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방 공사중

여섯번째 일요일

by NFP

늦은 밤 고속도로를 탔다.

쏜살같이 달릴 것으로 예상하고 침을 꼴깍 삼키며 진입한 램프는 꽉 막혀있었다.

이 시간은 이렇게 막힐 시간이 아닌데 불구하고,

차들은 5km/h로 설설 기어가고 있다.


전방에서 도로 공사 중인 듯하다.

도로 위 모든 LED 표지판에는 [전방 공사 중]이라는 글씨만

깜빡깜빡 점등 중이었다.


2km 정도 지났을까.

현란한 빨간 불빛을 뽐내는 트래픽콘들이 긴 텀을 두고 천천히, 그리고 자연스럽게 1차선을 차단한다.

차단된 1차선에는 엄청 큰 크기의 대형 LED 판도 서있었다.

그 LED판에는 4차선 도로 모양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1차선에 크게 X자가 표시되고, 2차선으로 빠지라는 그림이 한눈에 보인다.

아주 직관적이고 훌륭한 사인이다.

차단된 1차선에는 혹시나 모를 진입 차량을 위해 이동식 방지턱을 5줄이나 깔아놓았다.


1차선이 막힌 채 한참을 더 달린다.

한 1km쯤 지났을까 1차선과 유사한 패턴으로 자연스럽게 2차선까지 진입을 차단한다.

2차선과 3차선 경계에는 붉은 불을 번쩍이는 트래픽콘이 좁은 간격으로 빼곡히 정렬하고 있다.

100m쯤 마다 정차돼있는 1톤 트럭 뒤에는 번쩍이는 화살표가 달린 네온사인이 꼿꼿이 서있다.

한 밤의 고속도로 위 현란한 불빛에 눈이 황홀할 지경이다.


2차선을 막은 채 몇 키로를 더 달려도 아직 공사현장은 보이지 않는다.

이쯤 되니 궁금해진다.

도대체 얼마나 큰 공사길래 5km 되는 길을 따라 이렇게 대대하게 예고를 하는 거야.


번쩍이는 공사 사인의 끝없는 향연이다.

4차선 도로의 절반을 막은 탓에 꽉 막힌 정체는 해소될 기미가 안 보인다.

터널 하나를 온전히 지나고 나서야 저 앞 공사 현장이 설핏 보인다.

2.5톤 대형 트럭이 다시금 네온사인을 번쩍이고

움직이는 마네킨들이 손을 위아래로 저으며 경고를 한다.

이제야 현장이 제대로 보인다.


감성의 농도가 짙어질 대로 짙어진 늦은 밤 드라이브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시기적절하게 깔리는 차분하고 웅장한 피아노 선율 때문이었을까.

가슴 속 뜨거운 무언가가 울컥하고 올라온다.




나의 아버지는 대형 건설사에서 오랜 기간 근무하셨다.

대학에서 토목 공학을 전공하시고,

교량, 댐, 터널 등을 건설하는 국가 정비 사업을 종종 맡아 진행하셨다. 주로 현장에서 소장으로 근무하셨다.

건설사 친한 동기들끼리 8명 정도 하는 모임이 있었다.

우리는 여름 휴가철에 매년 함께했다.

하지만 그 모임은 오래 가진 못했다.

입사 후 불과 10년 만에 동기 중 절반이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그 시절 건설 현장은 참으로 위험한 곳이었다.


어느 날 주말이었다.

엄마가 해준 따뜻한 닭칼국수를 한 그릇 뜨끈히 먹고

우리 모두 몽롱한 표정으로 신작 비디오를 소개하는 채널을 보고 있었다.

나른한 정적을 깨고 카랑카랑한 전화벨 소리가 울려퍼졌다.


따르릉


아빠가 일어나 특유의 낮은 목소리로 차분히 전화를 받았다.

아빠는 간간히 '네'라는 대답만 했다.

전화가 끝나고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그 후에도 한 동안 전화기만 쳐다보고 계셨다.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지만, 엄마와 언니 나는 무언가 엄청 안 좋은 일이 생겼음을 직감했다.


잠시 후 아버지는 뒤를 돌아, 우리를 한번 힐끗 쳐다본 후 엄마를 향해 이야기했다.

"김소장님이 현장에서 다치셨다네. 병원에 가봐야 할 것 같아."

제일 친한 친구가 도로 건설현장에서 차에 치여 10m 아래로 추락하셨고, 현재 구급차로 인근 병원으로 이동 중이라는 긴급 전화였다.

그 분은 현장에서 즉사하셨다.

이미 돌아가셨기에 구급 법상 사이렌을 켜고 갈 수 없었다고, 그래서 사이렌도 울리지 못하고 병원으로 이동되셨다고 한다.

그 당시 그 분의 나이는 38살.

어린 두 남매의 아버지였다.




고속도로 절반은 막은 공사현장이 비로소 보인다.

네다섯 명 되는 사람들이 도로 파인 곳을 정비하고 있다.

모두 현란한 네온 조끼를 입고 빠르고 분주하게 작업하고 계셨다.

상상보다 훨씬 더 단출한 공사였다.


얼마나 많은 희생이 있었기에

지금의 이런 과하고 과한 공사 주의 사인이 생긴 걸까.

순간 마음이 좀 먹먹해졌다.


얼마 전 나는 과유불급이란 주제로 글을 썼었다

'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는 의미로

이 시대의 과함을 비난하는 글이었다.

하지만 오늘 나는 내가 쓴 이 글을 정정하고 싶다.


과해도 과해도 과해도

지나치지 않은 부분이 하나 있다.


오늘 난 그 걸 목격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24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