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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성식 Apr 23. 2018

학교의 ‘콩쥐팥쥐 실화’ ... 비교육적인 이야기

학교 교육을 이끄는 사람은 교사와 교장만이 아니다

학교라는 교육 공간에는 여러 어른들이 아이들을 보살피고 가르치며, 잘 배우고 자라도록 뒷받침한다. 교무 선생님, 행정실 선생님, 과학실습 선생님들도 그런 어른들 중 일부다. 학교에서 교육을 뒷받침하는 모든 이들에게 선생님이란 호칭은 아깝지 않다. 문재인 대통령의 선언처럼 노동을 존중하는 사회라면, 교육과정에서 그들이 담당하는 역할에 비춘다면 결코 과하지 않다. 학교에서 일하고 있거나 일하고 싶은 분들은 오늘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시면 좋겠다. 여기에 소개되는 이야기들이 모든 교사나 학교의 모습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주 드문 일도 아니다. 그러니 아이가 있다면, 혹은 아이가 없어도 세상의 아이들이 잘 자라길 바라는 누구라도 함께 생각해봤으면 한다.     


학교 비정규직 사무직군(교무, 행정, 과학실습 등)은 업무의 블랙홀이다. 교사의 기피업무에 더해 교장과 교감은 눈에 들어오는 온갖 잡일을 지시한다. 과학실무사는 과학실험과 실험안전을 책임진다. 거기에 교무실 업무까지 추가로 떠맡고 있다. 학교운영위원회 간사도 맡아한다. 학부모 운영위원 선출부터 회의 진행까지 도맡는다. 그런데 교사들을 대신한 행정업무가 과중해 정작 학생들을 위한 과학실습을 못할 때도 적지 않다. 과학실과 교무실을 정신없이 오가며 교무행정과 과학실무 모두를 하다 보면 둘 다 불충분하고 심지어 아이들이 위험해질지도 모른다.     


비정규직에게 떠맡기는 일은 참 다양하다. 고유 업무인 교무와 행정, 과학실습 외에도 시험감독에 교장실 청소까지 시키기도 한다. 물론 모든 학교가 그런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교사들만 할 수 있는 학생 생활기록부 점검까지 시키는 경우도 있다. 이뿐이 아니다. 방송국 운영과 지도교사의 역할을 대신하기도 한다. 게다가 세월호 4.16을 계기로 진행되는 안전교육을 행정실무사에게 맡기기도 한다. 그러면서 학교는 이렇게 가슴에 못질까지 한다. “안전교육은 교육이 아니다. 행정실무가 해야지...” 과연 그런가? 교과목에 없다고 생명을 지키는 교육은 교육이 아닐까?     


정교사가 아니라는 이유로 선생님이라고 부르지 말라고 가르치는 학교도 있었다. 당연히 아이들도 배운다.. “간식도 없이 왜 불러!”, “선생님도 아닌데 왜 혼네!”... 하는 말들을 서슴없이 내뱉는다. 교사들은 나이가 자신들보다 많거나 노조에 가입한 실무사가 오는 것을 싫어라 한다. 일을 부려먹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학교 비정규직 사무직원들은 그런 취급을 받으면서도 해야 할 일은 끊임없이 확장된다. 심지어 일부 시도교육청은 직종통합을 하겠다며 그나마 있던 교무, 행정, 과학의 경계까지 허물어 통합하려 한다. 영역을 넘나들며 더욱 많은 일을 시키려는 것이다. 지금도 사무직원의 업무는 차고 넘친다. 그래서 한 사무직원은 자신도 모르게 “내가 어제 또 ~하고, ~하고, ~하고, ~하고, ~하고...”라는 연결과 연속으로 자신의 일상을 표현하곤 한다. 이들은 낮은 지위에 따른 업무과중을 막기 위해 홀로이건 노조에 가입했건 학교에서 평생 방어투쟁을 해야 한다. 정말 피곤한 일이다.     


