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그려진 상 하나
“불망이, 너 그거 모르지?
불망이 사실 다리 밑에서 주워왔어.”
믿지 않았다.
아빠랑 거울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나는 아빠를 닮아 있었고, 그래서 그 말은 그저 웃고 넘길 농담이라고 생각했다. 콧방귀를 뀌며 돌아앉은 내게 고모들은 한술 더 떠 말했다.
“불망아, 사실은 너만 배 다른 아이야. 그건 몰랐지.”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목놓아 펑펑 울어버렸다. 나만 엄마를 닮지 않았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파고들었다. 향기언니는 엄마를 닮아 짙은 쌍꺼풀이 있었고, 빙닭이는 엄마의 얄쌍한 턱을 닮았다.
그렇다는 건 정말 나만 다른 엄마를 둔 걸까.
장난을 철석같이 믿어버린 순간이었다.
내 친엄마는 어디로 갔을까.
그날 나는 반나절을 낡고 해진 인형을 들고 온 마을을 돌아다녔다. 혹시 이 동네 어딘가에 친엄마가 살고 있지 않을까 싶어서, 동네 아주머니들 얼굴을 괜히 더 유심히 바라보기도 했다. 결국 그날 친엄마를 찾지 못했던 나는 집에 돌아와 울다 지쳐 누워버렸고, 그렇게 잠들 즈음 엄마는 웃으며 한참이나 내 등을 쓰다듬어주었다.
나는 그 익숙한 손길에 이내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하루 만에 그 말은 고모들의 장난이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런데도 그 질문은 오래 남았다.
나는 늘 가운데였다. 왜 나는 늘 양보해야 했을까.
가끔은 엄마가 나를 덜 사랑하는 건 아닐까 생각했고,
그래서 이상한 상상을 했다. 혹시 엄마가 새엄마라서 그런 걸까. 어른들은 자주 말했다.
“네가 좀 참아.”
“언니니까.”
“아래도 있으니까.”
그 말들은 혼내는 말도, 미워하는 말도 아니었다.
너무 자연스러워서 나는 그게 사랑의 방식인 줄 알았다.
그래서 이유를 알 수 없는 서운함이 쌓일 때마다 생각은 늘 같은 데로 흘러갔다.
그럴 때마다 나는 엄마에게 묻곤 했다.
“엄마, 지금 손가락 세 개를 깨물어봐.
그중에 어떤 게 제일 아파?”
엄마는 늘 말했다.
“다 똑같이 아프지.”
그 말이 이상하게 들렸다. 내 눈에는 양쪽이 더 아파 보였다.
“너도 나중에 너 같은 딸 꼭 낳아봐.”
그 말을 들을 때마다 괜히 더 서운해졌다.
내가 엄마가 되지 못해서였을까,
나는 끝내 엄마를 다 알지 못했다.
엄마는 내 옆에서 유난히 불편해 보였고,
때로는 안쓰러운 표정이 스치듯 지나갔다.
친정에 내려와 있던 어느 날, 엄마는 심심하면 다시 올라가라며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나는 그 말이 배려라는 걸 알면서도 괜히 서운했다.
그날은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엄마의 향기가 그리웠다.
그 향기 안에는 아빠의 바다 냄새와, 언니와 동생의 웃음소리, 그리고 내가 흔들리던 자리까지 섞여 있었다.
그날, 시무룩해진 채 노트북을 붙잡고 있던 내 앞에 엄마는 작은 상 하나를 들고 왔다.
“불망아, 그렇게 누워서 하면 허리 나가.
여기 올려두고 해.”
그제야 기억이 났다.
그 상은 고등학교 담임선생님이 처음 우리 집에 오던 날, 엄마가 급히 사 왔던 것이었다.
그날, 엄마는 바다 냄새를 데리고 들어와 씻지도 못한 채 내 손을 잡고 시장으로 갔다. 선생님이 오시기 전에 상 하나는 있어야 한다며 가게 앞에 놓인 알록달록한 꽃이 그려진 작은 찻상 세트를 골랐다.
망설이지 않았다.
집에 돌아온 엄마는 급히 씻고 단장을 했다.
화장품이라고는 몇 개 없었지만, 거울 앞에 앉아 조심조심 얼굴을 다듬고 아무 일도 없다는 얼굴로 그 상을 꺼내 놓았다.
그 익숙하고 작은 상 위에 노트북을 올려두었다.
한참 동안 글을 쓸 수 없었다. 노트북 위로 떨어진 눈물이 엄마가 사 온 상 위의 꽃잎 위로 번졌다.
나는 엄마의 얼굴을 닮지 않았지만, 엄마가 할머니를 생각하며 울던 것처럼 나도 엄마를 생각하며 울고 있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
“엄마, 다음 생엔 내가 엄마가 되어
엄마를 조금 더 이해해 볼게.”
끝내 그 말은 속으로 삼켜졌다.
낡은 상 위에 차려진 엄마의 투박한 응원을 빌려,
나는 다시 나의 진심을 적어 내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