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나는 자리를 뜨지 못했다

이유를 묻지 않는 사람

by 불망

어디에 있든, 무너지지 않으면 된다고.



“불망아, 오늘 시내에 나가려고 대교를 건너는데, 내 앞에 어떤 여자가 창문을 내리고 음악을 크게 틀고 그대로 달리더라. 시속 백은 넘었을 거야.”
“흔들, 흔들. 백미러도 안 보고. 대단하지 않니.”
“아... 네네.”
“그런데 말이야, 그 차가 낯설지가 않더라. 흰색 아반떼였어.”


그는 늘 안경 너머로 나를 내려다봤다.
아무것도 읽히지 않는 얼굴로.


“운전 조심히 하고 다녀야 해. 알겠지?”


나는 그 말에 고개만 숙였다.


언니에게 물려받은 아반떼였다.
낡은 것들 중에서 그게 좋았다.
대교 위로 올라설 때면 나는 볼륨을 켜고, 엑셀을 밟았다.
속도가 붙었고, 소리가 커졌다.
그는 늘 같은 말을 했다.
다리가 그렇게 높다고 했다. 그렇게 달리다간 뒤집힌다고.
나는 그 말을 듣고도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조금 더 밟았다.


스무 살이었다.
내 주제에 공무원이 되어보겠다며 나는 평택에서 짐을 모조리 싸서 내려왔다.
마지막으로 들어간 건 어느 연구소였다. 서무 보조.


그날 내 앞에 앉아 있던 사람은 안경 너머로 한참 나를 바라봤다.


“뭐야, 자격증이 죄다 3급이네.”


그는 웃지 않았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더 이상 질문이 없다는 듯 그는 면접을 끝냈고,
나는 문을 박차고 나왔다.


집으로 돌아가던 길, 바닷가가 눈에 들어왔다.
밤의 네온사인은 밝을수록 흥겨웠다.


이상했다.
그날의 바다는 너무 밝아서 나는 눈을 한 번 감았다.


일주일 뒤 연락을 주겠다는 말은 금방 흐릿해졌고,
그 건물은 두 번 다시 보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출근하라는 연락은 반나절 만에 왔다.


튕겨야지, 생각했다.
잠깐 멈췄다가, 그냥 알겠다고 했다.
내게 3급을 낮게 읊조리던 그 사람은 생각보다 과묵했다.
그는 말을 아끼는 사람이었다.


숱한 날이 지나고, 그날 냉기가 가득한 사무실 한가운데서
그는 내게 취미가 뭐냐고 물었다.


나는 잠깐 생각하다가 독서라고 말했다.
센터 도서관은 거의 비어 있었고, 책은 늘 제자리에 있었으며
그곳을 드나드는 사람은 없었다.


“불망아, 책 백 권쯤 한번 골라보거라.”


아무 책이나 상관없다고 했다. 소설이든 시든.
나는 목록을 적었고, 그는 더 묻지 않았다.
왜 그 책들 인지도, 왜 그런 순서인지도.
책이 도착하면 나는 라벨을 붙이고, 먼지를 털고, 책장에 꽂았다.


그 사이에 홀로 앉아 책 한 권을 펼쳤다.
그날은 자리를 쉽게 뜨지 못했다.


그도 가끔 그 앞에 서서 한 권을 꺼내 들었고,
읽는지는 알 수 없었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이유를 묻지 않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