땡 비

김욱래 장편소설 《이탈-그 여름의 추억록》 제1부

by 김욱래

4 주차에는 거의 매일같이 세찬 비가 쏟아졌다. 차가운 빗물이 바싹 말라서 노랗고 매캐한 먼지가 일던 연병장을 반죽처럼 이겨놓았다. 굵직한 빗방울이 밤낮없이 구형 막사의 낡은 슬레이트 지붕을 두들겨 댔다. 빗줄기가 잠깐씩 멈출 때면 한기를 품은 바람이 소용돌이쳤다. 유월에 접어들었는데도 훈련병들은 손이 시렸다. 찬비가 퍼붓고, 싸늘한 바람이 휩쓸고, 손이 시려도 신병 교육은 어떤 하자도 없이 진행됐다. 전부 판초 우의를 뒤집어썼으나, 무릎 아래 바짓자락은 흥건히 젖어들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쩍쩍 달라붙는 바짓자락은 종아리의 체온을 빼앗아갔다. 빗물이 들어찬 군화는 맹꽁이 소리를 내면서 끈 구멍 사이로 거무튀튀한 땟물을 밀어 올렸다. 군가는 빗줄기를 뚫으며 울렸다.


너와 내가 아니면 누가 지키랴

침략의 무리들이 노리는 조국

너와 내가 아니면 누가 이으랴

남북으로 끊어진 겨레의 핏줄

이 땅과 이 바다 이 하늘을 위해

너와 내가 맞잡은 손 방패가 되고

너와 나의 충정 속에 조국은 산다


그날의 교육이 끝나 막사로 돌아오면 흙탕물이 뚝뚝 떨어지는 훈련복과 푹 젖고 흙물에 절은 군용 팬티와 러닝셔츠를 매일마다 빨아댔다. 그런 불편함을 제외하면 그는 오히려 빗속의 훈련이 더 좋았다. 땀이 솟아도 끈적거린다는 느낌을 가질 새 없이 빗물에 씻겨 나갔다. 하늘은 여전히 어두웠고, 천둥은 음산하게 부서졌다. 갈대숲처럼 빽빽한 빗줄기 속에 비안개가 흩날리는 각개전투 교장을 달리고 구를 때면 그의 내부 깊은 곳으로부터 어떤 흥겨운 가락이 운율을 타고 흘러나오는 느꼈다. 철모를 두드려 대는 빗물이 흘러내려 콧등으로 떨어졌다. 그건 다시 상의 칼라 틈으로 스며들어 목덜미를 따라 가슴팍을 적셨다. 함성을 지르며 뛰고, 엎드리고, 뛰어넘고, 기다가 피날레인 백병전의 총검술 18개 동작을 해대면서 거센 빗줄기를 즐겼다. 지난날의 어두운 청춘이 빗물에 씻겨 나갔다. 군대라는 곳이 항상 이렇다면 그것은 흥겨울 수 있고, 무언가 꽉 들어찬 충족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비를 쏟아붓던 그 주는, 추억으로 삼을만한 땡비와의 일화 말고는, 아무 일 없이 상쾌하고 서늘하게 지나갔다.


오후 교육이 막 끝났을 때 비가 잠깐 멎었다. 먹구름이 시커맸지만 아직 컴컴해지지는 않은 저녁 무렵이었다. 땡비가 뭐라거나 말거나 장난감 총을 고집할 수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었던 네 명은 1 구대 막사의 출입문 맞은편 방화사 보관소에서, 훈련병 신분으로서는 결코 안 될, 아니 육군 이등병이 아니라 일등병 정도의 계급이라고 해도 역시 상상도 할 수 없는 자세들을 취하고 있었다. 방화사 보관소는 신병교육대의 철조망 담장 쪽으로 트여있었다. 넷은 거기서 며칠 동안 비에 씻기고 난 뒤의 철조망 너머의 청량한 산야를 바라보고 있었다. 녹슨 가시철조망 몇 가닥씩 걸쳐져 있는 오래된 시멘트 기둥들은 물먹은 비탈에 앞뒤로 기울어져 허술하게 박혀있었다. 철조망 바깥에는 푹신하게 젖은 산과 논밭들, 도로들까지도 병영의 연장인 듯 잘 정리되어 있었다. 병영은 철조망 안쪽에만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지지가 않았다. 그 막막한 땅에서 병영의 안과 밖은 장난처럼 철삿줄 몇 가닥으로 겨우 구분되어 있을 뿐이었다.


온통 빨간 페인트로 칠해진 방화사 보관소 바닥엔 모래를 채운 마대자루들이 쌓여 있었다. 넷은 그 모래 자루들 위에 그동안 쌓인 군기를 무위로 만들어버리는 방약무인의 자세로 누워 있었다. 팔을 머리에 괴고 모로 눕거나, 바로 누웠다고 하더라도 한쪽 다리를 포개는 등 민간인들에게서만 볼 수 있는 분방한 태도로 담배를 한 대씩 피워 물었다. 막사 출입구 쪽과 판자벽으로 가려진 그곳에서만 지난날의 몸짓들을 가끔씩 되찾을 수 있었다. 먼 산 능선을 따라 걸쳐진 희끄무레한 하늘을 올려다보던 유기철이 길게 한숨을 쉬었다.

