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舊사계 ④] 밤하늘 별빛 아래

사계와 별빛

by 불망

계절이 지나고 나니,

빛만 남았다.


쉼 없이 일만 하며 살아온 내게,

그는 처음으로 ‘여행’이란 걸 알려주었다.


전국의 맛집을 찾아다니며,

입 짧은 내게 한 가지라도 더 먹이려 애쓰던 사람.


우리는 지독히도 싸우고,

또 지독하게 화해했다.


그날, 속초 바닷가의 한 횟집에서

그는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오늘따라 별이, 유난히 예쁘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중얼거렸다.


“난… 밤하늘 별빛이 제일 무서워.”


아마도 그건,

어린 시절의 잔상 때문이었을 것이다.


밤마다 달빛 아래,

갈대밭에 숨어 있던 엄마.


그리고 작은 창문 너머로

그 그림자를 바라보던 나.


빛은 언제나 예뻤지만,

그 속에는 알 수 없는 두려움이 공존해 있었다.


그는 아무 말 없이 웃기만 했다.


우리는 밤이 깊도록 자리를 지키며,

회를 먹었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

그가 내 말을 기억한 듯

갑자기 발걸음을 멈췄다.


“내가 예쁜 거 보여줄게.”


그러고는 무작정 바다 쪽으로

나를 끌었다.


우리는 그대로

파도 속으로 뛰어들었다.


하늘을 올려다보지 않아도,

별빛은 바다 위에 흩어져 있었다.


물결 따라 흔들리며 반짝이는 별들은

무섭지 않고, 예뻤다.


온몸이 흠뻑 젖은 채,

나를 향해 손짓하며 웃던 그의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워서—


찰나처럼 눈물이 번졌다.


혹여 들킬세라,

나도 서둘러 바다에 몸을 맡겼다.


별빛 가득한 바닷속에서

우리 둘은 한참을 헤엄쳤다.


숙소에 돌아와

다 젖은 내 옷을 빨래해 주던 그는,


장난스럽게 빨랫줄에 걸린 내 속옷을 들고

깔깔거리며 웃었다.


짓궂기도 했지만,

속마음은 누구보다 다정한 사람이었다.


그는 늘,

내가 남의 시선을 의식하며

움츠러드는 걸 답답해했다.


결국 식당에서는

주문 연습까지 시키곤 했다.


그 사소한 연습조차,

지금은 쓸쓸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나는 알고 있었다.


내가 없어도 그는

혼자서 무엇이든 해낼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우리가 끝내 이뤄질 수 없다는 것도

이미 알고 있었다.


시간이 흘러,

우리의 계절은

마치 갈대밭의 겨울 같았다.


앙상한 줄기만 남아

서로 부딪히며 서 있는 것처럼,


우리는 더 이상 무성하지도,

따스하지도 않았다.


그가 헤어짐을 말하던 그날,

나는 그의 집 앞,

그 사람의 방 창문 앞에서


일곱 시간을,

눈을 맞으며 서 있었다.


어린 날의 나는 창문을 열고

누군가를 기다렸지만,


어른이었던 그는

끝내 창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창문은 같았지만,

기다림의 의미는

전혀 달랐다.


살아오며 문득 생각했다.


내가 미치게 그리운 게

그 사람이었는지,


아니면 그 시절의

속박 없던 자유로움이었는지—


사실은 지금도

잘 모르겠다.


그 후로 겨울이 다가오면,

눈발이 흩날릴 때마다

손끝부터 서늘한 기억이 되살아났다.


애써 잊으려 했던

그 사람과의 기억들이

하나둘씩 내 눈앞에

그려지곤 했다.


그는 언제나

더 크고 많은 것을 원했고,


나는 책을 좋아해

작은 책방을 꿈꾸는 사람이었다.


애초부터

같은 길을 걷고 있던 건

아니었다.


그럼에도 마음 한구석에서는

바랐다.


만약 마지막 순간이 있다면—


그건 화려한 무대도,

눈부신 불빛도 아닌,


창문 가에 먼지가 쌓인

어느 낡은 책방이었으면

좋겠다고.


언젠가 그곳에서,

우연처럼, 마지막처럼


우리 다시

밤하늘 아래 서 있기를.


닫혀 있던 창문 대신,

낡은 책방의 문이

내게 열리기를.


네 번째 계절이,

그렇게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