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어이 흰머리가 나고야 말았다.
아홉번째 일요일
거울을 보며 족집개로 눈썹을 정리하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머리를 쓸어 넘기며 흰머리를 찾아보았다.
윽!
웬걸?!
흰머리가 났다.
이제 막 변하고 있는 흰머리를 세 가닥이나 뽑았다...
언제는 자연스럽게 늙어서 웃는 주름을 가지고 싶다더니,
처음 마주한 흰머리에 미간이 찌푸려진다.
완벽한 언행불일치다.
팔짱을 끼고 심각한 표정으로 세 가닥을 한참 내려다본다.
지금 드는 이 감정은 필시 '서글픔'에 가깝다.
내 나이 서른일곱.
사실 흰머리를 발견하기에 딱 좋은 나이긴 하다.
보통 30대 중후반부터 매년 전체 모발의 10% 정도씩 흰머리가 나기 시작한다고 한다고 하니
나도 피해가진 못할 모양이다.
가까운 사람들의 수많은 노화를 목도했다.
그리고 눈으로 발견할 때마다
이놈에 노화는 단 한 번도 아름답거나 예쁘게 보인 적이 없었다. 문득 핸들을 잡은 엄마의 손을 보았을 때 느껴지는 손등의 나이 듦이라던가, 반바지 아래로 살짝 나온 무릎의 쪼글거림, 언제 생겼는지 모를 이모의 거뭇한 검버섯 등으로 시작한 노화의 발견들은 점점 더 나와 가까워졌다.
남편의 희끗한 코털이나 깊어진 팔자주름, 사촌언니의 자글자글한 눈가 주름까지 노화는 내 턱밑까지 올라온 느낌이다. 숨이 턱턱 막힌다.
요 며칠 전부터 내 목에 이렇게 주름이 있었나,
턱밑에 살이 좀 탄력을 잃은 것 같은데 이런 심증들이 차오르더니 기어이 물증을 찾고야 말았다.
물증을 보고 나니, 이제야 실토한다.
붙잡고 싶다. 나는 아직 예쁘다는 말을 듣고 싶고, 길거리에서 남성들의 시선을 받고 싶고, 어려 보인다는 말을 듣고 싶고, 거울과 셀카를 즐기고 싶다.
나는 아직 내 젊음을 보내줄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
아직 아니라고!!
갑자기 예전에 읽은 철학책에서 보부아르가 말했던 멘트가 떠오른다.
"늙어간다는 건 내가 세상의 주인공이 아님을 서서히 깨닫는 일이다."
그리고 언젠가 TV에서 우연히 보았던 멘트도 불현듯 스쳐간다. "어느 날 거울을 보았는데, 거울 속 이 늙은이는 누구지? 생각했다. 마음속에 나는 그대론데.."
이런 일들이 남의 일이 아님을 본능적으로 깨닫는다.
이미 노화는 시작되었고,
갓 피어나는 청춘의 싱그러움과는 경쟁할 수도 없다.
하지만, 마음을 가라앉히고 차분히 생각해본다.
노화라는 분야에서 만큼은 먼저 경험한 무수한 선배들이 있다.
그리고 이들이 늘 하는 말이 있지.
노화와 관련된 말이 진실이었다면, 아마 이 말들도 사실에 가까울 것이다.
"여자는 30대 때가 제일 예뻐."
"아니지 40대도 고혹미와 우아함이 있지"
"50대도 아직 젊어."
...
아마 우리는 모두 후회하기 장인들인가 보다.
좋은 지 모르고 마구 흘려보낸 지난 시간들이
아직도 예쁘고 멋있고 젊고 소중했다.
몇 년 전 마음에 안 들었던 사진이 지금 다시 보면 그저 싱그럽고 어려 보이는 걸 보면,
이 말을 믿어야 할 것 같다.
이미 지나간 세월을 붙잡을 수 없다면
차라리 이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진다.
'우리는 오늘이 제일 어리고, 예쁘고 멋지다.'
뜬금없지만,
이것은 마치 아빠가 예전에 늘 하셨던 말씀과 묘하게 닮았다.
"혼자 음식을 먹을 때는 말이지. 제일 맛있는 것부터 먹는거야. 그럼 다 먹을 때까지 넌 계속 제일 맛있는 것만 먹게 될 거야."
인생을 다 할 때까지 말이지
오늘이 제일 멋있고 예쁘게 살아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