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욱래 장편소설 《이탈-그 여름의 추억록》 제1부
비는 그치지 않았다. 실사격은 우중에도 어김없이 실시되었다. K1A 기관단총의 반동은 심했다. 방아쇠를 당길 때마다 총구가 튀어 오르며 강력한 굉음을 뿜었다. 두 번째 영점사격에서 그의 총은 단 세 발로 영점을 잡았다. 젖은 표적지는 총알구멍끼리 이어져서 뚫렸다. 열 발씩 쏘는 연습사격, 어쩌다 한 발 놓칠 때도 있었지만 그는 거의 매번 전부 맞췄다.
“장난감으로 만발을 때려? 백삼십사 번! 넌 저격수 감이다.”
땡비 조교가 수제자를 극찬했다.
K1A는 총신도 짧을 뿐만 아니라 개머리판이 ‘오리발’이라 부르는 접철식이라서 반동이 굉장했다. M16 소총에 비해 명중률이 잘 나올 수가 없는 구조였다. 유기철 등 셋은 열 발 중 네다섯 발을 맞춘 다음 낮은 포복으로 진창을 기어 다녔다. 자신의 총을 그는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강력하고 무서운 놈이었다. 총열 덮개 밑 부분을 한 손으로 잡고 무게를 달아볼 때마다 작은 애정이 솟았다. 우중 사격은 계속됐다. 막사로 돌아오면 정성스레 구석구석 그 총을 문질러 닦고, 기름을 바르고 윤을 냈다.
지겹도록 쏟아지던 비는 5주 차가 시작되면서 멎었다. 눈이 시릴 만큼 작열하는 태양이 다시 ‘작열하는 태양’ 사단의 신병교육대 대연병장 상공에 높다랗게 박혔다. 이제는 매일 현란하고 뜨거운 빛의 세례가 퍼부어졌다. 연병장에 남았던 물기가 금방 식판에다 퍼 담은 밥 덩어리의 김처럼 피어올랐다. 널따란 한증막 속에서 훈련병들이 헉헉댔다. 이미 6월 중순이었다. 훈련복은 땀으로 흥건했다.
“중대, 십분 간 휴식.”
조교가 외쳤다. 훈련병들은 묵직해진 상의부터 벗어댔다. 13중대의 퇴소식은 이제 열흘 앞으로 다가왔다. 이제 분열 연습이 시작되었다. 한 주씩의 간격으로 훈련병을 받은 14, 15중대의 훈련병들이 13중대의 한 주와 두 주 전 프로그램에 따라 똑같은 교장을 뛰어다니고 있었다. 그 사이에도 시간은 흐른 게 확실했다.
벌써 5주 차나 되어 퇴소식 얘기가 나오는 것과 14, 15중대의 훈련병들이 똑같은 코스를 돌고 있는 것을 구경하면서 그는 시간이란 건 어차피 흐른다는 실감에 흐뭇해졌다. 날들은 더욱 뜨거워졌다. 13중대는 결국 카키색 러닝셔츠와 얼룩무늬 반바지로 전체 통일시켜 분열 연습에 들어가게 했다. 훈련병들은 러닝셔츠와 반바지 차림으로 철모를 쓰고, 탄띠를 차고, 새까매진 팔뚝에 소총을 끼웠다. 분열은 끊임없이 계속되었다. 달아오른 불판 같은 대대 연병장을 돌면서 올라선 조교가 쏘아보고 있는 사열대를 끝없이 통과했다.
“우로 봣.”
“우로 봣.”
“우로 봣.”……
왼팔은 곧게 펴 전방 130도 상방, 후방으론 60도 하방으로 휘두른다. 오로지 곁눈만으로 오와 열을 맞추고 200여 명이 한 사람처럼 움직여야 한다. 커다란 불판 위를 단내가 나도록 그렇게 돌고 또 돌았다. 200여 명의 정신은 이제 반쯤 돌아 버렸다.
사열대에 선 조교가 쳐대는 북소리에 맞춰 200여 명이 똑같이 같은 쪽 발을 내디뎠다. 팔이 약간 처지는 듯싶다거나, 발걸음이 정확히 맞지 않거나, 조금이라도 오와 열이 틀어진 듯하면 행진은 중지됐다. 한 시간, 혹은 두 시간에 걸쳐 모두를 때려 뭉쳐 한 몸처럼 만들어내기 위한 특수교육이 치러졌다. 땀으로 개어진 흙먼지로 범벅이 되고 러닝셔츠와 반바지가 가려주지 못하는 부위는 모래알이 박히며 시커멓게 타들어 갔다. 예전부터 ‘얼차려’라 불리는 것이었다. 훈련병들은 그런 ‘얼차려’를 받으며 얼을 차렸다. ……우리 몸은 이미 남에게 맡겼다. 자기 결정의 책임을 면하고 자유도 완전히 잊었다. 규칙에 매인 시간이여, 만세! 그리고 감시가 붙은 정신에도! 획일화여, 영원 하라!
조교가 그날의 연습 결과에 만족하지 못하면 연습은 야간으로 이어졌다. 땀 냄새를 맡은 모기들이 징그럽게 달라붙었다. 야간의 ‘얼차려’는 오와 열을 맞추고 그냥 부동자세로 서 있는 것이었다. 바로 모기들의 만찬이 시작되었다. 그건 ‘모기 회식’이라 불렸다. 야비한 흡혈 곤충들이 뺨과 눈두덩, 목덜미에 달라붙어 침을 꽂고 피를 빨아댈 때의 기분이란 상당히 끔찍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