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소화집 : 기다림처럼, 그리움처럼
오래된 폐가와 능소화.
두려움과 향기가 함께 스며 있던 어린 날의 기억을
단편으로 남깁니다.
버스로 친할아버지, 할머니 댁에 오가던 길.
버스 창밖에는 반쯤 기울어진 낡은 폐가가 서 있었다.
귀신이 산다는 소문으로 늘 술렁이던 그 집.
“어제 아무개가 저기서 귀신 봤대.”
“밤마다 울음소리가 들린다더라.”
확인되지 않은 말들이 버스 안을 가득 채웠지만,
내 눈엔 언제나 담벼락 가득 피어난 능소화가 먼저였다.
창문을 열고, 눈을 감고, 손을 내밀면
손가락 사이를 스치던 바람결,
코끝을 간질이던 능소화의 향기가 아직도 떠오른다.
그날, 부모님은 단칸방을 벗어나 새집으로 이사 간다고
했다.
아빠의 중고 포터에 몸을 싣고 달리던 순간,
덜컹이는 차, 창문 너머 스치는 바람,
길가에 퍼지던 꽃냄새가 설레고 생생했다.
그러나 차가 멈춘 곳은 다름 아닌,
그 집, 그 담장,
그리고 흐드러지게 피어난 능소화였다.
늘 멀리서만 바라보던 집이
이제 내 집이라니.
나는 그 자리에서
숨을 멈춘 듯 서 있었다.
설렘은 싸늘하게 식고,
꽃은 오히려 더 짙게 번져 보였다.
집안으로 들어서자,
소문으로만 듣던 마당의 우물이 보였다.
사람들은 그 우물에 빠져 죽은 처녀 귀신이
밤마다 나온다고 수군거렸다.
그래서였을까.
우물가를 지날 때마다 숨을 죽이고,
능소화 덩굴에 가려진 그림자를 피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대문을 지나 열 걸음쯤 걸어가야,
천장이 뚫려 별빛이 내려다보이는 푸세식 화장실이
나왔다.
볼일을 보면서도 절대 아래를 보지 못했다.
“잘린 손이 올라온다”
그 말은 어린 나를 끝내 눈 감게 만들었다.
그 숱한 밤, 나는 별빛만 세며 버텼다.
별빛이 스며들던 그 화장실은
두려움과 위안이 동시에 내려앉던 곳이었다.
이사 첫날, 처음 누웠던 밤이 아직도 기억난다.
무너질 듯 기울어진 담장,
바람결에 스치던 창호지,
창밖에서 스며들던 낯설고도 익숙한 냄새.
그건 귀신의 기척이 아니라,
능소화의 향기였다.
귀신을 본 적 없었지만,
꽃은 늘 거기 있었다.
소문은 두려움을 만들었지만,
꽃은 그 두려움을 지워주었다.
그 숱한 밤들을 건너며
나는 그 향기에 조금씩 스며들고 있었다.
여름 낮이 되면, 집은 전혀 다른 얼굴을 했다.
햇빛을 머금은 능소화는 담장을 타고 불길처럼 번졌고,
밤엔 귀신의 손아귀 같던 꽃잎이,
낮에는 나비보다 환한 웃음처럼 보였다.
아이였던 나는 꽃밭에 기대앉아
언니와 과자를 나눠 먹으며
밤의 공포를 잊곤 했다.
능소화는 낮마다 나를 지켜주는 수호신 같았다.
아빠가 대문에 달아준 그네를 타면,
주황빛 꽃잎이 바람결에 스치며
마치 내 등을 밀어주는 듯했다.
여름날, 길게 뻗은 마루에 드러누워
담장을 따라 흐드러지게 핀 능소화를 바라보곤 했다.
그 꽃들은 마치 우리 집을 지켜주는 파수꾼 같았다.
하지만 사람들의 수군거림이 늘 마음을 누르고 있었다.
하굣길엔 그 시선을 피하려고
능소화 집보다 몇 정거장 앞에서 내려 집까지 걸어갔다.
집 앞에 다다르기 전,
먼저 코끝을 스치던 향기.
능소화는 날 기다렸다는 듯 피어 있었고,
나는 늘 그 꽃에게 미안해했다.
골목대장이 된 나는
동네 아이들을 이끌고
능소화 집 앞 들판에서 쥐불놀이를 하다
온 담장을 태워버릴 뻔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능소화는 찬란히 피어 있었다.
마치 아이 같은 나를 용서하듯이.
언덕 위 갈대밭에 부모님이 새집을 짓는다고 했을 때부터
나는 능소화를 조금씩 멀리했다.
별빛이 스며들던 화장실도,
향기를 따라 걷던 길도,
곧 사라질 거라는 생각에
마음은 이미 언덕으로 달려가 있었다.
그리고 이사 날.
나는 끝내 능소화를 외면한 채
언덕의 새집으로 향했다.
뒤돌아보지 않았지만,
마음 한구석에서는 꽃이 나를 붙잡는 듯했다.
여전히 누군가를 기다리듯 피어 있던 능소화 앞에서,
나는 그 기다림을 외면하고
꽃에게서 도망친 아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능소화집은 이제 없다.
도로 위에 덮여 흔적조차 남지 않았지만,
바람이 불면 주황빛 향기가
내 곁을 스쳐 지나가는 것만 같다.
낡고 오래된 폐가.
늘 누군가를 기다림처럼 피어 있던 능소화.
그 향기가 아직도 내 코끝을 간지럽힌다.
기다림처럼.
그리움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