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애의 도시락

② 끝내 전하지 못한 그 말

by 불망

내 운동신경은 남달랐다.


운동회만 열리면

달리기는 늘 1등이었다.


숨이 턱끝까지 차올라도,

배가 뒤틀려도

나는 끝까지 달렸다.


하지만 뒤돌아본 결승선엔

손 흔들며 웃어주는 사람은 없었다.


아이들이

엄마 아빠 품에 뛰어가 환호할 때,


나는 늘

혼자 숨만 몰아쉬었다.


아니,

가끔 한 분은 있었다.


눈발처럼 하얀 머리,

얼굴에 깊게 패인 주름,

말없이 그늘처럼 서 있던

우리 집의 또 다른 어른 — 친할머니.


가끔 생각한다.


다른 형제들 기억 속엔

선명한 장면들이 그렇게 많은데


왜 내 기억만


부분 부분 지워지고,

흩어진 파편처럼

남아 있는 걸까.


생각해 보면


우리 집은

찢어지게 가난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부모님의 흔적은

그 시절의 나에게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온 집안 살림은

할머니가 도맡아 하셨고,


내 도시락은

언제나

친할머니 몫이었다.


BYC 양말을 말아 신던 그 아이는—


양말보다,

실은 도시락이 더 예뻤다.


양말만큼 고운

노란빛의 계란말이.

통통하게 부쳐진 햄.


그 아이의 웃음만큼이나

눈부신 도시락.


반면 내 도시락은,


뚜껑을 열면

국물 우려낸 커다란 멸치가

나를 노려보거나,


김치 몇 조각이

덩그러니

놓여 있곤 했다.


씁쓸했지만

그 또한

할머니의 커다란 정이었다.


그저 그땐

알지 못했을 뿐.


도시락을 다 먹지 못하는 날엔

능소화집 담장을 따라 걸어오며


길가 어딘가에 앉아

먹기도 했다.


그리고 괜히,


그 아이가 말을 붙이면

심술 난 아이처럼 굴었다.


더 차갑게,

더 못되게.

미워하는 척,

멀리하는 척.


사실은—


나는 그 애를

미워한 게 아니라,


돌봄의 향기가 스치던

그 아이 앞에서


텅 비어 있던

나를

더 싫어했을 뿐.


그래서 결국


미안한 건

그 아이가 아니라,


끝내

아무도 돌봐주지 못했던


그 시절의 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