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욱래 장편소설 《이탈-그 여름의 추억록》 제1부
13중대의 6주 차도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각개전투훈련의 마지막 단계인 고지점령과 최종사격측정이 실시되었다.
훈련병들이 막 산기슭에 각개전투 대형으로 섰을 때 소낙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훈련병들은 금세 빗물로 차오르는 풀밭과 진흙탕을 포복하며 흙탕물에 푹 절었다. 정상까지는 500여 미터 남짓한 가파른 비탈길의 돌격 선에 다다른 훈련병들이 헉헉대며 처질 때였다. 굵직한 나뭇가지를 꺾어 든 독사 조교가 무섭게 추격해 오기 시작했다. 독사가 그 산길을 따라붙는데 쉭쉭, 소리가 나는 것 같았다.
무슨 일 때문이었는지 독사는 육군사관학교를 퇴교하고 사병(士兵)*1으로 다시 징집되어 이제 일반하사를 달고 있는 사내였다. 독사는 어떤 아우라(aura)를 가지고 있었고 교관들까지도 그를 약간 어렵게 대하는 것 같았다. 독사를 존경의 눈길로 바라보는 훈련병도 다수 있었다. 먼발치로 독사의 당찬 자세를 볼 때마다 그는 약간의 서글픔을 가졌다. 장교와 사병이 왜 그리 현저하게 급이 달라야 하는지가 의아했다. 독사의 눈빛이나 자세, 태도, 절도 넘치는 동작들은 진정한 의미에서 어떤 장교들보다도 훨씬 장교다웠다. 그런데도 지금 독사는 일개 사병일 뿐이었다. 사관학교를 퇴교하지 않았었다면 아마 독사는 최전방 소대장으로 임관될 것이었다. 훈련병의 돌격 대열 위에 우뚝 선 독사는 군사쿠데타―혹은 무슨 ‘혁명(?)’―로 정권을 잡았던 어느 전직 대통령처럼 당당한 모습이었다. 만약, 진짜배기 군인만이 필요한 전쟁이 터진다면 혁혁한 공훈을 세우면서 나중엔 장군까지 될성부를 유능한 지휘관다운 풍모를 바로 그 독사는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몽둥이를 해 들고 진짜 독사처럼 훈련병들의 뒤나 쫓아오는 중이었다. 훈련병들은 등 뒤로부터 좁혀져 오는 끔찍한 공포에 숨이 막힌 채 도망치듯 돌격했다. 입안 가득 내장으로부터 솟구친 뜨거운 거품이 부글거릴 때쯤 고지에 다다랐고 모두 사지를 뻗고 아무렇게나 자빠졌다. 곧바로 뛰어 올라온 독사가 숨 한 번을 몰아쉬지도 않고 지시했다.
“그대로 누워 있어도 좋다.”
훈련병들은 수직으로 따갑게 얼굴을 때려대는 굵은 빗방울들 사이로 으르렁대며 일그러지는 어두컴컴한 하늘을 혼미한 정신으로 우러르고 있었다.
잠시 후 독사가 명령했다.
“그 자세 그대로 노래한다. 노래는 ‘어머님 은혜’ 한나 둘 셋 넷!”
전신에 그대로 빗줄기를 받으며 뻗어있던 훈련병들 가운데 누군가가 독사가 시킨 그 노래를 서럽게 부르기 시작했다. 곧이어 고지엔 통곡 같은 합창이 퍼졌다. 빗물에 이겨져 물컹거리는 땅바닥을 벤 채 그는 고개만 돌려 노래를 부르느라 떡떡 입을 벌려대는 훈련병을 쳐다보았다. 그들의 눈가를 적시고 있는 것은 빗물만이 아니었다. 벌건 얼굴로 서러움 속에 사무치는 어떤 그리움에 젖어 그들은 콧구멍을 벌름거리고 있었다.
그는 거기에 동참하기 싫었다. 뜨겁고 애절한 합창은 암울한 하늘로 퍼져 올라갔다. 진창에 드러누워서 그리움에 북받쳐 징징거리는 훈련병들을 독사가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었다. 독사는 매 기수마다 그렇게 질척한 분위기를 연출해 냈을 터였다.
이상하게도 그는 모친 생각이 나지 않았다. 나중 어느 때에 생각이 나면 어쩔 수 없겠지만, 그렇게 연출된 분위기 속에선 그런 생각을 하기 싫었다. 괴로울 때 그는 일부러 모친 생각을 피했는데, 모친을 떠올리면 언제나 여러 개의 다른 괴로운 기억들도 보태졌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그냥 헉헉대며 단지 산을 뛰어오르는 것이 그는 좋았다. 그럴 땐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그저 숨 막히는 심장의 박동 소리를 들으며 온몸에서 뜨거운 땀방울들이 솟아 나오는 걸 즐기는 게 훨씬 나았다. 그는 뫼르소*2처럼 차가운 수박 한쪽에다 시원한 맥주 한 캔이면 족할 것 같았다.
그는 그냥 입대했었다. 사랑이라든지 추억, 그리고 어떤 희망이나 미련 따윈 남겨두지 않고 떠나왔다고 믿었다. 지난날은 그저 거칠게 뻗어 내린 뒷머리만이 짐승의 갈기같이 흩날리던 암울하고 스산한 시간들이었다. 청춘은 어둡고 빈궁했다. 찬비를 그대로 맞으면서, 천형 같은 외로움에 떨면서 인적 드문 거리를 헤매 다녔다. 그렇게 먼 도시들을 떠돌았다. 기름때 묻은 지폐 몇 장 바지 주머니에 구겨 넣고 썰렁한 소주잔이나 들이켜던 암청색 세월이었다. 그는 궁상맞은 청춘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다.
그는 자신의 청춘을 원하는 군대에 어떤 희망을 가졌다. 뛰고, 구르고, 헉헉거리면서 진저리 나는 청춘의 나약함을 청산하고 싶었다. 더 뛰고, 더 구르고, 더 헉헉대면서 더 강해져서 굽힘 없이 당당한 자생력을 얻을 수 있게 되기를 바랐다. 가슴 밑바닥으로부터 그런 갈망이 절망의 점막을 뚫고 끓어올랐다. 그리고 그는 입대했다. 그가 자신 속의 모순을 달래고 있을 때 합창이 끝났다.
*1 장교가 아닌 부사관과 병사를 통틀어 이르는 말. 때로는 부사관 아래의 병사만을 이르기도 한다.
*2 알베르 까뮈(Albert Camus, 1913~1960) 《이방인L'Etranger》의 주인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