네 명은 이제부터 땡비에게 마구 쏘여질 터였다.
“철모 벗는다. 양발 브이 자(字) 홈 전방 일 미터에 내려놔. 철모에 대가리 박는다.”
둥근 철모 상단에 머리를 박은 네 명의 정수리를 땡벌들이 사정없이 쏘아 대는 듯했다.
“정찰대! 자대 가면 절대 그딴 식으론 생활할 수 없을 것이다. 똑바로 박앗!”
땡비가 가르랑 댔다.
푸른 해골 같은 용모의 땡비는 장난감 총 소지자들을 틈만 나면 대열 밖으로 끌어냈다.
“정찰대! 이거 봐라…? 본 조교에게 개긴단 말이지? 좋아! 그렇다면 대가(代價)를 치러 주지. 좌 측방 일보 위치 철모 내려놓고 열두 시 방향으로 장난감 올린다.”
땡비는 뚜렷한 사유 없이 무슨 대가를 원했다.
“귀 잡고 쪼그려 뛰기 준비. 좌측으로 넘으면서 ‘개기지’ 우측으로 넘으면서 ‘맙시다.’ 육백 회, 실싯!”
넷은 감히 땡비에게 ‘개길’ 마음 같은 건 전혀 없었지만, 너무도 따갑게 파란 창공으로 개구리처럼 도약해대야 했다.
“복창 봐라, 복창. 그걸 복창이라고 하나? 그 대가를 받자. 좌측으로 ‘복창’ 우측으로 ‘불량’ 천이백 회 실시한다.”
넷은 기가 막혔다. 도무지 이유를 알 수 없는 땡비의 대가가 계속되자 허벅지와 종아리 근육이 마비되어갔고 나중엔 정신까지 혼미해졌다. 그 꼴을 흘낏거리던 훈련병들은 M16을 들고 있는 자신들의 행운에 상대적 위안을 느꼈다.
넷은 땡비를 저주하고 또 저주했다. 사악한 계부(繼父)의 가혹하고 잔인한 학대에서 벗어나 그들에게 장난감 총을 선물로 보내준, 얼굴 모르는 친부(親父)처럼 어느 먼 곳에서 친자식들을 기다리는 정찰대로 한시라도 빨리 떠나게 되길 간절하게 소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