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화만사성, 그 말이 늦게 왔다
“숙제야. 내일까지 각자 집 가훈을 적어와.”
담임의 말에 나는 능소화 집으로 달려가 아빠에게 물었다. 우리 집 가훈이 뭐냐고. 그날 아빠는 펜과 종이를 들고 잠시 망설이다가 가훈을 적어 내려갔다.
가화만사성.
그 말은 그 시절 우리 집과 조금도 닮지 않았다. 그래서 더 크게 적혀 보였다.
다음 날 아이들이 차례차례 일어나 가훈을 발표했다. 나는 그 틈에서 그 말을 몇 번이나 속으로 되뇌었다. 가화만사성.
사실, 우리 집이 그렇게 되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
한때 우리는 서로에게 작은 생채기를 남겼다. 그래도 식탁은 늘 함께였다. 화목은 어느 날, 원래 우리 것이었던 것처럼 자리를 잡았다.
그 풍경을 한 발짝 떨어져 바라보면 나는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다.
그날 식탁 위 국은 식을 틈이 없었다.
엄마는 네 번이나 아빠를 불렀고, 아빠는 네 번 다 대답했다. 그날은 아무도 서두르지 않았다.
신은 늘 그런 식이었다. 끝까지 허락하는 법이 없었다.
그 무렵 아빠는 유난히 눈에 띄게 살이 빠져 있었다. 혼자 땀을 흘리며 배구를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가장 먼저 눈치챈 건 아빠와 같이 배구를 하던 남편이었다.
몇 번이나 내게 이상하다며 말했지만 나는 그냥 흘려들었다.
우리에게 걱정을 끼치기 싫었던 아빠는 이미 시골의 작은 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있었다. 엑스레이에서 폐에 이상 소견이 보인다며 한 달 뒤 다시 검사해 보자는 의사의 말에도 아빠는 크게 걱정할 필요 없다고 웃으며 말했다.
그런데,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나는 울었다.
아니, 나는 소리를 질렀다. 전화기 너머에서 아빠가 놀랄 만큼, 당장 올라오라고 외쳤다. 아빠에게 그렇게 말한 건, 처음이었다.
그 전화 한 통이 시간을 앞당겼다.
빠르게 발견됐다. 아빠의 진단명은 폐암이었다.
예순 살이었다. 아직 청춘이었다. 이제야 여행도 가고, 맛있는 것도 먹고, 힘든 일도 덜어낼 수 있는데.
신은 끝까지 다 보여주지는 않았다. 아니, 애초에 있었던 적이 있었나. 할머니가 성경책을 찢어 부뚜막에 밀어 넣던 그날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때,
나는 불행보다
늦게 온 행복 앞에서
더 크게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