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남아 있던 사람들

이유를 묻지 않는 사람들

by 불망

박스 하나를 들고 떠난 지, 이십 년이나 지났다.



아빠뻘 되는 연구사들 틈에서 소주잔을 부딪치며 웃던 밤. 그날의 나는 술로 밤을 새우고 있었고, 고개를 들면 그의 연구실 창문에는 늘 불이 켜져 있었다.


창문을 오래 보게 되는 날이 있었다. 내가 취기가 올라 비틀거리며 퇴근할 때쯤에야 비로소 그 연구실의 불은 꺼지곤 했다. 강아지와 관사로 돌아가는 뒷모습을 보았다.


입안의 텁텁함이 가시기도 전에 그의 연구실로 달려가면 어제보다 더 수북하게 쌓인 재떨이의 담배꽁초들이 나를 맞이했다. 담배꽁초가 더 쌓인 날이면, 나는 더 오래 서서 중얼거리며 성을 내곤 했다.
“제발, 담배 좀 끊으세요.” 그는 늘 다른 말로 받아쳤다.


“불망이, 어제도 대단했다더구나. 어려서 간이 튼튼해 그런가 본데, 그러다 큰일 난다. 적당히 마셔야지.” 그는 쓴소리를 내뱉었지만 늘 마지막에 웃었다.


내 업무 중 하나는 해외에서 걸려오는 전화를 그에게 돌리는 일이었다. 해외에서 걸려오는 전화를 받으면 나는 늘 같은 말을 여러 번 되물었다. 결국, 전화를 넘겼다.


그는 교재를 만들어 아침마다 영어 회화를 시작했다. 연구원들까지 불렀다. 나는 그 사이에 앉아 따라 읽고 있었다. “How are you.” 삼십 분 일찍 출근해 할 영어는 아니었다. 그들은 같이 읽었다.


누군가 조용히 말했다. “불망아, 이거 너 때문에 하는 거야.”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곳에 남았고, 더 남고 싶었다.


해외 출장에서 돌아오면 그는 사진을 몇 장 꺼내 책상 위에 펼쳐놓았고, 나는 그걸 한참 보고 있었다. 그는 말을 아꼈다.


그러다 한 번은 그런 말을 건넸다. 이 모든 풍경을 직접 눈에 담고 사는 삶을 훗날 살아보라고. 책상 위에 놓인 사진들은 늘 가지런했다.


그곳에는 사람들이 있었다.


술에 취하면 지붕에 올라가 별을 보던 사람. 주차장 라인이 이불이라며 신발 벗고 자던 사람. 아침마다 엉망으로 세워진 차를 다시 주차해 주던, 한 살 많았지만 친구 하자던 그 공익. 먼지로 덮인 내 중고 아반떼를 세차해 주던 사람. 반쯤 틀린 서류를 늦게까지 남아 말 한마디 없이 고쳐주던 상사.


나는 그들 곁에 있었다.


그리고 내 뒤에서 처음으로 나를 보던 어른.

이름을 붙이기 어려운, 그 사람.


그곳을 떠난 지 이십 년이 지나서야, 그가 내게 건넨 말은 단 한마디였다.



“불망아, 올해는 집 앞에 소나무 한 그루를 심어보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