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 난 가슴 위에 다시 쓴 가화만사성
카네이션을 달아주던 그 자리였다.
그날 아빠는 산소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내가 카네이션을 달아주던 바로 그 자리에 큰 상처를 남긴 채, 중환자실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문득 생각했다.
아빠가 그렇게 곧게, 편하게 누워 있는 방을 본 적이 언제였나 싶었다.
아빠는 우리 때문에 늘 바빴다.
새벽 일찍 일어나 찬바람을 맞으며 바다를 갈랐고, 점심쯤이면 양동이 하나를 들고 돌아왔다.
그 안에는 향기언니가 좋아하던 꺽쟁이 한 마리, 내가 좋아하던 물텀벙, 빙닭이가 좋아하던 소라 몇 개쯤이 담겨 있었다.
나는 그 생선 냄새가 싫었다.
아빠는 음악과 영화를 좋아했다.
고된 바닷일이 끝나면 시내로 나가 홍콩 영화를 빌려 오곤 했다.
향기언니와 내게 보여주겠다며 비디오카세트 두세 개를 함께 들고 돌아오던 그 뒷모습이 아직도 선하다.
강시가 팔을 뻗고 뛰어다니던 화면 앞에서 우리는 소리를 질렀고, 아빠는 핀잔을 주었다.
그때 입가에 번지던 웃음을 나는 분명히 보았다.
왜였을까.
나는 그 웃음보다 술에 취한 얼굴을 더 오래 기억했다.
술에 취해 흥얼거리던 노래보다 분노에 찬 얼굴을 더 많이 봐서였을까.
그 시절의 나는 아빠를 무서워했다.
여느 딸처럼 따른 적도 없었다.
한 번쯤 술에 취한 아빠는 향기언니와 내게 낮은 소리로 말했다.
“너네는 왜 다른 집 딸들처럼 아빠를 따르질 않니.”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그렇다고 쉽사리 다가가지도 못했다.
그 밤 나는 편히 잠들었다가, 통증에 인상을 찌푸린 채 얕은 호흡을 내뱉고 있는 아빠의 얼굴을 찬찬히 바라보았다.
스쳐 지나듯 보던 얼굴이 어느새 많이 늙어버렸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
아빠가 눈을 뜨면, 아빠가 바라던 딸이 되어 보겠노라고 작게 속삭였다.
다음 날, 아빠는 눈을 떴다.
이겨내겠다는 사람처럼, 아픈 몸을 이끌고 하라는 대로 하나씩 해냈다.
남들보다 더 빠르게 걸었다.
스테이션을 돌며 “수고가 많다”고 인사를 건넸다.
그러곤 우리 딸 불망이도 간호사라며 크게 웃으며 자랑했다.
나는 그 모습을 멀리서 바라보았다.
눈물이 났다.
미안했는지,
고마웠는지,
아니면 아직도 조금 무서웠는지.
그때 나는 다짐했다.
더 늦기 전에,
아빠를 사랑하겠다고.
신이 있다면 제발.
이제야 맞이한 이 평범한 공기를 조금만 더 길게 허락해 달라고.
그 간절한 기도가 닿았던 것일까.
시골집 마당.
밤하늘에 별이 잔뜩 깔려 있고, 모닥불 연기가 천천히 피어오른다.
남동생은 코드도 맞지 않는 기타를 치고,
형부는 그 옆에서 잔소리를 늘어놓으며 숯을 뒤적인다.
술에 취한 언니는 예전의 아빠처럼 큰 소리를 내며 웃고,
얌전한 내 남편은 그 낯선 풍경에 영혼이 빨린 듯 멍하니 앉아 있다.
그 곁에 세상 걱정 하나 없는 조카들이 까르르 웃으며 뛰어다닌다.
그 소란스러운 풍경을 바라보며 아빠는 입가에 힘을 뺀 채 웃고 있다.
그리고 엄마와 눈이 마주친다.
그날 아빠가 종이에 적어 내려갔던 가화만사성이 비로소 우리 집 마당에 내려앉아 있었다.
“아빠는 아직도, 이 시간을 건너고 있다.
그리고, 나는 이제야 ‘사랑해’를 말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