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_뉴질랜드 여행기 8
이른 아침 이번 여행의 마지막 여행지이자 퇴사 후 여행의 마지막 여정인 호주를 향해 비행기를 탔다. 원래 계획은 호주를 먼저 여행 한 뒤 뉴질랜드로 넘어가는 것이었다. 그런데 항공스케줄이 변경되면서 뉴질랜드를 먼저 여행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그러면서 뜻밖에 걱정이 생겼다. 뉴질랜드에서 워낙 좋은 인상을 많이 받아서 호주가 시시해 보이면 어쩌나 하는 걱정말이다. 물론 기우일수도 있겠지만 그만큼 뉴질랜드 여행이 너무 좋았다. 그런데 시드니 공항에 내리니 날씨가 심상치 않았다. 하늘이 잿빛 구름으로 가득 채워져 있어 금방이라도 비가 와도 이상하지 않을 날씨였다. 오늘은 바로 블루마운틴으로 가야 하는 일정이기에 비라도 내리면 뉴질랜드를 떠나면서 생겼던 걱정은 더 이상 기우가 아니게 될게 자명했다. 시드니를 벗어나 교외로 나가니 결국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오늘의 하이라이트는 블루마운틴에서 바라보는 풍경일 텐데 비가 내리면서 하이라이트는 물 건너가게 됐다. 그래도 산은 조금 다를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가지고 블루마운틴에 도착했지만 오히려 우비가 필요할 정도였다. 그래도 여행을 멈출 수는 없는 법. 블루마운틴에 있는 세 가지 케이블카를 타며 한 바퀴 돌았다. 케이블카를 타고 밖을 보니 운무인지 구름인지 새하얀 가림막이 모든 걸 덮어버렸다. 그렇게 오전은 하얀색 풍경으로 가득 채웠다. 그래도 조금 다행인 건 점심을 먹는 동안 날씨가 조금 괜찮아졌다는 점이다. 하지만 조금 나아졌을 뿐이지 쨍하고 해가 나온 건 아니었다. 점심을 먹은 뒤 블루마운틴을 가니 그래도 아랫부분이 조금 보이긴 했다. 하지만 블루마운틴의 푸른빛은 결국 보지 못한 채 다시 시드니로 돌아와야 했다. 이번 호주 여행은 왠지 뉴질랜드 여행의 부록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물론 호주가 뉴질랜드보다 못하다는 말이 아니다. 여행하기 좋은 나라고 멋진 곳이지만 호주 도착 한 첫날부터 비로 인해 제대로 느끼지 못했으니 아쉬움에 떠오른 생각이다. 그래도 여행은 항상 변수나 감동을 주는 걸 알기에 내일을 기약하며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호주 그것도 시드니에 오면 바로 오페라 하우스를 볼 줄 알았다. 그만큼 호주 하면 떠오로는 랜드마크니 처음 온 나는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둘째 날인 오늘도 오페라 하우스는 못 본다고 한다. 오늘 일정은 시드니 도심이 아니라 외곽 일정이기 때문이다. 아내는 아내는 어제 비행기에서 창문을 통해 위에서 내려다봤다고 자랑을 했지만 말이다. 그러다 보니 여전히 호주에 왔다는 느낌이 들지 않고 점점 호주에 대한 흥미를 잃어가고 있었다. 그래도 다행히 오늘 날씨는 맑았다. 다른 날 같았으면 맑은 날씨에 좋아했겠지만 어제의 실망이 너무나 컸는지 오늘의 날씨에 즐거워하기보다는 어제 날씨를 원망하며 하루를 시작했다. 한번 비뚤어진 마음은 쉽사리 돌아오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오늘 내 흥미를 끌 수 있는 프로그램이 예정되어 있었다. 바로 호주 하면 떠오르는 동물인 코알라와 캥거루를 보러 간다는 것이다. 어제의 실망을 만회해 주길 기대하며 출발했다. 두어 시간 달린 후 사설 동물원에 도착했다. 아내는 코알라를 볼 생각에 잔뜩 기대가 부풀었지만 나는 큰 기대 없이 입장했다. 코알라가 귀여운 동물이긴 하지만 냄새가 고약하고 깨어있기보단 자고 있을 때가 많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코알라를 본 뒤 호주에 삐뚤어졌던 마음이 한 번에 풀리게 되었다. 아침 일찍 가서 그런지 냄새도 나지 않게 그곳에 있던 코알라 절반이 자지 않고 먹이를 먹거나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들을 보고 신난 인간들의 손길에 전혀 개의치 않고 유유자적 자신들의 일상을 보내고 있는 모습은 귀여움을 넘어 의연하기까지 보였다.
