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계와 별빛
스물의 시간은 늘 시끄러웠다.
그 속에서 나는 매일 무언가와 부딪히며 살았다.
나의 청춘은
기계음처럼 돌아가고 있었다.
집안의 형편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심장병을 앓고 있던 할머니.
우리 삼 남매를 지켜내야 하는 아빠의 어깨는
점점 더 무거워졌다.
나는 스스로 공부를 놓아버린 아이가 되었다.
소설책 한 권을 끼고
자주 내가 아닌 사람이 되곤 했다.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지만,
상상 속에서만큼은 누구든 될 수 있었다.
어느 날, 엄마에게 다짐처럼 말했다.
“엄마, 나는 취업해서 돈 많이 벌어서
엄마 행복하게 해 줄게. 나만 믿어, 걱정 마.”
사실은 지긋지긋했던
아빠와 엄마의 갈등을 멈추고 싶었을 뿐이었다.
고3 졸업을 앞두고
나는 취업을 먼저 나가게 됐다.
언니가 건넨 스무만 원,
남자친구가 쥐여준 오만 원.
그 돈을 들고 나는 세상 밖으로 나갔다.
그건 밥값이 아니라,
세상으로 나가는 나의 전부였다.
평택의 어느 공장에 도착한 첫날,
우리는 배를 쫄쫄 굶었다.
아이들은 아무도 돈을 가져오지 않았고,
나는 있었지만 꺼낼 수 없었다.
그 돈은 내 목숨 같은 전부였으니까.
기숙사는 네 평 남짓한 방에 이층 침대 두 대.
낯선 아이들 넷이 함께 쓰다 보니,
공기엔 늘 땀 냄새와 눅눅한 이불 냄새가 뒤섞여 있었다.
철제 침대는 조금만 움직여도 삐걱거렸고,
밤이면 코 고는 소리와 뒤척임으로
좁은 방이 가득 찼다.
나는 창문을 열어놓고 잠을 청했지만,
밖에서는 공장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밤새 웅웅 거리며 귀 속까지 파고들었다.
까만 하늘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칠흑 같은 어둠만 가득했고,
보고 싶은 엄마 얼굴만 둥둥 떠다녔다.
눈물은 밤새 흐르고 또 흘렀다.
쉬는 날이면 우리는 어른이라도 된 듯
치장하고 거리를 나섰다.
걷지도 못할 만큼 높은 힐을 신고
거리를 배회했다.
알아듣지 못할 외국인들의 대화,
왁자지껄한 어른들의 아우성 속에서
나는 생전 처음 술을 마셨다.
쓴맛에도 금세 태연하게 잔을 비웠다.
내게 처음 술을 알려주겠다던 친구는
편의점 술을 원샷하고
놀이터 벤치에 그대로 쓰러졌다.
우린 그가 죽은 줄 알고
울었지만,
그는 몇 분 만에 벌떡 일어나
모두 다시 웃었다.
놀이터 벤치에 둘러앉아,
친구들은 저마다 각자의 소망을 말했다.
누군가는 이곳을 당장 벗어나고 싶다고 했고,
누군가는 뒤늦게라도 돈 벌어 대학에 가고 싶다고 했다.
또 누군가는 열 손가락을 다 펼쳐 보이며
금가락지 열 개를 끼우겠다고 했다.
그 순간 우리는
각자의 꿈을 꾸고 있었다.
그 허세조차 눈부셨다.
그날, 우리는 진짜 어른이 된 것 같았다.
웃음과 눈물이 뒤섞인 채로.
3조 2교대.
우주복처럼 두꺼운 작업복을 입고
기계음 속에서 하루 열두 시간씩
인형처럼 쉼 없는 단순노동이 이어졌다.
통장에는 의미 없는 돈만 쌓여갔다.
그 무렵, 꾀가 늘어버린 나는
우주복 속에 몰래 MP3 플레이어를 숨겨 들어갔고,
이어폰을 꽂은 순간,
거북이의 〈사계〉가 흘러나왔다.
“빨간 꽃 노란 꽃 꽃밭 가득 피어도...”
그러다 들려온 가사.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그 한 줄이 내 처지와 똑같아서
나는 그 자리에서 하염없이 울어버렸다.
그 노래는 계절이 아니었다.
청춘의 기계음이었다.
나는 공장에서만 내 젊음을 허비할 수 없다고
그 순간 결심했다.
바로, 퇴사였다.
후련하면서도 두려웠고,
웃음 같기도 하고 울음 같기도 한 마음이
뒤죽박죽으로 쏟아졌다.
그날 밤, 창문 너머로 들리던 기계음은
끝내 멈추지 않았다.
청춘은 그렇게
기계음 속에 흘러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