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舊사계 ①] 스물 , 쉬다

사계와 별빛

by 불망

스물,

나는 겨우 숨을 고르며 살아가고 있었다.


갈대밭 한가운데 작은 집,

계절마다 달라지는 얼굴에 기대어

나는 하루하루를 버텼다.


봄이면 연둣빛 갈대가 바람결에 출렁이며

작은 집을 포근히 감쌌고,


여름이면 짙은 초록이 무성해

햇살조차 쉽게 스며들지 못했다.


가을엔 누렇게 마른 갈대가 벽처럼 둘러서

집을 더욱 고요하게 만들었고,


겨울이면 앙상한 줄기들이 서로 부딪히며,

작은 집을 지켜주었다.


아빠가 심하게 술에 취한 날이면,

그 갈대밭은 엄마의 작은 몸을 숨겨주던

피난처가 되기도 했다.


밤이면 달빛 아래,

갈대에 몸을 숨기던 엄마의 검은 눈동자를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까치발을 들고 창가에 기대서

그 달빛 속에서 엄마가 영영 사라질까

늘 불안에 떨어야 했고,


그럼에도 달려가 엄마를 지켜 안아줄 용기는

끝내 내게 없었으니,

그때의 나를 나는 오래도록 원망했다.


그 작은 집은 아빠와 엄마가 어렵게 마련한 곳이었지만,

그 벽 너머로 흘러드는 한숨은 막을 수 없었다.


내 방엔 작은 창문이 있었고,

나는 오직 그 창문으로만 세상을 바라봤다.


그 순간만큼은

집 안의 무거운 공기를 잊을 수 있었다.


세상과 나를 이어주는,

유일한 작은 틈.


나는 창문을 열어둔 채,

매일같이 누군가를 기다렸다.


다가와서 말 걸어주기를,

이 작은 틈에서 나를 꺼내주기를.


아직 흙냄새가 가시지 않았던 그 밤,

그 창문 너머로 스며들던 향기.


그 봄날을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그 봄날은 첫사랑의 이름이기도 했고,

내 성장통의 시작이기도 했다.


어린 시절,

나는 누군가의 온기가 늘 그리웠고,

그리 많은 것은 바라지 않았다.


그저, 작은 관심을 바랐을 뿐이다.


스물이 오기 전,

나는 갈대밭의 작은 집 안에서

겨우 숨을 쉬며 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