코알라와 허락된 시간은 단 10분뿐이었지만 코알라의 매력에 빠지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코알라를 보고 나니 캥거루까지 기대가 됐다. 캥거루를 가까이에서 보기 위해 먹이를 들고 갔다. 캥거루는 은근히 키가 컸다. 그래서 먹이를 손에 올리자 일어서서 먹이를 먹는데 그들의 앞다리로 먹이가 놓여 있는 인간의 손을 잡은 채 먹었다. 근데 캥거루 하면 두 다리로 강력하게 뛰는 모습이 시그니쳐지만 이날 만난 캥거루들은 그러지 않았다. 마치 먹이를 맡겨 놓은 듯 경계심 없이 느긋하게 어슬렁거리며 인간에게 다가왔다. 그들에게는 인간들이 먹이를 들고 나타나는 게 너무나 당연해진 것이다. 이곳에는 코알라와 캥거루만 있었던 건 아니다. 에뮤를 비롯한 다양한 동물들이 있지만 빠듯한 시간에 그들은 대충보고 다음 장소로 이동할 수밖에 없어 조금은 아쉬운 만남이었다.
동물원을 나와 향한 곳은 근처에 있는 와이너리였다. 이곳에서 와인 시음과 점심을 먹기 했기 때문이다. 호주와 뉴질랜드를 여행하면서 내가 가장 기대했던 건 바로 와인이었다. 술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건 사실 맥주였다. 하지만 건강 상의 이유로 맥주를 멀리해야 하게 되자 맥주 대신 와인을 마시게 되었다.(그나마도 눈치 보여서 아주 가끔 한 잔씩 마신다.) 그런데 와인 시음 방식이 조금 황당했다. 와인 잔도 아닌 작은 컵 하나로 와이너리에서 제공하는 와인 네 종류를 차례로 줄 서서 맛보는 방식이었다. 지난번 슬로베니아에서 와이너리에 갔을 때 와인 시음회를 했었는데 그때는 음식과 함께 각기 다른 와인잔 제공이 되어서 식사를 하면서 와인을 천천히 음미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 호주에는 시음회라고 부르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느낌이었다. 각기 다른 와인이 네 종류가 제공되었지만 한 번에 다 마셔야여서 시음회가 아닌 마트 시식 같은 느낌이 들었다. 코알라로 어렵게 풀린 마음이 다시 얼어붙었다. 이 정도면 아무래도 호주와 나랑 궁합이 안 맞는 건가 싶기도 하다. 아쉬운 점심을 뒤로하고 근처 바닷가로 이동했다. 이곳에는 넓은 사구지역이 있어 마치 사막 같은 지역이었다. 그래서 사막에서 할 수 있는 액티비티를 할 수 있는 곳으로 모래 썰매를 탈 수 있는 곳이었다. 모래 언덕이 의외로 높아 빠른 썰매를 즐길 수 있었지만 단점은 썰매를 들고 걸어 올라가야 한다는 거였다. 발이 깊게 빠지는 모래 언덕을 썰매를 들고 올라가는 게 만만치 않아 세 번 하고 나니 힘이 빠져 더 이상 타기에는 힘들었다. 기분도 다운되고 체력도 다운된 상태로 마지막 코스인 톨핀투어를 하러 항구로 향했다. 배를 타고 연안에 있는 돌고래를 보는 투어여서 그런지 돌고래가 간간이 보이긴 했지만 크기는 작았다. 다른 사람들은 돌고래가 물 밖으로 보일 때마다 환성을 내뱉었지만 나는 전혀 흥이 나지 않았다. 그래서 처음 작은 돌고래 한 두 마리 본 뒤로는 돌핀 투어에 집중하지 못했다. 약 한 시간가량의 투어가 끝난 뒤 우리는 시드니에 있는 숙소로 돌아왔다. 돌아보면 호주는 일희일비로 감정 소비가 많았던 여행이었다. 여행을 하면서 경험하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즐거운 여행이 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배운 여행지였다. 다만 이런 기분이 남은 여정에게까지 영향을 끼칠까 봐 조금 걱정이 되었다. 마지막 여행이라 그런지 호주는 여러모로 힘든 여행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