“은정이 보고 싶어 돌겠다. 씨팔.”

유기철의 쉰 목에선 쇳소리가 났다. 그러곤 유기철은 눈길을 돌렸다. 먼 산기슭을 따라 이어진 도로 위로 미등을 켠 차들이 가끔씩 오갔다.

“……그때는 밤이었는데 비가 막 쏟아졌어. 걔를 오토바이에 태우고 끝까지 당겼어. 내가 같이 죽자고 소릴 질렀지. 한 시간쯤 그러다가 커브길 낭떠러지 앞에 세웠는데 걔는 울고 있었어.”

“이기 미친놈 아이가? 제정신이가? 가시나한테 와 그 지랄을 떨었노?”

김기진이 물었다. 그러고 보니 하나만 빼고는 이름 가운데가 모두 ‘기’ 자였다. 유기철이 그 ‘가시나’를 처음 만난 곳은 재수학원이었다고 했다. 미래도 사랑도 유기철에겐 불안하고 힘겨웠다.

“몰라. 그냥 세상이 답답했어. 걔는 나 같은 놈을 좋아했고 나도 걜 무지 좋아했지만, 그땐 그런 게 아무 의미도 없었어. 그런데 여기서, 철조망 안에서 생각하니 걔한테 잘못한 게 너무 많아. 아, 보고 싶어 미치겠다. 다시 만나면 며칠이고 꼭 끌어안고 있을 거야.”

유기철이 새 담배를 꺼내 물었다. 그도 유기철과 마찬가지로 암울한 잿빛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바로 그때였다. 넷의 귀에 째지는 듯한 소름 돋치는 음성이 확실하게 들렸다. 그들은 혼비백산했다. 넷은 솟구치듯 일어나서 부동자세를 취했다. 그들 바로 앞에는 조교 하이바 아래로 자신들을 노려보는 끔찍한 그늘이 있었다. 그는 바로 극도로 장난감 총을 증오해 오던 사나이, 정찰대의 킬러 땡비였다.

“따라온다.”

땡비가 악마 같은 웃음을 흘리며 뒤돌아섰다. 뼈만 남은 깡마른 뒷모습도 이 세상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심판자는 이윽고 1 구대 막사 출입구 계단 위에 올라섰다. 능글거리는 저음으로 땡비가 말했다.

“빠져도 한참 빠진 새끼들. 정찰대 가는 새끼들끼리 한번 까 보자 이거지? 좋아, 그렇다면 그 대가를 지불해 주겠다.”

저승에서 온 사자가 턱을 치켜들었었다. 넷은 해골 눈구멍 속에서 뿜어 나오는 파란 섬광과, 핏기라고는 전혀 없는 얄따란 입술이 잔인한 미소로 일그러져 있는 것을 분명히 보았다.

“시정하겠습니닷!”

막 도살장으로 끌려 들어온 것 마냥 넷은 오직 살기 위해 절규했다.

“시정? 그 말을 본 조교는 매우 싫어한다.”

움직이는 해골은 첫 문항부터 오답을 낸 넷을 내려다보며 냉혹한 비웃음을 흘렸다. 저녁 휴식시간뿐만 아니라, 어쩌면 밤새도록 경을 쳐야 할 판이었다. 생사여탈의 절대적 권한을 쥔 채 냉소만을 흘리고 있는 땡비의 상상하기도 싫은 어떤 심판을 코앞에 둔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그들은 서둘러 다시 정답을 찾아내야 했다.

얼어붙은 일렬횡대에서 불쑥 그가 확고하게 소리쳤다.

“그 대가를 받겠습니다.”

얼음으로 깎은 세 개의 조각상들이 경악했다. 눈동자만 겨우 돌려 바삐 죽여 달라고 외치는 정신 나간 훈련병을 보았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해골의 얼굴에 갑자기 혈색이 돌기 시작하더니 이내 환희하기 시작했다. 그게 바로 정답이었다.

“오호! 좋아. 아주 좋아.”

도대체 어떻게 정답을 맞혔는지, 빨리 죽여 달라는 훈련병을 신기한 표정으로 내려다보던 땡비가 또다시 찬사를 뱉었다.

“난 그 말을 무척 좋아한다. 아주 맘에 들어.”

이렇게 된 이상 이제는 어쩔 수 없었다. 넷은 쿵쾅거리는 설렘 속에서 땡비의 처분을 기다렸다.


“네 가지 중 한 개씩 선택해라. 조금도 봐주는 건 없다.”

땡비가 못을 박았다.

“일 번, 팔 굽혀 펴기 천 회. 이번 쪼그려 뛰기 천오백 회.”

다음 문항부터는 음산하게 말했다.

“삼 번, 접싯물에 코 박기, 사 번, 라면 줄에 목매달기. 자, 골라라.”

넷은 가장 조리 있고 합리적이면서도 땡비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을 만한 걸로 고르기 위해 머리를 쥐어짰다.