차별과 과중한 업무는 어떻게 시작된 것일까? 바로 교원업무 경감정책으로 시작됐다. 교사와 공무원의 업무를 줄여준다며 교육청은 마구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온갖 일을 떠넘겨왔다. 그런데 처우는 화가 날 지경. 호칭부터 무시고 교사업무 경감을 위해선 아낌없이 돈을 쓰지만 정작 그 업무를 떠맡는 비정규직에겐 늘 예산 핑계를 대며 절대 쓰지 않는다. 학교는 역할을 떠넘길 줄만 알지 담당할 사람에 대한 고민이 없다. 과중한 업무는 결코 제시간에 마칠 수 없다. 습관이 될 정도로 초과근무를 해야 하지만 제대로 수당을 챙겨주진 않는다. 이런 비정규직을 바라보는 누군가의 말도 씁쓸합니다. 그 누군가는 단번에 비정규직인 줄 알아봤단다. 왜냐고 물으니, “지나치게 친절했다. 그래서 비정규직인 줄 알았다” 한다. 정규직은 그럴 필요가 없으니까.    

 

비정규직이라고 그런 대접을 받지만 직업에 대한 애착은 잃지 않으려 애쓴다. 진정 열심히 일하고 싶다. 그건 마지막 자존심이고 자부심이다. 때론 용감하기도 하다. 승진을 원하는 교사들은 윗분들이나 교육청의 눈치를 살피며 참기도 하지만, 비정규직에게 승진이란 없다. 더 오를 곳도 추락할 곳도 없는 우리는 때론 용감하다. 할 말은 하고 우리의 노동조합이 있기 때문에 더욱 용감하다.      


학교에는 다양한 아이들, 다양한 가정, 다양한 삶이 있다. 3000cc 승용차와 연 6천만 원 소득을 빈곤이라 말하는 학부모들도 있고, 한부모나 조부모 아래서 어렵게 성장하는 저소득층 아이들도 보인다. 한 번은 학교까지 방치한 가정폭력 아이를 과학실무사가 발견했다. 등교하지 않는 아이의 집을 찾아갔고, 온통 멍으로 얼룩진 그 아이의 연한 피부를 봤다. 마음이 아팠다. 그 아이는 간절히 부모로부터 격리되길 원했고, 고아원을 선택했다. 그 아이는 집보다 고아원이 훨씬 좋다고 했다. 어려운 아이들은 표정으로 느껴진다. 가난한 집 아이들에게 수업료를 내는 일은 힘겹고 너무 싫은 일이다. 그럴 때면 늘 인상을 쓰며 꼭 내야 하느냐고 퉁명스레 묻기도 한다.

    

공교육의 현실은 안타깝다. 업무 노하우로 잘 관리하면 문제없는 과학실험. 아이들이 정말 좋아하는 그 실험을 학교는 못하게 한다. 과학실습 선생님에겐 창의적 교육보단 행정업무를 우선 처리하라고 한다. 공교육은 아이들의 호기심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창의성을 자극하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명함에 자신을 학교 CEO라고 새긴 교장도 있었다. “나는 CEO”라고 스스로 말하는 교장은 이명박 전 대통령처럼 학교를 공사판으로 만들고 행정선생님들을 학교시설 수리에 동원하기도 한다. 그런 학교에 사람다움은 없다. 교장 등은 어느 실무사 선생님을 늘 낮춰 부르며 무시한다. 너는 일 끝내고 난 후에 늦게 회식에 오라고 하고, 교사들은 교무실 걸려오는 전화를 죽어라 받지 않는다. “결국 우리가 받아야죠. 심지어 자기 책상 바로 옆에 있는 달력을 때라는 교감도 있고, 방학엔 교사들을 대신해 우리 사무교직원을 출근시키기도 합니다." 그렇게 무시하더니 어느 날은 한 비정규직 여성의 남편이 교수라는 걸 알고선, “우리 교육가족”이라며 대번 달리 대하며 표변하는 교장도 있습니다.

    

학교 소개에서조차 배제된 유령 같은 존재인 학교비정규직은 학교 곳곳에서 교육의 이면을 수도 없이 목격한다. 가끔은 마치 콩쥐팥쥐와 계모가 그려내는 잔혹동화 같기도 하다. 결코 우리 아이들에게 읽힐만한 이야기가 아니지만, 이거 실화라는 게 함정.


http://www.hani.co.kr/arti/society/schooling/84332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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