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방향, 사잇길의 범위 정리
난 동생에게 조언을 많이 구하고, 그것이 마음에 들게 결과가 나올 때가 많다. 사이가 안좋다고 부모님은 생각하지만 제일 친하다. 말투의 차이일 뿐.
오늘도 내 작업방향에 대해 설명해주니 너무나도 어렵고 그건 50-60 작가들도 힘들다고 했다. 맞다. 난 사실 내가 천재일 줄 알고 계속 했다. 노력하면 언젠가 되겠지 했다. 하지만 난 아무것도 아닌 존재이다. 새월도 짧게 산 우매한 인간일 뿐이다. 젊은이. 인생 경험도 짧아 덜어내봤자 얄짤 없어 오히려 버린걸 억지로 덧붙이거나 그림 그리는 동시에 이야기를 만들어야만 겨우 발톱 때만큼 따라갈 수 있는 그런 사람. 그러니 그림 그릴때 너무나 힘들었던거다. 계속 느껴왔던것이지만 전시를 보며 확 깨달았다. 내가 얼마나 황새 가랑이 찢어지다 못해 어이없는 짓을 하고 있는지. 새월은 천재도 따라 갈 수 없다. 그걸 왜 몰랐을까. 노력이 문제가 아니다. 이건 불가능한 것이다.
사잇길. 관계성. 참 다양하다. 나무와 나무 사이일 수도 있고, 우주의 세계, 사람과 사람사이, 오고 간 대화, 시, 음악, 들리는 소리, 오고가는 잡히지 않는 그리고 보이지 않는 매개체, 빛과 어둠사이, 골목길, 공기와 숨 사이, 페이지와 페이지 사이, 말라가는 꽃과 벽 사이, 눈알과 안경, 글자와 글자 사이… 이 모든것을 하나에 담기 벅차다. 난 그것을 하려고 했다. 그날 보고 느낀 모든 '사이'를 한 공간에 담으려 했다. 작은 화면이든 큰 화면이든 이 모든것을 담고 싶어서 계속 그렸다. 한 색깔, 하나의 모양, 그리는 행위 자체에 집중하며 그렸다. 장수는 쌓이고 쌓였다. 그런데 하나씩 보면 봐줄 만 한데 전시하려고 모아놓으면 다 이야기가 안맞았다. 시리즈가 성립이 안됐다. 오늘과 내일 발전은 했지만 너무나 달랐다. 점점 전시에 대한 자신감이 사라졌다. 그냥 그리는 행위 자체만 집중했다. 스승도 만들기 싫고 점점 속으로 기어들어갔다. 언제나 우울했다. 그건 병원가서 해결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란 걸 알기에 더욱 힘들었다. 머리가 아프고 항상 먼산을 봤다. 노인처럼 굴었다. 어린애가 노인 따라하려니 웃겼을것이다. 그 어렵다는 양자역학을 가져다가 써보기도했다. 더 어려워했다. 나도 어렵다. 어려우니 어려운 이론 쓰다가 어렵게 설명했다. 말 가만히 듣고보면 어렵지 않은것같은데 속은 어렵고 복잡했다.
그렇다. 복잡했다. 내 문제는 정리다. 평생 정리하다가 죽을 지도 모른다. 어떻게하면 그림으로 관계성이나 사잇길을 표현할 수 있을까. 그건 그저 빈 공간을 그리면 되는 것이다. 불친절하게 한 화면에 색 칠하고 재목이나 말로만 설명 할 수도 있을것이다. 하지만 가시적으로 보였으면 한다. 양 쪽이 있으니 그 사이도 있는 것이니까. 예를 들어 나와 너를 그릴 때, 두 화면에 그리고, 가운데에 한 화면을 비었지만 무언가 있듯한 느낌으로, 내가 좋아하는 추상으로 그리는 것이다. 1<->1. <->을 표현하는 것이다. 길을 예로 들면 벽과 벽 사이, 길을 가운데에 화면으로 둔다.(예시1)
별로 획기적이지 않을지는 몰라도 내가 이해할 수 있고, 관객들도 이해하기 쉽다. 그림채는 내 방식대로 하되 알아보기 쉽고, 정확히 한두개만 그려야하니 뚜렷하게 그리고, 재목은 매우 간결하게 한다.
<나>,<사잇길>,<너> 시리즈물로도 무한히 만들 수 있고, 뻗어나갈 방향이 많이 보인다. 하나씩 보아도 느낌이 좋을 것이다. 아니 따로 보면 무엇이 되려나. 보는 이와 그림과의 관계가 성립되니 전시는 성공하는것인가.