“팔 굽혀 펴기 천 회 하겠습니다.”

그는 망설임 없이 선택했다. 쪼그려 뛰기는 싫다. 허벅지가 터질 듯한 건 정말 싫다. 안 그래도 굵은 허벅지 더 굵어진다. 팔 굽혀 펴기 이백 회 정돈 자신 있다. 지금 같은 상황이니만큼 어쩌면 삼백 개까지는 가능할 것이다. 일단 삼백 개를 넘긴다. 그다음에 팔이 움직이지 않는다고 저라고 어쩔 텐가. 삼백 개씩은 아무나 못한다. 제아무리 땡비라 해도 잘해야 백 개도 못할 게 뻔할 텐데 제까짓 게 날 죽이기라도 하겠는가, 그는 그렇게 계산했다. 그는 살아남을 자신이 있었다.

놀란 땡비의 해골 눈이 의외라는 듯 커다랗게 떠졌다.

“오호! 백삼십사 번.”

“옛, 백삼십사 번 훈병, 나. 우. 권.”

그가 침착하게 외쳤다.

“그거 다 못한다면?”

땡비가 그의 표정을 살피면서 물었다.

“다 못한 대가를 받겠습니다.” 그는 땡비가 좋아하는 말만 골라서 했다.

“좋아, 그거야. ……백삼십사 번, 넌 잠시 대기. 다른 놈들은 몇 번 선택했나?”

땡비가 나머지 제물들을 돌아보았다. 땡비는 흥미진진한 그들의 선택에 대한 기대감으로 가득 차 있는 듯 보였다.

“삼 번 하겠습니다.”

눈치만 서로 보고 있던 셋은 동시에 그걸로 통일했다.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겠다는 이심전심이 통한 것이었다.

“그래? 삼 번이라고? …그렇다면 좋다. 백삼십사 번!”

얼굴이 일그러지는듯하다가 땡비가 그를 불렀다. 그는 큰 소리로 대답했다. 이제 엎드린 다음 시작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다음은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런데 의외였다.

“배짱이 좋다. 난 너처럼 진짜 사내새끼 같은 놈을 좋아한다. 팔 굽혀 펴기는 다음에 걸리면 하기로 하고 백삼십사 번은 내무반에 들어가 쉬어도 좋다.”

그를 열외(列外) 시킨 땡비는 내무반 쪽을 보지도 않고 소리쳤다.

“일 구대 당번! 컵 세 개 식수 꽉 채워 가져 왓!”

잠시 후 막사 안까지 각기 다른 음색의 끔찍한 비명들이 연이어 울려 퍼졌다. 땡비는 당번이 보온 식수통에서 따라온 대략 섭씨 70도의 물을, 열중쉬어 자세를 취하고 고개를 젖힌 셋의 콧구멍에 일인 당 한 컵씩 차례로 들이부었던 것이다. 화상을 입을 정도는 아니라 해도 셋의 절규는 처절했다. 그들은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되어 한참 동안이나 발만 동동 굴러 대었다.


“개새끼들!”

땡비가 싸늘하게 욕했다.

“백삼십사 번을 봐라. 팔 굽혀 펴기를 어떻게 천 개씩 할 수 있겠나? 하지만 백삼십사 번은 깡이 있다. 사내자식의 존심(尊心)이 있단 말이다. 난 남자다운 놈에겐 그만한 아량을 베풀어 준다. 그런데 너희 새끼들은 뭐냔 말이다.”

땡비는 진짜로 노했다.

“접싯물에 코 박는 게 젤 쉬워 보이고, 내가 장난이나 치겠지, 하고 설마 했겠지? 본 조교가 장난할 사람으로 보이나?”

땡비의 해골 눈이 더 냉랭해졌다.

“비겁한 새끼들. 정찰대 갈 새끼들이 이따위 식으로 개기는 게 부끄럽지도 않나?”

훈계는 계속되었다.

“본 조교가 그동안 정찰대, 너희들만 특별히 갈군 건 힘든 부대로 가야 할 너희들을 위해서였다. 거긴 그만큼 힘들기 때문이다. 악과 깡이 있어야 한단 말이다. 좋다, 오늘 이 시간부터 백삼십사 번을 제외한 너희 세 놈은 끝까지 갈궈 주겠다. 네놈들의 썩어 빠진 사고방식을 모조리 뽑아 놓겠단 말이다. 알아듣겠나?”


땡비는 노기등등하게 돌아갔다. 셋은 헌 콧구멍과 목구멍이 뜨끔대는 것도 잠시 잊은 채 풀이 죽어 해산했다. 1 구대의 훈련병들은 나중까지 그 4번, ‘라면 줄에 목매달기’라는 것은 과연 어떤 방식으로 실시되는 것이었을지 자못 궁금했다. 취침시간이 되어 침상에 누워 모포를 덮었을 때 그들은 나뭇가지에 묶인 라면 가닥에 목을 매고 흔들리는 원귀를 떠올렸다.

밤이 아득해졌고 빗줄기는 다시 굵어지기 시작했다. 어둠 속에서 막사 지붕 위로 쉼 없이 굵은 빗방울들이 떨어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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